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이야기



*


아무 진전도 없이 며칠이 지났다.


다시금 인간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여, 지상의 낙호 마을은 활력을 되찾았다.


우리는 마을에 체류하는 며칠 동안, 지상의 집다운 집에서 지냈다.


이 마을 원님은 진작 요괴에게 살해당하셨다길래, 적당히 빈집을 들어갔다.


그 집에서 4명이 다함께 무당 여인의 출산을 기다렸다.


황소 요괴가 날뛰던 시절의 임산부는 이제 무당 여인 하나만 남았다.


마지막 남은 임산부가 어느날 저녁에 신음하였다.



"으으, 나올 것 같아요."



식사 전이라 끼니가 고파지는 때였다.


나리가 급하게 천을 쳤다.


방의 가운데를 경계로, 방을 2등분하는 방식으로.


현대로 치자면,

커튼을 두어, 외부와 내부를 격리하는 탈의실이 있잖은가?


몹시 유사한 방법이었다.


무당 여인이 스스로 하반신을 보지 못하게 하기 위한 수작질이었다.



"애는 누가 받을 거요?"


"네놈이 하거라."



나리가 총잡이 여인에게 시켰다.


총잡이 여인은 거절했다.



"나리가 받어. 나는 칼이랑 가새 들고 있을 테니께."



아기가 요괴로 변하면, 요괴는 자신이 처치하겠단 뜻이었다.


가새는 뭐람.



"가새가 뭐요?"


"거시기. 탯줄 자르는 거 있잖어."



가위 아냐? 그거.


물이며 수건을 들었다.



"그러시오. 난 산모 상태나 볼 테니."



천을 젖히고 방 앞쪽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정해졌어도 시간이 오래 걸리는 짓거리였다.


이른 저녁 때부터 아프다고 하더니 이른 새벽이 될 때까지 아프다고 하였다.



"배고파 뒤지긌네."



어느샌가 총잡이 여인이 국밥을 한 그릇씩 들고 왔다.


누워있는 사람에게 먹이기도 곤란한 노릇이라, 우리끼리 먹어치웠다.



"치사하게... 저만 빼고 먹기에요?"



무당 여인이 투정 부렸지만 "산모는 불량식품 먹는 거 아니오" 라고 일축했다.


그랬더니 "분만식품이요...?" 라며 힘없이 되물었다.


특별히 대꾸하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힘을 주기 시작한 건

국밥을 다 먹고, 마을 사람들에게서 전에 받은 엿을 오물거릴 때였다.



"읏으응, 도사님. "



색다른 신음이었다.


총잡이 여인이 아는 체를 했다.



"내 아까침에 국밥집 가서 물어보니께,

자궁이 완전히 내려올 때꺼지 5 시진 남짓 걸린댔는디-."



5 시진이면 10 시간이다.


나리가 물었다.



"처음 산통을 호소한 게 술戌 시 아니었느냐?"


"유酉 시였소. 인寅 시까진 기다려야 할 거요."


"인쟈 인시쯤 됐을 겨."



인시, 3시에서 5시 사이다.


다시 천을 내렸다.


혹시 몰라 가져왔던 지팡이를 잡았다.



"해주解呪, 참말로 못하는 것이오?"


[....]



지팡이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이 며칠 그랬듯이.



"당신, 우릴 속였군그래."


[... 그때는 내가 힘을 되찾는 게 더 중요했으니까.]


"드디어 입을 여는군. 당신."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부러뜨리고 싶었다.


무당 여인이 전에 했던 말을 상기하며 참았다.


'힘을 회복한 신령이니만큼, 화를 사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화를 낼 상황도 아니었다.



"도... 도사님."



무당 여인이 보챘기 때문이다.


지팡이를 방구석에 내던졌다.


그까짓 것보다 중요한 건 달리 있었다.



"여기 있소. 나, 여기 있소."


"야야 구멍이 만개했구나!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인가보다."



천 뒤에서 나리가 실황 보고를 했다.


나리 참. 분위기 깨는덴 선수다.


어휘 선택이 저게 뭐람.



"으으으, 하으으읏...."



어째 힘 주는 소리가 제법 야하다.


사고 방식이 무당 여인한테 물들어서 그런 게 아니다.



"하읏, 흣... 흐으."


"왜 힘을 주다 마느냐? 나오던 애도 들어가겠구나."


"읏, 아으으. 하으읏 하앙!"



과장이 아니라 진실로 야하다.


이 신음은 누가 듣더라도 이견이 없으리라.


뺨이라도 얹어맞았다간 아프겠지 싶어 구태여 말로 고하진 않았다.



"도사님 배, 배 너무 아파요."


"어떻게 아프시오?"


"억지로 아랫도리를 찢어벌리는 거 같아요."


"그야 억지로 아랫도리를 찢어벌리는 거니까 그렇지.

엄살 피지 말고 힘 안 주겠느냐?"



나리, 혹독하리.


총잡이 여인이 쯧쯧 혀를 찼다.



"산파를 걸려두 꼭 이런 막되먹은 가시나한티 걸려가지고."


"그래서 당초에, 내가 네놈 보고 애 받으라고 하지 않았느냐!"


"고건 안 디야. 나가... 나가 칼 들어야 돼."



티격거리던 화목함이 증발했다.


냉혹한 현실의 추위가 재래했다.


애를, 산모의 눈앞에서 죽여야 한다.


엄밀히 따지면 천으로 가린 만큼 산모의 '눈앞' 은 아니지만.


요괴로 변할 테니 '애' 도 아니지만.


총잡이 여인이 분위기를 띄우고자 한마디했다.



"긍정적으로 보자구.

그란해도 원해서 만든 애는 아니잖어?"



한데 무당 여인의 의견은 그렇지 만도 않았다.



"원해서 밴 애는 아니지만.... 제 애란 말이에요.

제가 계속 데리고 키우던.

이제 겨우 정이 들던 참이었는데."



눈가가 그렁그렁하여 곧장이라도 울 모양새였다.


입가에 다급하게 엿을 물렸다.



"힘 주시오. 힘."



길게도 갔다.


이러쿵 저러쿵으로 벌써 또 1시진이 지난 거 같은데 기별이 없으니.



"나리, 뭔가 안 보이시오?"


"머리 끄트머리 나오고 있다."


"그걸 지금에야 말하시오?"



나리가 내 질책은 무시하고 중얼거렸다.



"머리카락이 있구나... 아기가." 



애가 머리카락이 있단 점에 놀랄 새가 없었다.


이어지는 나리의 다음 혼잣말이 퍽 경이로웠다.



"이거 머리털 끄트머리 붙잡고 잡아당기면 안 되는 게냐?"



입이 떡 벌어졌다.


총잡이 여인이 나 대신 나리를 꾸짖어주었다.



"엠벵! 드뎌 헤까닥해부릈나보네.

그런 생각일랑은 하덜 말어!

이 양반 말뽄새 보니께 가마이 놔두믄 사람도 잡긌네."


"농지거리한 것 갖고 정색은-."


"무시 정색이여 정색은!

아 머리칼에 손 갖다대던 거 나가 똑똑히 봤는디!"


"하아. 하아, 흐으, 도사님... 두분이 뭐라고, 흐으읏! 하시는... 거에요?"



소란이 산모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실토하기 거시기니하여 적당히 둘러댔다.



"애 머리카락이 보인다 했소."


"정말이요? 그럼... 많이 왔네요, 흐으읏."


"머리통 거의 다 나왔느니라."



천 뒷쪽에서 보고했다.



"살살 잡어, 나리. 살살."


"네놈은 어서 칼이나 들어라. 시간 없으니."



칼.


그 말을 듣고 총잡이 여인의 말에서 돌연 기운이 빠졌다.



"그, 그려. 알았어."



천 뒷쪽이 바스락거렸다.


아마 총잡이 여인이 단도를 집어드는 것이리라.


무당 여인에게 일의 진행상태를 알려주니 씁쓸한 낯으로 "조금... 남았다고요?" 라 했다.


서로가 고민하는 바가 있어 침묵에 빠졌다.


무당 여인의 굳게 쥔 주먹이 쓸쓸해보여 지팡이를 쥐어주었다.


지팡이가 무당 여인의 악력에 고통 받았지만, 이 정도 사소한 복수는 괜찮겠지.


침묵을 깬 건 나리였다.



"애가 멈췄다."



*



애가 멈췄다.


세상의 빛을 향해 전진하던 아이가, 진격을 멈췄다.


자칫 산모의 목숨과 직결될 수 있는 사안이었다.



"왜 이런...."


"힘 주고 있는 게 맞느냐?"



나리가 물었다.



"주, 주고 있어요."



무당 여인은 거짓말이 서툴렀다.



"주고 있다지 않소."



나는 그녀를 감싸주었다.


얼러서 해결이 되려나 의심하며 무당 여인에게 말걸었다.



"왜 힘을 멈춘 게요."


"그, 그, 그런 적 없어요."


"거짓말 할 때면 입술을 동그렇게 마는 거, 알고 있소?"



무당 여인이 자기 입술을 매만져 확인했다.



"거짓말이오.

이런 간단한 수작에 속는 거 보니 내 추측이 맞나보구려."


"도사님...."


"자백하시오.

빨리 분만을 마쳐야지, 왜 스스로 위험을 초래하는 게요."


"... 도사님도 이유는 아시잖아요."



알지. 그 이유.


건드리기 무안하고 부담스러운 그 이유.


모를 리가 없었다.



"혹시 모르지 않소.

아이가... 그냥 아이일 수도 있고."


"확인하기 두려워요."


"윷을 던져보지도 않았잖소.

도가 나올지 모가 나올지 어찌 아시오."


"'도' 가 나온 사람들의 증상을 봤잖아요. 저하고 부합했고."



완강한 절망이로고.


무당 여인은 말씨 하나하나가 축축 늘어져있었다.



"보세요 이 머리. 숫눈처럼 희잖아요."



백발이 많을수록 저주가 진행된 거라했지.


무당 여인의 머리에서 흑발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주의 깊게 살펴보려니까 무당 여인이 머리를 뺐다.



"애가 태어나고, 요괴로 변하고, 어미를 먹으려 들다가, 칼에 찔려 죽고.

그걸 저더러 보라고요...?"


"보진 않겠지. 천으로 가려놨잖소."


"어쨌거나요.

제가 낳은 아이인데."


"그렇더라도 윷은 던져야지. 아님 어쩔 셈이오?"


"이대로 있는 건-."


"그럼 죽잖소."


"어차피 죽을 애라면 그것도 나쁘지 않잖아요."


"당신도 죽잖소."



무당 여인이 입을 닫았다.


난 잔소리를 이어나갔다.



"애 머리가 보인 이후로 꽤 시간이 경과했소. 어서 끝내시오.

끝내고, 방금 탐스럽게 쳐다보던 국밥이나 먹도록 하시오."


"...."


"끔찍해서 그런 거라면 방 밖에서 죽이라고 전하겠소."


"...."


"뚜껑을 열어볼 용기가 그렇게 없소?"


"... 네."


"제길, 그런 겁쟁이가 그땐 뭐하자고 그렇게 대담하게 굴었소?"



끝내 참지 못했다.


답답함에 성을 내고 말았다.



"그때라뇨?"


"알잖소! 당신이 키... 아니 그, 아무튼, 나리와 둘한테는 비밀로 하라고 했던 거."



땀에 젖은 몸으로 무당 여인이 기억을 더듬었다.


더듬은 무당 여인의 손끝에 부끄러운 기억이 있었다.



"그, 그건... 비상사태니까 그랬죠."


"비상사태니까? 지금도 비상사태요!"


"그리고 그때는 무섭지 않았다고요.

아니, 무섭긴 했지만! 무서웠지만, 지금하곤 달랐다고요!"


"어떻게 달랐단 말이오?"


"무서웠지만 나 때문에 무서운 게 아니고...."



무당 여인이 급격히 성량을 줄였다.



"도사님 때문에 무서웠단 거란 말이에요."


"내가 뭘 어쨌단 말이오?"


"도사님이 어쨌단 건 아닌데... 아이, 몰라요."



모른단 사람치고 정녕 모르는 사람 별로 없다.


나는 무당 여인의 말뜻을 알면서도 모른 체하였다.


들어야 하는 구절이 있었다.


꼬치꼬치 추궁하니 그녀가 고백했다.



"도사님이 다칠까봐 무서웠으니까. 그래서 무서웠다고요.

제가 아니면 정말로 그렇게 될 분위기였잖아요."


"왜 내가 다치는 게 무섭단 거요?

나리랑 총잡이 여인이 다칠 우려는 없고?"


"있죠. 있었지만 다르다고요.

도사님이 다치는 것하곤 느낌이 다르다고요."


"어떻게 다르시오."


"그읏, 그만 좀 물어보세요. 정말로 몰라요."



산통에 젖고 기력이 빠져 붉게 달아오른 얼굴.


무당 여인의 지친 얼굴 위로 부끄러움이 한꺼풀 올라갔다.



"모르시오? 난 알고 있소."



나는 부끄러움을 낚아챘다. 무당 여인의 손도 낚아챘다.



"내가 왜 이 변태 같은 여자한테 그런 생각이 들까 자괴감이 들면서도, 늘상 지우질 못했으니까.

내가 지금 품고 있는 마음과 대동소이한 마음일 테니까."



무당 여인의 손을 내 가슴에 가져다대게 했다.


무당 여인만큼은 아니지만 꽤 뭉클한 내 가슴을 헤치고, 심장 가까이까지 잡아끌었다.



"이거 아니시오?

내가 다칠까 염려했다는 당신의 그 무서움은?"


"앗, 엇, 앗, 도, 도사님-."


"다르오? 내 두려움관?"


"그게, 거, 그게-."


"힘 주시오. 배에.

내 얼굴을 봐서라도."


"그, 저기...."



"예, 예" 하며 무당 여인이 고개를 숙였다.


숙인 고개 뒤로 붙은 귀가 붉었다.


내 귀랑 대동소이하였다.



"읏, 아으응, 하아하으... 으읏!"


"나온다, 다시 나와!"



얼마 되지 않아 나리가 "됐다! 다 나왔느니라!" 라고 전했다.


기진맥진한 무당 여인이 칭얼거렸다.


드러누운 무당 여인의 불규칙한 호흡에 맞춰,

그 포용력있는 가슴이며 그보다 더 포용력있는 배가 움찔거렸다.



"도사님, 도사님...."


"여기 있소. 나 여깄소."


"엄청 힘들어요.... 안아주세요."



속마음 토로한지 얼마나 됐다고 금새 기고만장해지는 여인이었다.


피식 코웃음이 나왔다.



"아직은 이르오."


"흐이잉."



천 너머로 목만 빼꼼 내밀었다.


총잡이 여인이 아이의 탯줄을 자르려던 참이었다.


가위를 든 손이 떨리고 있었다.



"나가 혀야지.... 나가."


"아직 탯줄이니라. 어서 잘라라."


"그려 아직 탯줄잉께."



가위가 탯줄에 다가갔다.


한번 멈칫하곤, 가위는 탯줄을 잘랐다.


아이는 잠들어있었다.



"인쟈 야를... 깨워서."


'철썩-!'



나리의 거동은 거침없었다.


엉겁결에 발바닥을 맞은 아이가 휘둥그래져서 눈을 떴다.


겨울의 찬바람 탓인지 아이가 기침을 했다.



"콜록!"


"아아."



혹시나 하는 마음을 내심 품고 있었다.


아이의 기침에 그 여린 마음이 들썩였다.



"슬퍼하지 마라. 첫번째 기침이 아니더냐."


"콜록."


"또 혔어."


"두번은 할 수도 있지.

네번째만 아니면 되지 않느냐."



나리가 위로하였다.


무당 여인이 "도사님" 이라며 날 불렀다.



"이거... 도사님 거 아니죠?"



나는 돌아보지도 않고 "아닐 게요" 라 답했다.


"뭔 줄 알고 그렇게 말하세요" 라며 투덜거렸다.



"중요한 거니 어서 와서 이것 좀 보세요! 도사님."


"콜록."



세번째 기침이 일었다.



"세번째... 혔어."


"... 칼 준비하거라."



보고 있어도 유쾌한 상황은 없을 듯하여, 천 안쪽으로 돌아왔다.


무당 여인이 주먹을 쥐고 있었다.



"이거요. 도사님 거에요?"



영문을 모르겠어서 멀뚱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천 뒷쪽에서 비장한 대화가 오갔다.



"네번째만은 하지 말어라. 지발."


"그러면야 좀 좋겠느냐."


"만일에라두 아가 변해부렀는데 못 찌르믄 우짠디야."


"어쩌긴. 산모가 죽는 게지."


"나가 그걸 몰라서 물어봤긌는가?

지발.... 아가, 웃어라. 잉?"



그녀가 주먹을 가까이에 들이댔다.



"자세히 보세요."



주먹에 실이 붙어있었다.


검은색 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 보일 정도로 가는 실이었다.



"실이구려. 뭐 어쨌단 게요? 이게."


"아니에요. 똑바로 보세요."



실이 아니라고?


듣고보니 실치곤 가늘기도 하다.


어두우니 뭐가 보여야지 원.


그리고 대단히 질기다.


힘을 줘도 안 끊어진다.


꼭 머리카락 같다.


머리카락....


머리카락?


때마침, 천 너머에서 낭보가 들렸다.


말도 제대로 구사 못하는 이가 들려준 낭보였다.



"우... 응애! 응애애앳!!"






*


오랜만에 하는 백업이다.
이번화 원본은 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