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새벽

6



 “단장님… 저희 정말 카이지를 만나러 가는 겁니까?”

 낡은 천쪼가리를 두건처럼 얼굴에 휘휘 둘러싼 채 이안에게 묻는 이 사내의 정체는 벡스. 일전에 캐피틀 마을의 입구에서 유진을 흙바닥에 내팽기치고 올가미로 묶은 두 자경단원 중 키가 큰 사내였다.

 “그렇다고 몇 번을 말해, 벡스.”

 이안은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을 닦아내며 대답했다. 그의 시야에는 온통 모래 뿐이었다. 바로 코앞에서부터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저 지평선까지. 그들은 지금 갱단 카이지의 구역, 로랜드 사막에 있었다.


 정오의 태양 아래, 일사병이 두통으로 찾아오는 것 같은 지끈거림에 이안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별다른 채비나 동행도 없이 이렇게 바로 출발하시다니… 복안이 있으신건가?’

 이안은 어렸을 때부터 줄곧 유진에 대한 충직한 충심을 보였다. 그것은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에 대한 당연한 믿음이기도 했고, 그 이후로도 줄곧 어떤 종류의 도움이든 건넨 유진에 대한 보답이기도 했다. 유진이 따로 내색하지 않을 뿐, 이안이 그의 꿈인 자경단을 만드는 것 또한 유진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이안은 유진의 말과 행동에 일절 의심 따위를 가하는 일이 없었다. 어쩌면 위대한 새벽의 다른 단원들보다도 더욱. 유진의 행동이 합리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언제나 그는 철저히 올곧은 자신의 신념을 따라 움직였고, 이안 역시 그의 신념이 옳다고 생각했었으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이안조차 유진의 행동에 의구심을 품을 수 밖에 없었다. 위대한 새벽과 카이지, 이 두 갱단은 4대 갱단이라는 명성만큼이나 자그마한 움직임 하나하나에 큰 영향과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조직들이었다.

 더군다나 유진이 지금 원하는 것은 카이지가 위대한 새벽을 도와 로버리 브라더스와의 전면전을 치루는 것, 즉 두 갱단이 연합하는 것일 터. 이는 팽팽히 힘의 균형으로 유지되었던 4대 갱단이라는 체제를 위협하는 행동이었다. 위대한 새벽과 카이지의 연합으로 위협을 느낀 다른 두 갱단이 자신들의 이권을 위해 어떤 끔찍한 짓을 벌일지…

 어쩌면 ‘대전쟁’이 일어나게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뭐 그렇게 생각이 많냐.”


 이러한 이안의 생각을 읽었다는 듯, 앞장서던 유진이 이안을 향해 말했다.


 “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뭐 죄송할 것 까지야.”

 이안의 이런 속깊은 걱정과 고민을 아는지 모르는지, 벡스는 오랜만의 윈즈버그 지역을 넘어선 장거리 여정에 다소 기분이 들뜬 듯한 표정이었다.

 “단장님 그래도 참 다행입니다. 사막 지역이라 말들이 모래에 푹푹 꺼지지 않을까 했었는데 생각보다 지대가 단단한 것 같습니다.”

 벡스의 이런 천진난만함에 유진이 대답했다.

 “로랜드 사막 지역은 사막이긴 하지만, 일반적인 모래 사막이 아닌 단단한 사암으로 이루어진 사막이니까. 이 멍청한 애송아.”

 자꾸 자신을 향한 힐난에 벡스가 기분이 나쁨을 표출할 법도 했지만, 그는 그러고 싶은 욕구가 들 때마다 입을 앙 다물고 유진의 등 뒤를 향해 사나운 눈초리를 날릴 뿐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그 유명한 위대한 새벽의 대장이라는데 뭐 어쩌겠는가.


 “그나저나 언제까지 가야합니까?… 사막 지역에 들어선 지도 꽤 오래된 것 같은…”

 벡스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앞서가던 유진이 말의 속도를 줄이며 주먹 쥔 손을 허공에 들어보였다. 멈추라는 신호였다.

 유진의 신호에 따라 이안과 벡스는 말의 속도를 줄이며 유진의 옆에 멈춰 섰다.


 눈 앞의 풍경을 바라보는 벡스의 눈동자가 사르르 떨렸다. 당황이나 공포가 아닌 감탄과 경외로 가득찬 떨림.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지금 서 있는 절벽 아래로 마치 땅이 갈라진 것처럼 쪼개져 있는 수많은 협곡 일대의 지형이었다.

 윈즈버그 역시 풍경이 수려하기로 유명했으나, 지금 보이는 로랜드 사막의 협곡 지형과는 사뭇 다른 결을 가지고 있었다. 말 그대로 윈즈버그의 풍경이 하천과 산림이 한데 어우러진 자연의 아름다움이라면, 이 협곡 지형은 자연이 얼마나 거대하고 위대한지 위압적으로 보여주는 듯한 숨이 턱 막히는 아름다움. 


 “오늘은 이 주변에서 쉬어가야 할 것 같군.”

 유진이 말 위에서 사뿐히 내리며 말을 이었다.

 “어이 촌뜨기 새끼. 그만 멍 때리고 저 능선 타고 절벽 아래로 내려가서 쉴 만한 곳 있는지 좀 찾아보고 와.”

 “알겠습니다.”

 유진의 말에 벡스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곤, 말을 타고 능선을 따라 빠르게 절벽 아래를 향했다. 유진, 그리고 그의 자경단장 이안과 함께 로랜드 사막을 향해 떠나온 지 어언 나흘. 이따금씩 유진이 그에게 자잘한 명령 따위를 내릴 때마다 벡스는 몹시 심기가 불편했다. 

 아무리 내가 저지른 실수가 있다고 해도 그렇지, 자기 부하도 아닌 사람을 저렇게 강압적으로 부려 먹어도 되는 건가? 강하기만 하면 다인 줄 아나!

 하지만 오늘은 유진의 명령에도 벡스의 심기는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그저 이렇게 아름다운 대자연 속에서 하룻밤을 쉬어갈 수 있다는 사실이 그에게는 기분을 몹시 들뜨게 하는 것이었다.

 ‘저 협곡 사이 괜찮아 보이는데? 바닥도 평평하고, 그늘도 충분히 넓고.’

 때마침 휴식을 취하기 적절한 장소를 발견한 벡스가 손을 들어 절벽 위에 있는 유진과 이안에게 신호를 보낼 참이었다.


 쉬이이익—


 “어,어 뭐야, 뭐야 이거!”

 재빠르게 날아온 올가미가 벡스의 몸을 휘어 감았다. 

 이내 온몸이 묶인 벡스가 뒤를 돌아보자 길고 흰 천을 얼굴에 칭칭 두른, 흡사 ‘베두인’ 같은 복식을 차린 한 사내가 올가미를 붙잡으며 벡스를 뒤쫓아 오고 있었다.

 “유,유,유진! 단장님! 여기, 여기 카이지! 카이…”

  소란스레 야단법석을 피우는 벡스의 모습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사내가 올가미를 낚아 채 벡스를 말 위에서 떨어뜨렸다.

 떨어진 자신을 돌아보지도 않고, 달리던 방향 그대로 줄행랑을 치는 자신의 말을 보며 벡스는 새삼 자신이 인생을 잘못 살아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나쁜놈… 내가 빗질을 얼마나 잘해줬는데.’

 하지만 그런 생각이 이어질 틈은 없었다. 벡스를 낚아 채 떨어뜨린 사내가 말의 속도를 전혀 줄이지 않고 계속 그 일대를 빙빙 돌며 달리는 탓에, 밧줄에 묶인 벡스는 딱딱한 사암 바닥에 온몸이 갈리는 듯한 충격을 받으며 그의 뒤를 따라 질질 끌리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악! 아악!”


 그리고 그런 장면을 체념한 듯 바라보는 황금빛 눈의 사내가 있었다.

 “유진, 왜 굳이 저 아이를 동행 시키겠다고 하셨는지 이제야…”

 유진은 이제야 십년 묵은 체증이 풀린다는 듯 다소 상쾌한 웃음을 지으며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게 너는 안 따라와도 된다니까 굳이 따라와서 이런 험한 장면을 보냐.”

 유진의 태도에 어쩐지 이안은 한숨이 나올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아무리 그래도 제가 모셔야죠….”

 그 말에 유진이 호탕하게 웃으며 다시 말 위로 천천히 올랐다.

 “그래. 우리도 이제 내려가자. 그를 만나러 로랜드 사막까지 왔으니까.”

 이안은 유진을 뒤따르며 계속 절벽 아래의 상황을 바라봤다.


 벡스는 어느새 뿌연 모래먼지에 가려져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지만, 이따금씩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더 거센 모래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