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서울 2063 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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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과 수화가 밥을 먹고 카페에서 합성 커피까지 마시고 나왔을 땐 어느덧 시간이 9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드디어 레나에게서 전화가 왔다.


“언니, 찾았어요! ‘나이트 오브 하노이’라는 클럽이에요! 그 클럽에 출입인원이 제일 많았어요.”


조 씨가 말했다.


“미세스 리, 조심해. 이름만 봐도 알겠지만 ‘반 하노이’ 갱단이 직접 운영하는 클럽이야. 수틀리면 일단 총부터 쏘고 보는 또라이들이니 눈치껏 행동해.”


“알아, 고마워.”


통화가 끊기자, 지원은 수화를 바라보았다.


“들었지, 가자. 아 맞다, 클럽 안에선 말 놓아도 돼. 오히려 존대하는 게 의심을 살지도 모르니까.”


“아… 으, 응.”


두 사람이 레나가 알려준 나이트 오브 하노이 입구로 다가가자, 양복을 입은 덩치가 까무잡잡한 손을 뻗어 앞을 가로막았다. 척 봐도 동남아계로 보인 바운서는 깨나 유창한 한국어로 말했다.


“신분증.”


두 사람의 눈이 빛나자 곧바로 바운서도 눈을 반짝였다.


“들어가시죠. 나이트 오브 하노이입니다.”


문을 열고 들어간 클럽은 다른 곳과 다를 바 없었다. 화려한 조명과 귀청을 울리는 음악소리, 야시시한 복장으로 뒤엉켜 춤추는 남녀와 무대에서 박자를 타는 DJ까지 완벽한 나이트 클럽이었다. 지원은 통화 채널을 파서 수화에게 말했다.


“꼭 붙어 있어. 그리고 상황에 맞게 행동해.”


크롬으로 빛나는 사이버웨어를 드러낸 남자가 지원에게 다가왔다.


“아가씨, 혼자 왔어? 방에 나 밖에 없는데 말이야.”


지원은 남자를 무시했다.


“아니, 나 바쁜 여자야.”


지원은 어깨에 문신을 한 아가씨들의 유혹에 정신을 못 차리는 수화의 팔을 잡아 끌었다.


“당신들이랑 즐길 시간은 없어서 말이야. 그럼 이만…”


그러면서 지원의 시선은 계속 클럽 전체를 살폈다. 오래지 않아 알리사에게서 연락이 왔다.


“클럽이 지금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닌 것 같아요. 특히 지하가 수상해요.”


“지하라… 분명 통하는 계단이 있을 거야.”


지원은 클럽 곳곳을 지키는 바운서들의 의심을 피하고자 수화와 끈적한 춤을 추면서 계속해서 주변을 탐색했다. 이미 CCTV를 해킹한 레나가 말했다.


“우와, 언니 춤 엄청 잘 추네요?”


“고맙다, 나 대학생 때 유행하던 춤이거든.”


“남자 쪽은 춤을 못 추는 것 같은데요?”


알리사가 말했다.


“저도 몸치지만, 저 쪽은 저보다 심하네요.”


지원이 말했다.


“왜 그래, 긴장이라도 했어?”


“아… 아니, 춤은 자신이 없어서.”


지원은 춤 추는 척 수화에게 착 달라붙어 조용히 속삭였다.


“그럼 몸에 힘 빼고 내 페이스에 맞춰.”


수화는 지원의 말 대로 그녀와 춤을 췄다. 둘은 그저 클럽을 즐기기 위해 온 사람처럼 보였고, 그거면 충분했다. 마침내, 레나가 입을 열었다.


“찾았어요! 무대 왼쪽 문 너머에 지하로 통하는 계단이 있어요.”


“그거 확실해? 기계실이나 뭐 그런 곳으로 통하는 계단은 아니지?”


알리사가 말했다.


“확실해요. 기계실은 반대편에 있거든요. 하지만 문은 바운서가 지키고 있네요.”


그와 동시에 무대 위에 한 여자가 올라왔다. 포르노 배우 같이 육감적인 몸매에 상의를 시원하게 드러낸 여자가 소리를 지르자 사람들이 무대 가까이로 모여들었다. 지원은 중요 부위만 아슬아슬하게 가린 엉덩이를 튕기며 끈적하고 외설적인 랩을 하는 여자를 바라보더니 휘파람을 불었다.


“섹시한데? 이러면 좀 편해지지. 레나, 저 덩치 시선 돌릴 방법 좀 생각해 봐. 수화 씨, 그쪽에 눈길 가는 건 이해하는데 행동할 시간이야.”


지원이 무대 위로 시선이 집중된 사람들을 해치며 입구로 움직이던 그때, 입구를 지키던 바운서는 전화가 왔는지 잠시 자리를 떴다.


“네, 후이입니다. 2시간 뒤에…”


“지금이야, 가자!”


둘은 빠르게 문을 열고 계단을 내려갔다. 작은 조명이 벽과 계단을 비추는 콘크리트 계단은 고작 한 층으로 끝났고, 그 뒤로 복도가 이어져 있었다. 지원은 치마 안에서 권총을 꺼냈다.


“수화 씨, 총 들어. 우릴 환영하진 않을 거니까.”


지원은 황당하다는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수화에게 오히려 왜 그러냐는 듯 미소를 지었다.


“이 재킷, 주머니가 없거든.”


수화 역시 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내고 천천히 벽에 기대 앞으로 나아갔다. 모퉁이에선 그 너머를 살피고, 조심스럽게 나아가는 동안 그 누구도 나타나지 않았다. 마침내, 둘은 아까부터 가장 의심스럽게 생각했던 방이 있는 위치에 다다랐다.


“이 문 너머야. 아마 이 문 뒤에 ‘핑크 베놈’이 있겠지.”


“이 뒤에 혁이가 있을 까…?”


“그건 나도 몰라. 레나, 너머에 뭐가 있는지 느껴져?”


“이렇다 할 건 안 느껴져요. 하지만… 문 너머에서 통신망이 연결되어 있는 걸 봐선 경비원들이 있는 것 같아요.”


“그거면 돼. 신호 차단 가능할까?”


“몇 초 정도는요?”


지원과 수화는 몸을 낮췄고, 문은 큰 소리 없이 열렸다. 두 사람이 살며시 안으로 들어가자, 분홍색 조명이 번쩍이는 홀이 있었다. 홀을 중심으로 벽에 문이 각 면마다 3개씩 총 12개가 있었고, 한쪽에는 사무실로 보이는 방이 있었다. 지원이 속삭였다.


“보이는 경비원은 5명. 수화 씨, 총 좀 쏘나?”


“손에 익은 총이 아니라 별로…”


지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섹시하게 허리를 뒤로 빼더니 손 안에서 권총을 빙그르르 돌렸다.


“그럼 거기서 보고 있어.”


지원은 모델처럼 중앙 홀을 향해 뚜벅뚜벅 걷더니 홀 중앙에 서서 경비원들이 자신에게 시선을 집중할 때까지 기다렸다. 몇 초도 채 지나지 않아 경비원들이 그녀를 발견했다.


“침입자다!”


그 순간, 지원의 총탄이 경비원들의 미간을 꿰뚫었다. 하나, 둘, 셋, 넷… 단숨에 소총으로 무장한 경비원 넷이 쓰러지고, 남은 경비원 마저 배에 2발, 연이어 미간에 마지막 한 발을 맞으며 쓰러졌다. 완벽했다. 지원은 총을 빙그르르 돌리며 안전장치를 걸더니 고전 모델처럼 자세를 잡으며 고개를 돌려 수화를 바라보았다.


“총은 이렇게 쏘는 거야. 어때?”


수화는 액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듯 입까지 떡 벌리고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다시 정신을 차린 듯 원래 얼굴로 돌아오더니 가볍게 박수를 쳤다.


“멋지다… 방금 ‘존 윅’을 본 것 같았어!”


“뭐야, 엄청 오래된 영화인데 그걸 봤어?”


“제일 좋아하는 영화거든. 4편까지 나오고 전쟁이 나서 시리즈가 영원히 끝나버렸지만.”


지원은 미소를 지었다.


“어째… 대화거리가 늘어난 것 같네. 키아누 리브스 이야기는 나중으로 미뤄두고 일단 일에 집중하자. 혁이는 여기 없는 것 같지만 여기가 뭐 하는 곳인지 알아보면 애가 있는 곳도 알 수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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