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골목 어귀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삼춘? 거기서 뭐 해?”

“어, 영철이냐? 뭘 허긴 뭘 해. 노래 연습 중이지. 그건 그렇구 학교 마치구 돌아오는 길이냐? 손에 그건 또 뭐야?”

삼촌이 내게로 다가오며 물었다.

“아, 이거? 저기 내 친구 중에 아부지가 무역 회사 댕기시는 동혁이라는 애 있지 않어? 내가 요전에 걔한테 국사나 좀 가르쳐 줬더니 글쎄, 이런 걸 주더라구.” 

나는 손을 들어 올려 삼촌에게 보여주었다.

“어, 뭐야 그건? 라디오 아냐?”

“아니 글쎄, 라디오는 아니라는 것 같던데. 자기가 줄 게 이거밖에 없다면서 주더라구. 일주일 전인가 걔네 아부지가 동경엔갈 다녀오시면서 선물이라구 주셨대는데.”

우리는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니, 아부지께 받은 일제 라디오를 너한테 주었단 말야? 왜?”

“라디오는 아니라니깐. 그리구 내가 많이 도와줬으니까, 고마워서 줬겠지, 무어.”

“그래? 뭐 대신 두들겨 맞기래두 했냐?”

“두들겨 맞긴 무얼. 국사 가르쳐주다 보니까 걔네 집두 놀러 가구, 걔가 지방에서 와서 그런지 몰라두 학교에 친구가 별로 없거든. 근데 내가 같이 놀아주구 하니까, 나도 또 걔네 집 가면 신기한 것두 많구 해서…”

“그래, 그렇구나. 너 이 녀석, 공부는 그래두 하는가 봐?”

삼촌이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삼춘두 참, 나 만날 공부헌다구 허는 거 몰라?”

“글쎄다, 테레비 앞에서 허는 공부는 무슨 공부냐? 코메디 공부? 네가 삼춘 대신 테레비에 나갈 것두 아니구.”

“뭐야, 삼춘. 그럼 방금도 테레비 나가려구 노래 연습한 거야?”

“그래, 그렇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삼춘. 삼춘은 그 앞머리때문에서라두 설운도처럼 안 보인다구. 삼춘두 테레비 봐서 알잖어? 이렇게 장발로 해가지구서 분위기 잡구 노래를 불러야지. 무슨 약장수도 아니구 말야. 노래를 그렇게 불러서야 테레비는 턱두 없어.”

“약장수? 예끼 이 녀석, 삼춘한테 약장수가 무어냐?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