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 내가 한 말 기억하지?

누나는... 내가 지켜준다고.

그러니까 여기서 기다려. 금방 다녀올 테니까.





소년은 자신을 올려다보는 보랏빛 눈동자에 필사의 웃음으로 답한다. 다친 팔을 움켜쥐고서, 체육 창고의 뜀틀에 기대어 가냘픈 숨을 내뱉는 소녀에게, 괜찮다고. 있는 힘껏 허세를 부려본다. 창고 문을 붙잡고, 마지막 인사를 건넨 것은 사태가 바빠서가 아니다.

이미 3곳의 인대가 터져,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왼 발목을 숨기기 위해서였다. 


찣겨나간 것이 교복인지 살점인지 모를 뜨거운 등을, 

다친 그녀를 부축해 이곳까지 달려오느라 그런 것인지, 식어가는 생명에 의한 것인지 모를 땀을,


마약이라도 한 것처럼, 주변에 사라지고, 붕 뜰 것 같은 시야를,



숨기기 위해서였다.





"아... 안... 돼, 그... 러면... 너..."




바깥은 비명. 운동장은 비명과 살점이 찣기는 소리. 가스관이 터져, 아기 울음처럼 경보가 울고, 하늘은 차원 균열로 일그러져 마치 그림을 그리다 짜증 나서 물통을 부어버린 듯한 현대미술. 표현 그 자체에 답이 있는 것처럼, 감정이 녹아내리면서도 그림으로 그곳에 걸려있다. 소년은 웃으며, 떨리는 손으로 체육 창고의 문을 닫는다. 철문이 비명을 지르고, 소년의 몸도 비명을 지른다. 하지만 해냈다.



"허억, 허억... 어... 후우..."



알고 있다. 소년도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다. 지금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죽기 직전이기 때문이다. 소년의 생각, 마음 같은 건 아무래도 좋으니까 죽기 싫다는 육체가, 미친 듯이 아드레날린을 뿜어내고, 도파민이 되어 몸 이곳저곳을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빨리 몸을 움직여서 안전한 곳으로 가라. 제발 망가진 다리로 어디든 도망가라. 그리고 뼈가 드러날 정도로 패여, 비명을 지르는 신경을 덮어라. 더 이상 혈액을 손실하면 죽는다. 내가 죽는다. 뇌가 죽는다.



하지만, 소년은 숨을 깊게 들이쉰다. 그것만으로 등줄기의 신경이 차디찬 바람에, 노출된 공기 중의 세균에, 너덜거리며 찣겨나간 살점에 부딪히며 미친 듯이 소년을 찌른다. 푸슛, 하고 마치 돋아나려는 것처럼 피가 튄다. 그 상황에서 쇼크로 전원이 나가지 않으려고 뇌도 필사적이다. 체내마약을 흘려가며 필사적으로 버틴다. 하지만 소년은 외친다.

그들의 노력이 허망하게도, 생존과 아무런 상관없는 일에.




"야! 이 괴물들아!!

 어디 한 번 덤벼 봐! 이쪽으로 와 보라고!!"



우선은 운동장의 괴물들을 유인하는 거야. 바깥으로, 교문 바깥으로. 그런 다음에, 신나래... 누나를 발견하면, 누나도 데리고, 미나 누나랑 같이 도망치는 거야. 그래. 그러면 괜찮을 거야.

괜찮을 거야.




라는 일념으로 소년은 달린다. 그저 달렸고,

그 목표를 달성했다.


그는 얼마 못 가 발목이 부러져, 교문 앞에서 나뒹굴다가 길가의 쓰레기처럼 죽어갔다.

하지만, 소년이 구하려고 했던 두 소녀 모두 구조되었으니 목적은 달성했다.


하나는 인체실험의 장으로

하나는 냉혹한 현실로


하지만 그 상황에서 구해내는 것에는 성공했다.

마치 원숭이 손이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소년의 희생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이, 그 용기는, 마음은 아무래도 좋다는 듯이.

소년의 소원은 모두 이루어졌고,


소년을 내버려 두고서 시간은 흐른다.


흐른다. 소년 따위는 아무래도 좋으니, 남겨진 이들의 시간이 흐른다.


소녀는 오래된 인연은 다시 만나고, 끝내 그 조각마저 품에서 떠나보낸다.


하지만 오래된 인연을 어찌 잊고, 어찌 떠올리지 않을 수 있을까.

내 사랑하는 친구여, 우리 축배를 들자.

오래된 옛날을 위해, 오래된 옛날을 위해.

손을 뻗어, 우리 손을 잡자.

유쾌한 한잔을 같이 마시고서

그저 오래된 옛날을 위해.

그저 오래된 옛날.



그렇게, 모든 것이 흐르고 소년만이 우두커니 남았다.

지금 이 현실에 그 넋, 잔류사념만이 남아 있다.







-아니, 정확히는 이면이죠.





라고 모든 것이 끝난 교문 앞에 그녀가 선다. 탕, 하고 상부의 화려한 문양을 지지할 수 없을 정도로 가느다란 봉이 지면과 함께 운다. 그 선지자의 부활을 증명하듯 뻗어나간 십자를 두르며, 금속이 원을 그린다. 그 원조차 삐져나오는 광채를 표현하듯 그러데이션. 중심으로 갈수록 찬란히 황금빛으로 빛나는 지팡이.


그 이름은 부활의 지팡이.


과거, 성녀가 들었다고 하는 죽은 자를 살릴 수 있는 권능의 재현. 동시에 구원자의 증명.



하지만 들고 있는 여성은 도저히 성녀라고 볼 수 없었다. 얼굴을 가리듯 두른 검은 베일과 까마귀처럼 돋아난 어깨의 퍼. 그 아래로 늘어트린 낡은 로브는 성녀라기보다는 마녀였다. 잘그락, 하고 그녀의 양발을 묶은 검은 쇠사슬도 마찬가지. 하지만 그녀의 손에 들린 것은 틀림없는 부활의 지팡이였다.




-차원 균열, 카운터 각성이 만들어낸 재해에서 죽었습니다. 일시적으로 흐트러진 세계 간의 가림막. 그때 목숨을 잃은 혼은 이면에도 남게 되죠. 아뇨, ⋯그러네요.



탕, 하고 다시 한번 가볍게 지면을 내리친다.




끝부분이 해진 로브가 이리저리 휘날리고, 비로서야 그 아래에서 질질 끌리고 있던 것은 쇠사슬에 묶인 그녀의 다리가 아니라 마치 업보처럼 길게 이어진 머리카락임이 드러난다. 지면 아래에서 돋아나는 음울한 진, 마치 멀미를 형상화한 것 같은 보랏빛 손아귀들. 그 움직임에 도망치듯 로브와 머리카락이 흩날린다.





-구원자님의 뜻은 알고 있습니다. 늑대를 성장시켜, 우리의 대지를 되찾는다. 네, 그렇죠.

 하지만, 늑대의 성장이라면 그 이빨이 도리어 구원자님을 해칠 수도 있을 테죠.




그러니, 이건 사전작업.



그렇게 말하며, 넋을 잃고 그곳에 서 있던. 오래된 인연을 꺼낸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고,

아무것도 아닌, 그저 스쳐 지나갔을 뿐인 혼에. 그 강렬함마저 스스로 잊어버린 허무한 바람을

억지로 끄집어낸다.




보라, 오라, 헤매는 불빛이여 어둠으로 오라. 어둠에서 오라.

구원을 원하며 이 빛을 따르라. 이치를 거슬러, 여기에 오라.

내가 죽이도다. 내가 살리도다.

내가 상처입히고 내가 치유하도다.

내가 보듬도다.

 




우두커니 그곳에 남겨져 있던 소년에게 그 새까만 빛이 닿는다. 그가 그토록 열망했던 그 소녀의 눈과 똑같은

보랏빛. 이면에 도사리는 붉은색을 모른 채 소년은 고개를 돌린다. 이미 소년은 소년조차 아니다.

시간이 흘렀고, 그는 이미 진작에 오래된 옛날에 불과하다. 그저 그때의 강렬한 마음이 망집이 되어 거기에 있을 뿐. 차원 균열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이것저것, 비명과 구원을 애타게 부르짖으며 죽어간 사람들의 마음과 함께 거기에 있을 뿐이다. 온갖 오물들이 뒤섞인 건물 정화조에서 자신이 버린 오물만을 찾겠다는 거나 진배없다.



오라. 이 품에 오라.

그대가 바라는 품에 오라.

어찌 잊으리오. 그 가슴에 맺힌 마음을 어찌 잊으리오.

내 숨결 내 손길 내 부름에 상을 맺어라.

내 자애에 답하라.

내 인도에 따르라.

내 품 안에 오라.



그는 이 세계의 사람이 아니다. 게다가, 이미 찣길대로 찣긴 걸레짝이었다. 

이미 오물들에 뒤섞여, 누구의 분변인지도 알 수 없다. 부활의 지팡이를 가지고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보라색 손길은 이치를 거스른다.



그 강렬한 마음을 알고 있었기에, 그 손길에 그 넋이 답했기에,

그녀 자신도 몰랐지만.



혼의 일그러짐이 딱 알맞았기 때문에.

그 한탄이 닮았기 때문에.


“⋯누구야?”


소년은 오물 속에서 손을 붙잡는다. 그 이끌림에 따르고 만다.


“아⋯”


넝마가 된 혼에 들러붙는 것들을 보랏빛 손길이 이리저리 뭉쳐가며, 털어내며,

뒤틀리고 찣어지고 일그러진 걸레짝을 되살려낸다.


그저 오래된 일이었고, 흘러간 일을, 구태여 긁어 부스럼을 만들어낸다.

교문 앞에서 죽었던 소년은, 늑대에게 먹일 독이자 유사시에는 목에 겨눠질 칼.

탄생이었다.

축하할만한 일이었다.


적어도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며, 그 일그러진 육체를 안아 든다.

결손 된 부위를 침식체로 채운, 괴물을 받아든다.

숨 쉴 때마다 역한 냄새를 내뿜고, 움직일 때마다 징그러운 살점이 약동하고 있다.

얼굴은 반쯤 젤리로 채운 것처럼 일그러지고, 흉흉한 붉은 빛이 도는 왼쪽 눈.



누가 봐도 오물에서 건져낸 괴물에게 그녀는




“어서 오세요. 신나진. 제가 구원한 어린 양이여.”




자애로운 미소로 반기는 것이었다.

















/












그럴리가 없다.

그럴리가 없어.

전부 다 거짓말이다.

그러니까, 다 거짓말이다.



날 속이려고, 그런거야.

괴물. 그러니까, 어. 모르겠어.

누나.


누나.



누나.




헉헉대며, 넝마를 뒤집어 쓰고 좁은 골목을 걷는다. 숨이 턱끝까지 차오를 때마다 코를 찌르는 역한 냄새.

슬럼가라 그런거야. 방금 쓰레기통을 엎어서 그런거야. 거짓말이야. 괜찮아.

그러니까, 괜찮아.


확인하면 되는거야. 내 눈으로 보면 되는거잖아. 거짓말이라고. 그럴리가 없다고.



주변에서 들려오는 욕지거리. 후드를 뒤집어 쓰고서 걷는다. 이 길이 맞는지 모른다. 여기는 와본 적이 없다.

이렇게 되고서도, 이렇게 되기 전에도. 단 한 번도. 무너져가는 이런 동네에 올 일 따위 없었으니까.

아, 아아아. 아무래도 좋아. 그런건 아무래도 좋아. 여기에 있을 거라고 했다. 그럼 직접 보면 된다.


하수도 관 같은 것에 걸려 넘어진다. 좁은 골목에서 넘어진다. 이상하다. 마치 음식물 쓰레기 봉투를 겉으로 만진 것처럼 철퍽하는 소리만 나고 아프질 않아. 이상해. 


“여기까지 바래다 주지 않아도 되는데.”


아, 이 목소리.


“누나⋯!”


고개를 든다. 까만 앵클 부츠. 새까만 스커트와 점퍼. 갈색 빛이 도는 긴 포니엘. 보라빛 눈동자.

맞아. 누나다. 누나야. 역시 거짓말이었어. 일어서야지. 지금부터, 누나한테 물어보면 되는⋯



“가끔은 사원이 어떤 곳에 사는지도 확인 할 겸, 일종의 사내복지일세.

 흠, 그렇군. 이런 곳에서 사는건가?”

“어? 어⋯아무래도, 사장님한테는 좀 누추하지? 하하하.”

“아닐세. 그저, 치안이 좋지 않아보여서 미나양이 걱정이 되서 하는 말이지.”

“아, 맞다. 사장님. 그 뭐야⋯어, 모처럼 바래다 주기도 했고, 이, 이대로 돌려보내기는 좀 그러니까⋯”


누구야? 누나.

누나 앞에 선 저 아저씨는 누구야? 아니, 그건 아무래도 좋아. 누나. 들어 봐.

나 이상한 사람이 말하는데⋯


“라,라면이라도 먹고 갈래?”

“⋯”

“왜, 왜 그래 사장님?”

“아니, 부사장으로부터 요새 탕비실에 라면이 심상치 않은 기세로 사라진다는 보고를 오늘 막 들은 참이라.”

“사, 사람을 뭘로 보고? 그, 그런 짓은 안 해.”

“하하하, 그렇지. 그럼 실례해도 괜찮겠나?”

“어, 응. 드, 들어 와. 누추하지만.”



뭔데. 누군데. 왜 그렇게 빨개진 얼굴로, 난 단 한번도 본 적 없는 얼굴로.

웃으면서, 몸을 배배 꼬면서, 뭔데. 뭐야 이거.


들어 봐. 미나누나.

그 이상한 아저씨 팔을 가슴에 끼우면서 들어가지 말고.

들어 보라니까.


미나 누나. 우리 누나가, 고릴라 신나래가 죽었다며?

누나네 동료들이 쏴 죽였다며?

그렇게 또 다시 태어난 누나를, 누나가 죽였다며?


이거, 이거 다 거짓말이지?




“응? 왜 그래? 사장님.”

“아니, 기분 탓인가. 저 남자가⋯”

“이, 이상한 사람인가 보다. 어, 얼른 들어 와 사장님.”

“역시, 치안 문제도 있으니 자네가 지낼 기숙사를 마련해봐야겠군.”

“어, 어. 응. 그, 그러는게 좋을까?”




들어 봐.

들어가지 말고.

들어 보라고.


누구야? 누구야? 그 사람. 누군데⋯미나 누나네 집에 들어가는거야?

이상하다니, 내가? 내가 이상하다니. 


우리 누난 어떻게 된 거야?

미나 누나. 미나 누나아아⋯



눈 앞에, 빈 병이 날아든다. 깨지지 않고, 시멘트 바닥 위를 구른다. 고개를 드니 거기에는 술에 취한 사람.

벌개진 얼굴로 날 보고 있다. 


“흐응⋯?”

“우왁, 씨발 뭐야 이건. 이 좆같이 생긴⋯!”

“침식체인가?!”


“어⋯?”


나도 모르게, 얼굴을 가리고서 일어선다. 그런 왔던 길을 되돌아서 달린다.


잠깐만, 왜 도망치는거야.

난 아무 잘못 안 했는데.

후드를 뒤집어 쓰고, 어디로 도망치는거지?

뭐지.




모르겠어.

하나도 모르겠어.


도대체 뭐가 뭔지.

괴물? 침식체? 난. 난 그런게 아냐.


신나진. 내 이름. 알아. 다 기억하고 있어. 

신나래. 우리 누나. 유미나. 내가 좋아하던, 사람.

맞아. 난 다 알고 있어. 도하형도. 친구인 금태도, 현수도, 상연이도. 

엄마도, 아빠도, 다 알고 있어. 선생님도.



맞아. 그런데, 왜.




“뭐, 뭐야 저거?”

“우웩 냄새⋯”

“경찰이랑 관리국은 뭐하나 몰라. 노숙자들이나 좀⋯”





왜, 나한테 그러는거야.

왜 날 괴물처럼 보는거야.

왜 날, 


난 그냥 평범한⋯











“저쪽이에요. 이상한 냄새나는 노숙자가⋯”

“⋯저기, 잠시 괜찮아요? 다른 건 아니고 경찰인데⋯”



달린다.

뿌리치고 달린다. 뒤에 따르는 모든 걸 제쳐두고 달린다.

하, 하하. 하하하하. 이상하잖아.

내가 아는 거랑 너무 달라. 왜 이렇게 달라?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고? 거짓말이지?


거짓말이다.


고릴라, 신나래도 죽고.

부모님도 죽고.

친했던 친구도 죽고. 다 죽고!


나만 이렇게, 괴물이 되어 있다고?

괴물? 하, 하하하하. 하고, 몇 번이고 거리의 쇼윈도에 비친 날 바라보다가,

또 달린다. 오른쪽 얼굴이 없어. 있는데 이상한 젤리 같은 거야. 푸하하하.

흐히히히, 이상해. 눈알이 새빨개. 한밤중, 멀티탭의 불빛처럼 주황색이야.

이상하다아아, 왼쪽은 제대로 얼굴이 있는데. 오른쪽을 만지면 물컹거려.

얼굴처럼 달려 있는데.



왜.

왜?




“멈추세요. 거리에서 침식체로 보이는 사람을 봤다는 신고가 들어 왔습니다. 믿을 수는 없지만, 거수자로 판단하고 서까지 동행을 부탁드립니다.”




왜 나한테, 총을 겨누는거야.

왜 나한테. 내가 뭘 잘못 했는데.

말해 봐. 미나 누나. 내가 뭘 잘 못 했어?


난, 그냥. 그 때 한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고⋯!

난 그냥⋯! 누나를 좋아해서, 누나가 좋아서⋯

지켜 주고 싶어서⋯!


아파도, 아파도 달렸던건데⋯!


왜! 왜⋯왜애⋯왜애애애애애⋯




“⋯읏, 그 얼굴. 발, 발포를⋯듣고 있습니까? 팀장님 긴급 발포 허가를, 신고 접수 받고 왔더니 침식체, 아니 그 마젤란 관련 된 침식변이체일 수도 있습니다⋯”






왜 나한테⋯





탕, 한 발.

거기에 주저 앉는다. 아니지, 하늘이 보인다.

밤 하늘. 시야가 탁 트인 밤 하늘.

어디지 여긴. 왼쪽 가슴이 아린다. 마음 같은 게 아니라, 원래라면 어깨죽지 윗쪽.

지금은⋯뭔지 모르겠다. 피가 팽팽 돈다. 피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돌고 돌아서, 응 그러네.

아무래도 좋아져서,


밤 하늘. 하늘 위에는 내가 기억하는 그라운드 원. 대균열의 영향으로 밤에도 곤색과 주황색이 뒤얽힌 기분 나쁜 하늘. 아, 아아.


정말, 그 여자 말대로였구나.




난 이미,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흘러간 과거.

오래된 옛 이야기.

Old Lang Sing 이었구나.




그리고 그것도 여기서 끝.





고릴, 나래 누나.

총에 맞았을 때 아팠겠지.

나도 아파.

하지만, 누나를 찾으려고 교문까지 달렸던 것도 아팠어. 힘들었어.


미나 누나.

지금 행복해?

우린 아무래도 좋다는 듯, 그렇게. 행복해?

누나를 두 번이나 죽이고도, 행복해?




이미 지났으니까, 이겨냈으니까.

그러면 우린 없는거야?

구차하게 달라붙는거야?





“흐흥, 흐흐흐, 흐흐힝힝, 히히힉, 히히히⋯”








정말 좋아했는데.

누구보다 좋아했는데.

도하형보다, 고릴라, 신나래보다.

그 누구보다.


미나 누나의 언니가 아니라, 유미나. 당신을 좋아했는데.



이제는 손에 닿지 않는 곳에 있다.

이 냄새나는 손으로 닿으면 안 되는 곳에 있다.

지켜주려고, 했던 건데.



밤 하늘 위로 뻗은 손은 흘러내리고 있다. 마디가 몇 개 없다.

마치, 피자집 레고 모형을 가지고 억지로 기차를 만든 것 처럼.

손 아닌 것이 달려 있네.



“네, 지금은 쓰러졌습니다. 숨은 붙어 있구요. 얼른 지원⋯윽⋯!”



차르륵, 차르륵, 사슬 소리가 들린다.

이대로 잡히면 어디로 가는걸까.

몰라, 무서워. 붙잡혀서 실험체라도 되는걸까.

아니면 침식체라서 즉각사살일까.



무서워.



하늘, 아무래도 좋다는듯 엉망인 밤 하늘 위로 구름이 떠간다.

그리고 지금 막 그 위로 그 여자가 얼굴을 들이민다.



"이제, 아시겠죠. 나진.

 전 당신에게 한 치의 거짓을 고한 적 없다는 걸요."


맞아. 그런거 같아.


"늑대는 그대의 희생을 짓밟았습니다.

 그대의 누이를 해했고, 지금은 그대의 마음마저 잊어버렸죠."


그렇겠지. 안 그러면⋯


"애달픈 혼, 가여운 나진. 이쪽으로 오세요."

"제가, 구원자님이, 그대를 보듬겠습니다."

"부디 그 마음을 잊지마세요. 제게 오세요."

"여기가 그대가 있을 유일한 곳이니까요."



아, 하고 그 여자의 등장에 안도하는 내가 있다.

동시에, 봇물이 터져나간다. 그건 믿기 힘든 현실이라는 걸.

이제는 알았으니까.



아, 아.



아아⋯







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하핫, 하하핫, 하하하하하하하핫,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흐히흐히히힛, 히히히히, 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



아, 그래.

그러자. 그런 걸로 하자.

그런 걸로 하자고.




“그대의 연심을 잊어버린, 그대의 모든 걸 몇차례나 부정한 늑대.

 가여운 아이. 신나진. 제 말을 이제 아시겠죠?“



날 안아든다.

냄새나고, 더럽고, 흉측한 날 안아든다.

그녀의 팔, 가슴께에서 징글징글한 달콤함이 퍼져나간다.


울듯이, 웃듯이, 그 가슴에 파묻혀 발버둥을 쳐본다.

어린아이처럼. 하지만 밤하늘이 탁 트인, 공원의 타일조차 발뒤꿈치는 아파하는 기색이 없다. 젤리처럼 처퍽처퍽, 퍼져나갈뿐. 그게 내 다리였을 뿐.




“가시죠. 제가 그대를 보듬겠습니다. 제가 그대에게 길을 가리키겠습니다.”





흐흐흐흐, 흐흐흐흐흐흐흐, 흐흐흐흐흐흐.

이 마음이 갈 곳이 없다면, 이미 모든 게 날 놔두고 가버렸다면.

싫어도, 억지로 부딪히는 수밖에 없잖아.

그 마음을 열어 젖혀서, 이 찐득찐득하게 더러워진. 녹아내리는, 역겨운 손가락을 집어 넣을 수 밖에.

하지만 그 전에 해야할 일이 있어.



“부디, 그대에게 구원이 있기를⋯”




그 씨발년을 죽여야 해.


고릴라를, 우리 누나를. 나래 누나를 죽여버린. 그 씨발년을 찣어놔야 해.

죽일거야. 팔을 꺾고, 손가락 마디마디를 잘라서 이빨 대신 박아 줄거야.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그 가증스러운 아가리에다가 자른 다리를 박아 넣을거야. 기다려라. 기다려라.


그런 다음에는⋯



기다려. 미나 누나.

아니 유미나. 내가 갈테니까.



오랜 옛날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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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얀데레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