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점이면 좋겠다.’라는 소망만을 갖고 임한 시험이었다. 


 내가 남들보다 앞서 본 적이 없다는 걸 똑똑히 알고 있음에도 시험장 안, 엄숙한 분위기를 마주하기만 하면 이상하게 헛된 욕망이 피어오른다. 모두가 똑같은 뒤통수를 한 채 고개를 숙이고 있다. 이번 시험을 위해 쌓아놓은 지식을 되짚는 놈,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자신만의 신에게 기도하는 놈, 마지막으로 가족들의 얼굴을 떠올리는 놈... 그것들의 끝은 공통적으로 시험이 성공적으로 끝나기를 기원하는 마음이었다. 


 시험은 이미 시작되었다. 나 또한 전등이 내비치는 은은한 직사광을 견디며 글자가 적힌 종이 몇 장을 응시한다. 시험지를 빽빽이 채운 작은 글자들은 찌푸린 눈알 사이로 다가와 괜스레 더욱 어지럽게 만든다. 


 곳곳에서는 목제 의자가 삐걱대는 소리가 날카롭게 들려온다. 안 그래도 어려운 시험, 이젠 이런 작고 보잘것없는 것들까지 나를 괴롭힌다. 어떤 선택이 맞을까, 2번? 3번? 아무래도 잘 모르겠다. 아, 이 문제는 이게 답이지. 아직까진 풀만 한 데? 이 문제는 처음 보는데... 이럴 때 필요한 건 약간의 모험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 보기를 줄여 나의 운을 믿고 하나를 고른다. 이제 남은 건 잠깐의 기도. 문제 출제자에게, 혹은 나를 아는 모든 이들에게 부디 나의 선택이 그들에게 도움이 되었기를, 나지막이 그리고 간절히 빌어본다. 


 째깍째깍, 불길한 간격으로 들려오는 시계 소리는 음습한 기운을 자아낸다. 사람들을 한가득 담고 있는 공간 이리 저리를 둘러봐도 시계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데도 말이다. 그럼에도 그 소리는 커져만 가고, 마음은 점점 조급해진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남았는지 모르겠다. 


 문제를 읽는 시간은 짧아지고 정답을 선택하는 순간조차 간결해진다. 너무 섣부르게 풀고 있나, 하는 불안감이 가슴 한편에 자리 잡지만 애써 그것을 무시한다. 한곳에 응집된 그 불안감을 마주하면 내가 틀렸을 거라는, 첫 문제부터 지금까지 잘못된 선택을 해왔을 거라는 후회와 혐오에 휩싸일 것만 같아서. 나는 그것을 마주할 용기가 없다. 마주하고 싶지 않다. 그렇기에 어느새 마지막 문제까지 풀고도 올바른 정답을 선택했는지 검토해보지 않는다. 


 이미 푼 문제를 다시 보면 어째선지 내가 고른 선택이 틀렸을 거라고 가정하고서 문제를 읽게 된다. 그래야 그것이 오답인지 알 수 있으니. 나는 그러지 않는다. 이전 문제로 돌아가 한때의 내 선택을 부정하고 다른 선택이 정답일 거라 확정 짓는 짓 따윈, 하고 싶지 않다. 옆자리의 누군가가 내게 말을 걸었다.


 만약 그게 진짜 오답이라면 후회하지 않겠어?


 아니, 후회하지 않는다. 그 오답 또한 내 손으로, 내가 직접 정한 정답이니. 나는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존중한다. 오답이라는 사실보다는 그 오답으로 생길 수 있는 여러 가능성을 상상한다. 한순간의 오답으로 그 끝 또한 불행일 것이라는 확신은 존재하지 않으며, 약간의 실패는 오히려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이제 시간이 다 됐다. 그동안 고생한 연필 한 자루를 내려놓고 끝을 알리는 종소리를 음미한다. 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만약 내가 오답에 후회하는 인간이었더라면, 나는 결코 시험의 정답을 확인하지 않으리라.

 

 “...버지, 아버지!”


 한 청년이 구슬프게 그의 아버지를 부르고 있었다. 피곤으로 찌든 눈과 양복 차림새는 그가 일하던 도중에 급히 달려왔다는 사실을 알리고 있었다. 그런 아들의 부름에 아버지는 힘겹게 눈을 떠본다.


 “아버지! 괜찮으세요? 정신이 드세요?”


 하지만 그의 아버지에겐 대답할 기력은 남아있지 않았다. 청년도 그것을 알아차렸는지 구슬프게 맺힌 눈동자로 말없이 아버지의 쭈글쭈글한 손만 쓰다듬는다. 그에게 더 이상 젊은 날의 생기란 존재하지 않았고 오로지 영식을 위한 준비만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아들의 손을 맞잡고 주위를 둘러본다. 그가 지금껏 해왔던 정답인지 오답인지 모를 선택의 연속들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탐닉한다. 무엇하나 잘하는 일이 없어 이리저리 치이며 고생하던 과거의 나, 그 속에서 이루어낸 작지만 강렬했던 한 여인과의 인연, 그리고 싹튼 한 생명. 완만히 해결할 수 있는 일 따윈 없었다. 처음만 존재하는 인생 중 처음으로 마주친 일들이었기에.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아이 엄마와의 이별, 곁을 지켜줄 보호자를 잃은 아이, 그럼에도 올곧게 자라 지금 내 곁을 지켜주는 아이. 그의 주름진 눈가 사이로 짤막한 눈물이 흘러내렸다. 


 비록 그는 마지막 문제의 정답을 고른 뒤였기에 더는 그가 할 수 있는 선택이 없었지만, 결코 후회하진 않는다. 정답을 확인해보지 않은 선택들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고 이렇게 아들을 옆에 둔 채 세상에 머물다 돌아간다는 사실이 그를 기쁘게 했다. 그리고 마지막 기력을 다해 그의 손과 눈은 다시 아들을 향한다. 다만 딱 한 가지 그가 바라는 것이 있다면, 아들에게만큼은...

 

“내 선택은 백 점이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