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안타까운 마음이다!' 

길 가운데에 서서 나는 생각했다. 6월을 그렇게 흘려보내고도 이렇게 주야장천 놀러 다닌다니! 사놓은 책들에는 먼지가 쌓이고, 노트는 습기에 눅눅해졌다. 이 때 나의 마음은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나에게는 거리의 등불도 안타까웠다. 날벌레는 무엇이 좋다고 저 불빛에 달려드는가? 빌어먹을 매미가 가로등에서까지 울어대는 여름이 끔찍이도 안타까웠다. 

나는 집으로 가는 길의 어두움이 안타까웠다. 그 어두운 길을 걷는 저 아이 손을 타고 흐르는 하드가 안타까웠다. 파란 대문 앞에 서서 문 좀 열어달라고 소리치는 저 청년이 안타까웠다. 그 옆에 자리한 우리집이 안타까웠다. 집의 고독과 정적이 안타까웠다. 안타까운 마음에 켠 텔레비전이 깜빡거리는 게 안타까웠다. 텔레비전을 꺼버리고 요에 뉘인 내 몸이 안타까웠다. 그나마 든 잠을 깨우는 모기 앵앵대는 소리가 안타까웠다.

눈을 떴을 때 아무도 없음이 안타까웠다. 바람 하나 불지 않는 마루가 안타까웠다. 머리를 감으려 튼 수돗물이 안타깝게 떨어졌다. 그렇게 먹었으면서 또 배고픈 내 위장이 안타까웠다.

빙수를 사 먹는답시고 노점에 섰을 때, 장사치의 얼굴 가운데의 커다란 점이 안타까웠다. 그가 만들어주는 빙수에 올라간 시럽의 색이 안타까웠다. 다 먹은 그릇에 몸을 비비는 파리가 안타까웠다. 파리를 잡으려고 휘둘리는 조간신문이 안타까웠다. 푼돈을 챙기는 주름진 손이 안타까웠다. 그래, 나는 여름의 뜨거운 햇살조차 안타까웠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길을 걷다가 부딪힌 고교생이 사과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저 학생은 이 여름에도 공부하러 다니는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이 나이에도 공부를 해야하는 나는 더욱 안타까워 지는 것이었다. 나는 우리에게 공부의 짐을 지운 사회가 안타까웠다.

뜨겁게 열이 오른 버스가 안타까웠다. 땀을 닦고 있을 뿐인 노파가 안타까웠다. 창가 자리에 앉아 햇빛에 녹아내릴 듯한 저 얼굴이 안타까웠다. 내가 탈까 싶어 차를 세운 기사가 안타까웠다. 지나가는 타이어에 찢기는 저 비닐봉투가 안타까웠다. 그리고 또 나는 이 거리의 아스팔트가 안타까웠다ー길에서 피어나는 아지랑이조차 안타까움이 더욱 안타까워서 나는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안타깝다는 소리가 안타까웠다. 안타깝다는 얼마나 안타까웠길래 그 뜻이 그리도 안타까울까. 안타까움을 안타까워하게 안타까움에게 안타깝다는 뜻을 부여한 자의성이 안타까웠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나는 안타깝다를 안타까워하는 스스로를 견딜 수 없을만큼 안타까워하는 나 자신이 안타깝다는 사실이 안타깝다고 생각하는 그 안타까움이 안타깝다는 말로 표현된다는 것을 안타까워해야하는 나의 안타까운 마음이 안타까웠다. 

나의 이 안타까움을 달래기 위해 나는 안타깝게도 골목에 위치한 다방을 찾았다. 안타까울만치 쓴 커피는 어째서 그리도 검은가. 안타까운 마음이다. 나의 안타까운 마음은 세상에 대한 사랑에서 나오는 것이다. 나는 세상을 사랑했다. 그리고 나의 사랑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사랑했다. 

눈을 돌린 창 너머로 지나가는 저 여인이 안타까웠다. 그대는 어째서 고운가. 그대가 고와서 내 그대를 쳐다보게 됨은 안타까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대는 저멀리 사라져가고, 나는 다만 안타까운 마음으로 쳐다본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하지만 내 안타까움을, 그 안타까움을 더욱 안타깝게 한 것은 따로 있었다. 다방을 가득 채우는 저 전축의 노랫소리가 안타까운 나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그 가락이 안타까운가? 그 박자가 안타까운가? 아니다. 나는 다만 내 상황에 절묘히 들어맞는 그 노랫말이 안타까웠다. "안타까운 마음, 잠깐 기다려줘. 꼭 해야 할 말이 있는 것 같애요." 

그래, 내게도 할 말이 있었다. 

나는 다만, 

"안타까운 마음!"

이라고 소리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