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제: 천고마비




영산이라기에는 불온한 기운이 넘치는 험준한 산맥. 그 사이 별거 없어보이는 수풀을 지나면, 검은 호랑이들이 잔뜩 누운 것처럼 보이는 기와집들이 들어차 있었다.


기왓집들에 사는 사람들의 얼굴도 보이지 않는 거리에서 입구에 커다란 바위에 글자 하나가 새겨져 있었다. 마였다.


최근 마교는 전 교주가 승천한 후 전무후무한 전성기였다. 대공자 중 이남이 혼마공을 대성하며 서열다툼을 정리하고 위선뿐인 무림맹에 큰 타격을 줘 마교의 위상이 높아진 덕분이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교주는 천마신공을 익히기 위해 폐관수련을 위한 준비를 마쳐가고 있었다.


다만 안개낀 새벽 아침, 평소라면 절도있는 관리하에 얕은 안개말고는 느끼지 못할 정도로 깨끗하게 관리되는 교주전에서  비릿하고 진득한 마기가 흘러넘치고 있었다.


바로 지금 교주의 눈앞에, 무림맹의 별동대가 별다른 유혈사태 없이 교주전에 입성했기 때문이다.


"신교의 영산에 더러운 발을 딛고 내 앞에서 뻔뻔하게 검을 꼬나쥐었구나."


교주는 평안하게 하고 싶은 말을 이었다. 다만 좌우사자와 함께 있었기 때문에 평안한 것은 아니었다. 이미 별동대 대부분의 수준이 단신으로, 혼마공이면 가볍게 처리할 수 있을 것으로 파악되었기 때문이다.


그가 지금 치워버리지 않는 이유는 힘을 빼기 싫기 때문이 아니라, 궁금증 때문이었다.


어찌 이 수준으로 이곳에 올 생각을 한 거지?
다 합쳐야 좌우사자가 합공하면 충분히 막을 정도인데?


심지어 내공이 아예 느껴지지 않는 한 남성이 있었다. 서역에서 온 것인지, 얼굴은 까무잡잡했으나 행자생활을 오래한 것처럼 몸이 탄탄해보이긴 했다. 그러나 외공을 익힌것 같아보이지도 않았다.


설마 교주 자신이 인지하기도 힘들 정도인 강자일까? 내공을 잔뜩 끌어모아 첨예하게 촉각을 곤두세웠으나 느껴지는 건 한 줌도 되지 않는 내공뿐이었다.


"마신으로 나아가기 위해 한 걸음 남았는데, 너희까지 청소하면 편히 내딛을 수 있겠구나. 우사."

"예, 교주님."

"썩 치워라"

"존명"

혈향이 짙은 혈검이 빼어짐과 동시에 가장 앞에 있던 셋의 몸에서 붉은 꽃이 피어났다. 검을 들어 막은 자세로 허물어지자, 검진이 더 뻣뻣하고 수비적으로 뭉치고 있었다.


우사는 그런 꼴을 같잖듯이 보았고, 이내 한번 더 검을 들어올렸다.

"그마느 드어"

물론 검이 멈추는 일은 없었다. 부서지듯이 넷이 더 쓰러졌고, 이제 셋밖에 남지 않았다.
하지만 어눌한 발음으로 서역인이 장법을 펼치듯 우사에게 손을 들어올렸다.

"싸우므, 멈츠어"

서역인은 분명 괴이한 조합이었으나 우사에게 번복시킬 이유가 없어 가만히 두었는데, 우사가 갑자기 검을 이상한 자세로 멈추었다.


좌사와 교주는 즉시 내공을 끌어올려 호신공을 펼쳤다. 서역에 환술사가 있는지 알 수 없으나, 우사의 이상행동을 보자 마기를 뿜어 그의 정신을 차리게 할 요령이었다.

"컥.. 교.. 교주님..!!"

허나 마기를 통해 훑은 그의 전신에는 어떤 내공의 변화도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느껴지는 것은 그의 심리상태였다.

기뻐해?

마기가 신도들에게 기쁨을 준다고는 하지만, 그런 기쁨이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내 아붜지 이르므로"

그때 서역인이 침을 손바닥에 뱉어 쓰러진 자들의 이마를 찍자

"나코 일어나르지어다"

활강시처럼 베인 그들이 벌떡 일어났다.

"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길"

좌사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교주와 눈이 마주침과 동시에 마문에서 회색 빛이 나며 서역인에게 달려들었지만

"너는 나말코 다르느 신을 섬기지 말찌어다"

우스꽝스럽게 넘어지며 서역인 앞에 엎어졌다.


좌사의 마문은 외부와 자신을 차단하고 끌어올린 마공으로 미쳐날뛰듯 하는 것이 특징인데, 두 특성 중 아무것도 드러나지 않고 머리를 박고 있다는게 교주는 어이가 없었다


당황과 허탈함에 빠져, 교주는 적대할 의지마저 잃어버렸다. 대체 무림맹은 저런 놈을 어떻게 찾아낸 것일까? 환술은 극한의 훈련으로 깨칠 수 있다고 느꼈는데 느껴지는 것은 환술도 아니었고, 나뒹군 좌우사자뿐이었다.


"너, 얘드르한테 얘기 들었다."

서역인이 처음으로 주문같은 말이 아닌 다른 말을 뱉었다. 교주는 저것도 주문인가 여전히 경계를 풀지 않았다.


"하늘도 파아랗고 날이 조타.. 너도 그마느 싸우고 내려와라. 천마고비의 계절 아니냐."

"아니 뭔.. 천고마비겠지"


그러자 서역인이 천천히 교주 앞으로 걸어오며 말했다.

"천마고비 맞다"

서역인이 갑자기 내지른 싸대기는 아주 평범한 사내의 것이었으나, 왜인지 교주는 바라보기만 할 뿐 피할 수 없었다.

"스스로 시니라 이르컫고 아버지께 돌아가지 않으니,"

그가 한번 더 손을 들어올렸다.


"왼뺨을 내주듯 오른뺨을 내주어라"

철썩

마교에 천마고비의 계절이 닥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