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시간. 


붉은 금빛의 하늘과 사막 사이를 걷고있던 방랑자는, 드높은 모래산 꼭대기에서 반쯤 파묻혀있는 램프를 발견했다.


그것을 집어들자, 고운 모래가 바람에 날려가며 장막이 걷히듯 아음다운 램프의 본 모습이 드러났다.


옆면에는 '램프를 문질러라'라고 고풍스럽게 적혀있었다.


방랑자는 잠시 고민하더니, 램프의 양쪽을 잡고는 부수려는 기세로 힘을 가했다.


램프 표면에 잔디 뿌리와 같은 균열이 생기자, 그 틈을 통해 연기와 같은 것들이 새어나왔다.


그것은 세찬 바람에도 흐트러지지 않고 오히려 선명힌 형태를 이루었으니, 하나의 존재가 되어 방랑자에게 말을 건넸다.


"나는 램프의 마신이다. 원하는 소원을 들어주겠다."


방랑자는 조금의 시간이 지난 뒤 대답했다.


"내 앞에서 사라져라."


방랑자는 이미 램프를 집어던진 후였으니, 그것은 소원 또한 아니었던 것이다.


램프는 사막에 부딪히고 구르면서 서서히 조각났고 마침내 가루가 되었으니, 어느것은 모래의 친우가 되었고, 어느것은 바람에 실려 여정을 떠났다.


남자는 광활한 사막 끝의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태양은 어느새 다음 일출을 위해 세계의 너머로 몰락하고 있었다.


방랑자는 춤추듯이 모래산을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