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센델이란 교수가 전세계에 던진 질문이다. 심오한 질문에 대한 역대 석학들의 생각을 담은 동명의 책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이내 유행이 되어 '지적인 사람' 흉내의 필수 도구로 전락했다. 만 얼마에 '지식인'으로 직행하는 티켓이 생기다니. 나라도 사고 싶겠다. 그런 현실을 지켜보는 센델 교수의 생각이 궁금하다. 어쩌면 자신의 글이 남의 자기만족과 자랑 용도로 쓰이는 현실에 개탄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만큼 그의 호주머니도 두둑해졌을테니.. 왜, '금융치료' 라는 말도 있잖은가.


많은 이들이 센델 교수와 같은 훌륭한 석학의 지식에 관심을 가지고 그의 책을 탐독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러나 그것이 그저 자랑을 위해서, 내가 아닌 타인을 위해서 하는 독서라면 그것은 잘못되었다. 제목이나 표지에 이끌려, 책의 첫 페이지나 뒷면 설명에 이끌려 산 것도 아닌, 친구 따라 강남가듯 무작정 사 놓고서는 숙제하듯, 억지로 꾸역꾸역 밀어넣고는 자신을 '지적인 인간'으로 칭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모순되지 않은가. 그런 부류에게 저런 책은 그저 자신의 SNS피드에 제대로 이해도 하지 않은 채로 적은 감상평 백수십자와 함께 올라가면 그대로 수명이 끊긴다. 읽으며 느낀 점이 없으니 다른 관련 서적을 찾아볼 생각도 못 하고, 단지 한 권 읽어봤다고 전문가마냥 떠드는 게 뭐가 지식인인가.


더 역겨운 부류는 그것을 자기 자식한테 강요하는 이들이다. 자신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책을 어린 자식에게 강요하며 '우리 아이는 이걸 이 나이에 읽는다!'라고 광고해 자신의 수준을 높이려는 것이다. 실제로 저 책을 초등학교 중학년 때 부모님의 충고 내지는 강요로 읽었다가 철학에 대한 공연한 거부감을 가지게 된 사례가 내 주변에도 있다. (그 친구가 미래에 철학에 관심이 생겼을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수준에 맞지 않는 책을 강요함으로써 나쁜 선입견을 가지는 것에 일조한 것은 사실이다.) 고작 열살배기가 공리주의니 트롤리 딜레마니 하는 얘기를 이해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 이상하다.


이런 바보같은 행위들이 '개인의 선택'이라는 미명 아래 존중받기를 원하고 있다. 이런 행동은 마치 물구나무를 선 상태로 밥을 먹으려는 것과 다름이 없으며, 그것을 존중받기를 원하는 것은 물구나무 서고 밥 먹기도 하나의 취향이니 존중해달라는 것과 같다.


일거수일투족이 유행에 맞춰 행해지는 이 사회에서는 잘 쓰인 책이나 지식도 그저 하나의 유행으로 승화되어 유행이 끝나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양 잊혀진다. 유행에 발맞춰 그 책을 읽은 이들도 얻어가는 것, 느끼는 것 없이 활자를 눈으로 스캔하며 허영을 탐구할 뿐이다. 그런 허영 탐구자들에게 나는 묻고 싶다. '당신이 그 책을 읽을 때, 과연 당신에게는 정의(正意)만이 있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