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10월 29일, 오전 11시. 서울대학교병원 병실


"-각하. 괜찮으십니까?"


비서실장 김계원이 물었다.


"-김계원인가? 괜찮다네. 나는."


"-각하. 오른쪽 어께에서 등 부분까지 총알이 관통했습니다. 몇 시간의 걸친 대수술 끝에 오른쪽 어께의 관절과 인대, 근육을 어느 정도 복구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총알이 만약 심장 쪽에 맞았다면, 생명이 위험했었을 겁니다."


김계원의 옆에 있던 주치의가 말했다.


"-그나저나, 차 실장은?"


"-차 실장님은.. 안타깝께도 과다출혈로...."


"-....."


박통은 침묵에 잠겼다.


자신의 앞잡이였던 차지철이 죽었고, 중정부장 김재규의 배신과 자신에 대한 살해 시도.


청와대 내에서의 분열과 자신의 지지세력일줄 알았던 마산에서의 시위로 인해 지지세력 기반도 철저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박통은 이 상황을 해쳐나갈 하나의 "방법"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박통은 18년간의 집권 동안 판단력이 심하게 흐려져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방법"을 찾을 길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1979년 10월 29일, 오후 4시 40분. ADD 안전가옥


"-대통령 각하께서 오늘 병원에서 깨어나셨다 하더라."


연구원 정안민이 말했다.


"-다행히 예산 배정이 불확실해질 이유는 없어졌군."


연구원 심창식이 말했다.


"-야, 근데 요즘 연구소에 이런 이야기가 나돌더라?"


"-뭔데? 말해봐."


"-우리 연구소가 미국에 파견한 첩자를 통해 미국의 어떤 미사일의 설계도를 빼냈다고 하더라?"


"-그럴리가, 미국이 얼마나 정보 보호를 철저히 하는데. 만일 빼냈다 하더라도 바로 들켰을껄?"


"-나도 의심스러워. 하지만 북한놈들과의 경쟁을 할려면 이 정도는 감수해서라도 빼냈을껄? 당장 백곰이 미국때문에 막힌거 봐봐."


ADD는 박통의 명령 아래, 북한과의 전쟁에서 대적할만한 병기인 지대지미사일 "백곰"을 제작중이었다.


하지만, 미국의 지미 카터 대통령의 평화주의적 정책으로 개발은 순탄치 않았고, 그 과정에서 "한미 미사일 사거리 지침"이라는 치욕적인 조약을 맺어야 했다.


그러나, ADD와 박통은 비밀리에 백곰 미사일을 계속 개발해 오고 있었고, 이 개발 과정에서 1978년, ADD의 한 파미 첩자가 미국의 어느 미사일의 설계도를 빼내오는데 성공했다.


그 설계도의 존재는 비밀 속에 묻혀지고 있었고,  그 설계도는 박통의 서랍 속에 먼지만 쌓인 채 방치되고 있었다.






그러나...





1979년 10월 31일 오후 2시, 청와대 집무실


박통은 퇴원한 후 집무실에 앉아 고민하고 있었다.


마산에서의 시위의 진압이 거의 실패로 돌아갔고, 쌍방으로 수많은 희생자가 나왔다는 보고를 들은 직후였다.


"-어쩐다..."


혼자서 속삭였다.



그리고 그는 책상 밑의 서랍을 열어 종이를 꺼냈다.



"-....이건...?"


ADD에서 빼낸 설계도였다.



"-그래.. 이거면은.... 그래..."


박통은 뭔가가 생각난듯 묘한 표정을 지었다.


오랜 집권 기간, 판단력이 흐려진 박통이었지만, 어느 정도 생각을 해냈다.



박통은 즉시 김계원을 불렀다.




1979년 10월 30일, 오후 5시. 김계원의 차량 안


김계원은 박통으로부터 받은 무언가를 들고 "어느 장소"로 가고 있었다.


운전수도 없었고, 오직 차 안에는 그 밖엔 없었다.



김계원은 무언가의 정체를 알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곧 김계원은 경부고속도로를 타기 시작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