처음 온 무대에서, 주위를 둘러 보다가 갑자기 불이 꺼지더니 무대에서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연극 배우들이 나오면서 각자 연기를 펼쳤다. 처음 나온 남자는 호탕하게 웃으면서 관객들의 관심을 사로 잡았다. 나도 그 남자를 보았다.

난 세 줄 뒤로 관객들 사이에 있었는데, 공연장은 그리 크지 않았다. 그래서 유일하게 불이 켜져있는 무대 속에서 그의 표정과 눈빛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남자는 한치의 미동도 없이 연기를 소화내고 있었다.

가끔식 연기를 하다가 실수를 하면 어쩌지 라는 걱정을 자주 했다. 그러나 그들도 전부 연기 라는 재능이 있고, 이 무대를 위해 몇 날이고 연습 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실수하는게 더 힘들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괜한 생각을 한거지.


곧 이어서 한 여자가 나왔다. 주인공인 남자의 여동생이었다. 사기꾼인 여자에게 고백하려는 남자를 저지하는 역할로 나왔다. 그녀는 매우 수척해보였는데, 몸은 옷을 입고 있기에 잘 몰랐지만, 얼굴은 머리에 있는 두개골의 형태가 거의 드러나 있었다. 난 이 모습을 보고 좀 놀랐다.

여동생 역을 맡은 그 배우는 바로 내 대학 동기였다. 그리고 동시에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기도 했다. 내가 대학에 있을때만 해도 그녀의 모습은 그저 평범한 아름다운 얼굴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이랬던 그녀가 오랜만에 만나 삐쩍 마르게 변해있다니, 믿겨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모습에도, 그녀는 처절한 여동생 역을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주변의 관객들이 전부 그녀를 측은하게 보기 시작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이제 관객들 사이에서 완전히 불쌍한 어린양이 되었다. 

그렇게 연극이 끝나고, 모두가 공연장을 빠져 나올 때, 난 홀로 무대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미리 전화를 해두어 공연장에서 만나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앉은 자리에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야.”

곧이어 마음이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많이 기다렸어?“

”아니. 괜찮아.“

그녀는 날 보고 미소를 짓으며 같이 공연장을 나왔다. 사람들은 이미 다 나갔는지 우리 둘만 있었다. 곧이어 완전히 건물을 나오고 시내 거리로 들어갔을 때, 그녀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녀는 연극 생활을 하고 있었고, 그녀의 sns를 통해 알 수 있었다. 반면 난 직업이 없었다. 이때까지 알바하고 노가다 해서 모은 돈으로 놀고 있었다. 

”그래서, 뭐 좀 마실래?“

”나야 좋지.“

”좋아. 저기 어때?”

그녀는 손가락으로 바로 앞에 있는 카페를 가리켰다. 그리고 무심코 그녀의 팔뚝을 보았는데 얼굴과 마찬가지로 팔도 뼈가 다 드러나고 있었다. 하지만 여자의 팔을 본다는게 실례된다는 생각에 빠르게 카페로 시선을 옮겼다.

“음. 상관없어.“

”좋아. 그럼 가자.“

그녀가 먼저 앞장서서 움직였다. 나도 그녀를 따라 움직였다. 카페는 바로 앞이었지만 길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걷는 것 조차 신경을 쓰며 걸어야 했다. 마른 그녀가 자칫하단 사람들 사이에 부딫쳐 넘어질 것 같기도 해 걱정했지만, 그녀는 용감하게 아무 피해도 없이 카페에 들어갔다.

우리는 커다란 창문이 바로 옆에 있는 테이블에 앉았다. 그리고 서로 마실 음료수를 결정하고 다시 테이블에 앉아 묵묵히 서로를 느낄 뿐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만큼 할 말도 많겠지만, 왜인지 그녀의 모습을 보고 할 말이 떠올려지지 않았다. 그건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서로를 왜인지 어색해하고 있었다. 그저 서로 조용히 창밖을 보거나 핸드폰을 볼 뿐이었다.

이윽고 몇 분이 지나자, 그녀가 말을 꺼냈다.

”음. 근데 갑자기 왜 보자 한거야?“

그녀가 말했다. 난 그런 갑작스런 질문에 당황해 겨우 말을 내뱉었다.

”그냥… 서로 아는 사인데도 잘 만나보질 않아서…“

”내가 보고싶었구나?”

“아니, 난 그냥…“

그녀는 나를 향해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난 조금 부끄러움을 느꼈다. 금방이라도 얼굴이 빨개질것만 같았다. 그리곤 그녀는 다시 말을 꺼냈다.

”그러니까 갑자기 떠오르네, 너 그때 기억나?“

”…. 언제?“

”그때, 다같이 대학 엠티때, 저녁 쯤이었나 너가 술 된통 취해가지고 나한테 고백한거, 기억나?“

”내가. 내가 그랬다고?“

”응, 그때 얼굴 엄청 빨개져서 모두가 웃었는데.”

그런 기억은 나지 않았다. 아무리 기억을 되내여도 그런 기억은 없었다. 하지만 난 술에는 굉장히 약한 편이라 기억이 아에 지워진 것일 수도 있었다. 아님 그녀가 거짓말을 하거나, 그녀는 금방이라도 폭소 할것 같은 웃음을 좀 과하게 짓고 있었으니까.

“그때 말이야… 완전 연극 배우 처럼 막 목소리 깔고, 아주 그냥….”

“장난이지! 장난이야.”

“에이, 장난이겠냐? 완전 각잡고 하던데?“

”술에 쩔어있었는데, 그럼 사실이겠냐?“

”술 마시면 본성이 나온다잖냐.“

”아니야, 난 그렇진 않아.“

난 계속 허둥대며 나의 고백을 해명했다. 하지만 해명이랍시고 한 것들도 다 어딘가 미숙했고, 내가 해명할 수록 그녀의 웃음은 더 커질 뿐이었다. 그래도 다행인건, 어색했던 분위기가 조금 사라졌다는 것이다. 차라리 내가 이렇게 허둥대며 하는게 더 좋겠다고 생각해 난 더 적극적으로 당황하는 척 했다.

그렇게 어느새 놀라며 허둥대다가 우리들이 주문한 음료수가 나왔다. 하나는 표면에 물방울이 생기며 더 시원하게 생긴 아이스 아메리카노 였고, 하나는 내가 시킨 망고 스무디였다. 그녀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집으며 한 입 마셨다. 나도 내 음료를 가져가 한 입 마시기 시작했다.

달콤한게 입 안에 골고루 퍼져 기분이 좋았다. 더운 여름에도 입 안에는 스무디로 작은 얼음 사레를 퍼붓고, 또 삼키면 그 차가움이 온 몸에 퍼져 금방 시원해졌다. 그녀도 마찬가지로 좋아 보였다.

난 분위기가 올라간 이 순간을 가지고, 그녀에게 물어 보았다.

”근데, 너 왜이렇게 말랐어? 예전만 해도 평범하게 보이더니.“

이 말을 듣자 그녀는 잠시 표정이 굳어지고, 아무말 않다가, 금새 다시 작은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나 암걸렸어. 시안부래.“

그녀의 말에 순간 내가 분위기에 당했구나 생각했다. 아무런 생각없이 그녀의 아픈 구석을 의도치 않게 건드렸다는 생각에 다시금 난 놀랐다. 그리고 분위기는 그녀의 말을 시작으로 다시 내려가기 시작했다. 우리는 다시 어색해졌다.

서로 말 없이 음료를 마셔대며, 다시 핸드폰을 잠깐 보거나 밖을 볼 뿐이었다. 괜히 분위기를 흐트렸다고 생각해 정말 후회스런 마음이 가득히 맴돌았지만, 나도 그녀의 심정을 잘 이해한다. 나도 저번에 암 판정을 받았다. 그녀와 같이 시한부 판정으로.

그 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는, 마음과 그에 따른 시선이 처참히 무너졌다. 이제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지도, 그리고 무슨 일을 해야할지도 몰랐다. 전부 이제 나에게로 가치를 찾을 수 없는 전부가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사랑을 하든 돈을 벌든 오래 누릴 수 없는 나에게는 이득이 없었다. 

마음이 무너지니 서서히 의지가 사라지고, 의지가 사라지면서 살려는 생각도 점점 사라졌다. 한동한 무척이나 우울했다. 이렇게 하루하루를 죽음이라는 공포 속에 사느니 차라리 금방 내 목숨을 끊는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부모님도 없는 저녁에 부엌 칼을 가져다 내 가슴에 찌르려고 칼을 갖대기도 했다.

그때는 심장이 미친듯이 요동쳤다. 내 손이 심장으로 서서히 가까이 다가갈 수록 손도 심장처럼 미친듯이 떨렸다. 그리고 이내 난 고통이라는 순간의 공포 때문에 칼을 바닥에 내팽게쳤다. 그리고 흐느꼈다. 이렇게 하루를 무섭게 사느니 한 순간의 극심한 고통이 낫다고 생각 했건만, 정작 난 이 쉽게 가는 고통도 무서워 했다.

그렇게 쉼 없이 울다가 지쳤을 때, 난 다시 옆에 있는 칼을 보았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려 밖을 보기도 했다. 차라리 밖으로 뛰어 내릴까. 하지만 이내 둘다 똑같다며 생각을 그만 두었다. 그리고 허공을 바라보며 곰곰히 생각했다.

온갖 부정적인 생각을 머리속에 곱씹으며 공허를 느끼고 있었지만, 이내 곱씹을 것도 다 사라졌다. 그리고 내 마음은 역순환을 하기 시작했다. 차라리 내가 금방 죽을 목숨이라면, 내 삶, 내 전부를 잃어버린 나이기에, 난 이제 자유로운 몸이 아닐까?

돈은 살기위해 벌지만 내 삶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모든 사람에 맞쳐가며 사는 삶도 편히 살기 위해 하는 행동이지만, 이 편한 삶도 이제 사라질 것이다. 난 이제 잃을 게 없다. 내 전부는 가루가 되어 지금도 바람에 날리고 있다. 그리고 가루는 나에게 자유의 향기를 준다.

이제 난 사회속에 나 자신이 아닌, 이제 진정한 내 자신이 되어가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시한부라는 것을. 어쩌면 신이 주신 마지막으로의 행복의 순간을 준게 아닐까 생각했다.

난 살면서 평생 진정한 나 자신으로 살아간 적이 없었다. 내 욕구와 내 소원을 이행하기엔 삶은 너무 각박했고, 내 본성을 드러내기엔 모두가 자신들을 속이면서 살아갔다. 이제 내 자신은 시한부라는 기회로 모두의 사회에서 가면을 쓸 이유가 사라졌다. 이제 진정 이 짧은 생을 진정 행복으로 살 운명이 생겼다.

난 그 생각으로 몸을 이르켰다. 한층 행동은 활기차 보였다. 그리고 엄마가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엄마는 식탁에 있는 나와, 바닥에 널브러진 칼을 보고 놀라셨다. 엄마가 무슨 일이냐고 물어봤지만 난 대꾸하지 않고 엄마에게 다가가 엄마를 그대로 안았다. 그리고 말했다.


엄마, 나 이제 안 우울해. 나 이제 살만 해진 것 같아.


*


그 미친듯이 어색했던 카페에 빠져나왔다. 그녀와 나는 카페에서 나와도 서로 말 한 마디를 못했다. 서로 한 동안 가만히 있다가, 이내 못이겨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시내 구경이라도 할래?“

그녀는 내 말에 잠시 날 쳐다보더니, 표정이 풀린 채로 

”… 좋아.“

라고 답했다. 나도 웃으며 먼저 앞장섰다. 그녀도 내 옆에 서며 날 따라다녔다. 그렇게 우리는 사람 많은 시내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걸어갈 때 마다 그녀를 슬금슬금 보았다. 그녀의 걸음이 꽤나 벅차 보였다. 난 서서히 속도를 줄였다. 그리곤 그녀가 갑자기 날 보더니, 살짝 미소를 보이며 이내 다시 앞을 보며 걸어갔다.

하지만 사람이 너무 많았다. 이런 넓지도 않은 골목에서 울퉁불퉁한 사람들이 이쑤시개 같은 그녀를 밀칠까봐 걱정됬다. 그녀가 힘 없이 바닥에 쓰러질 걸 생각하니 더욱 더 불안이 솟구쳤다. 손이 근질 거렸다. 그녀와 손만 잡으면 이 사태들은 전부 사라질지도 몰랐다. 그래서, 난 무심코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녀는 놀라 날 보았다. 나도 그녀를 보았다.

”사람 많은데 잃어버리면 안되잖아.“

그렇게 거리 한 가운데에 멈추며, 잠깐의 시간 동한 서로를 본 결과, 그녀는 웃음을 터트리며 내 손을 곱게 뿌리쳤다. 그리고 말했다.

“하하. 내가 그렇게도 약해 보여?”

”아니 난 그냥… 사람 많으니까…”

“걱정마. 난 니 얼굴이랑 몸 기억하고 따라다닐 테니까. 혹시나도 길 잃어버려도 전화번호가 있는데 걱정할게 있겠어?“

아, 생각해보니 그렇다. 난 이때까지 다시 괜한 걱정을 했나 보다. 아마 그냥 그녀와 손 잡고 싶다는 그런 욕구를 합리와 시키기 위해 일부로 쓸데없는 생각을 할 수도 있었던거다. 난 아무 말 없이 그저 

”그래…“

라고 말했다. 그녀는 이런 내 모습에 더 웃음을 터트리며 그대로 앞장섰다. 나도 그런 그녀를 따라 같이 걸어갔다. 이내 그녀가 걷다 말고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손 잡고 싶어?“

”응?“

”손 잡고 싶냐고?“

난 아무말도 못했다. 이윽고 그녀가 나에게 손을 내밀면서 적극적으로 행동했다. 나에게 구애를 하는 것만 같았다. 난 차마 그녀의 손을 잡을 수 없었다. 왜인지 모를 불안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이 기회를 놓치기도 싫었다. 시간이 지체되면 이 순간은 이제 오지 않을 것만 같아서, 내 마음과 근육은 더 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난 힘없이 손을 내밀며, 그녀의 손에 살짝 닿게 손을 뻗었다. 그때, 그녀의 손이 내 손에 닿자마자 그녀가 내 손을 덥석 잡아 채며 날 잡아당겼다. 그렇게 난 당황해 하며 그녀에게 거의 끌려가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난 이 손을 놓지는 않았다. 되려 마음은 더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편안했다. 그렇게 난 당황하는 척하며 그녀와 손을 잡고 거리를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런 그녀는 날 살짝 계속 보았는데, 웃음기가 보이는 것 같았다. 나도 이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만족하고 걸어갔다.


지나가는 길에 푸른 상록수들이 심어지고, 게다가 바람까지 불어서 무언가 시원하고 이상적인 상황이 나오게 됬다. 이때쯤에 거리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기에 우리는 주위를 구경할 수 있었다. 넓은 평야에 풀은 없고 희연 대리석 바닥들이 놓아져 있다. 주변에 큰 나무들은 별로 없고 가지각색의 건물들이 많다.

문뜩 하늘을 올려 보고 그녀를 다시 본다. 그리고 다시 하늘을 본다. 아쉬운 마음이 천장에 닿는다. 그 마음이 뚫어 하늘까지 갔으면 좋겠다. 하느님이 내 안타까움을 알아 내 생이라도 연장 시켜주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그녀도 나랑 같은 생각을 하는지 잠깐 하늘을 보다 나랑 눈이 마주쳐 금새 피하기도 했다.

삶이란게 영원이란 건 없지만 그렇다고 이 삶은 우리가 기대한 삶도 아니지 않나. 괜히 이 편안한 순간이 망가져 버릴까봐 잠깐 고개를 숙인다. 조금 마음을 다듬고 이런 나를 부르는 그녀를 작은 미소로 반긴다.


그녀와 많은 대화를 나눴다. 벤치에 앉아서도, 걸어가면 서도, 여러곳에서 말이다. 대화를 나누는 순간 만큼은 그녀의 눈은 활기가 있었다. 죽음을 판정 받은 그 다 무너진 공허한 눈에 잠깐의 아름다운 비눗방울이 솟아 올라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거의 해기 지기 무렵에 그녀는 다른 연극 준비가 있다며 날 버스 정류장으로 끌고 왔다. 사람은 없었다. 그녀와 나 뿐이었다. 서둘이서 의자에 앉아 도로를 쳐다보고 있으면서도, 짧은 대화들을 나누기도 한다.  빠르게 지나가는 차를 보면서 그녀가 잠시 고개를 숙이고 나에게 말한다.

“오늘 좋았어?”

그녀의 여린 목소리가 담긴 소리에 난 고개를 돌리며 다시 미소 짓는다.

”응.“

이윽고 그녀의 뒤에는 그녀가 타야 하는 버스가 다가오고 있다. 그녀도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것 같다. 다가오는 마지막 순간, 어쩌면 그녀를 마지막으로 볼 날을 이렇게 지나가야 한다는 그 순간에 그녀를 금방이라도 껴앉고 싶었다. 그녀도 다가오는 버스에 작은 심각함을 느끼고 있었다.

시간이 멈추었으면, 영원히 멈춘 공간에서 그녀와 단 둘이서 그녀를 영원히 보고, 영원히 느끼고, 영원히 알고 싶다. 그런 생각에 손이 주춤하며 움직인다. 그러나 잔인하게도 버스는 우리가 있는 정류장에 도착했고, 그녀도 몸을 이르켜 세운 뒤였다.

움직이면서 그녀가 말했다.

”나중에 시간 나면 연락 줄께.“

아직 끝을 맺고 싶지 않다는 그녀의 작은 떨림, 평소 그녀의 목소리와는 달랐다. 나도 그걸 느꼈다. 나와 그녀와 서로 여운이 깊게도 남아 있었다. 그것도 서로를 진심으로 알아야지 느끼는 감정이었다. 

”응.“

나도 작은 말로 그녀를 배웅했다. 하지만 그녀는 듣지 못했는지 바로 버스를 탔다. 버스는 문을 닫고 창문 너머로 의자에 앉는 그녀를 본다. 웃음기가 사라진, 다시 공허의 얼굴로 앞을 본다. 그 사이에 버스는 출발한다. 난 그녀를 그저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돌리며 더 내 시야에 들어오게 할 뿐이었다.


*


어제 저녁에 그녀를 보내고 포장마차에서 술을 좀 많이 마셨다. 그리고 그 이후로 눈을 떠보니 우리 집이었는데, 날 깨우게 한건 핸드폰 전화 벨소리였다. 몽롱한 상태로 전화를 받아보니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쩌면 조금은 텁텁하면서. 난 그 목소리를 듣고 순식간에 정신을 차렸다.

“이따가 술이나 한 잔 할래?”

“어제 너 보내고 술 마셨어.”

“그건 어제고.”

“다시 마시기엔 좀 그런데.”

“난 상관 없어. 어짜피 내 삶도 얼마 안남았는데.“

그녀가 그런 말을 할때마다 난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굳이 우리의 어두운 미래를 꺼내면서도 살아야 싶었던가. 늘 그것 만큼은 피하고 싶었는데, 자꾸 시간을 지내다 보면, 그 똑딱 거리는 시침을 보자면 거스를 수 없는 그 잔혹한 운명이 나에게 서서히 다가오는 것을 느낀다. 

”… 그럼 나도 갈께.“

”좋아, 이따 만나자. 내가 문자 보낼께.“


전화가 끊어지고 그 순간의 ‘뚝-’소리가 날 다시 아쉽게 만들었다. 무언가를, 특히 사랑을 누린다고야 한들, 내가 진정한 자유로 감미된 사랑을 누린다 한들 이 모든 것에는 항상 공포가 공존해 있었다. 언제 어디서 죽을지 모르는 공포가.

내가 정해진 시간 보다 더 짧게 살 수도 있고, 오래 살 수도 있다. 하지만 죽는다는 것은 늘 똑같았다. 왜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 할까? 사람들은 죽음 자체는 두려워 하지 않는다. 죽음 이후에 가는 공간을 더 두려워 할지도 모른다. 그곳은 아무도 모른다. 무한한 어둠인지, 아님 천국인지 지옥인지.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은 죽음 이후를 생각하고 연구했지만, 아무도 그 결과를 모른다. 그저 추측만 난무하여 우리에게 더 큰 혼란을 줄 뿐이다.


허나 확실한 건, 죽음 이후의 사람의 모습은 모두 평안해 보인다는 것이다.


우린 과연 무엇을 고대하며 죽음을 맞이할까. 그 시체의 평온함이 과연 어디로 사람을 이끌기에 저런 평온함이 보이는 것일까. 허나 자연사는 반대로 죽음을 선고 받은 사람이라면, 과연 그 시체도 평온함이 스며들까? 과연 사람이 죽음을 용감하게 받아드릴 수 있을까. 갈루아가 말했던 유언이 떠오른다.


울지마라, 알프레드! 나이 스물에 죽으려면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단다.


그가 죽은 나이와 내가 살아있는 나이는 겨우 다섯 살 차이다. 난 그와 마찬가지로 한 순간에 죽음을 판정 받고 서서히 시간이 생명을 갈가먹는 것을 아는 채 그저 기다리고 있다. 그는 그래도 판정을 받고 짧은 시간에 죽음을 맞이 했지만, 난 판정을 받고 오 개월이 지나도 죽지 않았다. 의사는 나 보고 일 년을 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파란만장한 삶에서 자신의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온 몸으로 느낄 때, 그때 판정을 받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아직도 그의 죽음은 미궁이니까.

이런 생각을 계속 씹고, 또 고뇌하게 되면 되려 난 저절로 마음이 눈물로 가득 차게 된다. 옛날의 내가 정말 힘들 삶을 살아 왔을 때, 절대로 자살 만큼은 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자살로 생기는 소식은 누군게에게 득이 될것이 없다. 날 싫어하는 사람들이나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찝찝함과 큰 슬픔만을 안겨 줄 뿐이다.

그래서 이런 상상을 해보았다. 내가 죽어서 관에 눕힌 채 들어간 다음, 내가 영혼이 되어 장례식을 보는 상상. 어머니가 내 관을 붇들어 잡아 울부짖으며, 뒤에는 할머니가 이런 엄마를 잡고 슬피 우신다. 아빠는 그런 관을 보며 소리없이 조용하게 흐느끼고 있다. 

이런 상상을 하면 할 수록 왜인지 눈물이 나왔다. 그래서 죽음이란 건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끔찍한 것이다. 그리고 이 거대한 삶에서 흔하고 하찮은 인간은 죽음을 극복할 수 없다. 극복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모두 합리화에 젖어든 것일 뿐.


밥도 잘 넘어가지 않아서 평소 화기해 하던 나의 의외에 모습에 엄마는 무슨일이 있냐면서 나에게 물었다. 난 별일이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방에서 잘 나오지를 않았다. 생각도 이제는 귀찮고 실증이 나서 그냥 자버렸다. 아주 오랬동한 잠든 것 같았다.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른 채

그렇게 또 전화 벨소리가 날 깨웠다. 전화를 받으니 익숙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자 보냈어. 여기서 두 시까지 만나자.”

“응.”

그렇게 전화가 끊어지고 문자를 확인하니 내 집과는 거리가 좀 있었다. 두 시까지는 한 시간만 남았기에 어서 준비를 해야 했다. 침대에 힘겹게 몸을 이르켜서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자 뜨거운 햇살들이 차가운 나의 몸뚱아리를 비추고 있었다. 유독 오늘만은 차가운 나의 몸뚱아리를.

버스를 타고 그 속에서 그저 묵묵히 다양한 시선들을 펼치는 사람들을 보았다. 예전에는 나랑 별 다를게 없는 사람들이지만, 지금은 아니였다. 그들은 무언가를 이룰 기회들이 있었다. 살아감으로 말이다. 그들을 멍하게 한참 동한 쳐다보고 있으니, 나 자신이 뭔가 미친 사람 처럼 됬을까라는 생각에 그냥 고개를 숙이며 침묵했다.

그녀가 말한 술집은 우리가 걸었던 시내 안 쪽에 있던 곳이었다. 그녀는 먼저 와 있어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가까이서 본 그녀의 모습은 어제와 달리 더 수척해 보였다. 난 그녀에게 뭔 일이 있음을 짐작했다. 하지만 난 애써 웃으며 그녀를 맞이했다.

“많이 기다렸어?

”나도 방금 왔어.“

”그래.“

”저기 앉을까?“

그녀는 자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건물 속 한 가운데에 두 개의 플라스틱 의자가 놓여진, 둥근 철판에 밑에는 석유통 같은 것을 깔아논 작은 탁자가 있었다. 난 ”상관 없어.“라고 말했다. 그녀는 알겠다 하곤, 그 자리를 향해 터벅터벅 걸어갔다.

우리는 소주 두 병과 그녀가 좋아 하는 떡볶이 하나를 시켰다. 소주가 먼저 작은 유리 잔들도 같이 나왔다. 난 잔들을 가져가 술을 따르고 하나를 그녀에게 갖다 주었다. 그녀는 잠깐 옆을 보고 있느라 소주잔이 왔는지 몰랐고, 앞에 놓여진 잔을 보자 급하게 고맙다며 그 잔을 입 속으로 들이켰다. 이런 그녀의 모습에 조금 우습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잠시, 그녀는 병을 집어 다시 잔에 술을 따르고, 또 마시고, 또 계속 따랐다. 안주가 올 때는 이미 한 병이 사라진 뒤였다. 그녀는 조금 무리를 하는 것 처럼 보였다. 술을 들이킬 때의 그녀의 표정도 억지로 마시는 듯 처럼 보이는, 왜인지 안쓰러운 찡그림을 하며 마시고 있었다.

”안주 이제 왔어. 뭐 안좋은 일이라도 있나봐?”

“응? 아냐 그냥. 술이 좀 마시고 싶어서 그만…”

“그럼 이제 안주 먹고 천천히 마셔. 그러다 금새 취하겠다.”

하지만 그녀는 좋아하는 떡볶이도 입에 조금식만 대고 대부분 들어가는 건 술이었다. 그녀는 순식간에 두 병을 해치웠다. 그렇게 술 병이 다섯 병이 되가는 사이에, 그리고 내가 꾸역꾸역 음식을 먹으며 조금씩 술을 마시는 사이에, 그녀는 술 잔을 탁자에 강하게 내리 치더니, 작은 신음을 한 번 내뱉었다.

이내 고개를 숙이고 이마를 부여 잡더니, 몸을 이리저리 작게 흔들기 시작했다.

“머리가 아파.”

“그렇게 술을 마셔대니까 그렇지.”

“…. 많이 마신게 잘못이야?‘

”잘못은 아니지. 술값을 낼 사람에게는 잘못이겠지만.“

“내가… 내면 되잖아. 그깟 돈이 뭐라고 씨발.”

그녀는 조금 흥분해 있었다. 무리하게 술을 마셔서 그런지 그녀의 마음에는 숨겨두었던 감정들이 급격하게 쏟아져서 흥건하게 담아진 상태인 것 같았다. 마음은 이것들을 다 감당 하지 못했는지 그녀는 술을 마시다 말고 헛소리를 말하기 시작했다. 

“난 참 불쌍한 년이야. 씨발. 내가 왜 죽는건데.”

”왜 사람들은 죽음 하나도 이해 못하는데.“

”좆같다. 아, 씹.. 아파…“

대부분 혼잣말 같이 소리가 작았다. 조금 부끄러웠다. 시계를 보니 겨우 6시 뿐이었지만 사람들이 많아서 소리가 겹치기 시작했다. 난 이걸 다행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는 제대로 된 대화도 못 나눴다. 그녀는 지나친 과음으로 이미 정신이 나가버린 뒤였고, 계속 작게 무슨 소리인지도 모를 말들을 지껄이고 있었다. 

슬슬 짜증이 솟구쳤다. 그녀가 한탄한다 한들 그냥 죽음과 삶에 대한 한탄일 뿐이었다. 나도 한탄하고 싶은 마음은 정말 많았다. 하지만 그녀 앞에 있더라도 나도 시한부라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되려 내가 시한부라고 말하고 그녀와 한탄을 나누려 들을 수도 있었지만, 이 가슴아픈 사실을 더 이상 사랑하는 사람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사람은 왜 죽는거야.”

“나야 모르지.”

”… 난 왜 살아가고 있는거야.“

”그럼 죽어도 좋아.“

”씨발, 어짜피 곧 있으면 죽을 텐데 뭐.“

”그래, 좋겠네.“

”하, 씨발 넌 좋겠다.“

”왜.“

”왜긴, 넌 나보다 더 살 수 있잖아.“

”그건 아무도 모르는 거야.“

”왜 아무도 몰라. 씨벌 이미 정해져 있는데. 니가 씨발 지금 대가리가 터져서 죽을 수나 있냐? 아님 심장 터져서 지금 죽을 수가 있냐?”

“소리좀 줄여.”

“개씨발!”

그녀가 소리쳤다. 나 또한 놀랐다. 사람들이 시선이 전부 우리로 향해 있었다. 나 또한 술로 몽롱한 상태였지만, 이 사태를 보고 순간 정신을 차려서 괜히 고개를 숙여 미안하다는 신호를 보냈다. 사람들은 이내 다시 고개를 돌려 평소대로 돌아갔지만, 그녀를 향한 내 분노는 더 커져갔다.

“미쳤어?”

“아주 단단히 미친년이 됬지. 왜? 꼽냐?”

“제발 그만하자.”

“하, 너 되게 여유있게 말한다. 씨발 부러운새끼.”

“나라고 시간이 있을 거 같아? 죽는 건 다 다르다니까?”

“닌 시간 존나 많으면서 뭔 소리야. 난 시한부야. 시한부라고!”

“… 좋다. 이러고 싶지는 않았는데, 씨발… 나도 마찬가지야.”

“개씨벌. 재밌다 재밌어.”

“… 진짜로.”

“구라 적당히 쳐.“

”난 구라 친적 없어.“

난 표정 변화 하나 없이 그녀에게 내 오랜 공포를 털어 놓았다. 이윽고 그녀의 풀린 눈으로 변함 없는 내 표정과 눈을 계속 쳐다 보더니,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다. 그녀도 뭔가를 깨달은 듯 싶었다. 그녀는 갑자기 고개를 숙이더니, 일어나지 않았다. 난 술을 들이켰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보고 뭔가 불안감이 생겨났다.

불안감대로, 그녀는 고개를 숙여 흐느끼고 있었다. 조용히, 눈물을 바닥애 한 방울 씩 흘리고 있었다. 난 이런 그녀를 보고 놀랐다. 그녀를 가서 달래주어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냥 고통을 조용히 흘러내리게 놔두는게 좋을까. 

하지만 이윽고 그녀가 고개를 들어 젖은 눈으로 날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녀는 뭔가를 할려 했지만 또 내 앞에서 울기 시작했다. 다리에 힘이 풀린 체 무릎을 꿇으며 울고 있었다. 난 너무 놀라서 어찌해야 할 줄을 몰랐다.

”바보야! 넌 왜 나처럼… 미치지 않는 건데!“

그녀는 이 말만 반복하며 통곡했다. 그리고 그 상태로 내 무릎을 주먹으로 때리기 시작했다. 그리 강하게는 때리지 않았다. 애초에 그 얇은 팔에 날 아프게 할 힘은 남아보이지 않은 것 같았다. 그녀는 울면서 나에게 한탄했다. 서서히 이 술집 손님들도 우리에게 시선이 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녀는 때리는 것을 그만두더니, 내 무릎에 엎드렸다. 그리고 말했다.

“나도… 그냥 모두 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어…. 그냥…. 모두 처럼 사랑하고 싶고…. 모두 처럼 결혼 하고 싶고…. 모두 처럼 그냥… 살고 싶은데… 왜….. 난 이 모양인 거야…..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도…. 왜 계속 사랑하지 못하는 건데….”

그 말을 듣자 내 마음이 울렸다. 나도 왈칵 눈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흐르는 눈물에 난 떨리는 손으로 그녀를 서서히 안아 주었다. 그녀는 차가웠다. 하지만 뭔가가 따뜻했다. 따뜻한게 뭔지 몰랐다. 난 그녀를 안으며 같이 울기 시작했다. 그렇게 저녁이 지나가는 듯 싶었다.


*


이윽고 난 다시 정신을 차리니 침대에서 일어나 아침 햇살들을 느꼈다. 어제의 일은 잘 기억나지 않았다. 엄마가 방문을 열며 일어났냐고 물었다. 난 아직 몽롱하여 더 잠자고 싶다고 말했다.

엄마가 어제 뭔 일이 있었냐고 물어봤다. 나도 잘 몰라서 그저 모른다고 답했다. 엄마 말로는 내가 어제 저녁에 들어와서 엄마를 붙잡고 한 없이 울었다고 한다. 그리고 뭔가를 중얼거리며 한탄 했다고 하는데, 그중 말한게,

“나 살고 싶어 엄마.”

였다. 엄마는 이 소리를 듣고 마음이 속상해 잠을 잘 못잤다고 말했다. 난 괜히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나 괞찮아.”라고 말했다. 엄마는 알겠다며 내 방문을 조용히 닫아 주었다. 난 다시 눈을 감으며 침대에 누웠다.

하지만 어젯 일 중에서, 흐릿하게 기억나는게 하나 있었다. 우리가 저녁에 골목에 걸을 때, 그녀가 갑자기 나에게 키스하자고 한 것, 그리고 내가 당황 했을 때 갑자기 내 얼굴을 잡고 내 입술에 그녀의 입술을 갖다 댄것. 그리고 서로의 침과 혀를 공유한 것.

분명 뭔가가 기억은 나지만, 분명한 기분이 생각나지 않았다. 난 표정을 찡그리며 내가 그때 어떤 심정이었는지 생각했다. 그리고 그 순간을 계속 생각하니 드디어 뭔가가 느껴졌다.

싸늘하게 식어가는 생명들이 느끼던 그 순수하고 영원히 불타오르는 욕구를, 난 그 순간에서 느꼈다. 다시금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사랑들도, 그때 그 순간에서 난 이미 몇 번 식이나 되새김질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 마음은 이미 사랑과 희열로 마음에 도배를 한 순간이었다. 이제 영원히 후회 하지 않도록, 내 마음에 설레임을 과하게 집어 넣은 것이었다.

그땐 이미 내 속은 꽃밭이었다. 꽃들이 분홍 바람으로 어울리며 춤을 추고, 그 속에서 벌들은 아름답고 달콤할 꿀을 채취하고 있었다. 더 이상 이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죽어도 남을 꿀들을 만들고 있었다.


문뜩 그녀가 생각나서 다시 가냘픈 눈과 피곤한 정신으로 핸드 폰도 잘 보지 못한 채 어지저찌 하여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받지 않았다. 하긴 그녀도 나 만큼 많이도 마셨으니 깊은 잠에 들었을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난 다시 폰을 던지고 잠에 들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때는 오후 네 시였다. 다시 핸드폰을 들어서 그녀에게 바로 전화를 했다. 문뜩 그녀가 어젯밤의 일에 대해 부끄러움이 생각나 전화를 일부로 받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역시 그녀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렇게 핸드폰을 뒤로하던 찰나, 갑자기 전화가 왔다. 그녀의 번호로 말이다. 난 급하게 폰을 받아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라고 말했지만 한 동한 답이 없길래 무슨 일이 있나 싶었다. 그렇게 두 세번을 반복하다가 울먹이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혹시 누구시죠?”

목소리가 그녀와는 전여 다른 목소리였다. 아무리 그녀의 목소리가 건강 악화로 변한다 해도 이런 목소리는 날 리가 없었다. 그건 노화로 생긴 진한 목소리였다. 난 놀라서 “저, 이 전화번호 주인… 친구 입니다.“ 라고 말했다. 그러더니 그녀는 ”아…“라고 한 번 탄식은 내뱉더니 다시 답이 없었다.

”무슨일 있습니까? 그리고 누굽니까?”

난 그런 그녀의 답답한 행동에 더 걱정이 도사리기 시작했다. 난 어서 대답을 듣기 원했다. 그리고 이내 코를 훌쩍이는 소리를 듣고, 뒤에 그녀의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혜영이.. 엄마에요.“

”… 어머니요?“

”네… 지금 혜영이 위독해요. 아침에 피 토하고 쓰러지길래 바로 입원 했는데, 아직까지 정신을 못차리고 있어요. 의사 선생님 말로는 이제 준비 해야 한데요…”

그 소리를 듣고, 가슴이 내려 앉았다. 마음이 녹아내린다는 느낌이 무엇인지 알 정도로 내 마음에 무엇인가가 느껴졌다. 쓰라렸다. 멍이 든것 같은 느낌, 아님 강하게 맞은 것 같은 고통.

힘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온 몸이 갑자기 새하얕게 변하고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불씨가 완전히 꺼져버렸다. 핸드폰을 든 손도 조금씩 떨고 있었다. 통화 너머의 목소리는 이미 흐느끼고 있었다. 난 울지 않았다. 울 의지도 사라진 것 같았다.

사실 그렇게 말해도 눈물이 순식간에 뺨을 지나기 시작했다. 난 절망했다는, 슬프다는 표정도 짓지 않고 그저 무표정으로 허공을 보면서 조용히 울 뿐이었다. 그리고 되새겼다. 


영원한 사랑이라 함은 없는걸 알고 있으면서도, 난 왜 그녀를 사랑했을까…


*


택시를 타고 그녀가 입원한 병원에 도착했다. 병원은 거부감이 들어 평소에도 가기 싫어했다. 너무 간편해 보이는 저 햐얀 벽지도 싫었고, 하얀 복장에 하얀 침대, 병원에 하얀 모든게 싫었다.

그녀의 입원실은 오 층이었다. 앨레베이터로 올라가는데 너무 비좁았다. 사람들 사이에 끼어서, 그것도 하얀 환자복인 사람들 사이에 있는게 너무 싫었다. 어쩌면 난 그 환자라는 자체를 너무 싫어했던 것 같다.

갑갑한 앨레베이터에서 내리고, 난 그녀가 있는 입원실로 갔다. 엄마가 옆에서 그녀의 얼굴을 보고 계시다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니 나를 보셨다. 나도 그녀의 엄마를 보고 인사를 드렸다.

그녀의 엄마는 이렇게 병문환도 왔는데 뭘 좀 사가지고 오겠다며 혜영이를 부탁하곤 밖으로 나가셨다. 난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았다. 산소마스크 쓰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 처럼 처럼 투명하고도 하얀 그녀의 얼굴이 보였다. 수척한 얼굴은 이제 두개골이 보일 정도로 말라졌다. 

그녀는 조용히 눈을 감고 깊은 잠에 빠져있다. 그녀의 감은 눈을 계속해서 보았지만, 눈을 뜰 느낌이나 기미는 느껴지지 않았다. 이마를 한 번 만져 보았다. 차가웠다. 그녀도 나랑 같이 싸늘하게 불씨가 꺼져버린 뒤였다. 그녀는 죽었는데, 왜 난 살아있을까 생각을 했다.

그녀의 손을 잡아 들어본다. 역시 차가웠다. 살은 없고 뼈를 둘러싼 가죽 뿐이었다. 이런 그녀의 손을 내 볼에 갖다 대보았다. 조금 거부감이 들었지만 상관 없었다. 내 볼은 그녀의 손에 비하면 따뜻했다. 병원 히터가 강한 탓인지 내 몸은 이미 따뜻해지고 남았다.

그렇게 계속 그녀의 손을 내 볼에 갖다 대고, 그렇게 몇 초가 지나고 난 볼에 닿은 그녀의 손 부분을 만져봤다. 조금 따뜻했다. 순간 미소가 나왔다. 하지만 이내 다시 차가워졌다. 난 그것을 아쉬워 하고 다시 그녀의 손을 놔주었다. 그리고 그녀의 손을 이불 속으로 넣어 주었다.


그 후엔 그녀의 흐름이 다 했다는 온기가, 슬피우는 어머니의 소리가, 그 차가움이 내 피부 속으로 스며드는 그 공포가 다가 올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