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미 이오리는 누가 묻는다면 자신이 선생님과 가장 오랜 시간을 보냈다고 당당히 말할 수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선생님이 샬레에 부임한 후 정한 첫 당번이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이오리에게는 최근, 남들에게 말 못 하는 취미가 하나 생겨버렸다. 순찰임무를 끝내고 난 뒤의 주어지는 조그마한 휴식 시간에, 소파에 몸을 맡기고 눈을 감아 선생님을 '상상' 하는 것이다. 이오리는 처음에는 자신도 드디어 선생님의 그렇고 그런것에 전염이 되었다고 펄쩍 뛰며 기겁을 했지만. 두 번이 세 번, 세 번이 네 번이 되었을 때는 기겁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어지고 아주 적극적으로 새로운 취미를 즐기고 있는 모습이 그 자리를 꿰찮버렸다.


우웅.


"...!"


이오리는 자신의 휴대폰의 진동을 느끼며 눈을 떴다. 


"선생님...?"


무슨 일이지? 오늘은...


당번.


아.


"이럴 때가 아냐...!"


당번, 당번... 벌써 그날이라니! 


이오리는 문을 박차고 늦으면 안 된다는 일념 하나로 앞을 내달린다. 이오리의 뒤에서 풍기위원회부원 두 명이 뭐라고 소리쳤지만 이오리에게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역시, 혼자보다는 같이 하는 게 더 빨리 끝나는 거 같아."


"물론이죠. 협력이라는 게 그런 거잖아요?"


"하하하, 맞아. 참, 키리노는 잘 지내고 있어?"


"키리노요? 키리노라면... 아~" 


생활안전국의 학생이 고개를 끄덕인다.


"다행이네. 저번에 키리노를 현무상회 근처에서 봤었거든. 뭔가 바빠 보여서 말을 걸지는 못했지만."


"현무상회요? 좋겠다~ 전 산해경의 근처에도 가보지도 못했는데."


"그래? 그러면 다음에 같이 갈래? 이번 일을 보답으로 말이야."


"정말요? 크으... 그럼 현룡문부터 가요! 그다음에는 현무상회에 가고... 어, 아! 야시장도!"


"계획 한번 확실한데?"


샬레의 선생님이 만족하듯 미소를 짓는다.


"그렇죠? 제가 머리는 좋거든요!"


똑똑.


"아아~ 벌써 시간이... 그럼! 수고하세요~"


"조심해서 들어가."


"네!"



이오리는 자신의 가슴팍에 손을 얹고 숨을 가다듬는다. 그리고 오면서 흐트러진 옷매무새와 머릿결들을 정도하고서 문을 연다. 


"읏."


이오리는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학생과 어깨를 부딪친다. 


"뭐야..."


"죄송합니다!"


생활안전국?


"어서와 이오리." 


샬레의 선생님이 손을 흔든다.


"선생님, 방금 그 애는?"


이오리가 엄지손가락으로 뒤를 가리키며 묻는다.


"아아, 이오리가 오기 전에 날 좀 도와줬어."


샬레의 선생님이 답한다.


"도와줬다고?"


이오리가 황당하다는 듯이 말한다.


"응. 도와줬지."


"그 말은 그러니까..."


"지금만큼은 편히 쉬면된다는 말씀~"


샬레의 선생님이 한쪽 눈을 감고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하아, 기대한 내 잘못이지."


"응? 기대했다고?"


"아, 아냐! 조용히 해!"


"하하하하."


"웃지 마!"


이오리가 샬레의 선생님을 쏘아붙인다.


"그래그래, 이오리는 뭐 마시고 싶은 게 있을까? 


샬레의 선생님이 의자에서 일어나 묻는다.


"어디 갈려고?"


"엔젤 24."


"같이 가."


"괜찮겠어?"


"뭐가?"


"여기까지 왔는데 또 움직이면 그렇잖아."


"됐어, 뭐해 선생님? 빨리 가자고."


이오리가 문고리를 잡으며 말한다.



"저기, 이오리. 민트초코는 맛있어?"


샬레의 선생님이 이오리에게 묻는다.


"응? 아아, 맛있어 엄청."


이오리가 답한다.


"...좋아, 조금만 나눠줄 수 있을까?"


"뭐야, 선생님도 마시려고?"


"트리니티에서 아이스크림으로는 맛보기 했는데 우유로는 궁금하거든." 


"거기서 거기 아냐?"


"에이, 그래도."


"뭐ㅡ 좋아. 자."


이오리가 들고 있던 민트초코 우유를 샬레의 선생님에게 내민다. 샬레의 선생님은 오른손으로 민트초코 우유를 받는다. 그리고 마치, 건배사를 하듯이 우유를 치켜든 다음, 한 모금 마신다. 


"어때 선생님?"


이오리가 평가를 기대하듯이 선생님을 응시하며묻는다. 


"음... 역시 민트초코네."


"하아? 그것뿐이야? 다른 말은?"


"다른 말? 다른 말은... 아, '이오리의 맛'이 첨가되어 더욱 맛있었습니다?"


이오리가 자신의 손등으로 샬레의 선생님의 왼쪽 어깨를 한 대 후려친다. 선생님은 익숙하다는 듯이 아무런 아픔도 표현하지 않는다. 그저, 이오리에게 한 방 먹였다는 것에 희열을 느끼며 껄껄 웃을뿐이었다.


"변태! 진짜 죽어!"


이오리가 소리쳤다.


"난 역시 이오리가 진짜 좋다니까!"


"으으..."


이오리가 붉게 물든 얼굴로 부들부들 거리며, 선생님을 노려본다. 그리고 이내 분함을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죽어!" 라는 말과 함께 다시 한번 선생님의 왼쪽 어깨를 후려친다. 이번에는 진심이다. 하지만 선생님은 여전히 이오리의 반응을 즐길 뿐이었다. 어린아이의 사소한 장난을 보듯이 말이다.


"흥!'


이오리는 왼쪽 어깨를 몇 번 더 후려친 뒤, 토라진다.


"놀린 걸로 생각 한거야? 진심인데?"


이오리는 그 말을 듣고는 움찔거렸다. 진심이라고? 아니... 저렇게 말해도 선생님은 날 놀리는거겠지. 이오리는 그럼에도 고개를 천천히 선생님 쪽으로 돌린다. 그리고 묻는다.


"진... 심이야?"


"이오리는 어떻게 생각해?"


"어떻게 생각하냐니? 그야..."


이오리는 뜸을 들인다. 당장이라도 '좋아.' 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그리고 이오리는 눈을 감는다. 자신이 선생님의 초대에 응하는 미래를 상상한다.


선생님이 자신의 왼손 약지 손가락에 사랑을 속삭이며 반지를 끼우는 순간. 선생님과 첫 키스를 하는 순간. 모두의 축복 속에 붉은 웨딩 카펫을 나아가는 순간. 그리고......


이오리는 눈을 떴다.


선생님은 여전히 웃음기가 가득하면서도 무언가 진지한 얼굴로 이오리를 응시하고 있다. 


잠깐... 내가, 방금 무슨, 어? 


이오리의 얼굴은 전보다 더 붉어졌다. 


"어... 어..."


그리고 이오리는, 그 자리에서 기절 해버렸다.



이오리는 지금, 이곳이 꿈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아니, 악몽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악몽 따위는 그냥 무시하면 된다. 하지만, 악몽은 그런 이오리의 생각을 비웃듯 이오리의 눈앞에 무언가를 보여준다. 선생님이다. 그리고 선생님의 옆에는...


"...?"


총학생회의 복장을 한 누군가가 서 있었다. 


"잠, 잠깐 당신! 거기 멈춰!"


이오리는 자신도 모르게 악몽이 보여주는 허상에 소리쳤다.


허상은, 선생님은, 이오리의 외침이 들리지 않았는지 총학생회의 복장을 한 누군가와 함께 앞을 걸어간다.


"선생님!"


이오리는 선생님의 뒤를 따르려고 한다.


뛰어도, 뛰어도, 몇 번이고 뛰어도, 선생님과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더욱 자신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선생님!!"


이오리는 선생님을 향해 손을 뻗는다. 들리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목 놓아 선생님을 부른다. 그리고...


"...안돼!"


악몽에서 깨어나 버렸다.


이오리는 가쁜 숨을 몰아쉰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본다. 여기는... 아, 샬레의 지하다. 이전에 선생님의 권유로 와본 적이 있다. 그렇다면 선생님은?


"..."


보이지 않는다. 


"아... 아... 안돼 안돼..."


목에서 맥박이 고동친다. 악몽이 보여준 것들이 다시 떠오른다.


"선생...님."


이오리가 일어나려고 할 때, 때마침 샬레의 지하의 문이 활짝 열리고 닫혔다. 이오리가 그토록 찾던 선생님이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선생님은 하품을 길게 늘어지게 하고 난간을 잡으며 천천히 내려간다. 그리고 이오리가 있을 소파를ㅡ


"어?"


샬레의 선생님이 당황하듯 그 자리에서 멈춘다. 그리고 말한다.


"이오리?"


이오리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잠깐만!"


선생님은 계단을 빠르게 내려오며 이오리에게 다가갔다.


이오리는 아무 말 없이 선생님을 올려다본다. 그리고 손을 뻗어 선생님의 뺨을 살며시 만진다. 눈앞의 선생님이 허상이 아닌지 확인하듯이 말이다.


"..."


샬레의 선생님이 이오리의 옆에 앉는다. 그리고 셔츠 소매로 이오리의 눈물을 닦아주며 묻는다.


"악몽이라도 꾼거야?"


이오리가 고개를 끄덕인다.


"고생 많았어."


이오리는 천천히 입술을 움직인다.


"...아냐."


"아니긴."


"저기... 선생님."


"응?"


"혹시... 미안, 이건 잊어줘."


"나중에 말해줘."


"..."


"......후우, 조금 낯간지러운데..."


선생님이 일어선다. 


"이오리, 있잖아 난 스스로를 진지하거나 훌륭한 어른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 근데 그럼에도 당연하겠지만, 난 누가 우는 걸 보질 못해. 차라리 우는 거 보다 웃는 모습을 보는 게 나지."


샬레의 선생님이 이오리의 향해 손을 뻗으며 말을 이어간다.


"특히 학생이면 말이야. 자. 일어나 이오리. 너는 우는 것보다 웃는 게 나아."


이오리는 선생님이 내민 손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그리고 옅게 웃으며 말한다.


"바보..."


"맞아. 선생님은 바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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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리 호감도 40 찍은 기념으로 아주 빠르게 적었다! 


까칠한 외면을 가진 애들은 속은 누구보다 말랑해서 너무 좋음!


그리고 좀 난잡하게해서 옴니버스 처럼 보이긴 한데... 이오리에서 만회 해버려고. 이오리 파트는 2~3화까지 예상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