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서울 2063 모음집

----------

사무실로 돌아온 뒤, 조 씨는 커다란 의수를 찬 여자를 사무실로 불렀다.


“부탁해, 파트마.”


파트마는 투덜거리면서 조 씨에게 건네받은 음성 데이터 카드를 기기에 삽입하더니 BDV용 바이저를 썼다.


“이런 건 이제 좀 스스로 하라고. 내가 언제까지 불려 다녀야 해?”


지원이 속삭였다.


“누구야?”


“아, 미세스 리는 못 봤지? 파트마 시하비. LAD 최고의 BDV 편집자지. 저렇게 보여도 미세스 리보다 10살은 많아.”


“젠장, 처음 해줄 때 돈을 받았어야 했는데 이 자식한테 홀랑 넘어가서 몸으로 줘버리는 바람에…”


조 씨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벌써 10년도 더 된 이야기야. 내가 용병이던 시절이라고. 그때 이후로 쭉 공짜로 봐주고 있어.”


지원은 라이터를 빙그르르 돌리다 물었다.


“그럼 그쪽은 왜 그때 일로 지금까지 봐주는 건데?”


파트마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떡정도 정이지. 언젠가 결혼하자고 했었는데, 새끼가 지 과거 이야기까지 말하면서 거부하더라고.”


지원은 조 씨를 흘겨보았다. 조 씨는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너무 그러지 마, 아내 일이랑 별개로 외로웠다고.”


그리고, 파트마는 바이저를 벗었다.


“다 됐어. 이제 원하는 걸 찾아봐.”


지원은 의자에 앉아 바이저를 썼다. 양쪽에서 밝은 빛이 반짝이더니, 순식간에 지원의 시야에 어둠만이 가득했다. 파트마가 물었다.


“잘 됐어?”


“그런 것 같은데… 원래 화면이 이렇게 새카만 거야?”


“잠시만 있어 봐, 녹화된 장소를 증강현실로 씌워 줄 게. 성환 씨, 이거 어디서 녹화됐어?”


곧바로 시야가 어느 골목길이 되었다.


“오, 이거 좀 신기하네. 그런데 왜 사람도, 차도 없어?”


“그야 지도만 보고 덧씌운거니까. 목소리만 들릴 거야. 이제 재생한다?”


[재생 시작]

[전화벨 소리]

강수화: “여보세요?”

조혁: “삼촌, 집이야?”

강수화: “그럼, 집이지. 오고 있어?”

조혁: “응, 집 앞이야.”

[자동차 소리]

[재생 중지]


“잠시만, 파트마. 이 자동차 소리 말이야, 분석할 수 있어?”


“흐음… 잠시만. 여러 개 나오는데, 공통적으로 토요타 차량이야.”


“그 정도면 충분해. 다시 시작하자.”


[재생]

조혁: “삼촌, 엄마는?”

강수화: “아직 안 들어왔어.”

[자동차 급정거 소리] [문 열리는 소리]

[알 수 없음]: “잡아!”

[비명 소리]

강수화: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조혁: “삼촌!”

[알 수 없음]: “입 막아!”

강수화: “기다려!”

[문 닫히는 소리] [자동차 급 출발 소리]

[알 수 없는 대화] [소년의 울부짖음]

[재생 종료]


“방금 문이 여닫히는 소리는 승합차 문이었어. 확실히 토요타 하이에이스야.”


조 씨가 의문을 표했다.


“그보다 마지막에 대화 말이야, 어떻게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을 까?”


“기다려 봐. 통화하던 아이가 날뛰어서 음질이 튀었어.”


잠깐동안 그 부분이 빨리감기와 되감기가 반복되더니, 파트마가 입을 열었다.


“됐어. 좀 노이즈가 끼긴 했지만 알아먹는 데에는 문제없을 거야.”


[재생]

납치범1: “子供が暴れすぎだけど(애가 너무 날뛰는데)?”

납치범2: “寝かせて、通信も遮断して(재워, 통신도 차단하고)。”

[소년의 울부짖음]

[재생 종료]


지원은 바이저를 벗었다. 이미 그녀의 얼굴은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제 확실해졌네.”


조 씨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지원과 마찬가지로 확인에 찬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납치범은 야쿠자다. 아마 야마구치구미겠지.”


“야마구치구미의 단원 수는 1만명에 가까워. 사업장은 부천 안에서만 수백개는 되고. 어디서 찾지?”


“단순하게 생각할 건 아니야. 경찰이 측정하는 단원 수는 ‘본대’니까. 그것들의 하청 갱단이나 끄나풀까지 전부 합하면 2만명은 된다고.”


지원은 이마를 짚었다.


“일단 이야기해 볼까?”


잠시 후, 수화가 전화를 받았다.


“강수화 경사입니다.”


“그래, 강수화 경사… 아니, 강수화 씨. 미안, 입에 익어서. 아무튼 대충 물증이 나왔습니다. 확실히 야마구치구미 쪽이예요.”


반대편에서 수화가 끙끙 앓는 소리를 내는 것이 지원의 귀에 확실히 들렸다.


“아무래도 제가 원한을 산 모양입니다. 혁이가 납치되기 일주일 정도 전에 교통단속을 하다 야쿠자 놈들이랑 시비가 붙었었는데…”


“푸념은 이쯤 하고, 야마구치구미는 지역 별로 나눠서 관리한다고 들었습니다. 그쪽, 부천 서부는 누가 관할하죠?”


수화는 다 들리도록 한숨을 쉬었다.


“카렌(火連)이라는 여자입니다. 야마구치구미는 자신들의 전투 부대원들 중 특별한 사이버웨어를 장착한 이들을 ‘닌자’라 부르는데, 그 ‘닌자’로만 구성된 ‘닌자 부대’를 요충지마다 둡니다. 카렌은 제3군의 ‘레서 닌자’ 수십명을 통솔하는, 일명 ‘그레이터 닌자’입니다.”


“작명이 왜 그따위야?”


“그건 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레서 닌자’만 해도 저 같은 경찰 몇 명은 가볍게 사살하는 위험한 이들이고, ‘그레이터 닌자’는 일개 지구대 인원으론 상대가 불가능하죠.”


지원은 조 씨를 바라보더니 담배를 물었다.


“그건 알 바 아니니까, 그 자식들 본거지는 어디지?”


“설마 쳐들어가시게요? 너무 위험합니다! 저라도 같이…”


“용병도 아닌 당신이 함께 하기에는 위험해. 향후 승진에도 문제가 생길 걸?”


“…문자로 보내드리죠.”


“고마워, 좀 쉬고 있어.”


전화가 끊기자, 조 씨가 입을 열었다.


“닌자라… 그 놈들 오로지 칼만 쓰는 거로 아는데, 미세스 리 혹시 칼은 쓸 줄 알아?”


“식칼보다 긴 건 안 써봤어. 하지만 걱정 마, 총은 칼보다 강하니까. 일단 집에 갈게, 내일 보자고.”


지원이 떠나자, 여지껏 가만히 있던 파트마가 매혹적인 얼굴로 다가왔다.


“오늘 정비료는 어떻게 할 거야? 똑 같이 낼거지?”


“하하… 방법이 없나?”


“없지. 10년쯤 전에 임신한 것 같다고 말했을 때 당신이 도망쳤던 날부터 정해뒀다고.”


“미안하다니까 그건…”


한편, 지원은 말과는 달리 집으로 돌아가면서도 내심 걱정스러운 마음을 떨치지 못했다.


‘말은 그렇게 했는데… 여태까지 싸워 본 적들이랑은 전혀 다를 거라고 생각하니까 영 마음이 안 놓이네.’


그러면서 지원은 이전에 만난 여자 닌자를 떠올렸다.


‘수리검이랑 별개로 칼 한 자루 만으로 총을 든 조폭들을 가볍게 쓰러뜨렸지… 무언가 대항할 방법이 없을 까?’


그런 고민을 계속하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지원이 총포상을 지나던 그때, 누군가 말을 걸었다.


“어이, 아가씨! 뭔가 고민이 있어 보이는데?”


목소리의 주인은 총포상 사장이었다.


“내가 맞춰 볼까? 그 예쁜 ‘글록 17’에 관한 고민이지?”


지원은 총포상 안으로 들어왔다.


“네, 비슷하죠. 사장님, ‘총’으로 ‘칼’을 막을 수 있을까요?”


사장은 수염이 듬성듬성 난 통통한 턱을 만지작거렸다.


“흠… 총으로 칼을 막는다라. 처음 한 두번이라면 몰라도 금방 총열이 망가져 버릴 거야. 개조를 한다면 몰라도.”


“개조?”


“그래, 혹시 그런 게 필요하다면 나한테 맡겨. 10만원에 칼날도 막을 수 있게 개조해 줄 테니!”


지원은 망설임 없이 자신의 권총을 내밀었다.


“히트 커터도 막을 수 있도록 단단하게 해주시죠. 내일 아침까지.”


“내일 아침까지는 해드리지. 그런데 히트 커터는 못 막아.”


지원은 가볍게 웃어 넘기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

파트마 시하비

출생: 불명(2019년 추정)

직업: LAD 용병 겸 기술자

특징: 파키스탄 출생. 12살에 한국으로 불법입국. 조 씨와는 2050년부터 알고 지냈으며 주변에선 이미 조 씨의 후처 취급이다. 다만 파트마가 워낙 오픈 마인드인 탓에 조 씨가 다른 여자랑 놀아나는 것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