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y4bZu56EylA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한동안 업무에 미쳐 살겠다고그녀에 대한 미련조차 남기지 않겠다고 생각하며 바쁘게 살았다.


절대 잊을 수 없을 강렬한 추억그리고 몸에 배어 버린 습관들까지.


그 모든 것들이 약으로 시작되었고 그저 약 때문이란 생각에 깔끔하게 모든 것을 던져 버리기로 결심했고그렇게 했다.


다시는 그런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겠다는 마음을 가진 채...


그렇게 나는 블루 문이 아닌 루이로서자랑스러운 아들로서 다시 예전과 같은 반복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감에 아버지의 건강도 더욱 악화되어 자주 아버지의 집에 드나들게 되었다.


매번 보이는 약들


그것들을 볼 때면 괜히 다이애나와의 기억이 떠올랐다.


일말의 연민이라도 느껴야 했지만 그저 완전한 의분으로만 느껴지는 그녀.


그런 혐오의 마음 덕분인지 기억이 잊혀지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내가 분명 오해하는 부분도 있겠지


그러나 어차피 결론은 하나이지 않을까.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도그래야 할 이유도 존재하지 않았다.


역시 내가 살아온 삶은 틀리지 않았고재즈 따위도 더러운 아류 문화에 불과했다.


진심 어린 연주니... 


마음을 담은 마법이라느니...


그런건 존재하지도존재 할 수 조차 없었고그저 추악한 속임수에 불과했다.





그러나 나름 1년 간 재즈에 빠져 사는 모습을 본 때문일까.


옴짝달싹 하지 않는 나에게 잭이 성화를 내어 강제로 끌려가게 된 재즈바.



잭이 공연을 보던 중 말했다.


"요새 나랑 같이 와주더니갑자기 왜 그러는거야노친네 부탁 한 번 들어주기 그렇게 싫은가?"


"역시 저한테는 안 맞는 음악이에요저런게 뭐가 좋다고..."


"이상한 사람일세언제는 그렇게 좋다하더니..."


심기가 불편한 나를 풀어주려는지 잭이 술을 따라주었다.


멍하니 잔을 바라보는 나에게 잭이 물었다


"루이예전에 그녀는 어떻게 되었는가뭐 다른 곳에 도전해 본다 하지 않았어?"


내가 교제했단 사실을 모르는지 담담한 표정으로 대답을 기다리는 잭.


난 잔을 벌컥벌컥 들이키고 답했다.


"그 이후로 저도 잘..."


말끝을 흐리자 잭이 그렇냐는 듯 신경 쓰지 않고 다시 공연을 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잭이 내게 다가와 속삭이듯 말하였다.


"그런데 말이야... 요새는 그녀 같이 진심을 담은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군."


"그런가요저는 그때도 잘 모르겠던걸요."


"아니야... 그때 그녀의 연주는 정말 누군가에게 간절하게... 자기 마음을 표현하고자 하는 힘이 느껴졌었어."


"그런게 뭐가 중요합니까당신이 준 기회도 뻥 걷어 차버리는 허접한 실력인데요."


내 말에 잭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긴 하지그래도 그녀의 연주는 생생한 감정이 눈에 보여지는듯 했어정말 그림 같은 연주란 말이 어울렸는데 말이야."


잭에게까지 마약의 영향이 미치지는 않았을 텐데...


그때의 아버지도 그렇고 잭까지 이렇게 말하는 걸 보면 그녀가 진심을 담아 연주하긴 했나보다.


말 없이 고개만 끄덕거리고 있을 때 무대 위로 걸어 나온 보컬이 소개를 시작했다.


마이크를 붙잡고 차분한 눈으로 말하는 보컬.


"원래 하려던 곡이 아닌 다른 곡을 부르겠습니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궁금함에 귀를 열어 보았다.


"걸어오며 보니 푸른 달이 떴더군요."


그렇게 조명이 꺼지며 푸른 빛으로 장식 되는 무대.


"두번째로 뜨는 보름달이지요그럼에도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은지 우리를 푸른 색으로 비춰줍니다."


푸른 달이란 말에 흠칫하며 가슴이 울렸다.


'블루 문그 무엇과 비교 할 수 없을 만큼 사랑해.'


갑자기 떠오르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아직도 나를 괴롭히는건가...?


"그런 푸른 달빛 아래 서 있으면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이 선연히 느껴지기도 하지요."


푸른 조명을 감싸 안으며 말하는 보컬.


"함께 눈을 감고 느껴주십시오블루 문시작하겠습니다."


그 말에 세션이 연주를 시작하자 보컬이 담담히 목소리를 내었다.


거부감이 들던 처음과는 달리 폐부에 깊이 꽂히는 듯한 가사가 너무나도 시리게 느껴졌다.


푸른 달의 차가움과 선선함을 맞이 하면서 누군가를 애타게 찾는듯한 목소리

"블루 문당신은 내가 그곳에 있었던 이유를 알았지요.

내 기도를 들었지요.

내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나타나도록 기도하자

그러자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났어요

내 한쪽 팔이 붙들리며

누군가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어요.

당신을 사랑할게요."


천천히 읆조리는 노랫소리에 예전의 기억이 다시금 떠오르는 듯했다.


나를 블루문 이라고 부르며 사랑을 속삭이던 그녀.


함께 요리를 하며 밀가루 포대를 뒤집어쓰던 우스꽝스러운 우리.


어두운 밤 따위 전혀 상관 없다는 듯 달빛 아래에서 춤추며 사랑을 속삭이던 우리.


그런 날이면 약 따위 의심할 수 없을 정도로 진심을 담아 나를 바라봐주던 그녀의 눈빛.


그 눈빛을 바라보며 키스를 하던 날이면 그 어떤 거짓조차 없는 진실된 마음만 확인할 뿐이었다.


운명이라 생각했던 환각.


환각의 푸른 달빛은 아니었지만 그보다 따스한 노란 달빛 아래 나눴던 첫 키스의 강렬함.


잊을 수 없는 그 날의 감정그리고 기억.


사실 그 날 느낀 감정 조차 진실이 아니란 건 믿지 않았다.


이런 진정한 사랑의 감각이 느껴지는것이 마약 때문이 아니란것을 알고 있었기에...


지금까지도 깊이 그녀를 생각하면 마음이 금방이라도 녹아내릴듯 뜨거워지니까...


어떻게든 부정 했지만 내 진심을 모른 척 할 수는 없었다.


언제나 진심만이 담긴 사랑을 그녀에게 전해줬었다는걸.


그런 생각을 하던 중 이어지는 보컬의 노래.


"내가 돌아보자 달님은 황금색으로 변했어요."


"푸른 달님이제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닙니다."


푸른 달이 황금 색으로 변했다는 노래 가사가내가 봐왔던 환영에 투영되어 그때의 우리를 보게 하였다.


나를 보며 진심으로 미소 짓던 다이애나의 말.


'처음으로 내게 웃어 주네요내 인생 최고의 미소예요.'


마법 같은 환영의 주인공이 사실은 나였음에 감사 했다.


그 행복에 겨워 스스럼 없이 입을 맞추던 그 날.



잭의 말처럼...


진심 어린 그녀의 연주가 내게도 무언가 보이게 한 것이었다면...


그저 환각이 아닌 그녀의 마음이 나에게로 통했던 것이라면...


그때 나의 감정은 진실이었고 마약 따위와는 상관 없었다.


그런 마법 같은 일을 믿었던 나날들이 떠오르며 이 감정의 진실을 마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환각인지 마법 같은 환영인지 구분 조차 못하는 내가 한심하기라도 한 걸까.


가슴 깊은곳에서부터 차오르던 눈물이 잔 속으로 뚝뚝 떨어졌다.




지금이라면...


지금 다시 그녀의 연주를 듣게 된다면 진실을 알 수 있지 않을까?


푸른 달빛 아래 춤추던 우리의 모습이 운명을 나타냈던 것일지...


아니면 그저 마약에 의한 환각에 불과했던것일지...





난 그 답을 알고 싶은 마음에 순간적으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연주가 끝마침에 박수를 보내는 잭을 뒤로 하고 공연장 밖으로 뛰쳐 나갔다.


밖으로 나가자 바닥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수증기.


그 수증기의 형태가 환영이 어른거리던 그때의 기억을 회상하게 했다.


진실을 마주할 용기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채 그녀가 있던 트레일러로 달려 나갔다.


푸른 달빛이 비추는 길을 따라 무작정 달리고 달리고 또 달렸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름에도 진실을 알고 싶단 생각만으로 미친듯이 뛰었다.


심장이 터질듯이 아파와 겨우 숨을 고르고 있던 그때






저 멀리 보이는 트레일러의 모습.


언제나 따스해보이던 트레일러가 차가운 달빛을 맞아서인지 어딘지 모르게 쓸쓸해 보였다.


겨우 숨을 고르자 서서히 들리기 시작하는 트럼펫 소리.


나도 모르게 그 소리에 이끌리자 트레일러 앞에서 트럼펫을 불고 있는 다이애나가 보였다.


예전과 다르게 많이 수척해진 모습.


습관은 쉽게 바뀌지 않는지...


그 모습에 걱정이 되어 당연하단 듯 뛰쳐 나가 그녀를 안아주려 했다.


그러나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


이미 이별한 우리이기에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멀찍이 떨어진 채 그녀의 연주를 바라보며 첫 마디를 고민했다.



그런 고민을 하던 중,



누군가 다이애나 옆으로 걸어와 그녀를 감싸 안았다.


그녀와 같은 백인 남자.


다이애나는 그의 손길이 어색하지 않은지 자연스레 그 팔을 감싸 안았다.


놀라움에 헐떡이던 숨을 멈추고 조용히 둘의 모습에 집중 했다.


푸른 달빛 아래 함께 하는 두 남녀.


계속 바라볼수록 왜인지 모르게 환영과 비슷한 둘의 모습.


진실을 알고 싶어 뛰쳐나온 나의 기대와 너무나 다른 상황.


운명의 상대는 반드시 나일거라 생각했던 희망은 그저 헛된 상상에 불과했다.

둘의 애정 어린 모습에 다음 행동을 쉽사리 결정할 수 없었다.


이대로 등을 돌려 달아나야 했지만 지금까지 믿어온 환영의 주인공이 내가 아니란게 분하기라도 한지 쉽게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그렇게 내가 지켜보는지 모르는 채 다이애나가 그의 손을 맞잡고 일어났다.


나와 함께 추던 춤사위 그대로 춤을 추기 시작하는 다이애나.


그 모습에 심장이 부서지며 눈 앞이 희뿌얘져 갔다.


그녀의 눈빛이 어떤지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만은 확실히 보였다.


활짝 웃는 얼굴로 그녀의 리듬에 맞춰 행복하게 춤을 추는 사내.


방금까지 신비롭게 느껴지던 푸른 달빛이 차갑고 창백하게 느껴졌다.


매번 봐온 환영의 모습이 눈 앞에서 똑같이 이어지려 했다.


고개를 꺾으며 그녀에게 입맞춤을 하려는 사내의 모습.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일까


눈을 꽉 감았다.


그저 차오르는 눈물에 눈이 무거워져 감기는 것이겠지.


아니


진실을 마주할 자신이 없는것이겠지.


난 두 눈을 감은 채 또 한번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을 부정하며 몸부림만 치었다


나는 무엇을 기대하고 이곳에 온 것일까.


알고 싶었던것이 무엇이었길래 이토록 달려 왔을까


나만이 주인공이라 생각했던 그녀의 옆에 누군가 있다.


나만이 위로 할 수 있다 생각했다.


연주의 주인공은 나라고 생각했었기에나 뿐일 수 밖에 없었기에...





그렇게 눈을 감은지 얼마나 되었을까.


새카맣던 눈 앞이 푸른 빛이 비춰짐에 서서히 눈을 떠보았다.


언제 사내가 사라졌는지 자리에 앉아 쓸쓸히 모닥불을 바라보고 있는 다이애나.


그러다 갑자기 눈물을 터트리며 힘껏 우는 그녀.


그 소리에 또 한번 본능은 그녀를 안아주라 말했다.


그러나 멀리서 지켜보는것만이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


차갑게만 흐르던 눈물이 왜 이리 볼이 타오르듯 뜨겁게 느껴지는 것일까.


함께 피우던 모닥불의 열기를 기억이라도 하는듯 뜨거운 눈물이 흐르며 그녀에게로 가는 길을 열어주었다.





차분히 그녀 앞에 서자 와주기를 기다렸다는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다이애나.


그 모습에 그저 입을 꾹 닫은 채 줄줄 흐르는 눈물만 보여줄 수 있을뿐.


그런 내가 불쌍하기라도 한지 입을 틀어 막으며 눈물을 흘리는 그녀.


오열하는 그녀의 소리가 그 작은 손으로는 막아지지 않는지 서글픈 흐느낌이 새어 나왔다.


참아낼 수 없이 흐르는 눈물에 나도 똑같은 소리를 내며 시린 달빛을 온전히 받아내었다.


 


그렇게 함께 흐느껴 운지 얼마나 되었을까.


더 이상 흘러나올 눈물이 없는지 우리는 그제야 고개를 들고 눈을 마주하게 되었다.


서글픈 그녀의 눈동자에 비치는 같은 눈을 한 나.


잘 지냈는지별 문제는 없는지와 같은 간단한 안부인사 조차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런 내 모습을 짐작이라도 한 건지 조심스레 입을 여는 다이애나.


"보고 싶었어루이."


생각지도 못한 그녀의 첫마디에 나도 어떻게든 입을 떼었다.


"잘 지냈어다이애나."


"보다시피그냥 이렇게 지내."


"당신답고 좋은걸."


그러자 다이애나가 의자를 꺼내오며 말했다.


"그러지 말고 앉아춥지는 않아?"


난 그녀의 친절을 쉽게 받을 수 없는 기분에 손으로 거절을 표했다.


그런 내 행동에 천천히 입을 여는 다이애나.


"언제부터 있었어?"


"한참 전부터."


차갑게 내리깔아지는 나의 말에 다이애나가 잠깐 놀라는 듯 했다.

이내 차분히 답하는 다이애나.


"다 봤겠구나."


그 말에 질투라도 피어오르는지 그 사람은 누구인지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묻고 싶어졌다.


정말 나에게 속임수를 쓴 것인지...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럴 수 조차 없었다.


어차피 환영이 보여주던 그대로 이루어진것 뿐이니까.


그 모습을 봤기에 정말 마약 때문일지아니면 마법 같은 일이 내게 벌어졌던건지도 더 이상 묻고 싶지 않았다.





난 그저 입에 발린 말만 건네야 할 뿐이었다.


"아직 연습하나 보네."


그러자 다이애나가 씁쓸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이제 다 정리하려고언제까지나 이럴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언제나 자유롭게 꿈꾸고 연주하는 그녀의 모습만이 기억에 남아서일까.


그녀답지 않은 모습에 괜한 걱정이 들어 말했다.


"괜찮아...?"


꿈에 대한 이야기그리고 약에 관한것까지.


지금의 삶이 과연 괜찮은지에 대해서도 물어보고 싶었지만 세글자의 말만 나올뿐이었다.


힘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


"미안해루이."


"미안할 필요 없어."


그녀가 먼 허공을 바라보며 말했다.


"생각을 많이 해봤어아주 혹시라도 돌아간다면..."


난 그녀와 같은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미 다 지나버린걸... 그런 마법은 없을테니까..."


아쉬움을 담은 나의 목소리에 그녀가 울적한 표정을 지었다.


"미안해... 그냥 이 말만... 할 수 밖에... 나 같은 사람을 위해줘서... 걱정 해줘서..."


"울지마다이애나당신은 그런 모습보다..."


무심코 나오려던 말을 참아내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서로에게 뭔가를 바랄 수 없으니까


그저 지금 비춰지는 싸늘한 달빛 같은 관계에 불과하니까.


흐느끼며 우는 그녀를 지그시 바라 보았다.


복잡하게 일렁이는 마음을 어떻게든 비워내려 애썼다.


그때 겨우 눈물을 닦아 낸 다이애나가 무언가를 꺼내왔다.


서서히 건네주는 그녀의 손을 이어 받았다.




'Blue moon' 이라고 적힌 레코드 판.




항상 나를 불러주던 그 이름.


이제는 포기하려는 트럼펫의 이름이 적힌 판을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이건...?"


다이애나가 담담한 표정으로 답했다.


"당신에게 주려고 준비했던거야그 날 공연이 끝나고 선물하려 했었던..."


"내가 이걸 받아도 될 지 모르겠네."


"받아줘오늘 와줘서 정말 다행이야."


"...?"


"이제 멀리 떠나게 됐거든."


차분히 지금까지 있었던 삶을 정리하려는 그녀의 목소리.


그에 아쉬운 눈빛으로 트레일러만 바라보았다.




그녀의 옆을 환히 비추던 나.


항상 곁을 밝은 빛으로 감싸주던 블루문.


더 이상 그녀의 밝은 보름달이 될 수는 없겠지.


그저 두번째 뜨는 달


하염없이 차갑게 식은 빛만을 보내주는 블루문이 되었을 뿐...


아무 말 없이 과거와 지금을 선연히 느끼며 마음에 매듭을 지어갔다.


매듭짓는 마음을 아는지 모닥불의 불도 점차 희미해져 갔다.


타닥 소리를 내며 그나마 있었던 작은 불씨조차 남기지 않고 꺼져 버리는 모닥불.


그렇게 더 이상 모닥불의 온기는 느껴지지 않았고 하얀 연기만이 공중에 피어 올랐다.


피어오르는 연기에 푸른 달빛이 비치는것을 보며 차갑게 식어가는 우리가 다가옴을 느꼈다.





그때 천천히 손을 건네는 다이애나.


"마지막으로... 괜찮을까?"


정확히 말해주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우리의 연주가 끝이나고 있단것을 알았기에...


그 마지막을 장식하기 위한 춤을 제안하는 그녀.


난 스스럼 없이 그녀의 손을 맞잡았다.


따스한 줄로만 알았던 그녀의 손이 한없이 차가웠다.


매번 손을 맞잡아 주었기에 몰랐던 것일까.


그런 그녀의 손을 잡고 차분하게 몸을 움직였다


몸에 밴 습관 그대로... 천천히...


더디고 느릿한 서로의 동작이었지만 그 다음을 당연히 알고 있다는 듯 우린 조금의 어색함도 없이 춤을 이어 나갔다.


서글픈 달빛 아래 이어지는 춤사위.


서로의 본능은 손을 맞잡은 상대를 보낼 수 없다는 듯 더욱 진하고 선명하게 춤을 그려 나갔다.


아름답게 장식 되어지는 마지막일까.


그저 용기 내지 못하고 상대를 위하는 척하는것일까.


그런 아련함을 가득 안고 춤을 채워 나갔다.


어느덧 다가오는 춤의 마지막 순간.


매번 키스를 나누었던 순간이 서서히 다가왔다.


그 순간이 가까워짐에 서로의 눈동자에 서린 애달픔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런 눈의 다이애나가 조용히 입을 떼었다.


"블루문."


그때의 목소리와 이름으로 날 불러주는것에 나 또한 다정한 목소리로 답했다.


"다이애나."










'사랑해.'







수십,수백번을 외쳐도 모자란것 같았던...


예전이라면 거리낌 없이 했을 말을 서로 쉽사리 꺼내지 못했다.


가슴에 묻어둔 채 시간에 흘려 보내던 그 한마디.


서로의 마음을 알 길이 없는것에 춤이 끝나지 않기를 기도할 뿐.


그녀도 나와 같은지 한참동안 침묵을 유지했다.





그런 다애이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블루문당신도 지금 나와 같은 말을 하고 싶다면..."


"나도 같아다이애나."


다이애나가 울먹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때처럼... 아무렇지 않게 키스해주면 안될까...? 다시 예전처럼..."




시린 그녀의 손에 온기를 불어 넣어주고 싶었다.


찬 바람에 부르텄는지 생기를 잃은 그녀의 입술에 따스함을 전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운명의 주인공은 내가 아닌걸 알기에...


이 푸른 달빛이 다이애나에게 원하는 사내는 내가 아니기에.


지금도 이 모든것이 환각일지도 모른다 의심하는 나이기에.


그런 나 따위는 예전과 같은 사랑을 다이애나에게 전할 수 없음을 알기에...






도저히 떨어지지 않는 손을 천천히 내려 놓았다.


꽉 쥔 손을 어떻게든 놓치지 않으려 하는 그녀의 손길


그런 손길을 선명히 느꼈지만 이 손을 놓는것이 진정한 끝맺음 이니까...


서서히 내 손이 빠져나가자 눈물 한 방울을 떨어트리며 눈을 감는 다이애나.



후회와 아쉬움을 없애려 달려온 나였지만 


그럴수록 더 짙게 가슴에 남겨질 뿐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느샌가 따스해진 그녀의 손.


그 온기에서 멀어지며 천천히 그녀의 손을 놓았다.


숨죽여 우는 그녀임에도 그 소리가 마음에 울리는 듯 했다.


그 울림을 꽉 끌어 안은 채 더딘 걸음으로 등을 보였다.




난 그렇게 달빛이 남지 않은 어둠으로 들어가 서서히 내 모습을 감추어 갔다.


 





다이애나가 건네준 레코드 판은 아버지에 집에 가져다 두었다.


그 날의 연주가 마음에 든다 하셨기에 한번쯤 들어 보시라 말하며 곁에 놔드렸다.


변덕스런 성격에 듣지 않으실 것이라 생각 했지만 의외로 고맙다며 레코드 판을 받아보시던 아버지.


그 말을 드린지 얼마나 되었을까.


그것이 임종에 가까워진 사람의 변덕이란걸 알기까지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아버지의 마지막을 지켜드리고 집으로 돌아와 짐을 정리했다.


그러던 중 보이는 다이애나의 레코드.


아버지의 턴 테이블에 쓸쓸히 꽂혀 있는 레코드를 보며 생각했다.


그 날아버지는 다이애나를 보며 어떤 표정을 지으셨을까.


그녀의 연주가 아버지에게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정말 들어보실줄은 몰랐는데...


가시는 쓸쓸한 길에 좋은 음악을 들려드리긴 했을까 하는 생각에 무심코 턴테이블을 켜 보았다.


치지직 하며 돌아가는 턴 테이블.


이윽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해 맑게 웃는 나와 다이애나의 목소리.


언제 녹음한건지 모를 함께하던 일상의 소리가 귀에 울려 퍼졌다.


그러나 미련 없이 떠나보낸 목소리.


기대하던 운명의 마법 따위는 없었기에... 


그저 그때를 추억하며 눈을 감았다.


목소리가 끝나며 이어지는 연주에 귀를 기울였다.


너무나도 익숙한 다이애나의 트럼펫 연주.


애절하면서도 잔잔하게 들려오는 연주에 온전히 마음을 맡기었다.


처음 들어보는 곡


언젠가 보여주고 싶다 했던 곡이 이것이었을까.


그러던 중 침대에 누워 연주를 들었을 아버지가 생각이 났다.


침대를 보며 아버지를 회상하기 위해 천천히 눈을 뜨었다.


그러자 눈 앞에 보이는 푸른 연기.


푸른 연기가 점점 짙어지며 그때 보았던 환영을 나타내었다.


푸른 달빛 아래 서있는 남녀.


다이애나와 함께 행복한 춤을 추는 사내.


이전에 보았던 환영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완벽하게 비춰지는 둘의 모습.


잔잔하던 둘의 춤이 끝을 마주하듯 격렬해지고 있었기에 


처음 들어보는 연주임에도 하이라이트에 가까워짐을 알 수 있었다.


그 어느때보다 밝은 미소를 짓고 있는 다이애나.


그런 다이애나를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한다는듯 바라보는 사내.


연주의 끝이 다가옴에 맞춰 진심 어린 눈빛을 주고 받는 둘.


어느새 깊은 입맞춤을 다이애나에게 전해주는 사내.


그 둘을 축복이라도 하듯 푸른 달빛이 그들을 환하게 비춰주었다.


정말 마법처럼 펼쳐지는 그 모습에 넋을 잃은 채 한참 동안 둘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트럼펫 연주가 끝났음에 사라져야만 할 환영이 사라지지 않은 채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직 계속해서 돌아가는 턴 테이블이 그녀의 레코드가 남아 있음을 알게 해주던 때,


환영 속 사내가 서서히 고개를 돌림에 그의 얼굴을 보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들려오는 레코드 속 다이애나의 목소리.




'진심으로 사랑해블루문.'



사랑을 고백하는 환영 속 다이애나를 꽉 껴안아 주는 나.




'항상 당신을 밝게 비출게다이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