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는 알지 못했다. 어째서 사람들이 우리 모녀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수근대곤 했는 지, 어째서 엄마는 고개를 들고 다니지 못했는 지, 그리고 방 커튼을 다 내려버렸는 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알 지 못하는 건 이것만이 아니었다. 이웃집 아줌마들은 나를 이름으로 부르지 않았다. 걔, 그 아이. 나한테는 선화라는 어엿한 이름이 있었는데도, 나는 언제나 ‘그 아이’로 칭해질 뿐이었다. 만약 내가 친구들과 놀고 있다면, 놀이터에서 모래성을 쌓고 있다면 아줌마들은 서둘러 친구들을 불러내 집으로 데려갔다. 홀로 남은 내게 남은 건 이름이 아닌 세글자와 모래성.


"엄마, 사생아가 뭐야?"

 언젠가 길거리에서 들었던 말, 손가락은 분명 나를 향했었다. 나는 왜 사생아일까? 철없는 어린 아이가 그런 말을 할 때면, 어머니는 그런 아이를 안아주었다. 다른 말 없이 조금 흐느끼면서 나를 안아주었다. 어머니가 왜 눈물을 흘리는 지 알 수는 없었다. 엄마가 우는 것에 맞춰 나 또한 단순히 흐느꼈을 뿐. 그 이유는 어머니와 키가 비슷해질 때 쯤 에서야 겨우 알 수 있었다.


 아비 없는 자식이라는 꼬리표는 숨기려해도 숨겨지지 않는 것이었고 그 낙인에 따른 고통은 아이의 어머니에게 향했다. 남편 잡아먹은 년, 불길한 여자. 이름으로 불리지 않은 건 나만이 아니라고. 어머니도 나와 같이, 아니 더 심한 멸시를 받았다고.


 하지만 한낱 아이인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아이의 좁은 마음은 다른 사람, 심지어 어머니의 아픔조차 나눠 담을 수 없었다. 차오르는 슬픔이 숨을 막아버렸기 때문에.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고통받는 어머니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모녀에게 가족이 생겼다.


"이제 너에게도 아빠가 생긴거야...이제서야 우리는. 진짜 가족이, 가족이 된거야."


 사실 재혼이라는 게 어떤건지 실감이 가지 않았다. 태어나면서 지금까지 제대로 경험하지도 못한 아빠라는 존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알 지 못했으니. 그래도 나는 어렴풋이 좋다고 느낄 수 있었다. 다른 누구보다 어머니가 행복해 보였다. 내 새로운 아빠와 팔짱을 낀채로 웃고 있는 어머니는 나와 둘만 있을 때 본 적이 없는 그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사람은 저렇게까지 행복에 겨울 수 있구나, 그런 생각을 하는 어느 봄 날.


"너희 어머니는 예쁘시구나. 아니, 이제 우리 엄마지."


"어..음…"


"아, 저기 그..미안, 이름도 말 안 했구나. 나는 아진이야. 이름이 뭐니?"


새로 생긴 언니라는 사람은 속눈썹이 짙어 아름다웠다.


"있잖아, 아빠는 재혼같은 건 생각 안 하신다 그러셨는데."


"그랬었나요.”


"응, 분명 그렇게 말했었어...아, 그렇게 딱딱하게 굴 필요없어. 우리 이제 언니 동생 사이잖아."


 그렇게 사근사근 웃으며 이야기하는 사람이 생긴 가족의 집. 단 둘이 살던 집에서 벗어나 넷이 함께하는 장소로로 옮겨갔을 때, 다른 무엇보다 놀랐던 것은 태양이 비치는 창문이이었다. 어머니는 더 이상 커튼을 치지 않았다.


“왜, 날이 좋잖니?”


 시원스레 웃으며 답하는 어머니에게서 어딘가 위화감을 느끼는 건 왜일까.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아버지의 품에서 웃는 어머니가 조금 불편하다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는 저렇게 행복해 보이는데, 어째서 내 마음은 답답하기만 한 걸까.


“나도 그래, 선화야.”


 언니는 시원스레 대답했다. 물고 있던 담배에서는 재가 떨어졌다.


“그런데 다 그런 기분 아닐까? 생각하고 있지도 않던 어머니가 십수년만에 생긴다면, 그런 사람이 평생을 같이 산 아버지랑 갑자기 서로 죽고 못사는 사이가 되는 걸 보면 좀 그렇잖아.”


“그런가.”


“뭐, 괜찮을거야.”


 언니와 이야기한 그런 날이 합쳐져 우리 가족이 함께한 1년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다시 도래한 것은 봄날. 겨우내 사그라들었던 생명들은 조금씩 햇빛 아래로 나와 생명을 얻고 있었다. 변화의 빛은 정원에만 향한 것이 아니라 차디찬 방 안으로 향해, 활짝 연 커튼 아래 우리 가족 또한 지난 추위를 잊어가고 있다. 그렇더라도 어머니의 웃는 얼굴은 변하지 않은 채로, 내가 느끼는 불편함 또한 그대로 남아. 변해버린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나와 아진 언니가 나누는 미묘한 눈길.

 재혼이라는 사건이 있지 않았더라면 우리 둘은 멋진 언니를 동경하는 여동생이 될 수 있었을까. 그저 모르는 사이가 되어, 거리에 스쳐 흐린 네온의 불빛 아래로 서서히 사라져만 가는 서로의 뒷모습을 바라보지 않았을까.


“난 가끔 상상해.”


 이불이 맨살을 스쳐 조금 간질거린다.


“아빠랑 엄마가 재혼을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하고.”


“만약 그랬다면 우리는 못 만나지 않았을까, 언니.”


“그것도 그렇네.”

 그렇게 내 말을 강하게 긍정하는 한편으로 언니는 손을 얽혀온다. 마주쳐 깍지 낀 손은 하나의 속박이 되어 우리를 강하게 묶는다.


“그래도 우리는 어떻게든 만나지 않았을까. 만나서 사랑을 나누고.”


 그러면서 맞춘 입에서는 담배냄새가 느껴졌다.


 단 하룻밤 만의 장난이라고 생각했지만 나와 언니의 관계는 생각보다 길고, 또 단단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자매라는 울타리는 허울뿐인 것이 되어 우리 사이에 있어 어떤 걸림돌도 되지 못했다. 오히려 그것은 가끔 일선을 넘는 쾌락의 도구로 변해 우리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줄 뿐이었다.


“진짜 자매보다 사이가 좋은 거 같아서 좋아, 가족끼리는 즐겁게 지내야지.”


 그런 어머니의 말이 나의 마음을 무겁게한다. 어머니는 우리의 비행을 알고 이런 말을 하는걸까. 만약 나와 언니의 사랑을 알게 된다면, 진정 가족으로써의 행복만을 바라는 그 무구한 미소는 사라지고 마는 것일까.


 그런 생각은 살갗에 가려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그제처럼, 그리고 어제처럼


“아빠한테 이야기하려고.”


 언제나처럼 여운에 취해 밤을 보내던 중이었다. 교성이 멎은 귓가에 울리는 것은 언니의 말.


“그러면 이제 독립해서 같이 사는거야. 우리끼리, 즐겁게 사랑을 나누면서...그렇게.”


“그래도 괜찮을까.”


“응, 다른 누구보다 우리의 행복을 바라고 있을테니까.”


 불안한 나의 마음과는 다르게 언니의 두 눈은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아버지를, 새아버지를 설득하려는 열의가 가득한 그 두 눈동자.


“그런 표정 지을 거 없어, 분명 괜찮을거야.”


 부모들은 자식의 안녕을 바라는 존재라고 한다면, 어머니는 내 행복을 빌어줄까. 의붓자매를 탐하는 나를 그 고운 손길로 안아줄까.


“그럼 나는 어머니한테 말할게, 언니.”


 하지만 그건 한낱 바람이 지나지 않았다고, 침통한 표정의 어머니를 마주하고야 알 수 있었다. 어머니와 마주앉은 식탁. 활짝 열린 커튼 사이로 저녁 노을이 들어오고 있었다.


“어떻게 이야기해야할까.”


“저기 그냥…”


“음...글쎄 잘 모르겠어.”


 앉아서 한참을 입을 열지 못한 채로, 내뱉어지려는 말을 숨기던 어머니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창문으로 향했다. 어머니에게 오롯이 쏟아지는 황혼의 빛. 앞을 가리는 그 빛의 사이에서야 어머니는 입을 열었다.


“있잖아, 혼자 너를 키웠어. 남편 죽인 년, 독한 년 소리를 들어가면서...너를 키웠어. 금방이라도 죽고 싶었지만...그래도 살자. 아무리 괴롭더라도 살자고. 그래도, 그래도 변한 건 없었어. 내가 굳세게 살아도 나는 여전히 남편 죽인 년이고 독한 년이고 너는 애비 없는 자식이고...세상은 변하지 않아. 늘상 괴로운 채 우리의 곁에 있을 뿐이야.”


 어느새 커튼을 내려져 방 안은 그리운 어둠으로 들어찼다. 어머니와 나, 우리 둘만이 살던 그 집처럼.


“이제서야 평범한 행복을 쥘 수 있었어. 자식에게 사랑을 쏟는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자란 사이 좋은 자매.”


“우리는 그대로일거야, 달라지는 건 없어.”

“그럴리가 없잖니?”


 조금 눈물로 젖은 그 눈은 내 어릴 적과 같이. 아비 없는 자식을 키우는 어미의 멍에를 썼던 그 시절과 같았다. 그리고 그 때 처럼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로.


“다른 누구도 손가락질 하지 않는 그런 가족이었어...그런 내 가족이었어…”


 나의 행복이 아닌.


“내 가족을 망치지 말아줘…”


 자신의 행복을 바라는 여자를 바라보고만 있다.

*

“오랫만이구나, 선화야.”

 한동안 울리지 않던 원룸의 초인종을 누른 것은 아버지였다.


“연락도 없이 미안하구나.”


“아뇨, 뭐...아버지가 그런 말을.”


“말이라도 고맙다, 그래...여기 받거라. 날도 추울텐데.”


 그런 말을 하며 아버지는 손에 들고 있던 짐을 건넸다. 사이로 살짝 보이는 것은 목도리. 받아들고는 아버지를 안으로 안내했다.


“혼자 사는데 어려운 건 없고?”

“괜찮아요, 그럭저럭 살만해서.”

“그건 다행이야."


잔에 따라진 물로 목을 축이며 아버지는 말을 이어갔다.


“그 눈을 보니, 집으로 돌아갈 생각은 아예 없는 것 같구나.”


“그거야 뭐…”


“됐다, 다 네 선택이고 네 엄마의 선택이니 말이다. ...그래도 모두 너를 그리워하고 있어.”


 그렇게 말하면서도 아버지는 연신 한숨을 쉬며 마음을 다잡지 못하시는 듯 했다. 그러던 중에 울리는 것은 투박한 전화소리. 발신자 이름에 적혀있는 것은 선화 엄마.


“이만 가봐야겠어.”


 아버지는 옷매무새를 가다듬은 채 문을 열어 나갈 채비를 한다.


“조심히 돌아가세요.”


“행복하려무나."


 그렇게 밖으로 향하는 아버지는 문득 한 마디를 내뱉었다.


“...지옥이구나.”


 결국 나는 집을 나섰다. 어머니가 원하는 ‘온전한 가족’을 위해 아진 언니의 곁을 떠났다. 어머니는 더 이상 손가락질 받을 일없이 사랑하는 남자의 곁에서 살아갈 것이다. ...그렇게 어머니는 행복을 손에 쥐었을까. 자신이 배아파 낳은 딸의 얼굴을 더 이상 보지 못할텐데도.


 나는 여전히 아진 언니를 생각한다. 선선히 웃는 얼굴이 실로 매력적이었던 나의 언니. 어머니를 위한다는 핑계 아래 증오를 품고 나선 집에 남아있는 그 사람을 그린다. ...앞으로 볼 일 없을 그 사람이 그리워 뜬 눈으로 밤을 지샌다.


 지옥, 나와 어머니는 그렇게 서로 원하는 걸 얻지 못한 채로 살아갈 것이다. 그 언젠가 모든 업보를 씻어낼 때 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