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는 천사를 만나 하루를 반복한다. 소녀의 소원인 사랑을 이루기위해 변하지 않는 하루를 반복한다.


천사를 만난 그 날은 소녀에게 있어 어떤 일이라도 좋게 풀리는 날이었다.


“..오늘 낮동안은 활동하기에 무난한 날씨가 되겠습니다. 월요일 오전 낮 기온은 17도…”


 기상 캐스터의 멘트를 들으며 문밖으로 나선 그녀의 앞에 있는 것은 소소한 행복이 있는 날. 편의점에서 계산을 하는 데 마침 그에 딱 맞는 동전이 있는가 하면 은행나무가 우거진 길을 걸어도 열매를 밟지 않았고, 단 한 번도 신호에 안 걸리고 횡단보도를 건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안녕?”


 등 뒤를 툭 치며 말을 거는 시아와의 만남.


“오늘은 묘하게 기분이 좋아보이네?”


“그도 그럴게…”


 그러면서 시아는 의기양양하게 무엇인가를 꺼내 소녀의 앞에 들이민다.


“...상장?


“그래, 공모전에 제출했던 작품으로 입상했다고!”


 한껏 미소짓는 시아를 보며, 소녀는 분명 이것이 자신의 가장 좋은 행복이라고 느끼고 있었다. 사랑하는 시아가 웃을 수 있다면, 그것만큼 기분좋은 것은 없을테니까.


“다 네 덕이야.”


“뭘 또 그런 말을 해…”


 끌어 안아 볼을 비비고는 시아는 앞서 학교로 달려나간다. 소녀는 아직까지 볼에 남아있는 시아의 온기를 느끼며...여운에 젖어있다. 바로 그 순간.


“오늘은 너에게 있어 최고의 날이야.”


 소녀는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를 만났다. 비상식적인 경험을 한다.


“...예?”


“뭘 그렇게 멍때리고 있어, 오늘이 네 최고의 날이라니까?”


“저 꿈 꾸고 있는 거 아니죠?”


“최고의 날이니까 천사를 볼 수 있는거라고.”


“말이 안 되는데요…”


“아, 이거 묘하게 설득하기 힘드네. 날 보면 좋다고 소원 빌러 달려들 줄 알았는데.”


 그런 말을하며, 천사는 소녀에게 달력을 하나 꺼내든다.


“이건 너의 인생을 총망라한 달력, 하루하루의 운세를 알 수 있다고. 자 여기 봐.”


 천사가 가리킨 날짜에는 오망성의 별이 5개가 표시되어 있었다.


“20993년 42456일, 그레고리력으로 20XX년 X월 X일, 그래 바로 오늘이지? 별이 5개가 그려져있지? 봐, 오늘만큼 당신 인생에 최고의 날은 없어.”


 소녀에게 있어 오늘이 기분 좋은 날인 것은 맞다. 뜻밖의 행운도 따라주고 무엇보다 그 시아가 소녀를 끌어안아줬으니…


“너 시아 좋아하잖아. 다른 날이면 몰라, 그런데 오늘이라면 네 사랑은 이루어질 수 있어.”


 나는 그걸 알려주기 위해 내려온 하늘의 천사다, 라고 의기양양하게 소개하는 아가씨를 지나쳐 소녀는 학교로 들어간다.


“아니, 왜 대답도 없는건데?”


“...어제 잠을 못잤나.”


“꿈이 아니라니까?”


 그러면서 자신을 졸졸 따라다니는 천사를, 소녀는 철저히 무시하는데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바깥은 져물어가는 해가 타오르는 서쪽 하늘의 풍경.


“오늘 어째 표정이 안 좋네?”


“아니...그런 이유가 있어.”


 시아와 함께 집에 가는 길, 천사는 여전히 소녀의 곁에 둥둥 떠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려하고 있다. 그런 천사를 보지않으려고 필사적으로 고개를 돌리던 중, 시아가 소녀에게 말을 걸었다.


“여튼 내가 입상한 건 다 네 덕이라고.”


“내가 뭘 해줬다고…”


“예술가한테는 자신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가 있다잖아.”


 소녀는 문득 가는 길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고마워, 미아야.”


 이렇게 웃는 시아를 조금이라도 더 보기 위해서. 몸을 움직여 지나쳐버리기에는 너무도 아까운 얼굴이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조금이라도 더...시간이 멈추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 그런거지.”


 그런 소녀의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 그것은 천사의 목소리였다.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아예 시간을 멈추면 되는 걸.”


 천사는 손을 튕겨, 소리를 낸다. 그 순간, 소녀가 목격하는 것은 명백한 이상 현상. 아이들이 찬 공은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신호등의 파란불은 깜빡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리고 시아는 여전히 미소 지은 표정 그대로.


“이제 방해하는 사람은 없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천사는 말을 이어나간다.


“어때, 이 정도면 내 존재를 믿겠지? 나는 너의 사랑을 도와주기 위해 내려온 천사라고.”


“...빨리 원래대로 해줘요.”


“드디어 제대로 말을 해주는구나.”


“어서 시간을 돌려주기나 해요.”


 따지고 들어가는 소녀의 입을 틀어막고 천사는 말을 이어나간다.


“이제 곧 오늘이 지나가, 오늘이 지나가면 더 이상의 기회는 없어. 몇 번이고 말하지만 나는 너를 도와주기 위해 지상에 내려온거야. 네가 사랑하는 것을 원하니까 내려온거라고. 그러니까 고백해, 겁 먹지 마, 성공할 수 있어.”


 그렇게 강요해도 고백할 수 잇을 지, 소녀는 확신하지 못한다. 그런 소녀의 마음을 아는 지 모르는 지 천사는 다시 손을 튕겨 소리를 냈다. 일순 소녀의 귀에 울리는 이명, 그와 동시에 시간은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


“...미아야?”


“아...응.”


 시아가 부르는 소리에 소녀는 흐르는 시간을 인식한다.


“뭘, 멍 때리고 있는거야.”


“아니...아무것도 아니야…”


 지금 시아의 뒤에 둥둥 떠 소녀에게 무언가 메시지를 보내는 천사가 있다. 하지만 소녀의 마음은 여전히 안개 속에서 헤매이고 있다. 말을 할 수 있을까, 고백할 수 있을까.


“저기…”


 소녀가 낼 수 있는 최대의 용기는.


“응?”


“아무것도 아니야…”


“뭐야...갑자기.”


 수줍게 말을 할 수 있는 정도에 불과했다. 그렇게 소녀는 시아이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한참이고 바라보다가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아니, 거기서 왜 말을 더 안하는건데?”


 자신에게 따지고 드는 천사를 무시하고 문을 열었다.


“이해가 안 되네.”


 소녀가 씻고 잠자리에 들적에 시침은 어느새 자정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니, 꽤 괜찮은 날이었잖아.”


“...그래도 믿을 수가 없는걸요.”


“오늘만한 기회는 없어.”


“불안하니까.”


 천사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소녀의 마음.


“만약...만약 고백해도 이루어지지 못한다면...그런 생각을 하면 말을 꺼낼 수가 없는걸요…”


 그런 말을 하며 이불을 뒤척여 소녀는 잠에 든다. ...그 볼에 조금 눈물 자국을 남기며. 아침이 되어 일어나 소녀가 맞이하는 것은 강렬하게 내리쬐는 태양. 그리고…


“..오늘 낮동안은 활동하기에 무난한 날씨가 되겠습니다. 월요일 오전 낮 기온은 17도…”


 언뜻 들어본 뉴스. 기이함을 느끼며 바깥으로 나섰을 때 소녀는 기시감을 느꼈다. 어제처럼 딱 맞는 동전이 주머니에 있었고 은행을 밟지 않았다. 그리고


“안녕?”


 어제와 같은 시아와의 만남.


“그래! 공모전으로 제출했던 작품이 입상했다고!”


 분명 어딘가 단단히 잘못되었다고, 순간 소녀는 생각했다.


“어때? 내 선물은.”


 학교의 벤치에 걸터앉아 있는 소녀에게 어느 순간 찾아온 천사는 말한다.


“불안하다며? 기회가 한 번뿐인가 걱정된다면…”


“어제와 같은 하루를 반복하게 했다?”


“바로 그거지.”


 천사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코를 손으로 훑었다.


“뭐 내가 힘을 내면 이 정도는 기본이니까... 아무튼 너는 고백이 성공할 때 까지 같은 날을 보낼 수 있어. 그냥 고백하기만 해도 성공하는 거야 확정이지만 힘내. 기회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그런 천사의 응원과 함께 시작된, 늘상 반복되는 오늘. 처음 일주일간, 소녀는 들뜬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아침이 되어서는 늘상 시아가 소녀를 안았고, 저녁이 된다면 타는 노을 아래에서 시아의 웃는 얼굴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왜 고백을 안 하는거야?”


“말했잖아요, 그냥 얼굴만 봐도 좋다고.”


 사실 천사도 이런 일은 예상하고 있었다. 부끄럼쟁이 소녀가 하루이틀만으로 바뀔까, 일주일정도는 허용범위라고 천사는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소녀가 하루를 반복한 날이 점점 많아질수록, 그 단위가 바뀔수록…


“고백 좀 해.”


“...내일할게요, 내일.”


“이만 돌아가게 해달라고..”


 주도권은 어느덧 천사에서 소녀에게로 넘어가 있었다.


“심심해.”


 실행되지 않는 고백의 반복선에서 천사는 무료함에 빠질 뿐이었다. 그런 지루함을 지우기 위해 어느 날은 바다로 날아가기도 하고, 막연히 하늘을 날기도 하고. 그런 날을 보내다 소녀의 방으로 돌아가면 소녀는 다시 또 침대에 누워 하루의 마지막을 보내려하고 있었다.


“오늘도 고백 하긴 했어?"


“이젠 성공했냐고도 물어보지 않네요.”


“...내가 뭘 기대하겠니.”


 그렇게 소녀나 천사나 모두 오늘을 갈무리한 채 다시 오늘로 향한다. 그런 나날의 연속, 그런 날의 반복.


“지루해.”


“어제처럼 바다로 한 번 가봐요.”


 그런 권유에도 천사는 하늘에서 빙글빙글 돌기만 할 뿐. 소녀는 어딘가 그런 천사를 보기가 괴로웠다. 늘상 갖는 죄책감도 있었지만 어딘가 다른 감각. 가슴 깊숙한 곳에 뿌리를 내려 점차 뻗어나가는 감정.


“오늘은 데이트라도 갈까요?”


“...학교는?”


“어차피 내일도 똑같잖아요.”


 천사는 반박할 거리를 찾지 못했다. 어차피 천사의 힘으로 하루를 다시 돌리면 상관없는 노릇이었으니…


“그럼 그런 걸로 결정해요.”


 싱긋 웃는 얼굴에 천사의 마음 한 구석이 움직였다. 이유도 모른 채, 두근대는 마음을 가진 채로...소녀를 따라나선다.


“인간으로 위장까지 하실 줄은…”


“데이트라며? 즐겨야지.”


 은근히 붉게 상기된 소녀의 얼굴을 보고, 복수했다라고 생각한 채로 천사는 미소짓는다. 그런 둘이 향한 곳은 너구리가 춤추는 놀이공원의 한복판.


“...어우 다리 아파.”


“업어줄까요?”


“농담은.”


 한가한 월요일이기에, 안에 있는 것은 해맑게 웃는 아이들과 그들을 따라가는 어른들. 그렇기 때문에 둘은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거닐 수 있었다. 온전한 둘만의 시간.


“뭐야, 그 이상한 머리띠는.”


“천사랑 함께하니까, 그에 대비되게 악마라는 컨셉으로…”


 이런 시덥잖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의외로 안 놀라시네요?”


“사람과 같은 시각으로 바라보는 게 아니잖아.”


 놀이기구를 타기도 하고, 둘은 뭇 사람들처럼 놀이공원을 즐겼다. 정말로 즐겁다고, 오랫만에 느끼며 천사는 만족감에 미소짓는다. 어딘가 미소지으며, 소녀는 그런 천사를 바라본다. 그렇게 둘의 오늘도 지나간다. 다시 또 오늘을 맞이하기 위해 집으로 향하는 길.


“오늘은 안 지루하셨나요?”


“응, 재밌었어.”


“의외로 솔직하시네요.”


“천사는 거짓말같은 거 못하니까.”


 그런 천사를 보며 소녀는 다시 또 미묘한 웃음을 지은 채. 그런 미소를 알아챈 천사는 고개를 돌린다. 그런 둘이 천천히 걷는 길은 변화무쌍한 별하늘의 바다 아래.


“있잖아요, 저 시아를 그렇게까지 좋아하지 않았던 모양이에요.”


“...”


“그 웃는 얼굴을 보면 행복한 건 맞지만서도...역시 열과 성을 다해 사랑하는 그 정도는 아니지 않나.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그렇다면 오늘은 최고의 날이 아니잖아요. 당신이 제게 준, 늘상 반복된 하루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


 천사는 푹 고개를 숙인 채, 소녀는 그에 상관없이 말을 이었다.


“저와 함께 이 반복되는 하루를 사는 당신을...당신을 만날 수 있어서 최고의 날이었던 게 아닐까.”


“...”


“사랑해요, 딱 1년만이었죠?”


 해맑게 웃는 소녀를 보고 천사는...천사는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천사는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 그렇게 밤이 지나 아침이 되어 해는 떠오르고...소녀는 기지개를 켠다.


“...어제처럼 낮동안은 활동하기에 무난한 날씨가 계속 이어지겠습니다. 지역별 날씨를 살펴보자면…”


 언제나와 조금 다른 뉴스를 들으며 문밖으로 나가는 순간. 문 앞에 소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언제나처럼 날개짓하는 천사.


“오늘로 이틀째네요, 우리.”


“이렇게 잘 말하는 주제에 고백은 왜 질질 미룬건지.”


 그런 말을 내뱉으면서도 천사는 날개를 접은 채...천천히 땅으로 내려와 소녀와 손을 맞잡는다. 그런 둘이 맞이하는 것은 오늘. 그리고 앞으로 늘 최고일 것만 같은 내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