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 낮은 얀붕이 -2


얀붕(경섭)

과거형 짝사랑녀(유린)

얀순이(편의점 알바 같이 하는 애 이름은 지연)

얀진이(한예슬)


ㅡㅡ


결국 번호를 주고 말았다.


개미가 기어가가는 소리 만큼 작은 소리로 중얼 거리는 게 퍽이나 내 학창시절이 떠올라 결국 주고 말았다.


‘하…’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옆자리로 시선을 돌렸다.


‘예쁘긴 더럽게 예쁘네’


진짜 말 그대로 예쁘긴 더럽게 예뻤다. 이렇게 대학교에서 공부하면서 외모의 재능을 썩힐 바에는 그냥 연예인 하면서 돈 버는 게 낫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름이 한예슬이였나’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 같았다. 예슬이라는 이름이 그리 드문 이름은 아니라서 잘 생각은 안 나지만 꽤나 익숙한 이름이긴 했다.


‘그런데 왜 나지?’


정말로. 한예슬과 나는 정말 단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다. 오늘 처음으로 만났고 오늘 처음으로 대화를 나눴다. 초면인 이상 내 모습이 결코 호감으로 보이는 게 아니란 건 다른이도 아닌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의문이 들었다. 왜 나같은 사람한테 번호를 딴 거지 저기 앞에만 해도 나보다 잘생기고 인상 좋은 남자가 훨씬 많을텐데.


‘앞에서 보내는 시선도 개 불편한데…’


“하…”


결국 또 다시 한숨이 나왔다. 이번엔 속에서 몰래 한 게 아니라 소리가 들릴 정도로 내버린 게 문제이지만.


내 한숨 소리를 듣자 뭐가 기분이 좋은 지 싱글싱글 웃던 한예슬의 표정이 살짝 굳더니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 있으세요?”


“아니에요. 그냥 개인사정이라.”


“그, 그래요..? 죄송합니다….”


마치 자신이 오지랖을 부렸다고 자책하는 듯한 표정을 짓는 한예슬. 얼굴은 저렇게 예쁘면서 성격은 어째 나랑 닮은 거 같기도 하다.


“죄송할 거 까지는 아니에요.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괜히 내 모습을 보는 거 같아, 평소에는 그냥 넘겼을 상황에 나도 모르게 말이 나왔다.


그래도 이 말이 오답은 아니었는지, 살짝 무거워졌던 한예슬의 표정이 한층 가벼워진 게 보였다.


“그, 그런데 경섭씨는 이 강의 끝나고 어디가세요?”


그러자, 내게 말할 용기가 났는지 그대로 내게 묻는 그녀.


저렇게 용기를 낸 다는게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을 생각해보면 충분히 칭찬할 만한 행동이지만 하필 상황이 상황이었다. 지금은 강의시간. 앞에서 열심히 강의를 펼치고 있는 교수님이 계신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떠들고 있는다? 교수님이 남 몰래 A 줄걸 B로 주고 B 줄 걸 C로 줄 것이다.


그렇기에 조금씩 등에서 식은땀이 느껴졌다. 괜히 교수님의 심경을 거스른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느껴졌다.


“저, 저기..얘기는 조금 이따가 하는게…”


그렇기에 시선은 최대한 교수님쪽으로 고정한 뒤 한예슬에게 조용히 말했다.


그러자, 한예슬도 지금이 강의시간이란 걸 떠올렸는지 빨리 교수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교수님 표정을 확인해보니 조금은 불편해 보이지만 그리 기분이 나빠 보이지는 않는 듯 했다.


말 그대로 세이프 였다. 조금이라도 더 얘기를 나눴다간 교수님이 우리 쪽으로 말을 했을 것이다.


‘휴..다행이다..’


평소 같으면 교수님이 불편한 표정을 지을 짓도 하지 않는 나였기에 더욱 더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그렇게 내 기준에서는 꽤나 위기였던 강의시간이 지나고 교수님이 강의실에서 나갔다.


그러자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하는 몇몇 사람들.


시간을 촉박하게 잡은 학생들은 빨리 다음 강의실까지 가야하기에 재빨리 강의실에서 나갔고 어느정도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주변에 앉아 있는 친구들과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그래, 이게 평소 대학 생활의 광경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평소가 아니었다.


분명 평소에는 자기들끼리 수다를 떨던 사람들이 점점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아니지 정확히는 내 쪽이 아니라 내 옆에 앉아 있는 한예슬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그렇게 시끄러워질 걸 예상하니 관자놀이가 딱딱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마침 다음 강의가 같은 강의실이라서 자리를 옮길 필요가 없기에 좋았다고 생각했는데 옆에 앉아 있는 한예슬 때문에 조용한 쉬는 시간은 끝나버렸다.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제가 이 강의 듣는 사람 다 확인했는데 처음 보는 거 같아요.”


“네, 네..?”


“저, 저도 전화번호 주실 수 있나요?”


“아, 그러니까…”


“다음 강의는 뭐 들으세요?”


“어…”


순식간에 한예슬을 향한 질문 공세.


마치 빨리 정보를 캐내겠다는 일념을 담았는지 질문들은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아주 짧은 시간 얘기를 나눴지만 내가 추측한 한예슬의 성격으로는 이러한 질문들이 무리였나 보다.


동공의 과하게 떨리며 이리저리 움직이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도와주세요!-


눈이 마주치자마자 그녀가 속으로 외치고 있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한예슬의 주변에 둘러져 있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한예슬이 내 쪽을 바라본 것을 다른 사람들도 봤기에 내 쪽으로 시선이 집중되고 있었고, 나는 그 부담스러움에 그녀의 간절한 부탁에 결국 거절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다시 시선을 내리깔며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아…”


그러자, 한예슬이 희망을 잃는 듯이 작게 신음 소리를 내뱉었다.


미안하지만 그렇게 애처롭게 바라봐도 도와줄 수 있는게 없었다. 애초에 나같은 친구 없는 사람이 말해봤자 그들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을테고 운이 좋으면 무시 당하고 운 나쁘면 이상한 험담이 돌 수도 있다.


그러니, 나같은 최하위 피식자들은 그저 내 몸 하나 지키기 바쁠 뿐이었다.


“이렇게 여기서 얘기하지 말고 저희랑 같이 카페 가실래요?”


내가 거슬린다는 의미를 숨길 생각도 없는지 자리를 옮기자고 제안 하는 어떤 한 남자.


저 남자는…


“에?”


나도 모르게 입에서 벙찐 목소리가 나왔다.


저 사람은 엊그제 유린이와 키스를 나누던 2학년 선배였다.


당신이 왜 여기에 있어..?


충동적으로 그에게 이렇게 물어볼 뻔 했지만 다행히 이성이 간신히 나올려고 했던 목소리를 깊숙히 집어넣으며 괜한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말은 하지 않았어도 의문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저 사람은 분명 유린이랑 사귀고 있는 게 아니었던가? 거기다 이 사람 이 강의를 듣지도 않는다. 그러니 더욱 혼란스러움이 가중되기 시작했다.


사실 유린이와 사귀고 있는 건 내 착각이었고 단순히 엊그제의 일은 유린이와 이 사람의 상호간의 관계였나 라는 유린이가 듣는다면 내게 뺨을 칠 생각까지 들었다.


“아…그러니까..”


그렇게 추측을 내리고 있는 와중에도 한예슬은 혼란스러움에 그저 허둥지둥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고 있을 뿐이었다.


“에이, 빼지 마시고 같이 갑시다.”


말이 끝나자마자 이새끼가 한예슬의 손목을 거의 낚아채듯 강하게 붙잡으며 그녀를 잡아당겼다.


‘이새끼가?’


한예슬의 손목을 낚아채는 것에서 욱하는 감정이 치솟았다.


내 착각일지도 모른다. 정말 말 그대로 그러지 않길 빌지만 유린이와 이새끼는 사귀고 있다. 그러니 힘들더라도 마음 접고 유린이를 포기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내가 간신히 포기한 유린이를 이렇게 배신하고 있는 이새끼를 보니 평소에는 느끼지 못하는 감정까지 느껴졌다.


“저기, 선배.”


그렇게 솟아올라오던 감정은 결국 뚜껑까지 뚫어버렸고 내 입에서 목소리가 나왔다.


그러나 이새끼는 아무말도 하지 않은 채 내 쪽으로 고개만 돌리고 있었다.


“선배 유린이랑 사귀고 있는 거 아니었습니까?”


“뭐, 뭣?!”


내 말이 끝나자마자 이새끼는 순식간에 표정에 당황스러움이 묻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이새끼가 이걸 어떻게 알고 있는거지? 하는. 저런 반응을 보니 엊그제 봤던 게 나란 걸 들키지 않은 모양이다.


하지만 이렇게 말한 것으로 들키게 되겠지만.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지금 중요한 건 저 새끼의 선넘는 행동이었다.


“그런데, 지금 뭐하고 있는 겁니까?”


내 목소리는 한층 분노에 휩싸이고 있었다.


ㅡㅡㅡ


“저기…”


“네?”


“괜찮..으세요…?”


지금 한예슬과 나는 강의실에서 급히 나와 건물 바깥에 있는 벤치에 앉아 있다.


왜 다음 강의가 그 강의실인데 왜 나왔냐라고 묻는다면.


무서워서였다.


선배에게 할 말을 다 하고 난 뒤 분노가 삭히기 시작했고, 조금씩 이성이 돌아왔다.


그러자, 생각이 든 건 조됐다라는 것이었다.


선배의 표정을 살펴보니 마치 날 패버리겠다는 듯이 살벌한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만약 거기 계속 있었다면 이렇게 죽빵 한대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선배는 내게 죽빵을 날렸고 갑자기 일어난 개판에 주변에 있던 사람이 선배를 말리기 시작했다.


그 틈을 노려 나는 한예슬의 손을 잡고 빨리 강의실에서 나온 것이다.


“....하…사실은..안괜찮아요…이제 학교 생활 망한 거 같아요…”


하필 싸워…아니지 싸운 게 아니라 일방적으로 맞은 거지만 암튼 하필 마찰을 빚어도 학교 인기남이라니.


앞으로의 학교 생활이 막막했다.


“죄송해요…저 때문에…”


그래도 저렇게 말해주니 조금은 고맙긴 했다. 물론 너 말 듣자고 한 게 아니라 그냥 기분 안 좋아져서 앞뒤 안 가리고 나댄 거긴 하지만.


“괜찮아요. 예슬씨 잘못도 아니고 그냥 제 업보죠 뭐.”


“하지만, 이렇게 보내면 제 마음이 편치 못할 거 같은데… 혹시 다음 강의는 어디서 들으세요?”


“네? 다음 강의요?”

“네. 다음 강의 끝나면 마침 점심 시간일 텐데 제가 밥 한 번 사드릴게요. 제 번호 아시죠?’


“아…”


다음 강의 얘기를 듣자마자 다시 속이 울렁거렸다. 처음엔 두 강의가 같은 강의실에서 이루어져 행복했지만 지금은 하필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안 좋았다.


“...경섭씨..?”


내 표정이 다시 안 좋아지자 한예슬이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아, 별 거 아니에요. 그냥 갑자기 속이 안 좋아서.. 그러면 이만 전 가볼게요.”


“아…네…”


표정을 보니 내게 하고 싶은 말이 더 있는 것 같았지만 내가 가보겠다니 꾹 참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터덜터덜 다시 강의실로 돌아가려고 발걸음을 옮기고 있으니 뒤에서 한예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


“고마웠어요! 그리고 정말 멋졌어요!”


내게 손을 흔들며 크게 말하는 한예슬. 뭐지 그동안 보여준 모습이랑은 다른데..


아, 저기 다시 부끄러운지 음침 모드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고맙다는 말 할려고 평소엔 하지도 못하는 행동을 하는 한예슬을 보자 퍽 웃음이 나왔다.


역시 오늘은 평소 답지 않은 거 같다.


ㅡㅡ


뭐지 쓰다보니까 왜 얀진이가 더 우월해지고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