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깊은 산중에 가장을 잃은 처자식이 있었다. 


유난히 가족애가 돈독했던 처자식은 처음엔 남편을 잃고 아버지를 잃은 슬픔이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몇일이 지나고 몇달이 지나자 그 감정들은 볕을 맞이한 눈처럼 옅어지고 만다. 슬픔은 주린 배를 더욱 더 비게 만들뿐. 당장 끼니를 떼우는 것도 힘이 든 처자식에게는 눈물마저 사치였을 것이다. 


이윽고 오누이의 어미는 어떻게든 생계를 꾸려 나가고자 마을에 내려가 쌀을 떼어왔고 떡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집과 마을까지 거리는 오가는 걸로 족히 한 나절은 걸렸고 거기에 지내면서 장사를 하는것도 수 시진. 일에 지쳐 수 일이 지나서 집에 들어오는게 세 식구의 일상이 되었다. 자연히 남매를 돌보는게 소홀해졌기에 어미는 늘 맏이에게 미안해했다. 그럴때마다 맏이는 어린 누이의 걱정일랑 하지 마시라며 오히려 어머니를 격려했다. 


일을 하지 못하는 나이였지만 맏이는 총명하고 속이 깊은 아이였다. 집안일은 금세 익혔고, 누이의 바라지를 소홀히 하지 않았으며, 항상 힘들게 일을 나가있는 어머니를 걱정하고 늘 자신의 할수있는 걸 찾았다.


하지만 그래봐야 그역시 7살 남짓한 어린아이에 불과했으니...


어느 날 어미가 일주일에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누이가 어머니를 찾을때마다 웃으며 곧 돌아온다고 말은 했지만, 아무리 일이 바빠도 열흘 이상 집을 비운적이 없었기에 슬금히 불안해지는건 어쩔수 없는 일이었다. 


어린아이 두명을 누이기엔 지나치게 넓은 방. 눈을 감고 있지만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손을 맞잡은 여동생을 보며, 맏이는 거짓말이라도 한 것처럼 무거운 죄책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 아이가 할수있는건 그 떨리는 손을 꼭 잡아주는 것 밖에 없었다.


여드렛날이 지나고 아흐레날이 지나고 아주 당연한 것처럼 먼동에서는 해가 떠올랐고, 날이 지자 밤하늘에는 달이 걸린다. 무심하게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 불안감을 느끼는건 철없는 누이뿐만이 아니였으리라.  


그리고 열흘이 되던 점심 무렵.


마침내 참지 못하고 터진것은 어린 동생의 투정어린 울음이었다. 어머니가 보고싶다고 밥술조차 뜨지 않은채 대책없이 울기만 하는 누이에게 맏이는 차마 화를 낼수가 없었다. 안심시킨다는 핑계로 속인 것이나 다름없는 자신이 누구를 책망하랴. 


어머니도 우리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계실거야. 그러니까 밥 술좀 뜨자. 다 먹으면 오라비가 놀아줄터이니. 


시간을 들여 타이르기도 하고 다독거리기도 했다. 그러자 이내 누이는 울음소리를 그친다. 코를 훌쩍거리며 애써 눈물도 참는다. 하지만 차마 응어리 진 한마디를 참을 수 없었는지 나지막히 말했다.


어머니. 안오는거 아니지?


그것은 맏이의 가슴 속에도 박혀있는 쐐기와 같은 말이었다. 뱉어내지도 못한 채 은근히 밀려오는 아픔처럼 내색하진 않았지만, 어린 누이가 무심코 그런 말을 던지는게 너무나 충격이라 곧바로 대답할 수가 없었다.  


밥이나 먹자.


그나마 할수있는건 있는 힘껏 얼버무리는 것 뿐이었다. 


금이 간 그릇에 새어나오는 물을 손으로 막을 수는 없는 일이다. 깨어진 그릇을 대신할 수 있는건 더욱 더 단단한 새 그릇밖에 없을 터.


망설이던 맏이는 이미 새어나오는 의심을 떨쳐내고자 그리고 확신을 가지고자 결심을 한다. 


어미가 떠난지 보름이 되는 날 아침. 마침내 오누이는 집을 나섰다.


어른의 걸음으로도 반나절이 걸리는 먼 길이었다. 아이들에겐 배 이상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맏이의 결심은 확고했고, 어머니를 만나러 간다는 오라비의 말에 어린 누이도 군소리를 하지 않았다. 


산세가 험하고 겨울 바람이 매섭다. 녹지않은 눈을 밟으며 조심스레 오누이는 나아갔다. 나란히 손을 맞잡은 채 걷다가 때때로 칭얼거리는 누이를 업고 가는걸 반복했다. 다만 멈추지는 않았다. 겨울 산에서 밤을 보내는것은 위험하다는 아버지의 당부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겨울이라는 것도 잊어버릴 정도로 온몸에는 땀이 흥건했고 오랫동안 숨이 차올라 고르지가 않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귓가에 새근새근 흩어지는 숨소리와 등에 느껴지는 온기에 다시금 정신을 가다듬고 발을 뻗는다.   


나아가고 또 나아간다.


어느덧 날이 지고 밤이 되었다. 맑은 하늘이라 유난히도 달과 별이 총총했고 마지막으로 오른 언덕 너머에는 희미하게 불빛이 보였다. 마침내 도착했다는 기쁨에 반쯤 나간 정신이 한순간에 되돌아왔다. 그리고 누이를 내린 뒤 그 손을 붙잡고 달려나간다.


어머니가 오시는 마을이 분명하다. 자다 깬 누이는 영문도 모른채 끌려갔지만, 그런걸 신경쓸 겨를이 없는 맏이였다. 


인적이 드문 시각. 땅을 비추는 은은한 달빛과 민가의 어렴풋한 불빛만이 오누이의 길잡이였다. 아는 이조차 없는 낯선 거리. 간신히 밖에 나와있는 사람을 만나 찾는 이에 대해 물어보았다.


이 마을에서 쌀을 떼어와서 떡을 파는 여인이 자신의 어머니이며 보름동안 돌아오지 못했다. 그래서 찾아왔다며 거의 사정을 하다시피 알려달라고 빌었다. 


거지같은 몰골을 하고선 눈물을 흘리는 아이. 그 반면에 머리카락조차 흐트러지지 않은채 손가락을 입에 대고 지켜보는 어린 여자아이. 아이의 수난이 어느정도일지 짐작이 가는 광경이다.


그 모습을 가엾이 여긴 행인은 어느 방향으로 손가락을 가리키며 길을 일러주었다. 맏이는 정중히 인사를 하고 한시라도 빨리 발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다다른 곳은 다른 집과 크게 다르지 않은 민가였다. 여느 집들처럼 문지방 너머로 희미하게 흔들리는 등불이 사람의 행적을 알리고 있었다. 


이 문을 열면 어머니가 계신다.               


긴 여정의 고됨과 벌써 보름이나 보지 못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아무리 의젓하다고 하더라도 그역시 부모의 사랑을 받고 싶었던 아이였기에 감출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로 인해 맏이는 예를 취하지 않고 문을 벌컥 열어버리는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거기에 있던 것은 벌거벗은 채로 서로의 몸을 겹치고 있던 한 쌍의 남녀였다. 희멀건 살덩어리에 산적처럼 털이 무성하고 투박한 것이 위로 엉켜있는 모양새는 참으로 기이해 보였으니. 진동하는 술냄새와 분냄새에 맏이는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린다. 그리고 산적같은 남자는 이상한 낌새에 뒤를 돌아보았지만 가랑이를 움직이는걸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하반신에 느껴지는 열에 몸을 맡긴 채 신음소리를 내던 여자도 천천히 고개를 들어 열린 문지방을 쳐다본다. 


그것은 오누이의 어미였다.


바깥에 있는 것이 자신의 아들인 것을 알아챈 어미의 표정은 흥분이 섞인 뒤틀린 듯한 기쁜 표정에서 금세 경악으로 바뀌어 갔다. 


세 사람은 잠시동안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런 침묵을 깬 것은 갓난 아기의 칭얼거리는 울음소리였다. 맏이는 순간 그 아이가 자신의 누이와 닮았다고 생각해버렸고 치밀어 오르는 역함을 참지 못한채 뛰쳐나가 버렸다.



그 이후 서로의 손을 붙잡고 달려나간 오누이를 본 이가 없으니 이 이야기는 끝을 고한다네.


정말로 이게 끝인게야? 오누이가 어떻게 되었는지 정말로 모르고?


글쎄 어떻게 되었을런지... 설들이 분분하다지?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어미의 간곡한 청에 그 주변을 샅샅이 뒤졌지만 오누이를 찾을순 없었으며 그 자리에서 새로이 빛나는 한 쌍의 별들이 생겼다고도 하고. 


어미와 붙어 먹었던 행인이 버림받은채 시기에 눈이 멀어 일부러 맏이에게 길을 가르쳐줬다는 말도 있고.


자신의 음행이 알려지는게 두려웠던 어미가 오누이를... 쯧 말하기도 흉하구먼.


뭐 그런 얘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