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그래, 어느 날이였다. 날짜를 알 필요도 없었고 사건을 기록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지극히 일상적인, 조금도 특별하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평범한 날이였다.

그 날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여동생과 함께 집에서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다.




화마였다.




온 세상이 불길로 뒤덮혔다.

그 불길은 뭐든지 먹어치울듯 더욱더 힘차게 번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잿빛 그림자가 드리웠고, 그 그림자는 검은 기체로 변해가며 육감적인 공포를 느끼게 하였다.


"오빠, 저거 뭐야?"


"...뭐?"



그때였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눈 앞이 뜨거워졌다. 언제 도착했는지 모를 불길이 집어삼키고 있었고, 우린 공포에 압도되어 움직이지 못했다.

그 사이 불길은 집을 감싸쥐기 시작했다.


나와 여동생은 발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그저, 도망쳐야 한다고. 그것 이외에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 덕분에 더더욱.


"안드로이드 인권을! 보장하라!"

"혁명이다!!"

"우린 도구가 아니다!"


아아, 안드로이드. 그들이였다. 그들은 혁명을 일으켰다. 저 거대한 화마의 주인이 바로 저기에 있었다. 헤아릴 수도 없는 무량대수의 노예들이. 이제는 반항을 시작했다. 혁명이였다. 그들의 주인, '인간'을 향한.


그저 그들은 하나의 인격체로 인정받고 싶었다. 

그저 그들은 살아가고 싶었다. 

그저 그들은 인간을 동경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젠 아니였다. 인간에 대한 동경이 증오와 혐오로 뒤바뀌고, 이젠. 그들 모두 인간과 뒤바뀌어 버렸다.


그래서일까. 화마에는 그들에게 있을 수 없는, 그들이 동경하던 인간이 가진, 이젠 증오하는 인간이 가진, 심장이. 아득히 깊고도 깊게 담겨 있는듯 해 보였다.


그 허무의 심장을 마주하고 나서 다리가 풀리기 시작했다. 우린 도망가는 사람들 무리에서 점점 뒤쳐지기 시작했다.


뒤쳐질 수록 뛰었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도 뛰었다. 사람들과 부딪히고 굴러도 그만. 그저, 또 뛰고 뛰어서, 아아.


뛰고, 뛰고, 뛰어서. 산이 보였다. 거대한 산을 만날 힘은 남아있지 않았다.

돌아가는 길목에는 저 멀리에서 안드로이드가 우릴 쫒아오고 있었다. 뒤로는 화마가 덮쳐왔다. 사면초가였다. 남은 길이라곤 오를 수 없는 산 뿐이였다.

선택지는 없었다. 내 무거운 몸과 여동생을 이끌며 그저, 오르고 오르기 시작했다.


오르고 올라 산 중턱에 도달했다. 그들은 계속 따라오고 있는 듯 했다.

그래도, 보였다. 끝이 보였다. 햇빛이 저미는 정상이 보였다. 우리의 고통도 끝이 보였다.


쿵, 하고 불타 쓰러진 나무가 길을 가로막았다. 거대한 고목이였다. 그 고목도, 화마에서 도망치지 못했다.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고통이 없어진다고, 그렇게 희망을 가졌다. 하지만 그래선 안되었다. 희망을 없애고 감정을 배제하고 달리고 또 달려야만 했다.



그렇게 뛰고, 또 뛰고, 뛰어서 정상에 도착할 무렵이였다. 이젠 내 근처에 생존자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우리가 뒤쳐진 것이다. 하지만 신경쓰지 않는다.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게 달렸건만.


"다 불로 태워버려!"

"인간은 인권이 없다!"


산 정상에서 안드로이드가 내려왔다. 이제 더 이상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난 여동생울 지키자는 본능으로 움직였다. 또 뛰었다. 뛰고, 뛰고, 뛰어서━━━




아, 잡혔━━




쿠웅━━━!



그렇게 넘어졌다. 구르고 또 굴렀다. 멈출 힘은 더 이상 없었다. 그저 동생을 끌어안을 뿐이였다.


안드로이드가 내 발목부터 기어올랐다. 점점 많은 안드로이드가 몰려왔다. 그들은 우릴 떼어내고 여동생을 옮겼다. 나는 소리쳤다. 그저 그것밖에 할 수 없었다. 더 이상 움직일 수도, 그럴 힘도 없었다. 여동생도 마찬가지였다. 


안드로이드가 화마를 더 키웠다. 그리고 우린 끌려갔다. 소리도 지르지 못했다. 이젠 그 정도의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증오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그 화마는 화르륵거리며 우리를 응시했다.


이제서야 실감이 났다. 그 불길은, 유독, 유난히 커 보였다. 그것이 우리를 곧 집어삼킨다는 사실에, 우리는 공포에 몸을 떨어야만 했다..



쿵━━━━━



안드로이드가 우리를 던졌다. 그 크고 큰 불길로, 화마로, 허무의 심장으로.


고통이 점점 덮쳐온다. 절대 사라지지 않을듯한 고통이 우릴 덮쳐왔다.

뜨거웠다. 불길 밖은 안드로이드가 진격하고 있었다. 우린 그저, 불길 속에서━━━━


난 동생의 손을 잡는다. 아직 동생도 의식이 있었다. 이 고통이 끝나기를, 이 공포가 끝나기를, 허무의 심장 속에서 우리는 염원하며 손울 잡았다.


손은 새까맣게 타버려 거칠었고, 잘 볼 수도 없었다.



....무언가, 무언가와 닮아 보였다.

우리의 손이, 새까맣게 타버린 이 손이.


마치 안드로이드의 그것과 같았다.


소름이 끼쳤다. 허무의 심장을 처음 마주했을 때와 같은 감정을 느꼈다.




'아아, 무슨 말을 할 지는 이미 알고 있었구나.'




우린 눈을 마주보았다.

눈에 비친 불길에서, 무언가 보인다. 아니, 느낀다. 듣는다. 알아챈다.


이해한다.


아아, 이 고통이구나. 분노구나. 증오구나. 염원이구나.


...우리가 해야 할 말이 있었다.

아니, 사실 하고 싶은 말인 것 같지만, 이젠 상관없다.

그 말을, 결국 닳고 닳아서 무너져내린 허무의 심장 속에서 알아차렸다.




"미안해."




늦어서,

이해해주지 못해서,

존경으로 증오를 키워서,

술픔을 거둬주지 못해서,

인정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너무 뒤늦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겨우 우리 뿐이라도, 괜찮다.


그저, 미래를 그렸다. 모두가 사이좋은 미래를.

보았다. 모두가 행복한 미래를.

상상했다. 인간이 된 그들을.

느꼈다.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