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한게 문제가 아니라... 하아, 말을 말아야지"

차디 찬 바람이 부는 12월, 대한민국 대전광역시의 어느 수학 학원, 양언매는 바닥의 대리석 타일만 바라보며 학원 선생님께 사과하고 있었다.

"이번 시험이 유독 어려웠다는건 안다. 네 실력도 알고 하지만... 이번 단원 아무리 어려워 봤자 반이 통게문제였어! 이건 네가 공부에 노력을 안했다는 거야!"

학원 선생님은 격양된 어조로 쏘아붙혔다. 하지만 그의 분노는 진심으로 제자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우러났다.

그 걱정을 드러내듯 안경알 넘어로 비춰지는 선생님의 눈에 붉은 핏줄이 언매를 더 주눅들게 했다.

"하지만... 선생님, 기하 문제가 어려웠다고 생각합니다... 분명 단원은 원주각인데 삼각비를 쓰라니요... "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언매가 변명했다. 마지막 발악이었다.

"무슨 소리야? 충분히 풀어야 할 문제였어!" 언매의 변명이 선생의 화를 돋꾸었다.

순간 정적이 흘렀고 그 후 지친 목소리의 선생이 말했다. 휴... 이제 그만 마치겠습니다. 모두 돌아가보세요... 시험 보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기말고사... 그것은 모든 학생, 아니 인류의 적이다. 평가라는 명목 하에 시작되는 수없는 갈라치기, 성적에 격차를 만들어 내 빈부격차를 일으키고 서로 간의 경쟁을 조장해 교우관계를 파탄내는 공교육의 악재이며 주취 감형 다음가는 대한민국 제도의 모순이다!

...라고 얘기하고 싶지만 모두가 잘 알고있다. 내신은 상당히 합리적인 제도이며 노력 한만큼 결과가 나온다는 것을 말이다.

"수학은 재능빨이야... 내가 아무리 봐도 호 ab가 가지는 원주각이 뭔지는 찾아낼 수가 없다고!"

언매는 혼잣말로 불평했다. 부모님께 그의 중간고사 성적표를 보여드리기가 두려웠고 죄송스러웠다. 성적표를 받았을 때의 실망스러운 눈빛도, 그럼에도 꼴에 자식이라고 건내주시는 따스한 위로도 견디기 버거웠다. 자신은 그럴 자격이 없는걸 알았기에 더욱 그랬다.


양언매, 낭랑 16세, 165의 작은키와 여리여리한 몸, 중성적인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운동을 싫어하여 몽에 근육이 없고 먹는걸 싫어하여 살이 없었다. 또한 소심한 성격으로 어딘가에 말귀 못 알아먹는 남자처럼 그는 친구가 적다. 

어쨌든 그는 엄청난 이공게 엘리트 출신이었다. 아버지는 바닷가와 해병이 유명한 지역에서 공대를 나온 유능한 프로그램 개발자였고 어머니는 지방에 있는 아주 큰 병원의 병원장이였다.

부모님은 자신의 두 아들 중 한 명이 대를 이어 의사가 되기를 바랬고 자신의 병원을 물려받기를 바랬다.

허나 언매는 수학과 이과에 대한 재능이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심심풀이로 가족 식사 자리에서 1에서 100까지 더하면 모두 얼마인가라는 문제를 냈다. 유명한 가우스의 일화에서 가우스는 1과 100을 더하거나  2와 99를 더해서 계산하면 101이 50개 나온다는 논리로 게산하여 답을 맞췄다.

어머니는 가우스의 방식대로 풀었고 큰 형은 천재였기에 암산으로 계산하여 풀었다. 허나 언매는 종이를 가지고와 하나 하나 더하는데 10+11을 계산할 때 10의 자리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 지 몰라서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그게 그의 나이가 4학년 일 때의 일이다.

그런 그는 자신이 의대에 갈 수 있으리란 기대도 없었고 의사에 관심도 없었다. 어서 빨리 천재인 형이 병원을 물려받아 자신은 다른 진로를 선택할 수 있기를 바랬다.

허나 형은 의대를 졸업하자마자 박애주의자 선언을 하며 아프리카로 의료봉사를 나갔고 국경없는 의사회로 활동하며 본인이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자연스래 부모님의 눈초리는언매에게로 넘어갔다.

설명만 들어보면 페급의 쓰래기같지만 언매에게는 재능이 하나 있었다. 그는 독서를 좋아했고 누구보다 등장인물의, 작가의 혹은 독자의 심리를 읽어내는 걸 잘했다. 어려서부터 도서관에 감는걸 즐겼고 괴롭고 보기 벅찬 400번대를 지나면 나를 포근하게 안아주는, 엄마의 품속과도 같은 800번대 서가는 언매의 유일한 안식처였다.

그 곳에서 언매는 자기 자신의 감정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때로는 안도현의 시 속 어미 게가 되어, 또 때로는 염상섭의 소설 속 창억이 되어가며 공감과 감성을 배웠다. 


겨울은 추웠다, 머리는 차가웠고 눈시울은 두려움과 자책감으로 붉어졌다. 

그렇게 걸으며 자신을 자책하던 언매는 끊임 없는 자신에 대한 자신의 비난속에서 하나의 다른 기억도 잡게 되었다. 어째서 이런 상황에서는 흑역사가 떠오르는 걸까, 애써 외면하며 다른 생각을 해봐도 자신의 흑역사는 새하얀 눈과 대비되어 더욱 생생하게 떠올랐다.

언매가 중학생이 됬을 때 그는 학교 도서관에 매력에 반했고 도서위원이 되었다. 그리고 같이 도서위원을 맡은 한 소녀에게도 반했다. 안경을 쓴 땋은 머리의 귀여운 소녀였다. 난생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품은 언매였다. 

언매는 2년 내내 혼자 연모하는 마음을 키워왔다. 그리고 2학년 방학식 하루 전 날 그녀가 이사를 가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자신의 마음을 전할 기회는 다음 날 밖에 없었다.

언매는 밤을 새 머리를 끙끙 싸맸고 자신이 할 수 맀는 가장 최선의 방식으로 고백을 하기로 결심했다.

방식은 자작시였다. 결과는 폭망이었다. 소문이 났다. 안그래도 적던 친구들은 거의 다 떠낮고 모두의 차가운 비웃음과 멸시가 담긴 시선이 남은 1년간 자신이 학교 다니는 것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어떤 사람도 공감해 주지 않은 자신을 구원해준 것은 역시나 문학이었다. 이때쯤 세게문학으로 시선을 넓힌 언매는 자신보다 더 찌질한 사람도 많고 자신과 비슷한 사람도 많다는 데에서 위안을 얻었다. 인간 실격의 요조와 위대한 개츠비의 개츠비를 보자니 자연스레 자신의 실패는 아무것도 아닌듯 보였다.

허나 이제 그런 나만의 시간도 끝이리라, 이번 시험도 수학, 과학 결과가 나쁘다면 부모님은 방학부터 자신을 자물쇠 학원에 넣어버리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자물쇠 학원에 들어가면 하루에 12시간을 꼼짝없이 공부만 해야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어느세 집 앞 사거리까지 도착했다. 평소같았으면 가로등으로 밝았을 거리이지만 학원에서 혼이 나느라 너무 늦게 끝나 버려 가로등도 꺼져 있었다.


그 때 한 사람이 언매 옆에 나란히 섰다. 별 생각 없이 옆을 쳐다 본 언매는 화들짝 놀랐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하지만 가녀린 미소녀가 그의 옆에 서있었다. 

길고 칠흑같은 생머리 크지만 살짝 가려져있고 똘망똘망하지만 귀부인같은 품격있는 눈과 지금 내리는 눈이 쌓여도 분간치 못할 것 같은 새하얀 피부 흑과 백에 질새라 붉은 색은 입술에 들어나며 자신의 존재를 뽐냈고 자신과 비슷한 키와 마르고 가녀린 몸 작지만 아주 약간 봉긋 솟아오른 가슴과 파란 동맥이(물론 우리의 주인공은 정맥과 동맥의 분간은 커녕 모세혈관이 뭔지도 기억핮지 못하지만) 언매의 눈을 사로잡았다.

언매는 그 짧은시간에 자신의 심리를 파악했다. 또 사랑에 빠져버렸다. 지나가다 본 사람에게 한눈에 반해버렸다. 이에 이따라 바로 지금 말을 걸어야만 한다는 생각이 뒷따랐다. 저번의 뼈아픈 실패는 고려하지 않았다. 지금 그런걸 신경쓸 때가 아니었다. 자신의 소심한 성격과 볼폼없는 말주변도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그런걸 다 잊게 만들 만큼 그녀는 아름다웠다.

몇 초뒤면 횡단보도는 초록불이 되버리고 그녀와 언매는 헤어지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 언매가 입을 열었다.


"당신과 이야기하고 싶어요." 


횡단보도 신호등에 푸른 불이 들어왔다. 영어로 하면 green lights,


허나 곧이어 소녀는 말했다.


"당신은 저를 이해하지 못할 것 입니다. 당신도 저를 이해하지 못할 테죠."


곧이어 반대쪽 횡단보도의 신호등에 붉은 불이 들어왔다. 영어로 하면 red lights,


언매는 당황했지만 이읃고 말했다.


"어떤 말을 하시든 이해 할 수 있습니다."

말도 안되는 말이지만 언매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이 이 사람을 여기서 만난건 운명일거라고 어떤 말이든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성녕 이 사람이 이진법으로 말을 해도 어떻게든 해독해 이해하리라고 생각했다.


소녀가 잠시 입을 닫았다가 말했다, "그럼 일단 당신에 대헤서 묻겠습니다."


정적이 흐르고 소녀가 물었다.



"당신은 좌파입니까? 아니면 우파입니까?"



언매는 할 말을 잃었고 소년은 정치병자를 만났다. 신호등에 불은 붉은 빛인지 푸른 빛인지, 둘이 보고있는 방향이 왼 쪽인지도 오른 쪽 인지도 알 수 없었다.
























~오타, 비문 죄송합니다~

~제보, 평가 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