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마을의 대장간을 나와 집으로 향했다. 괴괴한 저녁의 소리는 마음을 안정시킨다. 평화롭고 아늑한 저녁식사를 꿈꾸는 발걸음은 점점 빨라졌다. 


저 멀리에서는 소란한 소리가 들린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흥겨운 노랫소리로 바뀐다. 가슴을 뛰게 하는 음악에 맞춰 많은 사람이 춤을 추기도 하고, 맛있은 음식에 곁들여 달콤한 술을 마시기도 한다. 흥건하게 취한 고함소리가 들리고, 여성의 이상야릇한 목소리도 들린다. 

아저씨는 말했다. 

"어제 추수를 모두 마쳤으니 이제는 즐길 만도 하겠지. 마음껏 먹고 마시며 놀자."


- 이곳에서는 내 나이가 16세라고 했지? 중세시대에는 16세 정도면 아마도 어른 대우를 받지 않았을까? 설마 축제인데 술을 못 마시지는 않겠지? 


나는 아저씨와 함께 은근슬쩍 술자리에 끼었다. 안주는 매쾌하게 훈제한 오리고기와 돼지고기였다. 코끝을 간지럽히는 고기내음이 배를 더욱 고프게 했다. 나는 정신없이 오리다리를 뜯어내어 씹었다. 담백하면서도 야들야들한 맛이 일품이었다. 돼지고기는 손바닥만한 단도로 잘라냈다. 우걱우걱 게걸스러움을 한껏 돋보인 다음 맥주잔에 가득 담긴 알코올 음료를 마셨다. 취기를 느낀다기보다는 타는 갈증을 해소하기에 충분한 정도였다. 안주로 배를 채우고 맥주로 갈증을 해소했으니 자연 조금 독한 술을 찾기 마련이다. 


증류주 한 잔을 손에 든 채 춤을 추는 마을 사람들을 찾아보았다. 나보다 약간 나이가 들어보이는 18세즘 되는 처녀가 치맛자락을 날리고 손을 경쾌하게 휘젖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한참 동안이나 시선을 고정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처녀의 몸동작보다는 그녀의 얼굴 윤곽과 빛나는 눈동자에 정신을 빼앗겼던 것이다. 


나도 모르게 그녀의 곁으로 다가가 손을 뻗었다. 아가씨는 싱긋 웃으며 내 손바닥을 툭치며 저쪽으로 달아난다. 나는 얼굴이 빨개졌다. 하지만 바로 자리로 돌아오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뭔가 보여줘야 할 때다. 나는 이 마을에서 추는 전통춤은 전혀 모른다. 하지만 뭔가 몸에 익은 춤사위가 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음악에 맞추어 손과 발을 움직였다. 허리와 어깨도 자연스럽게 곡조의 흐름을 따라 움직인다. 몸은 점점 더 격렬하게 움직였고, 숨이 가슴까지 차올랐다. 사실 내가 춘 것은 전통적인 춤이 아니라 언젠가 텔레비젼에서 보았던 아이돌 가수의 동작을 모방한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독특하면서도 격렬한 몸놀림이 마을 사람의 눈길은 끈 것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여러 명이 내 둘레에 서서 박수를 친다. 그 박수의 경쾌함이 더욱 나를 들뜨게 했다. 엄마가 나한테 다가왔다. 

"피터, 너 언제 춤을 배웠니? 그 춤은 나도 처음 보는구나." 

"엄마, 저와 함께 추실래요. 그냥 자연스럽게 몸을 흔들면 되거든요." 


한참 몸을 움직였더니 숨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얼큰한 술기운까지 넘쳤기 때문에 다시 자리에 와서 앉았다. 마을 사람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로 꽃을 피웠고 밤은 점점 깊어갔다. 나는 점점 사람들의 이야기에 빠져들었고 이런 장면이 마치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사건처럼 느껴졌으며 옛 고향에 찾아온 느낌으로 포근한 밤을 보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