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y4bZu56EylA

















젠장무슨 개똥 같은 생각을.


나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반신반의 하는 마음으로 잭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당신도 지금 환영처럼... 공중에..."


잭이 눈썹을 찌푸리며 내 말에 귀 기울였다.


"공중에서 남녀가 춤을 추는 이 모습이... 보인다는 건가요...?"







그러자 잭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뭔 소리야오다가 벼락이라도 맞았나?"


그러면 그렇지.


"죄송합니다그냥 신경 쓰지 마시죠."


그러자 잭이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화답했다.


"자네지금 연주에 푹 빠져 버렸구만!"


"?"


역시 노친네.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하는군.


속 시원히 이 기이한 현상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을까?


고민에 빠져 있던 중 어제와 같이 연기가 흩어지듯 환영이 사라졌다.


연주가 끝나자 지켜보던 사람들이 떠나가며 잔잔히 박수를 보내 주었다.


어느 정도 조용해지자 잭이 여자에게 박수 치며 큰 소리로 말했다.


"브라보아주 멋진 연주였어요!"


잭에게 감사 인사를 하던 여자가 나를 보며 역시 올 줄 알았다는 미소를 지었다.


나는 어이없음과 부끄러움에 눈을 질끈 감았다.


"언젠가 빅 클럽에서 연주할 날을 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아직 한참 멀었는걸요...!"


"계속 얼굴을 보고 싶어 그런데 제가 자주 가는 클럽에 연락해 볼래요잭이 소개했다고 하면 될 겁니다."


여자가 신나 하며 잭에게 답했다.


"정말인가요이토록 감사한 일을!"


잭이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어 여자에게 건네주었다.


"하하제 친구 놈이 사장인데 이런 멋진 신인을 소개해주면 분명 좋아할 겁니다그곳에서 실력으로 증명 해 보세요!"


여자는 잭에게 고마워함과 동시에 뿌듯한 표정으로 날 바라 보았다.


"역시나 보러 와 줬군요이렇게 멋진 분이랑 함께 와 주다니."


잭이 놀라며 말했다.


"둘이 구면 인가?"




"!"

"아뇨."





상반되는 대답에 잭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자네나 몰래 재즈의 매력에 빠져 버렸었나내가 눈치가 없었군하하하!"


재즈재즈재즈


진짜 미쳐 버리겠군.


잭이 인사하며 뒤돌아서자 여자는 잭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 댔다.


여자가 기분이 좋은지 팔꿈치로 내 옆구리를 푹 찔렀다.


짜증을 섞어 입을 열었다.


"치지 말아요내가 꾸민 일이 아닙니다단순히 우연의 우연 이라고요."


내 말을 듣기는 한 건지 여자가 흐뭇한 표정으로 내 품에 트럼펫을 들이 밀었다.

그러고 주섬주섬 짐을 챙기는 여자.


방금 일로 내가 자기를 도와주러 왔다고 생각하는 건가?


건방 떨기는...


그런 생각을 하던 중 여자가 물었다.


"오늘 연주는 어땠나요제 마음이 잘 보이던 가요?"


마음... 이라고?


난 그 말에 환영에 대한 궁금증이 떠올라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까처럼 미친 사람 취급을 받겠지만


오늘 진짜 마지막으로 볼 사이니까...


"혹시... "


"?"


난 침을 꿀꺽 삼키며 물었다.


"당신도 연주하면... 무언가 보이나요?"


"제 마음이 보일 정도로 심취해서 들었다는 뜻인가요이 감격!"


"아뇨그런 뜻이 아니라 당신도 환영이 보이냐 구요."


정색하며 말하는 나의 모습에 사뭇 진지하게 여자가 답했다.


"설마..."


역시 뭔가 아는군.


"뭔가 알고 있는 거죠얼른 대답해 줘요."


나 스스로도 믿기지 않는 일이다.


그러나 믿을 수 밖에 없게 만드는 너무나 선명한 환영


내가 미친 건지 아니면 내가 모르는 무언가 있는 건지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여자가 심각한 표정을 짓더니 서서히 입을 떼었다.


"원래 달빛 아래에서 재즈를 연주하면 가슴속에 숨긴 무언가 보이는 법이에요."


묵직한 목소리에 금세 혼란스러워졌다.


정말 그런 마법 같은 일이 존재하는 것인가?


내가 모르는 세상의 비밀이 있었다는 것이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진중한 목소리로 묻는 여자.


"무엇을 보았나요?"


나는 기묘함의 정체를 알아낼 수 있다는 생각에 들뜨며 말했다.


"당신이 연주하면 두 남녀가 춤을 추다가 키스하며 끝이 나요당신도 뭔가 알고 있는 거죠?"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지그시 바라보는 여자.





그러나 이내 여자가 폭소를 터트리며 말했다.


"역시 내가 말했죠재즈에 매력에 빠질 거라고너무 심취해 버렸네요!"


어안이 벙벙했다.


아무렇지 않은 여자의 모습에 상황이 쉽게 파악되지 않았다.


"뭐라고요그럼 방금 달빛 아래에서 연주하면... 그 말은 무슨 뜻이에요?"


심각하게 묻자 여자가 내 입꼬리를 들어 웃는 표정을 만들어주었다.



"방금 제가 지어낸 말이에요그럴싸하죠?"




역시나.


이런 바보 같은 여자에게 농락이나 당하고 있다니.


어떻게 앙갚음을 해 줘야 이 분노를 삭힐 수 있을지 고민하던 차,


그녀가 내 품에 있던 트럼펫을 들어 올렸다.


"지금 그 감정을 가지고 다시 불어봐요벌써 까먹은 건 아니겠죠?"


"난 장난이나 치자고 한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입가에 가져다 대는 것 만으로 또 다시 일렁 거리는 환영.


그 모습에 놀라 나도 모르게 마우스피스를 입으로 물었다.


입으로 문 지 얼마다 됐다고 환영이 점점 선명히 보이기 시작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힘껏 트럼펫을 불었다.


어제와는 다르게 힘차게 뻗어나가는 소리.


그러자 남성의 품에 안겨 춤추는 여성의 얼굴이 점차 드러났다.


난 그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트럼펫을 더욱 세게 불었다.


또렷해진 환영에 여자의 손목을 끌어 옆으로 오게 했다.


얼른 보라는 눈빛을 하며 계속해서 입에 힘을 주자 드러나는 여성의 얼굴.


그 얼굴이 보이자 난 놀람을 감추지 못하고 여자의 얼굴과 환영을 번갈아 보았다.


여자가 놀라며 물었다.


"당신... 혹시 문제 있는 건 아니죠?"


또렷하게 보이는 환영 속 얼굴과 일치하는 여자의 얼굴.


내가 정말 미친 건가?


어이없음에 어떻게던 여자도 이 모습을 볼 수 있게 끔 얼굴이 새빨개지도록 불어 댔다.


그 모습이 안쓰러운지 얼마 안 가 여자가 내 입에서 트럼펫을 빼내었다.


"여기까지 해요많이 피곤한 것 같은데얼른 들어가죠?"




여자의 걱정 어린 표정을 보니 겨우 정신이 차려지는 듯했다.


"... 미안합니다근데 정말 못 봤어요방금 당신 얼굴이..."


무심하게 고개를 가로 젓는 여자의 모습.


괜한 헛소리를 했다는 후회가 들었다.


그러나 곧바로 입을 여는 여자.


"재즈의 비밀이 궁금한 거죠?"


궁금함에 진 내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여자가 속삭였다.


"점차 마법 같은 일이 펼쳐질거예요지금 같은 모든 순간이 환상이 되는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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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된 기이한 경험에 만나는 사람들마다 조심스레 재즈와 환영에 대한 얘기를 물어보았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요새 힘든 일이 있나 하는 말 뿐.


도저히 풀리지 않는 답답함에 억지로 찾아가 여자의 연주를 들을 때,


함께 트럼펫을 불어 댈 때 환영은 나를 더욱 환영 한다는 듯 짙게 나타나 시선에 머무르곤 했다.


그럴수록 더욱 그 정체에 집착하게 되어가는 나.


의사를 만나야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연주를 들을 때 말고는 평소와 다를 게 없었다.


그런 걱정들은 환영이 사라질 때 언제나 금방 내려놓게 되었다.


결국 웃기게도 재즈의 마법이라 생각하는 것이 속이 편한 것 같았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연주를 끝 마친 여자가 기쁜 표정으로 말했다.


"좋은 소식이 있어요!"


"뭔데요?"


"당신이 잭에게 소개해준 덕분에 클럽에서 연락이 왔어요!"


난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그래요축하해요."


"역시 무미건조한 반응이네요그날 보러 와 줄 거죠당신이 제 게 큰 힘이 되어요."


평소 답지 않게 낯간지러운 말을 하는 여자에게 어깨를 으쓱 하며 말했다.


"그날 일정을 보고요."


퉁명스레 답하자 여자가 내 어깨를 밀며 장난을 쳤다.


"요새 내 연주는 어때요많이 늘었죠?"


"매번 똑같기만 합니다."


그러나 솔직한 마음으로는 여자의 실력이 많이 늘었다고 생각하는 참이었다.


늘어가는 실력에 따라 더 또렷해지며 이제는 뒷이야기를 보여주려 하는 환영.


응원하고 싶은 마음보다는 이 환영의 끝은 무엇일지도대체 정체가 무엇 일지에 대한 궁금증이 더 크게 느껴지는 와중이었다.


그때 여자가 고개를 들어 달을 바라봤다.


"지금처럼 달빛이 날 비춰줄 때 면 모든 걸 잊고 연주에만 푹 빠져 버리는 것 같아요."


"어디 에서나 그렇게 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자 알 수 없는 울적한 표정을 짓는 여자.


"그렇죠... 그래야만 하는데..."


자신감 없어 보이는 모습이 보기 싫어 퉁명스레 답했다.


"그렇게 할 수 있을겁니다."


여자는 잠시 놀란 표정을 짓더니 내게 물었다.


"당신도 무언갈 사랑 해본 적이 있나요?"


"갑자기 무슨 질문을."


"그런 때가 있잖아요평범한 일상도 현실이 아닌 듯이 느껴지고..."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


"영혼을 일깨워주는 누군가와의 이야기그 이야기가 꽃처럼 피어 마음속에 열정을 불어 넣어주는... 그런 마법 같은 사랑 말이에요."


"현실과는 동 떨어진 이야기네요."


"역시 그런가요그래도 그런 누군가와 함께 하는건 정말 기쁜 일이겠죠."


여자는 그 자리에서 한 바퀴 돌더니 말을 이었다.


"쓸쓸한 달빛과 춤추다 지쳐 쓰러지더라도계속 날 비춰주는 그 빛만 있다면 지칠 줄 모르고 기쁘게 춤을 추지 않을까요."


여자가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을 마치고 나와 눈을 맞췄다.


"당신이 보는 환상처럼... 그런 모습으로 춤을 추는 나는 언젠가에 머물러 있는걸까요."


간절한 염원이 담긴 눈빛.


그 눈빛에 못 이겨 듣기 좋은 말을 해주었다.


"당신이 더욱 멋진 연주를 한다면 그 날그런 일이 생길지도 모르죠."


그런 내 말이 고맙기라도 한지 씨익 웃으며 뒤 도는 여자.


트럼펫 가방을 들쳐매며 말했다.


"일단 트레일러로 가죠."


그러자 이젠 당연한 일처럼 따라오며 여자가 덤덤히 말했다.


"이젠 가방 매는 게 익숙하네요당신이 있어서 참 다행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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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당일.


잭과 함께 대기실을 찾았다.


잭이 응원하며 여자에게 꽃다발을 건넸다.


여자가 꽃을 받더니 밝게 웃어 보였다.


"정말 감사해요당신이 아니었다면..."


"무슨 말을요당신의 실력이 여기까지 이끈건데요."


여자가 긴장한 듯한 목소리로 답했다.


"사실은 저당신 회사의 직원이었어요."


잭이 놀라며 말했다.


"그랬습니까?"


"나름 꿈을 찾겠다고 뛰쳐나와서 고생한지 벌써 수년... 오늘 정말 잘해야 할 텐데..."


"반드시 잘할 겁니다엄청 많이 늘었던 걸요."


"감사해요얼음 같이 냉랭한 관객을 만족 시킬 수 있을까요?"


정말 긴장해서 그런 것일까.


자신감 있고 발랄하던 평소와 전혀 다른 여자의 모습에 괜한 이질감이 느껴졌다.


계속해서 여자가 뭔가를 찾는 듯한 모습을 보이며 불안해 했다.


잭기 옆에 있는 물어 집어들며 말했다.


"뭐 깜박한 거 있나요?"


그렇게 잭이 물을 건네자 여자는 애써 미소를 짓더니 물을 단번에 들이켰다.


길거리에서 매일 공연을 하던 것과 유명한 공연장에서 하는 것은 다른 느낌이려나.


몸을 떨며 불안해 하는 여자.


"오늘로 모든 결과가 드러나겠죠..."


내가 덤덤한 표정으로 떨리는 어깨에 손을 짚어 주자 힘겹게 미소를 지어 보이는 모습.


그 모습을 크게 신경 쓰지 않은 채 대기실을 빠져 나왔다.


잭과 함께 관객석에 앉자 잭이 입을 열었다.


"재즈판은 엄청 좁아그만큼 잘하면 금방 입소문을 타서 스타가 되지."


"그런가요?"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 영영 길거리 신세를 면하지 못하게 되지내 체면이 걸린 만큼 기대해보자고."


조금 전과 달리 냉정한 잭의 말에 생각이 깊어졌다.


그 순간 무대의 불이 꺼지며 사회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처럼 밝은 달이 뜨는 밤에 어울리는 신인 입니다."


그렇게 사회자가 몸을 돌려 여자를 소개 했다.


"여성 트럼페터 다이애나그럼재즈의 마법에 깃드시길."


다이애나라고?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통성명도 하지 않은 채 한참을 함께 보내 왔군.


무신경했던 자신에 실소가 터져 나왔다.


그러나 신인에 대한 불신 때문일지 엄숙한 관객석의 분위기.


그에 내 웃음기가 싹 사라질 때 쯤 무대 위로 걸어 나오는 다이애나.


차분히 앉아 숨 죽여 기다리는 관객들.


다이애나가 그런 관객들을 잠시 바라보더니 천천히 트럼펫에 입을 가져다 대었다.


이윽고 시작부터 강렬한 트럼펫의 소리가 공연장 끝까지 울려 퍼졌다.


관객들이 일말의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탓 일까.


그 모습에 어느샌가 관객 모두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여느 남성보다 강하고 세련되게 연주하며 완급까지 조절해가는 다이애나.


관중을 휘어잡은 초반을 넘어 연주의 중반까지 멋지게 이끌어 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신기하게도 환영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매일 입던 청바지와 달리 드레스를 입고 연주하는 다이애나의 모습이 새로운 환영처럼 느껴지는 듯했다.


완벽한 연주였다.


옆에서 보고 있던 잭 또한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연주가 계속 이어지며 모두의 감정 또한 고조 되었다.


그 분위기에 나 또한 왠지 모르게 감정이 일렁이는 듯 했다.


공사장과 트레일러에서 마냥 꿈만 좇던 누군가가 곧 성공을 거머쥐는 순간.


내가 쫓겨오듯 이룬 성공들도 모두 이런 기대속의 순간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하늘 높이 치솟아오른 그녀의 벅찬 감정이 꼭대기 다다라 모두의 마지막을 장식하려 했다 .



그 순간,


끼이익!!!!!!


갑자기 날카롭게 신경을 긁는 소리가 무대에 울려 퍼졌다.


풍선이 펑하고 터지듯 고조 되었던 감정도 하늘에서 점점 추락하기 시작했다.


생각지도 못한 소리에 모두가 당황하였다.


그러나 가장 당황한 것은 다이애나로 보였다.


당혹감을 표정에 숨기지 못한 채 점점 박자와 상관 없이 어설픈 연주를 하는 다이애나.


간절한 표정의 다이애나가 손가락을 더욱 바삐 움직였다.


"끝났구만."


실망스럽다는 잭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말에 나도 모르게 약간은 응원하는 마음이 들었다.


다시 감정을 잡고자신의 연주를 끝마칠수 있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이미 정신이 나간듯 맥 없이 무너져 내려가는 다이애나.


계속해서 연주를 이어 나가려 하는것이 오히려 더 독이 될 뿐이었다.


끊임없이 들려오는 힘겨운 소리.


곧 이어 관객석에서 야유가 터져 나왔다.


다이애나가 눈을 질끈 감으며 어떻게든 연주를 끝마치려 했다.


그런 간절한 모습에 손이 꽉 쥐어졌다.


그때누군가 음식물을 무대 위로 던졌다.


음식물은 이내 정확하게 다이애나의 몸에 맞으며 팍하고 터졌다.


조명에 밝게 빛나던 드레스가 한 순간에 더러워지는 모습


심각한 표정으로 무대를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더 이상 버틸 수 없는지 다이애나가 벌떡 일어나 눈물을 훔치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잭이 그 모습에 팔짱을 끼며 말했다.


"젠장사람을 잘못 봤구만부끄러워서 친구 놈 얼굴을 어떻게 보나다 망했어!"


그런 잭의 말과 동시에 들려오는 관객들의 비난과 조롱.


그전부터 불안해 보였던 모습에 노파심이라도 든 것일까.


혹시라도 다이애나가 잘못된 행동을 할 수도 있단 걱정에 자리를 박차고 대기실로 찾아갔다.


그러나 가방만 남겨둔 채 보이지 않는 다이애나.


대기실 문을 세차게 닫고 뛰쳐나가 다이애나를 찾았다.


도대체 어디로 간 건지... 어디로 향했는지에 대한 단서조차 알 수 없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밖을 뛰어 다녔을까.


어디선가 들려오는 구슬픈 소리에 발 걸음을 향했다.


그러자 골목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고 있는 다이애나가 보였다.

"다이애나?"


걱정 어린 마음으로 말하자 다이애나가 놀라며 황급히 몸을 정리 했다.


화장이 잔뜩 번진 얼굴.


다이애나가 겨우 눈물을 닦아내며 말했다.


"루이?"


내 이름을 알고 있었구나.


"괜찮아요?"


제정신을 차리기 힘들어 보이는 다이애나.


걱정을 가득 담은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다이애나가 그런 날 보더니 고개를 부르르 떨며 기지개를 폈다.


그러자 언제 그랬냐는듯 평소의 밝은 목소리로 답하는 그녀.


"괜찮아요!"


방금 전까지 울고 있던 모습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사람이 너무 슬프면 웃는다던데... 설마 그런것일까?


하지만 평소의 다이애나를 생각하면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닌가 싶었다.


"진짜 괜찮은 거 맞아요?"


"역시 당신은..."


무슨 말을 하려하는지 귀 기울였으나 그녀는 말 끝을 흐릴 뿐이었다.


그 모습에 우선 몸에 묻은 음식물을 털어 주었다.


"날 걱정해주러 온 건가요?"


방금 있었던 일이 아무렇지도 않은 것일까?


그런 모습에 부정적인 얘기를 꺼내고 싶지 않았지만 우선 입을 떼었다.


"평소답지 않게 왜..."


내 질문에 다이애나가 잠시 고개를 떨구더니 답했다.


"그냥... 평소처럼 준비 했어야 했는데..."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우두커니 서 있자 그녀가 말을 이어 갔다.


"새로운 시작이라 생각하고 다르게 준비 했더니 잘 안 된 것 같아요."


전혀 만족스러운 답이 아니었지만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우선 위로의 말을 꺼내야겠지...


"이번만이 기회가 아닐 거예요다이애나."


그녀가 놀라며 말했다.


"이젠 제 이름을 부르는 게 익숙하군요."


"당신도 제 이름을 알고 있었잖아요."


내 건조한 대답에 다이애나가 평소처럼 깔깔 웃으며 물었다.


"혹시 오늘 처음 알게 된 것은 아니죠?"


난 양심에 찔린 탓일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미안함에 그녀의 손을 잡아 바닥에서 일으켜 주었다.


일어서며 말하는 다이애나.


"고마워요오늘 예쁘게 꾸미고 왔는데 지금의 난 초라함 그 자체네요."


어떤 말을 해줘야 할까.


쉽사리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우아하다아름답다?


그런 낯간지러운 말을 할 정도의 사이는 아니니까.


그저 한 마디의 말을 내뱉을 뿐이었다.


"끝까지..."


"...?"


"다시 한번... 끝까지 연주해줘요."


별 거 아니지만 첫 관객으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위로겠지.


그런 내 말에 다이애나가 눈을 번쩍 뜨며 진심이냐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반응에 괜한 말을 했나 싶어 시선을 피했다.


그러나 곧장 떨리는 손으로 트럼펫을 잡는 다이애나.


"역시 당신은 최고의 관객이에요."


말을 마친 다이애나가 끝 마치지 못한 연주를 이어갔다.


손이 떨리는 탓일지 들려오는 어설픈 음정.


그러나 지금 그녀의 기분과 감정이 온전히 느껴지는 연주.


어느새 달빛을 머금었는지 그녀의 드레스가 어두운 길을 빛내기 시작했다.


파도처럼 일렁이는 슬픔을 트럼펫의 끝으로 온전히 내보내는 다이애나.


멋지다.


지금 무슨 생각을...


그러나 슬픔이란 감정마저도 솔직하게 연주하는 그녀의 모습.


그 모습에 마음 속에 무언가 느껴지는듯 했다.


이유 없는 무시가 싫어 성공만을 위해 살았다


성공을 해도 계속 되는 차별.


지겨웠다.


백인들보다 안정적이고멋진 길을 가고 있다는 모습.


내가 되고 싶은 모습과 되어야만 하는 모습.


그 강박에서 언제쯤 자유로워 질 수 있을까.


모든것을 홀가분하게 벗어 던진 채 자유롭게 춤을 추고 싶다.


내가 원하는 리듬에 맞춰 달빛 속에 나를 흠뻑 드러내고 싶다.


스스로를 인정하지 않는 모습에 차별과 무시를 받은 것은 아닐까.


항상 날이 선 내 모양새가 계속해서 송곳니를 불러들이게 된 건 아닐까.


기준이 없는 성공에 왜 나는 아직도 스스로를 담금질 하는가.


루이의 삶.


난 과연 그런 삶을 살 수 있을까.


언제까지 타인을 불신하는 흑인의 삶만을 강요하며 살게 될까.


내가 진정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마주할 용기가 과연 나에게 있었을까.


지금 당장이라도 그런 용기를...


그마저도 아니라면 작은 희망이라도 가져볼 힘이 남아 있기는 한 것일까.




조금 전까지 뼈 아픈 실패를 겪었음에도 묵묵히 연주를 끝마쳐가는 다이애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지만 이내 인정하기로 했다.


멋진 여자다


아주 약간이지만 당신을 존경한다.




어느새 연주를 마친 다이애나가 갑자기 내게 트럼펫을 건네주었다.


"마지막은 당신의 소리로 장식해 줘요."


알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분명 저번처럼 별 볼일 없는 소리가 나오겠지.


다이애나를 위로하고 일으켜 세울 힘은 있으면서 비록 나 자신에겐 그 무엇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꼭 내가 해주길 바란다는 그녀의 눈빛.


난 어쩔 수 없이 트럼펫을 받아 조용히 바람을 밀어 넣었다.


힘 없이 부는 내 입술처럼 아주 작은 소리만이 귓가에 울렸다.


그러자 손을 세차게 흔들며 말하는 다이애나.


"더요마지막을 장식하는 소리를 내어줘요!"

그런 다이애나의 성화에 눈을 꽉 감으며 최대한 강하게 소리를 뿜어 내었다.




뿌우하는 소리와 함께 길거리가 떠나갈 정도로 울리는 트럼펫 소리.


계속해서 격려하는 다이애나의 모습을 보며 끊임 없이 숨이 터질 듯 불어댔다.


그러자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또렷하게 보이는 환영.


그토록 정체가 궁금하던 환영의 모든것이 눈에 담길 정도로 선명하게 비춰졌다.


푸른 달빛 아래에서 춤을 추는 다이애나그리고 얼굴을 알 수 없는 사내.


그 둘의 뜨거운 입맞춤까지...


환상속의 행복한 다이애나의 모습이 보이는 영향일까.


눈물자국이 진하게 남은 그녀가 너무나 안쓰러워졌다.


비 일상적인색다른 경험을 하게 해주는 그녀에게 약간의 고마움이라도 드는걸까?


그녀는 웃는것이 잘 어울린다.


괜한 바램이지만 항상 밝게 웃으며 살아갔으면 좋겠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것이... 


그저 그런 곁에 함께하는것이...


정말 마법 같은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갑작스레 벅차오르는 마음.


그런 마음에 환영에서 보았던 환한 미소를 지금 당장 보고 싶어졌다.


순간 뭔가에 홀린 듯 솟구치는 용기에 나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아주 잠깐만... 잠깐이면 돼요..."


"?"


"내 손을 잡아줘요."


영문을 몰라 하는 표정의 그녀.


그러나 선명히 내미는 나의 손에 서서히 손을 맞잡아 주는 그녀.




그녀의 손을 이끌어 밝은 길거리로 나가 얼굴을 마주 보았다.


부끄러움 따위 느껴지지 않는 기분.


그녀의 얼굴과 깊은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이 사람도 쑥쓰러워 하는 표정을 지을 줄 아는구나.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몸이 이끄는 대로 내면의 흥을 따라 춤을 추기 시작했다.


당황스러워했지만 서서히 내 리듬에 맞춰 춤을 즐기기 시작하는 다이애나.


아무도 없는 거리.


그곳에서 손을 맞잡고 뛰어 다니는 것이 미친 사람 같아 보일 것이다.


그러나 춤을 출 수록 행복하게 웃는 그녀.


그 미소를 보자 이 모습을 간직하고픈 마음에 충동적으로 그녀를 꽉 껴 안았다.


서로의 강렬한 숨결이 온전히 느껴질 만큼 가깝게 코를 맞대었다.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가 서로의 귓전에 울렸다.


그녀도 나와 같은 마음일까?


내가 어쩌다 이렇게 감정적이게 된 걸까.


걱정되는 마음에 그녀에게 말했다.


"이렇게 멋대로 행동하는데 괜찮아요?"


그러나 오히려 더욱 세차게 안아주는 그녀.


"이런 모습이 멋지기만 한걸요."


그녀가 더 가까이 나를 당긴 탓에 입술 끝에 따스한 부드러움이 느껴졌다.


그 말에 마음이 깨어나기라도 한 것일까.


일렁거리는 마음을 담아 그녀의 입술에 천천히 내 입술의 온기를 전해주었다.


그러자 부끄러운 듯 눈을 피하는 그녀.


그런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처음으로 내게 웃어 주네요내 인생 최고의 미소예요."


그녀만 미소를 짓고 있는 줄 알았는데...


다이애나의 눈동자에 비치는 나의 모습.


열렬한 감정을 표현하며 행복해하는 남자가 보였다.


그 모습이 어색하지만 지금 느끼는 감정 그대로 격하게 나의 입술을 그녀에게 나눠 주었다.


너무나도 따스하게 내 마음을 환영해주는 그녀의 입술.


고마움을 느끼며 계속해서 지금의 행복감을 표현해주었다.


"다이애나당신의 미소가 가장 아름다워요."

 





계속해서 보였던 환영은 우리가 이토록 사랑하게 될 걸 알려주려던 것일까?


환영의 푸른 달빛과는 거리가 먼 샛노란 달빛 아래서 키스한 것이지만 내 옆에서 곤히 잠든 그녀를 보면 운명이란 정해짐이 없다고 느꼈다.


달빛 아래에서 재즈를 연주하면 가슴속 무언가 보이게 된다.


그런 그녀의 마법 같은 말을 사실로 믿게 된 나.


절대 들어가지 않을 생각이었던 트레일러가 이제는 내 집처럼 포근해졌다.


나와 함께 하며 이전보다 더 자신 있게 트럼펫을 연주하는 그녀.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어느새 일상이 되어 있었다.


매일 그 날처럼 들뜬 기분이 들지는 않았다


그러나 기이한 환영이 결국 우리의 운명을 알려주는 것이었고 


그녀의 연주가 계속해서 나에 대한 호감을 드러냈다는 사실에 왠지 모를 흐뭇함에 빠져 살게 되는 나날이었다.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마법 같은 만남이 내게 벌어지기라도 한 걸까.


점점 깊어지는 사랑으로 그녀와 함께 하는 것이 너무나 기뻤다.


"블루 문무슨 생각해?"


가장 아끼는 트럼펫의 이름을 이젠 애칭으로 불러 주는 그녀.


처음에 그토록 혹독하게 비난했던 이름이 결국 나의 애칭이 되고야 말았다.


괜히 실실 웃음이 새어 나와 그녀를 껴안아주며 말했다.


"아무것도너무 열심히 하는 거 아냐?"


그녀가 고개를 돌려 쪽하고 키스해 주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잖아저번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지."


씨익 웃으며 그녀의 이마에 키스를 돌려 주었다.


"1년이나 준비 했잖아이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잘하는 걸."


그러자 내 칭찬이 기분이 좋다는 듯 발그레 웃는 그녀.


"그때가 생각나네그날 내가 실수하지 않았다면 자기가 날 걱정해줬을까?"


내가 웃으며 답했다.


"그날로 끝이었지 뭐."


그녀가 내 볼을 꼬집으며 말했다.


"역시 짖궂어예전에 기억나?"


"어떤 거?"


내 앞에 손을 붕붕 휘저으며 말하는 다이애나.


"내가 연주하면 환영이 보이느니 그런 얘기 했었잖아지금도 그래?"


난 골똘히 생각한 뒤 입을 열었다.


"아니어느샌가부터 전혀 보이지 않아."


"그래다행이네미친 사람이랑 한 침대를 쓰고 싶지는 않아."


그 말에 그녀를 간지럽히며 말했다.


"이리 와달빛 아래 어쩌고 하면서 마음이 보인다 했던 사람이 누구지지금은 그런 마음이 없어서 안 보이는 건가?"


그녀가 간지러움에 이기지 못하며 발랄하게 답했다.


"아하하하아니야블루문너무 너무 사랑해!"


그런 장난을 치던 중 탁상 시계의 알람이 찌르르 울렸다.


시계를 바라보며 말했다.


"벌써 시간이..."


내가 그녀를 일으켜 세우며 나갈 채비를 하자 그녀가 물었다.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날이지?"


"자기의 공연을 보러 오시라 할 거야."


그러자 그녀가 걱정 어린 시선을 보냈다.


"괜찮아 하실까?"


백인 여자친구그리고 재즈.


복잡 다양한 걱정을 담은 그녀의 말.


난 그런 그녀를 꽉 안아주며 말했다.


"좋아 하실 거야걱정하지 마."


옷 매무새를 다듬고 트레일러의 문을 열었다.


밝게 웃으며 배웅해주는 그녀를 뒤로 한 채 아버지가 있는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