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멋대로 하는 삼국지 모음집

----------

6화, 십상시와 하진


한편, 조정의 권력은 모두 십상시(十常侍)에게 돌아가고 있었다. 십상시란 누구인가? 영제 초기 대장군 두무와 태부 진번을 환관 조절이 주살한 이래로 온 나라의 권력이 환관들에게 집중되니 환관들의 횡포는 포악하기 그지 없었다. 그 중 장양, 조충, 봉서, 단규, 조절, 후람, 건석, 정광, 하운, 곽승 등 10명이 넘는 환관들이 무리를 지어 온갖 간악한 짓을 저지르니 세상은 그들을 '십상시'라 불렀다.

그들은 서로 상의하여 자신을 따르지 않는 자가 있으면 죽이기로 했다. 조충과 장양은  황건적을 격파한 장수들에게 사람을 보내 황금과 비단을 바치라고 요구했고 따르지 않는 자는 황제에게 아뢰어 파직시켰다. 황보숭과 주준도 뇌물을 바치지 않아 파면되었다.

황제는 또 조충을 거기장군으로 임명하고 장양 등 13명을 모두 열후로 봉했다. 국정은 더욱 나빠졌고 백성은 한숨지으며 원망했다. 그리하여 장사에서는 구성이라는 도적이 반란을 일으켰고 어양에서는 장거와 장순이 난을 일으켰는데, 장거는 스스로 천자라 했고 장순은 대장군이라 칭했다. 위급함을 알리는 표장이 눈꽃처럼 올라왔으나 십상시는 모두 숨기고 황제에게 아뢰지 않았다. *


어느 날 황제가 후원에서 십상시와 함께 연회를 벌였는데, 간의대부 유도가 들어오더니 황제 앞에서 크게 통곡했다. 황제가 까닭을 묻자 유도가 말했다.


"천하의 위급함이 조석에 달려 있는데 폐하께서는 어찌 여전히 환관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계십니까!"


황제가 말했다.


"나라가 태평한데 무슨 위급한 일이 있단 말이오?"


"사방에서 도적이 일어나 주와 군을 침범하여 약탈하고 있습니다. 그 화근은 모두 십상시가 관직을 팔고 백성을 해치며 군주를 속이고 기만하기 때문입니다. 조정의 바른 인사들이 모두 떠났기에 그 화가 지금 눈앞에 다친 것입니다!"


십상시가 모두 관을 벗고 황제 앞에서 무릎 꿇고 엎드려 말했다.


"대신이 우리를 용납하지 않으니 신 등은 살 수가 없습니다! 원컨대 목숨을 살려 고향으로 돌아가게 해주신다면 가산을 모두 털어 군비에 보태고자합니다."


말을 마치고는 통곡했다. 황제가 화를 내며 유도에게 말했다.


"너희 집에도 가까이 두는 시종이 있을 터인데, 어찌하여 유독 짐의 측근들만 용납하지 않는단 말이냐?"


무사를 불러 끌어내 목을 베라고 했다. 유도가 큰 소리로 외쳤다.


"신이 죽는 것은 애석하지 않습니다! 한실의 천하가 400여 년간 이어졌는데 지금에 와서 하루아침에 끝나는 것이 가련할 뿐입니다!"


무사들이 유도를 에워싸고 끌고 나가 막 형을 집행하려는데 한 대신이 소리를 질러 멈추게 했다.


"집행하지 말거라. 내가 폐하께 가서 간언할 터이니 기다려라."


모두 바라보니 사도 진탐이었다. 진탐은 궁중으로 들어가 황제에게 간언했다.


"간의대부 유도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죽임을 당해야 합니까?"


황제가 말했다.


"근신들을 비방한 데다, 짐을 모독했느니라."


"천하 백성이 십상시의 고기를 먹고자 하는데 폐하께서는 그들을 부모처럼 공경하고 하찮은 공도 없는데 열후로 봉하셨습니다. 하물며 봉서 등은 황건과 결탁하여 내란까지 일으키지 않았습니까. 폐하께서 지금 자성하지 않으시면 사직이 금방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봉서가 난을 일으켰다지만 그것은 분명하지 않다. 십상시 중에 어찌 한두명의 충신이 없겠는가"


진탐이 섬돌에 머리를 부딪치며 간언했다. 황제는 노하여 끌고 나가라 명하고 유도와 함께 하옥시켰다. 그날 밤 십상시는 옥중에서 그들을 살해한 뒤 황제의 조서를 거짓으로 꾸며 손견을 장사태수로 삼고 구성을 토벌하게 했다.


50일이 못 되어 장사를 평정했다는 승전보가 도착했다. 이에 대장군 하진까지 조서를 내려 유우를 유주목으로 봉하고 군사를 모아 어양의 장거와 장순을 정벌하게 했다. 유우는 황건적의 난 당시의 인연을 떠올려 유비를 불러 도위(하급 무관. 대략 부사관 정도?)로 임명하고 군사를 이끌어 곧바로 적을 쳤는데, 장사를 평정한 손견까지 난입하여 적의 예봉을 꺾었다. 뒤이어 공손찬까지 합세하자 장거와 장순은 처자식을 버리고 국경을 넘어 달아났다 오래지 않아 선비족에게 목이 베여 수급이 유우에게 바쳐졌다. 이리하여 어양이 모두 평정되었다. 유우는 표문을 올려 유비의 공을 알렸고 조정은 독우를 매질한 죄를 사면하고 하밀현승을 수여했으며 이어 고당현위로 승진했다. 손견 역시 월권을 행하였으나 장거와 장순을 토벌한 공이 더욱 커 오정후로 봉해졌고  유우는 태위로 봉해졌다. **


중평 6년(189년) 여름 4월. 병이 위중해진 영제는 후사를 상의하고자 대장군 하진을 궁으로 불렀다. 하진은 백정 출신이었으나 누이동생이 궁에 들어가 귀인(황후 다음가는 후궁)이 되고 황자 유변을 낳아 바로 황후로 책봉되었기 때문에 빠르게 진급해 권력을 잡고 중임을 맡게 되었다. 황제는 또 왕미인(미인은 후궁의 칭호다. 즉 미인 왕씨)을 총애하여 황자 유협을 낳았는데, 하황후가 시기하여 왕미인을 짐주로 독살(쉽게 풀이하자면, 독주로 독살했다는 뜻)했다. 그리하여 황자 유협은 영제의 동태후 궁중에서 자라게 되었다. 동태후는 바로 영제의 생모이며 해독정후 유장의 아내였다. 애초에 환제에게 후사가 업어 해독정후의 아들을 추대하여 옹립했는데 그가 바로 영제였다. 영제가 대통을 계승하자 친모를 궁중으로 영접하여 함께 기거하며 봉양했고 태후로 받들어 높였다. 동태후는 일찍이 황제에게 황자 유협을 태자로 책봉하기를 권했다. 황제 또한 유협을 편애하던 터라 그를 황제로 세우고자 했다. 병이 위중해지자 중상시 건석이 아뢰었다.


"황자 유협을 태자로 세우고자 하신다면 반드시 먼저 하진을 죽여 후환을 없애야 합니다."


황제는 그의 의견이 옳다고 여겨 하진을 궁중으로 불렀다. 하진이 궁문에 이르자 건석의 사마 반은이 하진에게 일렀다.


"궁으로 들어가지 마십시오. 건석이 공을 죽이려 꾸미고 있습니다."


깜짝 놀란 하진은 급히 사택으로 돌아온 다음 여러 대신을 불러 내친 김에 환관들을 모조리 죽이자고 했다. 자리에 있던 한 사람이 앞으로 나오며 말했다.


"환관의 세력은 충제, 질제(충제 유병, 질제 유찬. 후한의 황제) 때부터 시작되어 조정 곳곳에 만연한데, 어떻게 전부 죽일 수 있겠습니까? 기밀을 지키지 못한다면 반드시 멸족의 화를 당할 것입니다. 세밀하게 살피셔야 합니다."


바로 전군교위 조조였다. 하진이 큰 소리로 꾸짖었다.


"너 같은 젊은 놈이 어찌 조정의 대사를 알겠느냐!"


한참 망설이고 있는데 반은이 와서 알렸다.


"황제께서 이미 붕어하셨소. 지금 건석이 십상시와 상의하여 국상을 비밀로 부쳐 발표하지 않고 조서를 거짓으로 꾸며 하국구를 궁으로 불러 후환을 없애고 황자 유협을 황제로 책립하려 하고 있소."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칙사가 황제의 명령을 받들고 와서 전하는데, 하진은 속히 입궐하여 후사를 결정하라고 알렸다. 조조가 말했다.


"오늘의 계책은 우선 제위를 바로잡은 다음에 역적을 도모해야 합니다."


하진이 말했다.


"누가 감히 나와 함께 황위를 바로잡고 역적들을 토벌할 것인가?"


한 사람이 앞으로 나오며 말했다.


"워컨대 정예병 5000명을 빌려주시면 빗장을 잘라 부수고 궁 안으로 쳐들어가 새로운 군주를 책립하고, 씨 없는 고자놈들을 모조리 죽여 조정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천하를 편안하게 하리다!"


하진이 보니 외모가 출중한 것이 사공 원봉(袁逢)의 아들이요 원외(袁隗)의 조카로 이름은 소(紹)이고 자는 본초(本初)로 사례교위(도성과 지방을 감찰하는 감찰관)를 맡고 있었다. 하진은 크게 기뻐하며 즉시 어림군(황제의 금군) 5000명을 점검하여 원소에게 내주었다. 원소는 갑옷과 투구로 무장했다. 하진은 하옹, 순유, 정태 등 대신 30여 명을 거느리고 뒤따라 궁으로 들어갔다. 그는 영제의 관 앞에 있던 태자 유변을 부축하여 즉시 황제의 자리로 모셨다.


백관이 크게 만세를 외치고 절하는 의식이 끝나자 원소는 건석을 잡으러 궁중으로 들어갔다. 건석은 황급히 달아나 어원(황제의 화원)으로 들어갔으나 붙잡혀 사형에 처해졌다. 건석이 통솔했던 금군도 모두 투항하고 귀순했다. ***

원소가 하진에게 일렀다.


"환관들이 도당을 결성했으니 오늘 기세를 몰아 모조리 죽여야 합니다."


장양 등은 일이 다급해진 것을 알고 황급히 내궁으로 들어가 하태후에게 고했다.


"애초에 계략을 꾸며 대장군을 모함한 자는 건석 한 사람이고 신 등과는 무관한 일입니다. 지금 대장군께서 원소의 말만 듣고 모두 죽이려 하니 마마께서는 불쌍히 여겨주소서!"


하태후가 말했다.


"너희는 걱정하지 말거라. 내가 너희를 지켜주마."


태후는 전지(황제의 명을 전함)를 내려 하진을 궁으로 불러들이고는 가만히 일렀다.


"나와 오라버니는 비천한 출신인데 장양 등이 아니었으면 어떻게 이런 부귀를 누릴 수 있었겠어요? 지금 건석이 어질지 못해 이미 죽임을 당했는데, 오라버니는 어찌하여 남의 말만 곧이듣고 환관을 전부 죽이려 합니까?"


하진이 듣고서 관원들에게 말했다.


"건석이 계책을 꾸며 나를 해치려 했으니 그 집안을 멸족시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나머지 사람은 함부로 죽일 필요가 없다."


원소가 말했다.


"풀을 베고 뿌리를 뽑아 화근을 없애지 않으면 반드시 신세를 망치는 근원이 될 것입니다."


"내 뜻이 이미 정해졌으니 자네는 여러 말 말게나."


이튿날 하태후는 하진을 녹상서사에 임명하여 국가 대사에 참여하게 했으며 나머지 사람에게도 모두 관직을 봉했다. 동태후는 장양의 건의에 따라 조회에 참여해 정무를 듣고 황명을 내려 황자 협을 진류왕(陳留王)으로 봉하고 조카 표기장군 동중과 장양 등을 모두 조정에 관여하게 했다. 동태후가 권력을 독점하자 하태후는 위기감을 느껴 하진에게 일렀다. 하진은 삼공을 불러 함께 논의하더니 이튿날 아침 조회 때 정신(조정의 대신)을 시켜 동태후는 본래 번비(제후왕의 처)라 궁중에 오래 기거하는 것은 적당치 않으니 하간(기주 지역의 봉국)으로 옮겨 안치하는 것이 합당하며 당일에 국문(도성의 성문)을 나가야 한다고 아뢰게 했다.

또한 사람을 보내 동태후를 전송하는 한편 금군을 시켜 표기장군 동중의 관저를 포위하고 인수를 독촉하여 받아내게 했다. 동중은 파직되어 하옥되었고, 감옥에서 자결했다.


장양과 단규는 동태후 일파가 이미 쫓겨난 것을 보고 하진의 동생 하묘와 그 어미인 무양군에게 금은보석과 진기한 노리개를 바치고 결탁하여 아침저녁으로 하태후에게 좋은 말로 자신들을 비호하게 했다. 이 때문에 십상시는 다시 총애를 받을 수 있었다.


그해 6월, 하진은 은밀하게 사람을 보내 하간 역정(역참의 정원)에서 동태후를 독살하게 하고 도성으로 영구를 옮겨다 매장했다. 하진은 병을 핑계로 나오지 않았다.


* 십상시: 정사에선 장양, 조충, 하운, 곽승, 단규, 손잠, 필람, 율승, 고망, 장공, 한리, 송전으로 총 12명이었으나, 연의에선 장양, 조충, 하운, 곽승, 단규, 봉서, 조절, 후람, 건석, 정광으로 10명이 되었다.


** 앞서 말했지만 유비는 이때의 공로로 사면받고 고당현위가 되었다.


*** 사실 하진과 십상시의 사이는 나쁘지 않았다. 그가 벼슬길로 나가게 된 계기인 동생의 후궁 진출에 십상시가 관여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건석 만큼은 매우 사이가 나빴다. 애초에 정사에선 십상시의 일원도 아니었다.

----------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