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를 달리는 의료버스 한 구석. 주변에는 의료기기와 가방 등 이것저것이 놓여있었다. 그 중에는 몇 주 동안 묵혀진 내 여행가방도 포함되어있었다. 운전석에서 시즈오카가 운전을 하고 있었고 조수석에는 유혜림이 앉아있었다. 보아하니 유혜림이 시즈오카의 수다를 받아주고 있는 듯 했다.
버스에서 승객들이 앉는 부분인 뒷자석은 거의 다 의료용으로 개조되었기에 나는 남아있는 의자 2개 중 한 곳에 앉았다. 운전석에 앉은 시즈오카와 대각선 방향이었다. 내 왼쪽 의자에 착석한 미야자키는 말없이 노트북으로 무언가를 조작하고 있었다. 화면을 보니 내 휴대폰을 둘러보는 것 같았다. 왠지 모르게 그녀에게서 동심이 발산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 때 리와인더 분들의 스마트워치의 전화벨이 울렸다. 스마트워치는 모서리가 뭉툭한 기다란 사각형의 모양으로 리와인더 소속인 3명 모두의 손목에 채워져있었다. 여기도 Rewinder이라는 글자가 쓰여있는 걸 보니 리와인더 조직이 쓰는 통신용 도구인 것 같았다.
내 휴대폰도 덩달아 울렸다. 아까 미야자키가 내 휴대폰을 해킹했을 때 깔았던 프로그램으로 오는 것이었다. 버스로 이동하는 도중에 미야자키가 어플리케이션 형태로 바꿔주기는 했다. 보아하니 디스코드같은 시스템이었지만 여기에 지도공유나 정보공유 등 개별의 정보 공유방이 여럿 있는 형태였다.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통화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다 통화를 받은 상태였다. 나도 얼떨떨하며 통화를 받았다. 들어가보니 이미 천 단장님이 무언가 말하고 있는 상태였다.
"이 세계 사람이 있으니까 해킹은 자제하는 게 어떨까 하네. 우리들이 이미 공개적으로 백두산이 언제 터질거다  선포해놓은 상태인데, 이것 때문에 언론이나 SNS 같은 데서 다 우리들 찾으려고 혈안이 되어있을 걸세. 하현일 씨가 곤란하지 않도록 하는 게 맞지 않나?."
내 얘기를 하고 있는 듯 했다. 일단은 가만히 들어보기로 했다.
"그러면 어떻게 할 건데요?"
시즈오카가 말했다. 어플리케이션의 통역 기능을 켜면 일본어로 말해도 화면에서 영어로 자동으로 번역해서 자막으로 띄워주기 때문에 언어장벽에 부딪힌 시즈오카도 쉽게 소통할 수 있었다. 나도 언어가 한국어로 번역되도록 설정했다.
"이번에는 조용히 구호작업만 하는 게 어떨까 하네. 사진이나 동영상만 찍어서 유튜브에 올리기만 해도 파장이 있을 거니까. 폭발하는 쪽이 잘 보이게 카메라 앵글을 잡고 카운트다운하면서 찍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걸세."
천 단장님의 말이 끝나자 대부분 수긍하는 듯한 반응이었다. 그리고 별로 할 말은 없어보였다. 그 때 누군가가 말했다. 이름이 'Eunjun Choi'라고 표기된 중년 남성의 목소리였다.
"그래서 내는 어떻게 해야 하겠소?"
북한 사투리였다. 사투리지만 한국어다보니 자막은 번역되지 않고 말한 그대로 나왔다.
"일단 그 쪽은 내 말대로..."
"폐기하십쇼."
나랑 비슷하게 들리는 나이대의 남자 목소리였다. 언어는 러시아어. 이름은 'Sergey Asimov'라고 떴다. 순간적으로 분노한 듯 다급하고 단호하게 말하는 투였다.
"그 계획 폐기하라고 했습니다."
"실행하는 게 나을 걸세."
러시아인 남자 아시모프가 숨을 고르며 격앙된 감정을 가라앉혔다.
"내가 이것만큼은 못 봐주겠습니다. 제가 평소에 말이 없지만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건 관철합니다. 그래서 이해해주십쇼. 급해서 바로 치고나왔지만 차분하게 다시 말합니다. 계획 폐기하십시오."
"인명피해를 생각하게. 북한 내전 모르나? 지금까지 몇 번이고 말했잖나. 내전으로 희생되는 사람들을 구하는 게 더 낫다고."
통화에서 원인 모를 묘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나는 당황하며 옆자리에 앉은 미야자키 쪽으로 '이건 또 무슨 상황인가요' 하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미야자키는 내가 보고있다는 것도 모른 채 반응이 없었다. 아니, 그보다 아무 생각도 없어보였다. 나는 앞자리로 고개를 돌려보았으나 운전에 방해될 것 같기도 하고 해서 일단은 기다려보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내전으로 희생되는 사람? 그건 차악입니다! 역사를 보십쇼. 내전 이후에 북한의 삶은 더 나아지지 않았습니까? 독재자를 그대로 놔두는 게 내전보다 더 혹독하고 가혹할 겁니다."
"아니. 그대로 두는 게 차악이네. 내전보다는 안전한 선택지야."
"그게 정녕 더 안전한 선택지로 보입니까? 지금 그 정부가 살아남아 이어진다면..."
"아 작작 좀 싸우라고!"
이번에도 나랑 비슷한 나이대의 목소리였다. 여성의 목소리에 언어는 중국어. 목소리에 깊은 빡침이 한껏 내재되어있었다.
"맨날 그 김정은 살리니 마니 뭐라고 하면서 자꾸 싸우는데, 나 더 이상 싸우는 거 보기 짜증나거든? 아 맞다 존댓말 써야되는데. 아무튼 싸우지 말라고요."
기세 좋은 다그침에 천 단장님과 러시아인 남자의 싸움이 수그러들었다. 얼마간의 정적 후 천 단장님이 다시 말을 꺼냈다. 나에게 하는 말이었다.
"하현일 씨, 실례 끼쳐드려서 죄송합니다. 이건 다음에 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천 슈어가 통화를 나갔다. 버스 내부에 험악하고 경직되었던 공기가 풀렸다. 통화방에 들어간 다른 사람들도 하나 둘 통화에서 나왔다.

시즈오카가 안심한 듯이 일본어로 뭔가 말했다. 그리고는 뭔가 깨달은 듯 나에게 통화를 걸었다. 내가 그 전화를 받자마자 그의 말이 물밀듯이 쏟아졌다. 
"아 생각해보니 이게 있었단 말이죠. 동시통역이라는 훌륭한 기술이 있는데 그걸 까먹었네요. 아 이거 참 곤란하게 됐네요. 손님께 실례를 끼쳐드리고. 분위기 전환 겸으로 궁금한 거 있으시면 뭐라도 물어보세요."
시즈오카의 말에 덩달아 긴장되었던 서서히 긴장을 풀 수 있었다. 원체 궁금한 것도 많았기에 나는 이 기회를 잡아 시즈오카에게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기로 했다.
"근데 평행세계에서 오셨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오신 거에요?"
"아, 그게 궁금하셨구나. 말해드릴게요. 그게 처음에는 아무한테도 안 알려주는 비밀사항이었대요. 저희들 중에는 천 단장님만 알고 있었고요. 원래 비밀이 많으신 분이시라 저희도 '이것고 비밀인가' 하고 궁금해하고만 있었죠. 애초에 리와인더가 왜 만들어졌는지도 제대로 안 알려주셨는데 이건 그거에 비하면 별 거 아니다라는 생각도 들고요.
아무튼 여기로는 차원이동기라는 걸 타고 왔어요. 작은 기계가 있고 그게 작동되면 그 일대에 뭔가 엄청나게 파바박 하면서 이쪽으로 건너오는 시스템이죠. 방송실같이 생긴 중앙관제센터에서 그 차원이동기를 가동시키는 거라 휴대용은 아니고 어떤 시설이 있어야 가동되요."
"그럼 이제 언제 다시 돌아가세요?"
"원래 몇 개월만 있다가 다시 돌아가려고 했어요. 천 단장님도 여기에 잠깐만 있으면 된다고 하셨죠. 근데 문제가 좀 생겼어요."
"문제라뇨?"
"그 작은 기계, 그러니까 차원이동기가 여기 온 후에 어느날 보니까 부서져있더라고요. 저희도 놀랐죠. '아니 이걸 부수면 이제 어떻게 돌아가냐?'라고 패닉에 떨었죠. 평소에 무뚝뚝으로 일관하시는 천 단장님도 이 때만큼은 분노한 게 대놓고 보이셨어요."
"차원이동기가 부서졌다고요? 누가 그랬대요?"
"몰라요. 저희도 알았으면 좋겠죠. 그래도 다행히 천 단장님이 이럴 때를 대비해서 원래 저희가 있던 세계에 '우리들이 6개월 안에 오지 않으면 그쪽에서 와서 구해달라'고 했으니 망정이죠."
뭔가 심각한 일이 일어난 것 같았다. 그러니까 리와인더가 원래 세계로 돌아가야 하지만 그 기계가 부서졌다는 것이었다. 이들에게 있어서 이는 끔찍한 일이었겠다는 생각에 팍팍 공감되었다.
"근데 아까 그 북한 내전이라는 게 뭐에요? 엄청 싸우시던데."
"아 그게 또 무슨 일이냐면 그런 게 있어요. 백두산 폭발이 곧인 건 아시죠? 이틀 뒤죠. 원래 저희 세계에서는 천지에서 내려온 물에 김정은이 휩쓸려 죽고 1년인가 2년인가 동안 내전이 일어나거든요. 그렇게 여러 세력이 치열하게 싸우다가 그 끝에 9군단이 이겼어요. 그 후로 9군단의 리진청이 반쯤 독재를 시작했죠.
그래도 김정은보다는 나았어요. 정치범 수용소니 생활총화니 이동금지니 같은 거 다 없애고 경제를 개방하는 등 확실히 발전하긴 했죠. 그래서 애매하거든요. 김정은을 죽게 두고 내전으로 사람들이 죽게 둘 지 아니면 죽음을 피하게 해서 김정은 체제를 유지시킬 지.
천 슈어 단장님은 김정은을 살리자는 입장이고 세르게이 아시모프 씨는 김정은을 죽이자는 입장이거든요. 지금까지의 행적을 보면 두 분의 가치관이 다른 것 같은데 그것 때문에 싸우셨던 것 같아요. 그래도 심각한 건 아니니까 걱정 마세요. 이렇게 가끔 둘이 싸우시지만 이런 케이스만 빼면 문제 없어보이거든요.
그나저나 저희가 이제 어디 가는 지 알아요? 린장이라는 곳인데요 거기가 압록강 강변에 있는......"
그렇게 계속 내가 시즈오카에게 뭔가를 물으면 시즈오카가 이에 장황한 대답으로 답해주는 것이 반복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린장에 있는 3등급 호텔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