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미정 

 

 

 


평생토록 살아간다 하여 억겁(億劫)이라.

 

절대 돌아갈 수 없다 하여 귀금(歸禁)이오

 

서로 멋대로 죽고 죽인다 하여 천살(擅殺)이니

 

억겁귀금천살지(億劫歸禁擅殺地) 줄여서 겁살지(劫殺地)라 불리는 곳.

 

한낱 땅이자 지역인 그곳이 혼돈(混沌)의 마물(魔物)이라고까지 불리는 장소.

 

그런 장소에서 한 명의 존재가 나타났다.

 

 

 

* * *

 

 

 

구슬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밤이었다.

 

왠지 모르게 그윽해지며 마음이 가라앉는 그런 날.

 

천하를 양분하며 군림(君臨)하던 태천무가(太天武家)가 무너졌다.

 

무림(武林)에 중원(中原)에 천하(天下)에 수많은 각종의 세력이 탄생하고 지고를 반복하는 현실에서 고고하게 절대적인 입지를 공고히 하던 군림가(君臨家)였다.

 

권불십년 화무십일홍(權不十年 花無十日紅)이라.

 

태천무가의 세월은 고작 십 일과 십 년의 세월따위로 비할 바는 아니나.

 

전조도 없이 한순간에 무너진 그 모습은 그 구절을 생각나게 만들었다.

 

휘이이잉!

 

무궁(無窮)은 긴 세월로 인해 변해버린 건물을 바라봤다.

 

마치 세월의 무상함을 알리듯 보여주는 건물들.

 

하지만 동시에 세월로 인해 풍화(風和)되었음에도 엄청난 위용을 자랑하는 하나의 군성(群城).

 

태천무가(太天武家).

 

달리 태천존가(太天尊家)라 불리기도 했던 곳.

 

무림 위에 군림하는 군앙천(群仰天)의 시작과 함께했으며 달리 군앙천의 칠대세가(七大世家)라고도 불렸던 장소.

 

동시에 태어났을 때 아니 태어나기도 전부터 살아왔던 그리움이 가득 담긴 장소.

 

웅장했던 그 모습은 사라지고 세월에 의해 바스라진 모습이 차갑게 가라앉은 그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킬 정도였다.

 

 

그 누구도 도와주지 않았구나…….’

 

 

그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어주는 건 다름 아닌 인간관계였다.

 

태천무가이자 태천존가로 천하를 질타하던 시절, 천하의 그 어떤 가문도 그 앞을 가로막지 못하였으며, 아부하기 바빴다.

 

하지만 그 모든 게 허상이었다.

 

 

너무 늦게 돌아왔습니다.’

 

 

그간 스러져 간 이들을 향해 무궁은 잠시나마 눈을 감으며 그리움과 그리고 분노가 담긴 인사를 건넸다.

 

이후 차마 계속 그 건물을 보지 못하겠다는 것인지 그대로 하늘 위로 시선을 던진 무궁은 하늘마저 바라보던 것을 포기하곤 이내 눈을 감았다.

 

찬바람의 그의 볼을 스치며 뒤에 어느 한 사내가 나타났다.

 

눈을 가로지르는 긴 자상(刺傷)과 더불어 소매에 보이는 흉터들까지.

 

검귀(劍鬼)와 같은 날카로운 분위기에 전귀(戰鬼)와 같은 불길함까지, 무궁보다도 더한 비범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모습이었다.

 

 

유환.”

 

.”

 

()을 다오.”

 

.”

 

 

사내, 사유환(私柳紈)은 허릿춤에 있던 향을 하나 꺼내 무궁에게 건내었다.

 

무궁은 건네받은 향에 미약한 불을 지폈다.

 

타닥.

 

잠시 허공에 불꽃이 맺히더니 향을 피웠다.

 

찬바람으로 인해 연기는 순식간에 흩날렸지만, 무궁은 개의치 않은 표정으로 정문 앞에 향을 꽂아 두었다.

 

그리고 잠시간의 합장(合掌).

 

찬바람 때문인지 순식간에 타들어간 향과 더불어 합장하며 눈을 감던 무궁은 이내 눈을 뜨며 약간 구부렸던 몸을 폈다.

 

 

이 정도면 되었겠지.”

 

 

이곳에 바스라 진 이들을 생각한다면 이 향 하나는 초라하며 미약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무궁은 이내 반쯤 무너진 문을 열고 태천무가의 안으로 들어섰다.

 

안에는 잡초를 비롯한 잔해로 엉망이었다. 관리하지 않고 사람만 살아도 이 정도는 아닐 것이다.

 

무궁은 잠시나마 시선을 준 뒤 이윽고 상관없다는 듯 그대로 걸었다. 무성한 잡초와 풀은 그의 옷을 스쳐야 하거늘 그의 몸 주위에는 기이한 막()이 하나 쳐져 있었다.

 

뒤에서 걷고 있는 사유환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둘의 옷과 피부는 여전히 문을 열고 들어서기 전의 깨끗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무궁은 과거의 기억을 되짚어 보며 과거 가주의 상징이자 태천무가의 모든 힘의 중점인 태황전(泰皇殿)으로 들어섰다.

 

 

이곳에서 본 가의 어르신들이 가문의 중대한 이야기를 나누셨더랬지.”

 

 

무궁의 말에 사유환은 그저 듣기만 하였다.

 

그의 눈에 그리움과 아련함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었다. 주군의 검이나 다름 없는 사유환은 무궁의 상념을 방해할 리가 없었다.

 

쭉 걸어간 무궁이 향한 곳은 가장 높은 곳이자 태천무가의 주인만이 앉을 수 있는 자리.

 

가주(家主)의 자리였다.

 

스윽, 스윽

 

손으로 대충 먼지를 털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의자 위에 수북이 쌓인 먼지가 모두 사라졌다.

 

털썩!

 

무궁은 그대로 당연하다는 듯 그 자리에 앉았다.

 

지금은 무너졌을지언정 태천무가 혹은 태천존가라 불릴 정도의 위명을 갖추었던 가문의 가주가 앉던 자리다.

 

하지만 무궁의 모습은 전혀 위화감이 없었다.

 

자연스럽기 그지없었다.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

 

아직 돌아오지 못한 수하들을 부르는 게 더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

 

 

사유환의 대답을 들은 무궁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은 혼자서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단순히 무력만이 전부라면 몰라도 태천무가를 일으키는데 필요한 것이 단순 무력만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천하제일의 무력과 그런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을 따르는 유능한 수하들.

 

무궁이 바라보는 목표는 그만큼 높고 또 높았다.

 

 

태천무가가 돌아왔다고 선포해야겠지.”

 

 

태천무가의 적장자가 되돌아왔다. 태천무가의 부활은 볼보듯 뻔했다.

 

그리고.

 

 

가문을 이렇게 만든 놈들까지.”

 

 

서슬 퍼런 눈빛을 빛내며 가문을 이리 만들어버린 놈들을 떠올렸다.

 

동시에 배신자들까지, 그들 모두 내버려두지 않을 생각이다.

 

지금에 오기까지 오로지 놈들을 죽이기 위해서 살아오지 않았는가. 지금 당장 놈들에 대해서 생각만 해도 살기(殺氣)가 일렁인다.

 

오싹!

 

 

으음… 주군의 천살기(天殺氣)가 더욱 짖어 졌구나.’

 

 

인간의 영역을 초월한 사유환조차 그 살기에 온몸이 소름 돋을 정도였다.

 

이내 순식간에 살기를 갈무리한 무궁은 이내 태황전 밖으로 향했다. 태황전 밖은 아까 오면서 봤듯이 여전히 낡은 건물들과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 동시에 다수의 존재가 죽었다는 흔적 등이 남아있었다.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여 무너진 건물들과 녹이 슨 철제 도구 등.

 

 

지금 당장 가문을 재건부터 해야 할 판이로군.”

 

아직 수하들이 오기까지 시간이 남았습니다. 특히 외람된 말씀이오나 지금의 가문의 상태로는 그들을 모두 수용하지 못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겠지.”

 

 

사유환은 최대한 유하게 대답했지만, 결국엔 그거다.

 

여럿의 사람을 포용할 만큼의 상태가 아니라는 것.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고 있던 무궁은 이에 수긍하며 건물을 재건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몇몇의 건물들을 제외하고 모두 다시 쌓아올린다.”

 

.”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겠지.”

 

천유신투(擅有神鬪)가 이를 대비하여 자신이 도둑질하면서 쌓아놓은 재물이 있는 곳을 알려주었습니다. 이를 활용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천유신투? 발만 빠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쓸만하군.”

 

 

고개를 끄덕인 무궁은 이내 가문의 곳곳을 둘러보았다.

 

태천무가는 옛날부터 그 크기를 불려왔었다. 그렇기에 지금에 이르러서는 하나의 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크기를 자랑하기에 전부 둘러보는 데 조금 시간이 걸렸다.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곳들은 모두 도굴꾼 혹은 무림인들이 털어갔는지 문은 부서져 있었고, 다양한 도구들이 널부러져 있었다.

 

 

사람들은 단순하지. 중요한 물건을 눈에 띄는 곳에 두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게 참으로 단순해.”

 

 

사람의 심리라는 게 그러하단 걸까.

 

아마 이곳에 찾아와 한 건 찾으려고 하던 이들 무공이 되었든 땅문서가 되었든, 귀중품과 관련된 돈이라든지 모두 한 곳에 모여있다거나 눈에 띄는 곳에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는 이를 숨기는 입장과 찾는 입장이 반대되어 있기 때문이다.

 

숨기는 입장에서는 최대한 창의적으로 숨기기 위해서 노력하기에 찾는 입장으로서는 경우의 수가 너무 많기 때문에 찾을 수가 없다.

 

하물며 태천무가야.

 

 

가문의 가주지학(家主之學)은 일인전승이지. 절대 무공서로 남겨두지 않지.’

 

 

하지만 아직 어렸던 무궁은 아버지인 당시의 가주 태류염에게 아직 모든 무공을 전부 사사 받지 못한 상태였다.

 

이를 대비하여 당시의 가주 태류염은 미리 무공서를 만들어 자식인 무궁과 자신만이 아는 비처(秘處)에 두었다.

 

 

지금 당장 찾으러 갈 필요까진 없겠지.”

 

 

고개를 끄덕인 무궁은 이내 몸을 돌렸다.

 

 

사유환.”

 

, 주군.”

 

천유신투의 비고, 어디인지 아나?”

 

, 그 장소가 꽤나 독특하여 직접 외우고 있었습니다.”

 

시간은?”

 

이틀이면 됩니다.”

 

대충 널널하군. 갔다 오도록.”

 

존명(尊命).”

 

 

슈슉!

 

엄청난 속도로 사라진 사유환은 이내 무궁의 곁에서 사라졌다. 잠시 가만히 있던 무궁은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금 태황전으로 향했다.

 

그렇게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고작 칠주야(七晝夜)의 시간이 흐른 것에 지나지 않았지만, 당금 무림에 가장 큰 풍운(風雲)이 몰아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태천무가(太天武家)의 후예가 돌아왔다!

 

 

단순한 신비문이었다면 이리도 들썩이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무림이 가장 놀란 건 다름 아닌 태천무가의 존재였다.

 

당금 천하를 이끄는 세력인 군앙천의 시작과 함께했으며 과거 전성기 시절에는 단일 세력으로 최강을 논했다고 전해졌을 정도였다.

 

과거 수많은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을 배출해냈으며, 지금에 이르러서는 하나의 성을 이루니 태천무가를 아래로 두는 군앙천조차 이를 감당하지 못한다고 할 정도였다.

 

그 누구도 태천무가의 아성을 넘보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 생각은 다름 아닌 십여 년 전의 혈사(血史)로 인해 사라졌다.

 

태천무가가 무너진 것이다.

 

도대체 누가, 어떻게, 어떤 목적으로 그랬는지 모든 게 불분명했고 태천무가의 가주를 비롯해서 중진들이 죽었다고 알려졌으며 유일한 후계자조차 행방불명이 되었다고 전해졌다.

 

권불십년 화무십일홍(權不十年 花無十日紅)이라.

 

아무리 영원을 추구한다고 해서 이처럼 한순간에 바스러지니 모두가 이와 같은 구절과 함께 허탈함을 느꼈을 것이다.

 

실존하는 전설이나 다름 없던 태천무가의 몰락과 함께 새롭게 무림이 재편성 될 것이라 생각되던 순간순간들.

 

강산은 바뀌고도 남을 십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그 다름 아닌 태천무가의 후계자가 돌아왔다는 소문이 퍼진 것이다.

 

모두가 헛소문이라고 치부했다.

 

그야 당연했다.

 

고작 우연 찮게 얻은 태천무가의 하위 무사들이나 익히는 무공을 가지고 태천무가의 후계자라고 거들먹거리던 이들이 수두룩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하루, 이틀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무너진 성채(城寨)나 다름 없는 태천무가가 갑자기 재건되기 시작되었다는 말을 시작으로, 수많은 정보가 무림에 나돌기 시작했다.

 

그제야 사람들은, 무림인들은 그 소문이 사실임을 직시했다.

 

동시에 모든 시선이 태천무가로 쏟아졌다.

 

 

최근 가문으로 몰려오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러겠지, 특히나 군앙천 놈들과 백도, 흑도 놈들은 말이야.”

 

 

약간의 비웃음을 머금은 무궁은 특정 집단을 톡 꼬집어 이야기했다.

 

태천무가가 무너지면서 가장 이득을 본 이들이 누구냐?

 

다름 아닌 현 무림을 질타하는 기득권층이 대부분이었다. 그 외의 것들은 전부 태천무가에서 떨어져 나온 부스러기나 주워먹기 급급했다.

 

 

전부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지도 못한 상태에서 본래의 주인이 나타났으니 도둑놈들이야 제 발 저릴 수밖에.”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없으리라,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두 가지의 선택 중 하나를 고르는 것 뿐.

 

순순히 내어줄 것이냐.

 

아니면.

 

 

그대로 역사의 뒤안 길로 사라질 것이냐.”

 

 

그들의 선택을 볼 보듯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