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이야기 : 패배자들이 향락을 탐하는 차디찬 시멘트 바닥 위에서, 배척받던 과학자는 끝내 대죄를 저질렀다. 순간의 충동으로 말미암아 저지른 행동의 대가로, 그녀는 자신의 영혼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낙인을 새겼다. 죄의 대가는 무겁다. 설령 그녀의 숨이 멎을 지라도, 내세의 영혼은 변하지 않는다. 이 우주가 필연적인 멸망을 겪더라도, 또 다시 살아가는 그 삶에 새겨진 주홍글씨는 쇠하지 않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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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을 꾼다. 잠들어있는 연약한 사람, 그 앞에 날붙이를 들고 서있는 나. 서슬퍼런 칼날을 쥔채로 나는 무엇을 하려는 걸까. 어쩐지 아는 사람을 닮은, 저 아름다운 사람을 금방이라도 꿰뚫어 숨을 멎게 할 것 처럼. 이 꿈은 무엇에서 비롯된 걸까. 그 누구도, 나 자신조차도 답하지 못하는 의문은 가슴 한 가운데 새겨진 흉터와 함께 달아오르고.



 그 뜨거운 열과 함께 눈을 뜬다. 긴 잠에 빠진 공주와 섬뜩한 칼날은 온데간데 없이, 바라본 하늘은 입방면체가 발하는 붉은 색에 물들어 있었다. 내리쬐는 태양조차 빛바래게 하는, 우리의 영원을 상징하는 색. 그래, 이 빛이 있는 곳이야말로 내가 사는 현실이다. 몸과 마음을 채우는 풍요가 있는 곳. 그 어두운 밀실은 한낱 악몽에 지나지 않겠지. …욱신거리는 가슴을 움켜쥐며 겨우 발을 뻗는다.



 야트막한 언덕 위에 있는 거처를 나와 아래로 향한다. 사람들이 오가는 길, 광장, 붉은 세계. 그곳을 거닐며 문득 푸른 하늘과 신록의 풀숲을 생각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나날을 굳이 떠올릴 필요도 없을텐데도. …꿈 속의 삭막한 광경을 잊으려는 마음의 발악일까. 그런 무의식의 배려가 오히려 당혹스럽기만 했다. 악몽, 과거의 기록, 서서히 엄습하는 격통.그에 심란한 마음과는 상관없이 다리는 움직여, 천문대로 향한다. 저 하늘 너머 우주를 지켜보는 것이 나의 일이며.

 

“아프면 차라리 찾아오지 않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는데.”


 우리의 일이기에. 도착한 천문대에서, 아리아는 그런 말로 나를 맞이해주었다.



“괜찮아. 응, 괜찮다고 생각해.”



“그런 거짓말에 속을 사람이 어디 있겠어. 표정에서부터 티가 나는데… 그렇게 아픈 이유야 뭐…”



“똑같지.”



 역시나 그랬다는 듯이 아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 일하면서, 내 가슴 한 복판에 새겨진 오래된 흉터를 모를 수는 없으니까. 언제 생겼는 지도 모를 정도로 오래된, 그리고 어떤 조치에도 사라지지 않는 기묘한 상처. 그래도 오랜 시간을 견디며, 그것이 주는 아픔에는 익숙해졌다. 단지 표정에 숨길 수 없을 뿐.



“늘 말했잖아. 그냥 표정만 좀 구기는 거라고.”



“나는 그게 싫은거야.”



 그런 말을 하는 아리아는 웃음짓고 있었지만.



“정말로.”




 어딘가 우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위화감에 대해 굳이 물어보지는 않았다.



 관측실에서, 렌즈에 눈을 가져다 대고 스코프의 배율을 조절한다. 우리가 두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곳들중 유일하게 붉은 색으로 물들지 않은 흑의 도화지. 나는 그에 수놓아진 찬란한 별들 사이에서 우리에게 위협이 될 존재들을 찾는다. 그곳에 결코 닿을 수는 없겠지만, 눈부신 별을 보며 가슴이 뛰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역시 싫어. 여기의 일은.”



 아리아는 그런 나와는 다른 감상을 내뱉는다.



“의회에서도 별 재미는 못 봤다며.”



“그 때랑은 또 다른 이야기지. 의회에서의 일은 솔직히 말해서…”



 그렇게 턱을 괸채로 한참을 고민하던 아리아는, ‘말해봐야 기분만 나빠지니까.’, 라고 말할 뿐이었다. 기분만 나빠지는 곳에서, 싫어하는 곳으로. 새삼 생각해보면, 아리아의 출현은 꽤나 이례적인 일이었다. 트러블이 생겨 다른 일을 맡게된다 하더라도, 보통은 그와 관련된 곳으로 향한다. 긴 시간동안 축적된 경험이나 개인의 취향이란 쉽게 변하는 게 아닐텐데도.



‘자원해서 왔지만… 이 곳이 마음에 드는 건 아니야.’



 천문대에 찾아온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리아가 했던 이야기다.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는 듣지 못했다. 도와줄 수 있다면 최대한 손을 써주겠다고 얘기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개인적인 사정이라는 말이었다.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는, 무어라 말 못할 사정이 그리 심한 일은 아니기를 빌면서.



 아리아가 떠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혼자만의 천문대, 고독한 우주. 외로이 보냈던 그 긴 시간이 안타깝다는 걸 알려준 사람이니까. …이런 생각을 그 어디에도 말하지 못하고.



“적어도 여기서 기분 나쁜 일은 없었으면 좋겠어.”



 소박한 위로를 건네기만 한다.



“뭐 그런 걱정을.”



 그렇게 말하는 아리아는 웃고 있었을까? 그 순간에도 별은 궤도를 그리고 있었다.



 천문대의 문을 닫고 바깥으로 나설 때, 세계는 변치않는 붉은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저 하늘 너머의 칠흑과는 또 다른, 내게 안정을 주는 색. 그 빛을 바라보며, 입꼬리가 자연스레 올라갔다.



“너는 역시 이 거리를 좋아하는구나.”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우리 모두가 살아가고 있는 곳인데.”



“앞으로도 변함없이. 맞아, 싫어할래야 싫어할 수는 없겠지. 그래도…”

 

 그러면서 말끝을 흐린 아리아는 한동안 말을 잇지 않았다. 필요한 건 시간이라고, 꼭 그렇다고 단정지을 수야 없지만 나는 기다렸다. 내게도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붉은 빛에 비친 아리아가 마치 꿈에서 본 것처럼 아름다워, 가슴이 아팠다.



“전에 했던 이야기, 기억하려나 모르겠네.”



 긴 시간 끝에 아리아가 말하는 이야기란.



“알 수 없는 것들을 어떻게든 해명하기 위해 재미난 이야기를 끼워 맞추거나, 자신의 위신을 세우기 위해 숭고한 서사시를 써내려가거나. 그 외에도 이것저것. 먼 과거의 사람들은 그런 행위를 반복했었어.”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이 흐르고 남은 잔해에 불과했다.



“의회에서 일할 때 열람했다던 기록이라며.”



“그렇지, 그러면 그 이유도 기억하고 있어?”



“그들에게는 정신적인 버팀목이 필요했다고 했었잖아. 아직 제대로 해명되지 않는 세계, 언젠가는 겪을 죽은 이후의 삶. 무지가 공포의 원천이라면, 두려움에 떠는 마음을 잡아줄 힘이 필요하다고.”



 곧이 곧대로 대답을 하지만, 나는 아리아의 속내를 알고 싶었다. 이제와 의미도 없는 일을 탐구하는 이유를 듣고 싶었다.



“우리와는 관계 없겠지만 말야.”


 차마 추궁은 못하고, 선을 그을 뿐이지만.



“그것도… 그렇겠지.”



 아리아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제스처가 곧 동의를 의미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닮은 구석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저 입방면체에서 흐르는 빛에 의지하는 우리나, 미신에 의지했던 옛 사람들이나.”



 어떻게 보면 위험한 말.



“우리가 그 사람들보다 세상의 이치에 더 깊게 다가갔다고 보는데.”



“의회는 안정을 명목으로 사람들을 통제하고, 모두는 그 아래에서 끝나지 않는 일을 반복할 뿐이야. 발전이라고는 찾아보지도 못해.”



“완벽하기 때문에 변화가 없는거야. 그런 의문을 가질 필요는 없어.”



“의회는 그런 식으로 내 말을 묵살했어. …나는 그게 싫었고.”



 그럴듯한 변명은 오히려 누군가의 상처를 자극해, 가슴이 아파왔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짓을 멈출 수 없었다. 아리아는 지금까지의 내 삶을 송두리째 부정하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받아들여야 해. 우리는 과거의 결핍을 모조리 극복했으니까.”



“그런 주제에 단 한 사람의 상처조차 제대로 고치지 못해. 꿈을 이뤄줄 수도 없어.”



 노기서린 대답은 누구를 두고 한 말인가. 답은 명확했다.



“불완전하다던 그들은 저 하늘을 향해 나아가 깃발을 내걸었어. 그에 비하면 지금 사람들은…”



 마주친 눈동자.



“오만하기만 할 뿐이야.”



“...지금 너도 나와 다를 건 없어.”



 그리고 이어지는 어색한 침묵. 잘못은… 누구에게 있을까. 그를 생각하기도 전에 아리아가 입을 열었다.



“미안해, 너를 모욕할 생각은 아니었어. 단지, 단지 나는 그냥…”



 두 눈에 남은 건 오로지 슬픔 뿐.



“푸른 하늘이 보고 싶어.”



 그런 말을 남기고, 아리아는 서서히 내게서 멀어져갔다. 어느새 나는 광장에 홀로 남겨진 채로. 그토록 긴 시간이 흘렀지만 세상은 여전히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천문대의 관측자는 한 사람이 되었다.

.



.



.

 …그 옛날의 인류는 신을 향한 사랑을 증명해야만 했다고 한다. 설사 그를 위해 자신의 남은 삶을 모조리 쏟아붓는다 하더라도. 땅이 메말라서는 안 된다. 태양은 떠올라야 한다. 달은 밤을 밝혀야한다. 그렇기에 피는 흘러야 한다. 생명은… 죽음으로 향해, 육신은 다시 티끌로 돌아가야 한다.



 지금에 와서 그 열렬한 신앙은 의미를 잃었다. 해가 떠오르지 않더라도 빛은 사라지지 않는다. 설령 밤이 다가오더라도 하늘은 그 색을 잃지 않고, 대지는 생명으로 충만하다. 그리고 생명은, 생명의 불꽃은 꺼지지 않는다. 저 입방면체에서 발하는 빛이 꺼지지 않는 한, 우리는 영원하리라.



 분명 그렇게 믿었는데… 지금 내 눈앞에서 벌어진 일은 뭐지?



“...”



 아리아는 푸른 대지에 쓰러져 미동도 하지 않는다. 영원할 줄 알았던 존재가 생기를 잃어간다. 다른 사람들은 그녀를 저 멀리서 내려다본 채로, 도움의 손길조차 주지 않고… 비난을 가할 뿐이었다. 우리의 영원과 번영을 이해하지 못하는 죄인이자 돌아오지 않은 나날을 꿈꾸는 광인!…하지만 그토록 악독한 사람의 얼굴은 어째서 지금까지와 같이 그대로 아름답게 있을까. 그토록 무해하고 무구하게, 상처 하나 없이 있을 수 있을까.  



 그 순간에 알 수 있었다. 이건 평생을 쥐고 가는 의문이며, 이 궁금증이 풀리는 일은 없을 거라고. 나는 앞으로도 쭉 아리아의 죽음을 이해하지 못한 채로, 그 끔찍한 악몽을 되풀이하겠지.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오는, 가슴 한 가운데의 상처와 함께…



 어느 밤의 기억이다. 나는 태어나 그 운명이 다 할 때까지 끝을 향해 달려가는, 궤적을 보았다. 그리고 때마침 흐르는 빛의 비는 은하수로 모여, 하늘 아래의 생명에게 쏟아져 내리겠지. 그들은 하늘을 보며 무엇을 느낄까. 전율, 경외… 그 무엇도 우리와는 상관없으리라.



…그리고 영혼은 다시 태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