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본다. 

과연 개막장의 끝을 보고 싶기 때문이리라. 

개도 보이지 않고, 막장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공허하게 자판에 손가락을 옮겼다. 

아무런 생각도 없이 마구 타자를 치기로 했다.

타자를 치고 있는데, 손가락이 점점 아파오는 것이다. 

나는 손가락을 주물렀다. 손가락의 피로를 풀기 위해서였다. 

손가락은 아주 부드럽게 움직였다. 

그리고 내가 치고 있는 글의 내용에 나는 빨려 들어갔다. 


나는 어떤 이상한 세계로 들어왔다. 

그 세계는 바로 흰 점과 검은 점으로 이루어진 곳이었다. 

내가 자판을 칠 때마다 검은 점이 늘어났고, 흰 점이 줄어들었다. 

흰 점을 다스리는 영주는 내가 마구 검은 점을 양산해서 흰 점의 지배 영역을 줄인다고 생각을 했는지.. 

나를 자신의 세계로 잡아온 것이다. 

영주는 나를 감방에 가두었다. 

쓸쓸했다.  나는 후회했다. 아무런 생각도 없이 개막장 이야기를 쓰려고 하다 보니.. 

내 인생이 개막장이 되게 생겼지 않은가? 

개막장도 어떤 한계가 있을 것인데...

무의미한 검은 점의 양산이야말로 나를 곤궁에 빠뜨리고 절망에 빠뜨리는 것이었다.


나는 흰 점의 나라를 탈출해서 검은 점의 세계로 가려고 했다. 

하지만 흰 점의 감옥은 온통 희뿌옇기 때문에 어떻게 탈출해야 할지를 몰랐다. 

이 세계에서는 나의 모습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나는 마치 유령처럼 아주 흰 모습으로만 남았던 것이다. 

나는 고민을 했다. 탈출하려면 적어도 탈출 문이라도 만들어야 했으니까.

나는 흰 땅을 파기 시작했다. 흰 겉면 안에는 검은 흙이 있었다. 


나는 손가락에 침을 발라 검은 흙을 잔뜩 묻혔다. 

앞으로 전진했다. 머리가 어떤 벽에 쿵 박혔다. 

나는 그 벽에도 문을 그렸다. 열린 문을 그린 것이다. 

나는 그 문을 통해 유유자적 탈출을 시도했다. 


저 멀리서 희끄무레한 인물들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검은 흙으로 창과 방패를 그렸다. 

나는 희끄무레한 사람들을 모두 물리치고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흰 세계에서 검은 세계로 가는 길이 어떤 것인지 몰랐다. 

온통 하얗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아무 방향이나 마구 질주하면 검은 나라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다. 


나는 검은 흙으로 자동차를 그렸다. 

자동차를 타고 무한 질주를 했다. 

자동차는 아주 빨랐고, 저 멀리 검은 나라가 나타났다. 

그 나라도 갈수록 주위는 회색에서 짙은 검은 색으로 바뀌었다. 


다행이다. 1번의 시도로 검은 나라를 찾아냈으니까 말이다. 

검은 나라에서는 나를 크게 환영했다. 

검은 나라의 임금은 나에게 큰 상을 내렸고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다. 


만찬장에서는 온통 검은 음식뿐이었다. 짜장면과 초코케익.. 

밥도 탄 밥이었다. 

문제는 빛도 없이 검은 방에서 숟가락도, 젓가락도, 접시도, 음식도 모든 것이 까맣기 때문에 음식을 먹기가 아주 불편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제대로 먹지 못하고 검은 호텔방에서 잠을 자며 생각했다. 

-검은 나라도 내가 살 곳이 아니구나.


나는 검은 나라를 탈출하기도 했다. 

나는 밤에 몰래 일어나 검은 광장으로 나왔다. 

검은 광장의 땅을 팠다. 겉면을 걷어내자 속의 흙은 하얗다. 

하얀 흙으로 하얀 자동차를 만들었다. 


나는 하얀 나라 쪽으로 차를 몰았다. 

주위는 점점 검은색이 옅어졌다. 

겨우 겨우 회색 지대에 당도했다.


그곳의 땅속은 빨강, 파랑, 노랑의 3원색으로 된 흙이 가득했다. 

나는 침을 발라 그림을 그렸다. 물이 만들어졌다. 

물에 3원색을 타서 물감을 만들었다. 손바닥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림에는 어떤 평범한 사내가 자판을 두드리며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나는 그림을 그리며 잠깐 졸았다. 

그리고 순간 눈을 떴다. 


나는 여전히 컴퓨터도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그리고 검은 나라와 흰 나라에 갔다 왔다는 사실을 기억했다. 

그리고 개막장이 내 인생을 망치지 않기 위해 뭔가 의미 있는 글쓰기가 뭐가 있을까 고민하게 되었다. 


그래 이런 막장 글짓기는 그만 두는 것이 낫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