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하고 있는 글의 하이라이트 부분입니다. 저는 전체에서 이 부분이 가장 재미있는 것 같은데...글에 능통하신 다른 분들께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글 자체는 공모전같은 공적 자리를 위한 것이기보다는 일종의 팬픽에 가깝습니다.







차가운 바람이 귀밑을 스칩니다.

 

소금기 가득한 바다내음에 그만 눈이 시립니다.

 

맹수가 발톱으로 할퀴고 지나간 듯 날카롭게 갈라진 바닥도 저를 아프게 합니다.

 

그런데도 조용합니다.

 

밤의 온 무게를 입 안에 머금은 듯 조용합니다.

 

그 밤하늘에 떠있는 별님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무척이나 고요한 밤에.

 

제 세상은 평화롭게 멸망하였습니다.

 

 

 

 


저는 균열을 향해 필사적으로 손을 뻗었습니다.

 

그러나 돌풍이 제 뒤에서 앞으로 몰아치고 있었습니다.

 


방금 전까지 제가 있던 곳은 영영 닿을 수 없는 저편을 향해 흔들리다가 금세 작은 점으로 오그라들었습니다.

 

"레티와인이것이 정녕 네가 바란 일이란 말이야?"

 

가나안이단심문관 가나안이 널 내던지면서 보인 얼굴은 그야말로 납으로 만든 데스마스크였어.

 

아홉 별님께 맹세코 한 번도 보지 못한 그 표정을 너는 오늘 두 번이나 연달아 봤지.

 

네 앞에서 싯톤수도원장님 싯톤의 가슴에 손을 쑤셔 넣어 아주 중요한 무언가를 터뜨렸을 때.

 

다음 순간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네 머리끄덩이를 잡고 균열로 끌고 갔을 때.

 

보이는 게 다가 아니란다애야.”

 

저는 싯톤이 했던 말을 드디어 이해했습니다.

 



수확되기 직전의 숨이 막히도록 알이 들어찬 적포도처럼 십수 알은 되는 죽음이 가나안의 어깨 위에 올려져 있었습니다.

 

단지 제가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깨달음은 제 폐부를 깊숙이 찔렀습니다.

 

다음 순간수평으로 바다에 부딪히면서 닥친 거센 충격에 저는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요?

 

저는 갑작스레 몸이 들리는 느낌에 의식이 돌아왔습니다.

 

귀 안쪽에서 따뜻한 액체가 흘러내렸습니다.

 

아프고 먹먹한 귀였지만들렸습니다.

 

범선의 용골 따위는 부숴버릴 기세의 파도와시야를 단번에 삼중사중으로 쪼개는 번개 무리가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파괴적인 기압의 전차를 모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들렸습니다.

 

태풍이야.”

 

저는 태풍이목구멍까지 가라앉았던 죄인을 삼키는 데에 실패하자 망망대해가 휘두르는 분노의 대낫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살았다는 안도감은 싹 가시고 오직 공포만이 그 자리를 채웠습니다.

 

노웸….”

 

레티와인너는 기도를 하는 수밖에 없어!

 

세상은 우주라는 짙고 웅장한 공허에 아홉 별님께서 남기신 모래알 공예에 불과해

 

너는 한낱 인간모래알 공예 속의 모래알 공예야그것도 서투른 재봉사가 남긴 공예야.

 

노웸노웸노웸!”

 

수도원에서 배운 다른 모든 기도문은 희망과 함께 머리 밖으로 빠져나갔습니다제게는 노웸만이 남았습니다.

 


저를 옮기던 사람들은 마침내 제 말을 들었는지 발을 멈추었습니다.

 

“      살아있습니다!”

 

“      기적이야!”

 

“              눈은 잃은 것 같지만.”

 

그들은 꽤 놀란 눈치였습니다.

 

그들은 자기들끼리 띄엄띄엄 의견을 주고받더니 방향을 돌려 기도를 멈추지 않는 저를 다시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한동안 저의 왼쪽에서 치던 비는 이제 아래에서 쏟아졌습니다.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원래 제가 가게 되었을 곳은 묘지였습니다.

 

이 섬은 전 세계에서 굽이치는 해류가 한데 만나 원형으로 모이는 지점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드물게 익사자의 시체가 떠내려 왔습니다.

 

묘지는 원주민이 파 놓은 구덩이의 명칭으로시체는 예외 없이 묘지에 던져졌습니다.

 

저는 천만다행으로 묘지까지 고작 몇 미터를 남겨두고 생존 신호를 보냈습니다.

 

하마터면 저의 장의사이자 묘지기가 될 뻔했던 원주민들은 안내인이 되어 저를 보금자리로 데려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원주민들은 저의 망가진 안구를 고칠 계획을 세웠습니다.

 

“         우리가 어떻게든 고쳐줄게.”

 

흐릿하고 탁한 저음으로 말하는 이 원주민의 이름은 알티에스입니다.

 

알티에스를 비롯한 원주민들은 저의 이름을 묻고는 했지만이 섬만의 전통인지 저의 이름을 부르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알티에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가 알티에스!” 하고 부르면 제 머리를 쓰다듬으며 들을 준비가 되었다고 알렸습니다.

 

하지만 다른 말을 하는 법은 없었습니다

 

언제나 “     .”, “     필요한 거 있어?”, “     안 돼.” 정도의 간단한 말만 상황에 따라 건넬 뿐이었습니다.

 

마치 짧은 문장이 녹음된 카세트테이프를 필요할 때마다 꺼내서 낡은 카세트플레이어로 재생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에 의문이 든 저는 알티에스를 불렀습니다.

 

제 추측은 정답이었습니다.

 

원주민들은 외부인을 대할 때 정해진 몇 마디의 문장만 구사하면서교류를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생기는 변수에는 오로지 행동으로만 묵묵히 대응하는 복잡한 규율이 있는 모양이었습니다.

 

제가 수십 번은 말한 저의 이름도 저에 의해서만 단어로 실현되었습니다.

 

이런 제한된 상호작용과 불투명한 앞날에 사뭇 외롭고 처량한 기분이 정신병처럼 불쑥 고개를 들이밀기도 했습니다.

 

“      필요한 거 있어?”

 

그럴 때면 어김없이 알티에스가 다가왔습니다.

 

이때만큼은 저는 어미에게 사랑을 구가하는 아기 참새나 다름없었습니다.

 

저는 작고 규칙적으로 신음하였습니다.

 

알티에스알티에스알티에스.”

 

알티에스의 튼실하고 딱딱한 복근에 정수리를 비비면 알티에스는 손가락으로 제 이마를 지긋이 눌러주었습니다.

 

“    .    .    .”

 

저는 알티에스의 굳은살 그 자체가 된 손가락 끝이 좋았습니다.

 

물기를 닦는 수건처럼 머리로 배 위를 휩쓸면 늘 존재감을 발산하는 길쭉한 대각선 흉터가 좋았습니다.

 

아끼던 사람들이 모두 죽고 홀로 표류하다가 외딴 섬에 닿은 저를 알티에스는 가장 적극적으로 도왔습니다.

 

알티에스쓰다듬어주세요.”

 

손 본연의 묵직한 무게감이 사려 깊은 솜씨로 조절되어 부드럽게 제 이마를 타고 지나갔습니다.

 

한 번두 번세 번.

 

정말이지 아기 고양이처럼 갸르릉 거리고 싶은 유혹을 참기 힘들었습니다.

 

"참아야 해레티와인!" 

 

알티에스를 곤란하게 하지 마!

 

알티에스가 어떤 규칙에 얽매여 있는지 잘 알잖아.

 

네가 졸라댈수록 알티에스만 곤란해지고 말아!

 

저는 알티에스의 팔을 잡아 세웠습니다.

 

미안해.”

 

저는 알티에스와 이 섬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다만 말로 직접 표현하지는 말자고 다짐했습니다.

 

보석함 안에 넣어 혼자서만 영유하는 반지처럼.

 

그러다가 손가락에 맞게 되지 않아 영영 끼지 못하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속마음을 꼭꼭 감출 작정이었습니다.

 

어쩌면 지금 제게 주어지는 분에 넘치는 호의가 영원하다고 믿고단지 그 영원한 호의에 영원히 기대고 싶었을 뿐인지도 모릅니다.

 

“      준비가 되었어.”

 

문득 알티에스가 힘 있게 말했습니다.

 

수술 준비가 끝났다는 뜻이었습니다.

 

저는 두려웠습니다

 

알티에스는 거짓으로 낙관을 부리지 않습니다.

 

며칠 전에 알티에스는 수술의 성공률이 반반이라고 귀띔해 주었습니다.

 

성공하면 눈이 돌아오겠지만실패하면 눈은 고사하고 주변부의 신경까지 죽는다고.

 

한 번 시작된 부패는 제 몸을 뒤덮어갈 것이라고.

 

검게 스러져 물렁거리는 살점을 떨어뜨리다 보면 이미 썩어서 조금만 눌러도 내려앉을 뼈가 보일 것이라고.

 

하지만 저는 섬을 사랑했습니다.

 

그 이상으로 알티에스를 사랑했습니다.

 

그러니 제 영혼이 끝없는 구덩이 속에서 별빛을 구하게 될지라도 저는 기쁨으로 노래를 부르고.

 

제 눈을 다시 돋게 할 기적의 연장으로 제 육신을 기꺼이 섬과 알티에스에게 내어줄 것이며.

 

성공하든 실패하든 저는 머리를 눕히고 알티에스의 품에서 쉴 것입니다.

 

만에 하나 성공한다면그렇게 해서 다시 세상을 보게 된다면.

 

분명 지금까지 보아왔던 세상과는 다르겠지요.

 

아홉 별님이시여눈꺼풀이 위아래로 붙어 세상은 희미한 명암과 색조에 녹아들어 형체를 잃었지만이토록 아름다운 마음씨로 가득한 섬이라면 분명 아름다울 것입니다.

 

아홉 별님께서 손수 기적을 행하신 이 세상에서 선한 이들에게 축복이 내려지는 일은 아주 당연한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렇게 믿으며 수술대에 올랐습니다.

 

저는 차고도 축축한 주사기에서 제 목으로 꾸물꾸물 기어들어오는 졸음에 금방 정신을 잃었습니다.

 

 

 



수술은 성공하였습니다

 

저는 고대하며 섬과 알티에스를 향해 눈을 떴습니다.

 

그런데아홉 별님이시여.


이번에는 기도문이 남고 노웸만 증발하였습니다.

 

소방관이 벌집 안에 주둥이를 꽂고 쏜 독한 연기를 마시고 정신이 나간 벌떼가 발광하듯이.

 

노웸이라는 여왕벌이 사라지고 통제를 잃은 일벌 기도문은 머릿속 밀랍 벽과 바닥에 부딪혀 상처를 내다가 기어이 자기들끼리 부딪혀 사기그릇처럼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비워졌습니다아무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아홉 별님이시여이 행성은 당신께서 빚으신 예술품이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저희는 여기서 당신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희의 기원에 관한 창조론이 과학의 이름으로 진실로 증명되고창조신화가 정사로 인정받는 과정이 그렇습니다.

 

인류가 과오를 인정하고 반성하며 당신께서 하사하신 영광스런 미명 아래 점점 더 나은 존재가 되는 과정이 그렇습니다.

 

그런데아홉 별님이시여.

 

이곳은 섬이 아니었습니다온갖 부유성 쓰레기와 폐기물이 고기잡이 그물에 얽혀 땅 구색을 갖춘 인공물이었습니다.

 

"레티와인이 멍청한 꼬마야왜 이걸 지금까지 몰랐단 말이야?"

 

알티에스에게 안기느라그의 품이 너무 따뜻해서거기에 정신이 팔려서그래서 땅을 밟으려고 하지 않았어.

 


시야에 잡히는 유일한 광원이 차광 커튼을 두른 듯 어스레하게 일렁였습니다.

 

바다새 따위의 멀리 있는 작은 것들은 둥글게 뭉뚱그려진 데다가 낮은 프레임으로 인해 움직임이 뚝뚝 끊겼습니다.

 

구름은 반투명해진 대신 같은 형태의 빨간색녹색파란색을 렌즈가 세 개인 돌연변이 안경처럼 달고 다녔습니다.

 

세상은 전반적으로 칙칙한 색감에바다는 연유 광고 같았습니다.

 

저는 앉은 자세 그대로 얼어붙었습니다.

 

알티에스그러다가 알티에스를 찾았습니다.

 

익숙한 무게감이 제 어깨를 건드렸고저는 한 번 더 충격의 도가니에 빠졌습니다.

 

제가 원주민이라 믿었던 사람들은 부서진 안드로이드 무리였습니다.

 

쓸모를 잃고 악성 재고로 쌓이자 폐기비용마저 아까워 한 어느 몰상식한 기업이 대규모로 바다에 유기한 폐품이었습니다.

 

알티에스를 본 저는 부끄럽게도 환희나 감사가 아닌 경악과 헛구역질을 느꼈습니다.

 

알티에스는 가장 부서진 개체였습니다.

 

알티에스는 개체명이었습니다

 

알티에스….” “            .”

 

알티에스의 가슴에는.

 

VESSLE – RTS.

 

대각선 흉터.

 

광부 로봇.

 

매뉴얼.

 

아아.”

 

저는 수술 도구를 정리하던 ATB 에게 매뉴얼과 신문을 건네받았습니다둘 다 누렇게 변색된 낡은 종이였습니다.

 

내용을 읽고 나서야 전통의 정체가 드러났습니다.

 

모델명 VESSLE 외국에서 게놈 엔진을 기반으로 셍산되어 광산으로 파견된 강박적인 광부 로봇이었습니다.

 

VESSLE 은 주인이 되는 자의 여러 명령을 듣고 기억 장치에 저장할 수는 있으나사전에 허용된 몇몇 표현 말고 나머지는 출력할 수 없게 설계되었습니다.

 

비언어적반언어적언어적 표현 전부를 아울러서 말입니다.

 

문제는, 일부 VESSLE 이 강인공지능의 특이점을 넘어 계획보다 더 예민한 감성을 가진 존재로 발전했습니다.

 

기업은 절대 명제를 사고회로에 기입하여 자유재량을 제한하고 특정 행위만을 고집하게 하는 한편 서둘러 해결책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그 전에 더 우수한 개발 엔진이 공개되면서 VESSLE 은 하루아침에 구식이 되어버렸습니다.

 

저희는 모든 VESLLE 이 기술적으로 구식이 되었음을 인정합니다.”

 

기업의 CEO 가 회사의 매각 처분을 결정함에 따라 모든 VESSLE 은 폐기되었습니다.

 

알티에스이거…진짜야?”

 

“     .”

 

저는 그제야 알티에스의 면면을 제대로 보았습니다.

 

알티에스는 목각인형 같은 생김새의 세라믹제 로봇이었습니다.

 

전신의 덮개는 내부에서 폭발이 일어난 듯이 밖을 향해 날을 세웠고 어떤 부분은 아예 없었습니다

 

알티에스의 왼팔 전완이 있어야 할 곳에는 끊어진 케이블이 넌출처럼 흐느적거렸고상완은 수 겹의 고무링으로 감기면서 검게 그을린 팔꿈치로 끝났습니다.

 

그리고.

 

매뉴얼에서 모든 로봇은 안전상의 이유로 표면을 밋밋한 은색으로 덮을 뿐 아무런 장식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로봇 무리는 어디선가 떠내려 온 페인트로 서로의 표면에 무늬를 그렸습니다.

 

어떤 개체는 평범하게 눈코입과 정장을 그렸고또다른 개체는 머리만 깨끗한 은색으로 놔두면서 몸 전체에 랑골리를 새겼습니다

 

알티에스가 이런 경우였습니다.

 

저희가 서로를 정면으로 바라보면알티에스의 머리에 비친 제 얼굴이 알티에스의 몸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캐릭터 간판에 구멍을 내고 그 자리에 얼굴을 넣어서 찍는 세상의 모든 포토존은 알티에스 앞에서 무릎을 꿇었어야 합니다.

 

“    조합.”

“           그림.”

“            직접 했어.”

“              통으로.”

 

사방에서 메시지가 한 마디씩 날아왔습니다

 

분리된 단어는 여럿이 모여야 비로소 문장으로 완성되는 법이니.

 

로봇 무리는 한결같이 빨강노랑검정 등의 가장 자극적인 색 조합을 고집했습니다.

 

만약 로봇 무리를 원형으로 세우고 중심에 선다면멋모르는 외지인은 기괴한 반흔 문신의 식인종에게 포위되었거나혹은 거대한 아이언 메이든의 내부에 들어왔다고 착각할 것입니다.

 

저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아홉 별님이시여제가 바로 그렇게 느꼈기 때문입니다!

 

페인트로 그린 조잡한 가짜 미소 안에 진짜 온기가 어려 있음을 알고도 말입니다!

 

이 사람들은 생면부지인 저를 최선을 다해 치료하고 돌봐주었습니다다른 무엇도 아니고 본연의 자유의지로 말미암아.

 

저는 마땅히 답례의 기도를 드려야 했습니다.

 

추악하게도그러지 못했습니다

 

저는 몇 권이나 되는 기도문을 외고 노웸을 외치면서 스스로 세상에 봉헌한다고 믿었습니다.

 

이건 아니에요이래서는 안 돼이럴 리가 없어요.”

 

…결국 저의 시도는 태풍을 가린 얇은 천 조각일 따름이었습니다.

 

태풍이 오기 전에 깔리는 평화로운 고요가 걷히고치명적인 절망감이 저의 안일함을 벌하러 왔습니다.

 

그때 제 안에서 무언가 아주 팽팽한 것이 끊어졌습니다.

 


아홉 별님이시여왜 이 분들이 고통을 받아야 합니까이 분들은 필요에 의해 만들어져 타인의 꿈을 위해 일만 하다가 쓸모가 없어지자 태어난 직후의 날것 그대로의 고철 더미로 버려졌습니다이 분들이야말로 진정 인간이지 않습니까

 

그 기도수백만의 목청이 잣는 기도는 대체 무엇을 얻기 위함입니까저희가 열성을 다해 부르짖는 노웸이 바람을 타고 날아가 이 분들에게 육지로 이어지는 다리라도 되었다는 말입니까?

 

저희는 그것도 모르고 그저 노웸노웸노웸노웸밥 배불리 먹고 짐승 멱따는 소리로 노웸을 하면바다에서 쉴 새 없이 부는 태풍이 마법처럼 이 섬을 비껴나가고 햇볕이 소금기의 풍화를 막아주기라도 한다는 말입니까?

 


노웸아홉 별님이시여저희는 대체 무엇을 위해 기도를 한다는 말입니까!“

 

한참의 증오를 마치고 나서야 저는 알티에스가 잔혹하도록 슬프고 따스하게 저를 껴안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알티에스는…불가능한 일이지만울고 있었습니다.

 

우주는 변함없이 조용했습니다.

 

저는 무너졌습니다.

 

 

아아레티와인이제야 알았어.

 

묵인된 거야이단심문관쓰레기 섬소금과 고철버려진 가나안버려진 싯톤버려진 알티에스. VESLLE. 이 모두가 묵인되었어잊혔어잊었어필요가 없어지자 한 번 쓴 식권처럼 가차 없이.

 

아홉 별님이시여드디어 제가 해야 할 일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성녀가 되고자 합니다.

 

이 섬과 알티에스를 구할 유일한 권력이란 국제 사회에서 발언권을 가진 성녀뿐입니다.

 

저는 점지도 받지 못했고 특별한 힘도 없지만.

 

기필코 성녀가 되어 모든 버려진 사람들을 구하겠습니다.”

 

구름도 없는 말끔한 하늘에 별이 빛나는 밤입니다.

 

저는 제 눈이 새로이 태어난 수술대 위에 다소곳이 앉습니다.

 

제 위로는 성단과 성운이아래로는 쓰레기가옆에는 은인이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주위에서 유독 반짝이는 돌이 하나 기웃거립니다.

 

.”

 

진심을 다해 기도를 올립니다.

 

우주를 향하여 고개를 젖히고.

 

머리-왼가슴-오른어깨-왼어깨-오른가슴 순서로 성호를 긋고.

 

존재하는 않는 별에게 기도를 올립니다.

 

 

차가운 바람이 귀밑을 스칩니다.

 

소금기 가득한 바다내음에 그만 눈이 시립니다.

 

맹수가 발톱으로 할퀴고 지나간 듯 날카롭게 갈라진 바닥도 저를 아프게 합니다.

 

그런데도 조용합니다.

 

밤의 온 무게를 입 안에 머금은 듯 조용합니다.

 

그 밤하늘에 떠있는 별님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무척이나 고요한 밤에.

 

제 세상은 평화롭게 멸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