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흘 뒤에 그녀가 보여줄 모습은.


어제까지의 이야기.


‘‘ 정-마-알 ! 매일마다 청소하는건 기본이잖아요 ?! ’’


‘‘ 워낙 정리를 안해 보여줄 꼴이 안되어서도 그렇고, 부탁이야. 딱 하루만 시간을 줄수 있겠니, 늙은이의 존엄성을 지켜줘다..오. ’’


‘‘ 내일까지 정리 안되어있으면 동거, 해버릴거니까...  ’’


‘‘ 네 ⋯ ? ’’


‘‘ ...각오해요 . ’’


.

.

.


철컥-


유우카가 들어오려는건 간신히 막아 천만다행이지만.. 내일부터 매일마다 집 살피러 오신다는 신종 일일 퀘스트가 생길줄이야.


뚜두둑-. 


‘‘ 히야아-.. ’’


그나저나, 내내 허리 굽히느라 뻐근해 죽겠구먼, 정말. 


청소 자체는 문제는 아니니까 귀찮아 미뤄왔던 일 지금이라도 하는거니 투정할건 없지만 자체 하드모드 개막이잖나. 집안에서까지 연기해야 한대니 무슨 경우고.


우선 거실 바닥에 놓인 실리콘 덩어리들이나 브러시같은 특수분장품들은 보이면 절-대 안되니 안방 짬칸에다 다 때려넣어 숨긴다음.


키보토스, 이 마굴에 파견오기 전에 가지고 온 운전면허증에 여권. 돈다발에 유서 사본과 출발일 열흘 남은 기차표는 금고에다. 유서장도 들킨 마당에 이런거 보여줘 좋을게 뭐가 있겠어.


챙겨갈때까지 잘 묵혀야지. 아무도 모르게 떠나기만 하면 이 몸이 승자일테지만. 나가면 이런 지긋지긋한 늙은이 놀음, 전~혀 안해도 된다는거다. 술 마신지 벌써 몇년전이야..?


‘‘ 남 눈치 보는것도 일이란 말이야. 몸도 피곤해지고.. ’’


몰라 씨바 다 벗어. 특히 가끔가다보면 목도 조르는 이 구렁인지 넥타인지 풀어, 가짜 반지도 빼고. 해방이다. 벗은거 모아 원기옥 만들고 세탁기에 슬램덩크 박아버리기.


‘‘ ... 샤워부터 할까. ’’


뜨신물이 스트레스 해소엔 직빵이니까.


쏴아아 -.


가슴팍까지 올라오는 뜨슨물 욕조물에 몸 담궈오니 스트레스가 풀어지는 느낌. 다 벗어던지고픈 이 기분좋음이란-.


‘‘ 하아, 속이는쪽도 나름 괴롭단말이다. 말투도 헷갈리고.. ’’


나까지도 속여야 하는 메소드 연기도 이 안에선 못할테지. 욕실을 채울 기세로 쭉 이어지던 늙은이의 푸념은-


지이익-.


‘‘ .. 계속하면 목소리랑 피부. 엄청 망가질텐데... 푸흐흐..! ’’


조금씩 터진 실성을 시작으로-


벗겨진 껍질과 함께 가늘어져가다 끝내 드러나는. 나른한 목소리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 들키면 절~대 용서 못받겠지, 이런 곱상하신 선생님이람 애취급이나 잔뜩 받고 무시받기 일쑤인데 용케 안들킨게.. ’’


실실 웃으며 자글자글하게 주름 새겨져있는 실리콘 마스크, 여태껏 오래 쓰고 왔던것 들고 흔들어보는 소년.


‘‘ ... 기적인거야. 유우카씨가 매일마다 집에 온다니 어쩐다-.. 참. 잔소리 듣기 싫으면 전담이랑 술도 숨겨야되네, 생각해보니.. ’’


기우뚱⋯


‘‘ 모르겠다! 내일은 티파티에 내일 모래는 대책워원회고. 바쁘구~나.. ’’


풍덩 .


숨 돌릴 시간 정도는 줘~..


보그르르르 - .



- -


[ 先生 : 미카 ]

[ 미카 : 에? ]

[ 미카 : 이시간에 무슨일이야 선생님? ]

[ 先生 : 자는중에 깨웠으면 미안하구나 ]

[ 先生 : 내일 혹시 괜찮다면 ]

[ 미카 : 응응! ]

[ 先生 : 티파티 끝나고 같이 산책이라도 가지 않겠니? ]

[ 미카 : 헉! 물론☆ ]

[ 미카 : 무르기 없기야!? ʬʬꉂ(˃̤▿˂̤ *) ]

[ 先生 : 오냐, 잘자고. 선생님도 피곤하ㄴㅏ.ㄷ. ]

[ 미카 : 그럼 내일 만나! 선생님! ]

[ 先生 : z ]


- -



‘‘ 평안하셨는지요, 선생님. 조금 늦어지시는 것 같아, 미리 차를 준비하고 있었답니다. ’’


‘‘ 불러주니시 오히려 감사할 따름이지. 늙은이가 빈 손으로 오기엔 뭐해서.. ’’


자연스럽게. 이게 중요하단 말이지? 가방에서 꺼내온 고풍스러운 달걀 공예품을 테이블에 무심히 놓았다. 


‘‘ 오기 전에 선물이라도 준비해왔네, 작은 성의니 받아다오. ’’


‘‘ 어라, 그건 나기사씨가 가지고 싶어하던 물건인데- ’’


‘‘ ...! 선생님께는 받기만 하네요.. 감사합니다. ’’


특히나 좋아하신다는 장식이란걸 방증하듯 나기사의 날개가 조금은 부풀어온걸 보아 친히 마련해주신 이 자리에 속 편하게 앉을순 있어 한시름 놓은걸지도.


‘‘ 그나저나 선생님, 나도 엄청 보고싶었던거지? 그치? ’’


‘‘ 물론이지. 이 할아버지는 엄청 외로웠단다. 키보토스에서 내 상대가 되어주는 건 너희들밖에 없으니.. ’’


분위기 메이커라도 되어주는 미카도 있고. 시작이 좋으니 슬슬 집안에서 무시받는 시아버지 연기나 해볼까.


⋯ 티백에 다시마가 차 대신에 들어갔다던지, 사방에서 난리가 난다는 앙증맞은 찐빠만 안나면 고요하고 빠르고 평화롭게 끝날 일정인데.


저 , 나⋯나기사님⋯⋯. 황급히 보고 드려야 할 만한 문제가──


‘‘ ⋯정의실현부의 학생들이 무언가 잘 못 본게 아닐까요? 돌아가서 다시 한번 확실히 진상을 파악하도록 하세요. ’’


‘‘ 죄다 매정하단 말이지, 발만 들이면 왜 왔냐며 이 할아버지에게 쓴소리나 하고.. ’’


‘‘ 뭐야뭐야, 선생님 꽤 외로움 타는 타입~!? ’’


대화는 어느새 평행선을 달리는데다..


‘‘ 아들은 대화가 없지, 며느리는 날 골칫덩어리 취급해 아침밥도 못먹게하잖.. 후릅-, 쿠흡-!!! ’’


‘‘ ... 이거, 호박차가 아닌걸요. 나기사..? ’’


이거 호박차가 아니라 스프분말 탄 물 아닌고. 찐빠 또 터진거냐?


나, 나기사님 큰일입니다!! 다도부의 일부 학생들이 차 상자를 수영장에 통채로...!!!


‘‘ ⋯⋯ 다들 뭐가 문제라서 하루도 빠짐없이 말썽을 일으키고⋯ ’’


‘‘ 에헤헤, 나기쨩~..? ’’


‘‘ .. 더 자극하면 큰일날게야, 따라오거라. ’’


‘‘ 에..? 응. 그렇. 앗-☆ ’’


‘‘ 아까부터, 죄다 뭐가 불만인건지! 티파티를 망치는것들의 주둥이에다 이걸 다 쑤셔버───!! ’’


결국 터져나온 극대노. 왼손엔 롤케끼 오른손엔 마카롱이라.. 잘못하면 주둥이에 깨나 꽂힐터니 험한꼴 당하기 싫으면.


‘‘ ... 아이고, 차 마실 분위기는 아닌것 같아 늙은이는 슬슬 빠지도록 하마. ’’


빼야죠. 얼어있는 세이아씨, 아랑곳 않고 보고하는 비서분들한텐 죄송합니다. 나중에 파르페든 초콜릿이든 다 사줄테니-


‘‘ 저기, 선생님⋯? 아직 못다한 이야기들이──’’


‘‘ 차는 맛있었다 전해주게, 나기사 양도 신경써서 준비했을테니 그럼 여기서- ’’


‘‘ 그럼 나. 난- 나도 선생님이랑 잠깐 어디 좀 갔다올게~!? ’’


대신 욕봐주십쇼. 미카 상태체크 겸 상담 좀 하러 갑니다.



- -



‘‘ 와오~ 정말 아무 조건없이 나와보는 외출이라니~☆ ’’


‘‘ 진만 빠지는 사회봉사보단 백배 낫겠지. 이 선생님에게 할 말은? ’’


‘‘ 에헤헤⋯ 고마워~. 선생님. 그치만 내가...  ’’


선생님에게도 그렇고, 누군가에게 뭔가 받을 자격이 있을리..


꽁 -


‘‘ 읏, 갑자기 왜~!? ’’


‘‘ 설레발을 너무 치니까. 이런 화창한날엔 선생님도 일만 하긴 싫을뿐더러. ’’


‘‘ 너무해~⋯ 나 보고싶어서 만난 줄 알았는데⋯ 나 조금 상처⋯⋯. ’’


‘‘ ... ... 를 받긴, 입꼬리나 내리고 얘기를 해야 설득력이란게 생기지. 손가락이 더 아파요, 무슨... ’’


‘‘ 아하하하-. 들켰나~☆ ’’


아니라며 떽떽거려도 엄~청 티나는걸. 선생님, 안볼때도 신경 엄청 써주는거 다 아는데⋯


‘‘ 그 밀피유나 들르려 했다만.. 계속 그렇게 놀리면- ’’


‘‘ 밀피유~? 우와아. 선생님한테 그런 소녀적인 감성이 남아있을줄 몰랐는걸⋯ ’’


정말 선생님은 항상 날 놀라게 한다니까? 이런 귀여운 면도 가지고 있고⋯ 


그리고- 어쩌구 저쩌구⋯ 놀리면 리액션도 좋고 재밌는 사람인걸. 세이아쨩하고 같이 있을때보단 백배 나을지도~


⋯그래서, 쭉 옆에 있어주면 좋을텐데.


‘‘ ... 저 뒤에 있는분한테 대신 사줘버린다? ’’


‘‘ 그건 절대 안되는데~ 공주님 정말 슬퍼질지도⋯ 흑흑⋯ ’’


‘‘ 슬퍼하는 기색이 있어야 말이지. 놀리는거 맞잖냐!! ’’


... 정말이지. 건방진 꼬맹이다.


' 밀피유의 정통 파르페 ' , 이 디저트 카페의 최고 인기 메뉴라지.


사준다 만다는거 듣곤 뒤에서 반색하시다 급기야 애처롭게 쳐다보시는 정희실현부의 H모양에겐 뭐... 그리 미안하진 않고요.


그 하나 먹으려는데 일주일 전부터 예약이나 해놓게 만드는 수고나 하게 만들게 하질않나. 참 손많이가는 공주님이십니다. 뻔뻔하시고요.


주문하신 디저트 나왔습니다 -


기다리는데 몇분이나 지나가기까지 하니 참 번거롭기도 하지.


‘‘ 파르페는 아가씨에게, 몽블랑은 이 늙은이한테 주시고. ’’


‘‘ 으, 으응⋯⋯? 이거?! ’’


‘‘ 정통 파르페. 많이 좋아할거 같았는데, 아니면 다른걸로-. ’’


‘‘ 전혀~?! 좋아한다는건 어떻게 알았어? 얘기한적 없었는데⋯! ’’


‘‘ 감이 온거지, 딱 봐도 공주님이 드실만한 디저트로 보이기도 하거니와- ’’


‘‘ 에헤헤~⋯ 역시 신경써주는구나⋯ ’’


뭐가 그리 좋다고 웃는건지.


눈까지 질끈감고. 한스푼 뜨실때마다 히죽대시고. 무의식적으로 파닥대오는 흰 날개도 보면. 조금은 사주는 보람이 느껴지지만...


‘‘ 미카. 잠시 가만히 있어봐라. ’’


‘‘ 으응, 선생니~? ’’


슥, 스윽 -..


곧 어엿한 숙녀가 되실분이 볼에 크림같은거 묻히고 다니시면 안되잖나. 


‘‘ 항상 몸가짐을 단정히 해야지. 공주님이시니까. ’’



‘‘ 임⋯. 응, 그렇지⋯⋯ ’’


뭐가 부끄럽다고 저래 얼굴이 빨개지는건지.


정말이지, 귀찮은 꼬맹이다.


서로 정신없이 얘기를 하게 되니, 디저트 카페에 들른 후 얼떨결에 백화점까지 가게 되고 말야.


‘‘ 어라⋯ 백화점에도 볼일이 있었던거야, 선생님? ’’


‘‘ 뭐, 같이 다니는길에 이런저런거 좀 사줄테니 말이다. ’’


어라, 어라라- 얼떨결에 백화점에 따라와버렸네~⋯?


자연스레 악세사리샵에 가선 이것저것 막 고르더니 내 날개에 달아주고⋯


‘‘ 여기있는 리본도 그렇고, 요 피어싱도 괜찮구나. ’’


‘‘ 와~오⋯. 선생님, 이런것도 잘하시는구나⋯⋯☆ ’’


‘‘ 그렇지. 딸애 학교가기전에 꽃단장 시켜주는 기분도 나거니와... ’’


이럴때마다 선생님이 아니라 아빠같기도 하고. 더 기대고만 싶어지는걸⋯⋯  그래도. 계속 그러면 선생님에게 민폐겠지..


‘‘ 애가 중학교 다닐때까진 묶어달라고 얼마나 앵겨대던지... 아, 다 골랐나? ’’


... 처음 몇번할땐 자괴감 쎄게 느껴지는데 이젠 무덤덤해지더라, 이런 연기 말이다.


‘‘ 아, 선생님이 사주는거였어?! 아냐아냐. 내가── ’’


손님, 결제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됐다, 학생 용돈이 얼마씩이나 된다고. 이걸로 하세요. ’’


아... 네, 결제되었습니다!


화장품 같은것도 일일히 고르더니, 결국 나한테 주는것만 수루둑하고⋯ 정작 선생님이 산건 몇개 안되잖아.


‘‘ 이게 좋지, 잡티도 꽤 잡으니 말이야. ’’


‘‘ 우와아- 선생님도 화장품에 관심 많이 가지는타입~? ’’


‘‘ 내 나이쯤 되면 자기관리에 철저해져야 하니... ...또 놀릴거리 생각하는거지. 응? ’’


‘‘ 전혀~? 막 그렇게 의심하는건 나쁜 버릇이라구. ’’


‘‘ ... 시끄럽다, 이것도 사줄테니 얌전히 받기나 해. ’’


- -



오늘은, 통금시간이 비교적 늦은 주말이 아니었기에 슬슬 날이 저물어오는걸 본 선생은.


공주와 어깨를 나란히 해오며 이젠 익숙해진 기숙사로 향해가고 있었다. 아쉬운듯 천천히.


‘‘ 미카. 이젠 잘 지낸다고 들었단다, 새 친구들도 생겼다고 들었는데. ’’


‘‘ 응, 코하루쨩도- 히후미쨩도. 나, 평판 안좋은 아이라 친해지기 힘들줄 알았는데- 오히려⋯ 먼저 다가와주더라구. 다 좋은 애들이야. ’’


‘‘ 그래. 행복하겠구나. 오늘은 어땠고? ’’


‘‘ 응, 오늘도⋯ 고마워. 함께 있어줘서. 지금도 함께 있어서⋯ 정말로. ’’


‘‘ ... 못볼것처럼 이야기를 하고 그런대, 또 이렇게 같이 보내는 시간은 오잖아. ’’


‘‘ 그렇지만⋯ ’’


이렇게 일찍 헤어지기 싫다고.


깍지까지 껴온 손에서 떨림이 전해져오는걸 느껴온 선생은, 아직은 아이였던 그녀를 달래주려-


기차표에 적힌 시간은 오늘로부터 열흘 뒤였지만.


‘‘ 다다음주에. 그 주 주말에... ’’


이루어질수 없는 약속을. 


‘‘ 일찍 만난 다음, 내내 같이 있으면 되니까. ’’


‘‘ ⋯응. 선생님. ’’


‘‘ 거기서... 더 해오는건 무리거든, 나도 할수 있는 내에-.. ’’


포옥.


‘‘ 고마워. 계속 이렇게 잘 지내와도⋯ 쭉. 같이 만나줄수 있는거지? ’’


거짓말을 했다.


‘‘ ... 그래.  ’’


고운 머릿결에 손 올리곤, 천천히 쓰다듬어오며.


서로 헤어지기 전까지 영원할것만 같은 잠깐을 만끽해오고.



- -



‘‘ ⋯ 선생님도 거짓말쟁이구나. ’’


을씨년스러운 기숙사의, 비상계단을 타고 올라가야 다다를 다락방 침대 위에 누워, 선생이 선물해준 리본을 소중한 물건 다루듯 꼭 쥐어오며. 


‘‘ 제일 챙겨주고 싶은 아이지만... ’’


몇분이고 기숙사 입구앞에 서있다, 끝내 유우카가 기다릴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옮기며-


‘‘ 오해하지 말라고 했지만⋯ 함께 있어서 좋았겠지, 선생님도? ’’


창가 너머에서 저물어져가는 빛살 아래서 정말 오랜만에 혼자 소녀같은 미소를 짓게 되는 공주를.


‘‘ ...이건, 어디까지든 비즈니스니까. ’’


선생에게 점점 기대오는 학생들의 모습을, 품안에 남은 은은하게 좋은 향기를 애써 외면하는 선생을.





그런 선생을 기다리는 이벤트들은 다음과도 같다.












하야세 유우카에게 혼인신고서의 서명을 강요받기까지,


강제적으로 벌려진 입술 틈으로 비집고 들어온 미소노 미카의 혀에, 엉망진창으로 입속이 휘저어지기까지 단 4일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