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멋대로 하는 삼국지 모음집

하진(?~189)

자는 수고. 백정에서 한나라의 대장군까지 오른 입지전적의 인물.

인품과 능력은 매우 뛰어나서 많은 이들이 모였지만, 결정적으로 결단력이 부족해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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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십상시의 난


동태후 사후 하진은 병을 핑계로 나오지 않았다. 사례교위 원소가 하진을 찾아와 말했다.


"장양, 단규 등이 공이 동태후를 짐주로 독살하고 큰일을 꾀하고 있다는 터무니없는 소문을 퍼뜨리고 있습니다. 이때를 이용해 환관들을 죽이지 않으면 나중에 반드시 큰 화근이 될 것입니다. 이전에 두무가 환관을 죽이려다가 기밀이 누설되는 바람에 도리어 화를 당했습니다. 지금 공 형제의 부곡(개인의 사병. 즉 하진 형제의 병사들) 군관들은 모두 출중한 인사들이니 만일 온 힘을 다한다면 장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하늘이 내려준 때이니 기회를 잃지 마십시오."


하진이 말했다.


"나중에 다시 상의하도록 하세."


하진의 측근이 비밀리에 이 일을 장양에게 보고했고, 장양 등은 하묘에게 호소하며 또 많은 뇌물을 바쳤다. 하묘가 입궁하여 하태후에게 말했다.


"대장군께선 새로 즉위한 황제를 보좌하면서 인자한 일은 하지 않고 살육에만 몰두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아무 이유 없이 십상시를 죽이려 하니 이것은 환란을 일으키는 일입니다."


하태후도 그 말을 받아들였다. 잠시 후 하진이 궁으로 들어와 하태후에게 환관들을 죽이겠다고 아뢰었다. 하태후가 말했다.


"환관이 황궁을 통솔하는 것은 한실의 관례지요. 선황제께서 세상을 떠나신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오라버니가 옛 신하들을 죽이려 한다면 종묘를 중히 여기는 것이 아니지요."


하진은 본래 결단력이 떨어지는 사람이라 태후의 말을 듣고 "예, 예" 대답만 하고 물러났다. 원소가 맞이하며 물었다.


"대사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습니까?"


하진이 말했다.


"태후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니 어찌하겠는가?"


"그렇다면 사방의 영웅 인사들에게 군대를 통솔하여 도성으로 모이게 하고 고자놈들을 모조리 죽이십시오. 그때는 일이 급하게 될 터이니 태후께서도 따르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계책이 참으로 묘하도다!"


즉시 각 잔애 격문을 띄워 도성으로 불러들였다. 주부(문서와 장부, 인감을 담당하는 관리) 진림이 말했다.


"안 됩니다! 속담에 이르기를 엄목이포연작(俺目而捕燕雀. 자기 눈을 가리고 새를 잡는다. 자기기만)이라고 했으니, 이것은 스스로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 하찮은 미물을 잡을 때도 속여서는 뜻을 이룰 수 없는데, 하물며 국가의 대사는 어떻겠습니까? 지금 장군께서는 황제의 권위에 의지하고 병권을 장악했으며 용이 머리를 높이 쳐들고 범이 걷듯이 위풍당당하니 확신을 갖고 뜻대로 일을 처리하십시오. 환관을 죽이는 것은 커다란 화로에 부채질하여 머리카락을 태우는 것과 같이 쉬운 일입니다. 날쌔고 용맹스러운 군사를 숙히 일으켜 권력을 행사하고 즉각 결단을 내리시면 하늘과 사람 모두 순종할 것인데, 도리어 밖에 있는 대신들에게 격문을 띄우고 그들을 불러 황궁을 침범하게 하십니까. 영웅들이 한곳에 모이면 각자 다른 마음을 품게 될 것이니, 무기를 거꾸로 잡아 남에게 칼자루를 쥐어주는 것으로 공적은 이루지 못하고 혼란만 일어날 것입니다."


하진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건 겁쟁이 소견일세!"


곁에 있던 한 사람이 손벽을 치며 깔깔 웃었다.


"이 일은 손바닥을 뒤집는 것보다 쉬운데 무슨 논의가 그리 많으시오!"


사람들이 보니 바로 조조였다. 조조가 하진에게 간했다.


"환관의 재앙은 예나 지금이나 있으나 국군(國君)이 부당하게 그들에게 권력을 빌려주고 총애하여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들의 죄를 다스리고자 하신다면 원흉만 제거하면 되는 것이고, 옥리(소송과 형벌을 관장하는 관리)에게 맡기면 충분한데 구태어 어지럽게 도성 밖의 군사를 부르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들을 모조리 죽이려 하신다면 일이 반드시 탄로날 것입니다. 제 생각에는 틀림없이 실패하리라 봅니다."


하진이 성내며 말했다.


"맹덕, 너도 사심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니냐?"


조조가 물러 나와서는 중얼거렸다.


"천하를 어지럽힐 자는 분명히 하진이다."


하진은 은밀히 명령을 받든 사자에게 각 진으로 밤새 달려가 비밀 조서를 전달하게 했다.

전장군 동탁에게 군대를 관중 상림원(산시성 시안 후이구와 저우즈 경계)에 주둔시키게 했고 동군태수 교모(橋瑁)를 성고에 주둔하게 했으며 태산군 왕광은 관동으로부터 태산군의 궁노수를 징발하도록 명했고 무맹도위 정원에게 맹진을 불태우도록 명했다. 


그 중 전장군 태향후 병주목 동탁(董卓)은 이전에 황건을 격파한 공적이 없었으므로 조정에서 그 죄를 다스리기로 논의하자 십상시에게 뇌물을 바쳐 요행으로 형벌을 모면했다. 그 후에 다시 조정의 세도가와 결탁하고 고관에 임명되어 서주(西州. 간쑤성 중부와 서북부 일대.)의 대군 20만 명을 통솔하자 항상 황제에 불충하고 찬탈하려는 야심을 품고 있었다. 이러한 때에 조서를 받고는 크게 기버하며 군마를 일으켜 연이어 출발시켰다. 사위 중랑장 우보(牛輔)에게 섬현을 지키게 하고, 자신은 이각(李傕), 곽사(郭汜), 장제(張濟), 번조(樊稠) 등을 데리고 군대를 인솔하여 낙양을 향해 출발했다. 동탁의 모사 이유(李儒)가 말했다. *


"지금 비록 조서를 받아들였다고 하나 애매하고 불분명한 내용이 많습니다. 마땅히 사람을 보내 표문을 올려야 합니다. 명분이 정당하고 이치에 맞아야만 대사를 도모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동탁은 크게 기뻐하며 즉시 표문을 올렸다.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삼가 듣자오니 천하에 반란이 그치지 않는 것은 모두 황문상시(중상시) 장양 등이 천상(하늘의 상도)을 업신여기기 때문이라 합니다. 신이 듣기로는 물이 끓는 것을 멈추게 하려면 끓는 물을 퍼냈다 다시 붓는 것보다 땔감을 치우는 것이 나으며, 종기를 째는 것이 비록 아프기는 하나 독을 키우는 것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신이 감히 종과 북을 울리며 낙양으로 들어가는 것은 장양 등의 무리를 제거하도록 청하고자 함입니다. 이것은 사직의 큰 다행이며 천하를 위한 커다란 행운이라 여겨집니다!"


하진이 표문을 받고 대신들에게 보여줬다. 시어사(어사대부의 속관) 정태가 간언했다.


"동탁은 승냥이요, 이리같이 흉악무도한 자라 그를 도성으로 끌어들이면 반드시 사람을 잡아먹을 것입니다."


하진이 말했다.


"자네는 의심이 너무 많아 큰일을 도모하기에 부족하구나."


노식 또한 간언했다.


"평소에 동탁의 사람됨을 알고 있는데, 겉은 온화하고 선량한 척하나 속마음은 잔혹하고 인색한 사람이오. 궁정으로 들어오면 반드시 환란을 일으킬 것이니 차라리 오지 못하게 막아 변란의 발생을 피하는 것이 나을 것이오."


하진이 듣지 않자 정태와 노식은 관직을 버리고 떠났다. 조정 대신도 떠나는 자가 태반이었다. 하진은 사람을 보내 동탁을 홍농주 면지현에서 영접하게 했는데 동탁은 군대를 주둔시키고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장양 등은 지방의 군사들이 도착한 것을 알고는 함께 의논했다.


"이것은 하진이 꾸민 일이다. 우리가 먼저 손을 쓰지 않으면 모두 멸족을 당할 것이다."


이에 먼저 도부수 50명을 장락궁 가덕문 안에 매복시킨 다음 안으로 들어가서 하태후에게 고했다.


"지금 대장군께서 가짜 조서로 지방의 군사들을 불러들여 도성에 이르렀는데, 이것은 저희를 죽이려는 것이니 마마께서는 불쌍히 여겨 구원해주십시오."


태후가 말했다.


"너희는 대장군 부중에 가서 찾아뵙고 사죄하라."


장양이 말했다.


"상부에 갔다가는 뼈와 살이 가루가 될 것입니다. 바라건대 마마께서 대장군을 궁으로 불러 그만두게 하시고, 만약 대장군께서 마마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다면 신 등은 마마 앞에서 죽기를 청합니다."


태후가 즉시 조서를 내려 하진을 돌아오게 했다. 하진이 조서를 받고 바로 가려고 하자 주부 진림이 간언했다.


"태후께서 내리신 이 조서는 틀림없이 십상시가 꾸민 것이니 절대 가서는 안 됩니다. 가셨다가는 반드시 화를 당할 것입니다."


하진이 말했다.


"태후께서 나를 부르시는데 무슨 좋지 않은 일이 있겠는가?"


원소가 말했다.


"지금 우리 계획은 이미 새나가 일이 드러났는데 어찌 장군께선 입궁하려 하십니까?"


조조도 말했다.


"먼저 십상시를 불러낸 다음 들어가시지요."


하진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것은 어린애 같은 소견이요. 내가 천하의 권력을 잡았는데 십상시 따위가 감히 나를 어찌한단 말인가?"


원소가 다시 말했다.


"공께서 기필코 가고자 하신다면 저희가 무장한 군사를 거느리고 호위하면서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원소와 조조는 각자 정예병 500명을 선발해 원소의 아우 원술(袁術)로 하여금 통솔하게 했다. 원술은 무장한 군사를 거느리고 청쇄문 밖에 자리를 잡았다. 원소와 조조는 검을 차고 하진을 호송하여 장락궁 앞에 도착했다. 환관이 태후의 명령을 전했다.


"태후께서는 특별히 대장군만 부르셨으니 나머지 사람은 함부로 들어갈 수 없소."


원소와 조조 등은 모두 궁문 밖에서 저지당했다. 하진이 당당하게 혼자 가덕전 문에 이르렀을 때, 장양과 단규가 맞이하러 나오더니 도부수들이 일제히 에워쌌다. 하진이 깜짝 놀랐다. 장양이 하진을 엄하게 꾸짖었다.


"동태후께서 무슨 죄를 지었기에 함부로 독살했느냐? 더군다나 국모의 국상을 치르는데도 병을 핑계로 나오지 않다니! 너는 본래 비천한 백정 놈인데 우리가 천자께 천거한 덕분에 부귀영화를 누렸거늘 힘을 다하여 은혜를 갚을 생각은 하지 않고 도리어 모략을 써서 해치려 드느냐! 네 말에 따르면 우리가 몹시 혼탁하다던데, 그럼 맑은 놈은 도대체 누구란 말이냐?"


하진이 분노했다.


"이 고자놈들이!"


하진은 황급히 달아날 길을 찾았으나 궁문은 모두 닫혔고 상방감 거목(渠穆)이 칼을 들어 하진을 베어버렸다. **


필자는 논한다. 하진은 백정에서 대장군 자리에 오르는 동안 그 자신의 정치적 능력과 인망으로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그는 천하를 되돌리기에는 능력이 부족했고, 난세의 영웅이 되기에는 우유부단했기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대신 그의 수하들이 새 시대의 영웅이 되었다. 


오래도록 기다려도 하진이 나오지 않자 원소는 궁문 밖에서 큰 소리로 불렀다.


"장군께서는 어서 나오셔서 수레에 오르십시오!"


장양 등이 하진의 수급을 담장 너머로 내던지며 알렸다.


"하진이 반역을 꾀하다 이미 죽임을 당했다! 협박에 못 이겨 따른 자는 모두 너그러이 용서하노라."


원소가 엄한 목소리로 소리 질렀다.


"환관이 모략을 꾸며 대신을 죽였다! 흉악한 짓을 하는 무리를 소탕할 자는 앞으로 나와서 싸워라!"


하진은 평소에 인애와 은덕으로 부하들을 대접했기 때문에 그를 위해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졸이 없었다.


"대장군을 위해 싸우다 죽기를 원합니다!"


하진의 부장 오광이 즉시 청쇄문 밖에 불을 질렀다. 원술은 군사를 이끌고 궁정으로 뛰어들어가 환관이 보이기만 하면 나이를 가리지 않고 모조리 죽였다. 원소와 조조도 빗장을 잘라 부수고 안으로 들어갔다. 조충, 정광, 하운, 곽승 네 사람은 쫓기다가 취화루 앞에서 고깃덩어리가 되고 말았다. 궁중에서 화염이 하늘로 치솟았다. 장양, 단규는 하태후와 태자, 그리고 진류왕을 위협하여 궁중 뒷길로 북궁을 향해 달아났다.

이때 노식은 벼슬을 버렸으나 아직 떠나지 않았다가 궁중에서 변란이 일어난 사실을 알고는 갑옷을 입고 창을 손에 쥔 채 누각 아래에 서 있었다. 멀리 단규가 하태후를 위협하며 다가오는 것이 보이자 노식이 크게 소리쳤다.


"단규, 이 역적 놈아. 어찌 감히 태후마마를 겁박하느냐!"


단규가 몸을 돌려 달아났다. 그때 태후는 창문으로 뛰어나왔고 노식이 급히 구하여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오광이 궁정 안으로 쳐들어가다가 검을 들고 나오는 하묘를 봤다. 오광이 큰 소리로 외쳤다.


"거기장군 하묘는 환관들과 공모하여 제 형을 해쳤으니 마땅히 함께 죽어야 한다! 군사들은 그를 위해 원수를 갚을 수 있겠는가!"


병사들이 모두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대장군을 모함한 역적을 죽입시다!"


하묘가 달아나려 했으나 사방으로 에워싸고 찍은 다음 시체를 원유(황제의 정원)에 버렸다. 원소가 다시 군사들을 나누어 십상시의 가솔들을 죽이라 했고, 노소 가릴 것 없이 모조리 몰살하니 어떤 이들은 수염이 없어 오인을 받아 죽임을 당했고, 어떤 이들은 스스로 옷을 벗어 신체를 드러낸 후에야 비로소 면할 수 있었다. 환관 중에는 선행을 하고 법을 준수한 자도 있었지만 그들도 화를 피하지 못했다. 그렇게 죽은 자가 2000명을 넘었다. ***

조조는 타오르는 궁중의 불을 끄게 하는 한편 하태후에게 잠시 대리로 대사를 돌보도록 청한 후 군사를 보내 장양 등을 추격하여 붙잡고 새로 등극한 황제와 진류왕을 찾도록 했다.


황제와 진류왕은 어디로 갔을 까?


* 이유: 이유만큼 연의와 정사의 행적이 갈리는 사람도 몇 없을 것이다. 연의에선 동탁의 사위이자 참모로 비중이 매우 많지만, 정사에서 이유는 나이가 많고 뚜렷한 행적이 보이지 않으며 이각과 곽사가 있던 시기까지도 살아 있었다. 여기선 적당히 절충하여 동탁의 참모이자 어느정도 나이가 있는 사람이 되었다.


** 하진의 죽음: 하진은 상기된 대로 상방감 거목의 손에 살해당했다. 거목에 대한 자료는 별로 없으나 환관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 십상시의 난: 실제로는 하진의 부하 장수들이 곧바로 궁궐에 쳐들어가진 않았다. 먼저 원술과 오광이 궁에 불을 지르며 그들을 겁박했고, 이틀 뒤 원소가 사태를 파악하고 공격을 가해 다음날 환관들을 몰살했다. 이때 평소에 품행이 올발랐던 환관도 칼날을 피하지 못했으며 너무 젊은 나이에 관직에 올라 수염이 없어 환관으로 오인받아 죽은 관리도 있었고, 급히 자기 몸을 보여 환관이 아님을 알려 목숨을 건진 이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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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만 더 있으면 호로관 메뚜기 나오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