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이 도서관에 나 말고도 누군가 있다.

 

 분명 잠깐이었지만 발소리를 낸 이가 평범한 사람은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꽤 거리가 벌어져 있는 것 같은데도 상당히 크게 들리는 걸 보면 덩치가 꽤 있는 것 같다.

 

 쿵! 쿵!

 

 ‘그렇게 신경 쓸 필요는 없겠지. 어차피 꿈속인데.’

 

 난 굳이 발소리를 신경 쓰지 않고 다시 도서관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발소리는 점점 커져갔고, 곧 책장 뒤에서 거대한 누군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예상대로 매우 거대했다. 키만 대강 약 5m 정도 되어 보였다.

 

 그것의 겉모습은 푸른빛의 투박한 전신 판금갑옷을 입은 거인 기사였다.

 

 왼손에는 책이 꽂힌 커다란 책장을 방패삼아 들고 있고, 오른손에는 거대한 워해머를 들고 있다.

 

 그 거대한 기사의 모습에 난 기가 꺾인 채 간신히 입을 열었다.

 

 “누, 누구시죠?”

 

 오히려 기사는 역으로 질문했다.

 

 “그러는 너야말로 누구지?”

 

 쏘아붙이는 말투를 보면 날 경계하는 것 같았다.

 

 난 침을 삼키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꿀꺽. 저, 저는 헨리라고 합니다.”

 

 “그래. 난 책의 기사라고 하네. 여기는 무슨 일이지?”

 

 “여기는 꿈속 아닙니까? 사람이 꿈을 꾸는 게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자 기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한결 친절해진 말투로 이곳을 설명했다.

 

 “꿈속이라…. 꿈을 통해 이곳으로 들어오신 모양이로군. 이곳은 기억의 도서관이야.”

 

 “기억의 도서관?”

 

 “그래. 이곳은 수많은 세상의 모든 기억들이 보관된 세상이야. 모든 기억들이 책의 형태로 보관되지.”

 

 ‘책의 형태라, 그럼 이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이 전부 누군가의 기억이 적혀있다는 말인가?’

 

 “그런데 대체 왜 제가 여기로 온 겁니까?”

 

 “당연하지만 기억은 꿈을 형성하는 기초적인 토대지. 꿈을 통해 여기로 오는 게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야.”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라니, 아무래도 나 말고도 여기 오는 사람이 꽤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게 이상한 일이 아니라면 왜 아무도 꿈을 꾸다 이런 곳으로 올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거지?’

 

 아니지. 어차피 꿈인데 그런 사실은 중요한 게 아니지.

 

 일단 여기부터 나가야겠다.

 

 “네.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출구는 어디입니까?”

 

 “출구? 이봐, 이곳은 자네가 살던 세상과 완전히 다른 세상이야.”

 

 “다른 세상이라고요?”

 

 “그래. 육신은 당신 세상에 있고, 정신만 이곳에 있으니 시간되면 알아서 당신 침대 위에서 깨어날 거야.”

 

 이걸 믿어야할지, 말아야할지는 모르겠지만 어차피 꿈인 건 확실하다.

 

 굳이 조급해할 이유는 없다. 시간이 알아서 해결해줄 것이다.

 

 “네. 그런데 당신은 이 도서관의 주인이신가요?”

 

 “아니. 이 도서관의 주인은 따로 있네. 난 그저 도서관의 사서들 중 한 명에 불과하네.”

 

 대체 이 도서관의 주인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평범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다.

 

 어쩌면 강대한 권능을 가진 신과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사서도 있어요?”

 

 “당연하지. 이곳도 관리가 필요한 곳이야. 대부분 이 도서관의 주인이 만들어낸 권속이지만, 나 같은 예외도 있지.”

 

 “예외? 당신도 저처럼 평범한 사람이었나요?”

 

 “그래. 당신과 같은 세상 출신은 아니지만.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소원을 빌 기회를 얻게 되었어.”

 

 “좀 더 자세히 말해주시죠.”

 

 그러자 기사는 불쾌하다는 듯 나를 응시했다.

 

 “혹시 남의 과거 캐는 데 관심이 많나?”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튼 무슨 소원을 비셨습니까?”

 

 “그래서 책 마음껏 읽을 수 있게 해달라고 빌었는데 그대로 이루어졌지.”

 

 소원을 들어주는 존재가 무엇이었는지, 과거에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궁금했지만 기사는 더 이야기하지 않았다.

 

 한 가지 유추할 수 있는 거라면 예전에도 기사로 살아갔을 거라는 것 정도다.

 

 아무래도 자기 과거를 자세히 말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하긴 초면인 사람에게 자기 과거를 줄줄 늘어놓는 바보는 없지.’

 

 “그나저나 조금만 다듬으면 좋은 소재가 될 것 같네요. 모든 기억들이 기록된 도서관이라….”

 

 “유감스럽지만 꿈에서 깨면 도서관에서 눈을 뜨는 장면만 떠오를 거다.”

 

 “전부 잊히는 겁니까?”

 

 “아니. 하지만 주마등을 볼 때가 아닌 이상 나머지는 절대 떠올리지 못할 거다.”

 

 ‘아쉽네. 소재로 쓸 순 없겠군.’

 

 “그런데 소재를 언급하는 걸 보면 문학적인 활동을 하는 것 같은데 혹시 작가인가?”

 

 “은행원입니다. 시와 단편소설을 몇 편 써본 적은 있지만.”

 

 그러자 기사는 흥미를 보이며 좀 더 자세하게 질문하기 시작했다.

 

 “그래. 겸업을 할 수도 있지. 혹시 따로 출판은 해본 적 있나?”

 

 “없습니다. 신문사에 기고해서 인세를 좀 받은 적은 있지만.”

 

 “그럼 연재를 한 건가?”

 

 “아니요. 반응이 나쁘지 않아서 편집장에게 제안을 받은 적은 있었죠.”

 

 “하지만 결국 거절했다는 얘기로군. 혹시 지금도 글을 쓰고 있나?”

 

 “네. 장편소설을 쓰고 있는데 잘 되지는 않아요.”

 

 “왜 잘 되지 않는지는 생각해보았나?”

 

 “일단 연습이 부족한 탓이 크죠. 여태껏 단편과 시만 써왔으니까.”

 

 “처음부터 잘하는 인간은 없지. 위대한 거장들도 처음에는 다 그랬고.”

 

 “또 독자들의 흥미를 끌 만한 독창성도 보이지 않습니다.”

 

 “독창성이 보이지 않는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전 평범한 사람이거든요. 가난하거나 부유하게 살아본 적도 없고, 그렇다고 또 어디 여행을 간 적도 없죠.

 

 그렇다고 딱히 자신만의 경험이 있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닙니다.”

 

 기사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보아하니 뭘 단단히 잘못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군.”

 

 다시 입을 연 기사는 진지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쿵.

 

 기사는 책장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손을 넣어 책장에 꽂혀있던 ‘모비 딕’이라는 책 한 권을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