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나 쎈 뱀파이어 얀순이에게서 도망치는 스폰 얀붕이 - 10 - 얀데레 채널 (arca.live)

ㄴ여기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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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디... 마리?"


아이작은 시큰둥한 표정이었지만 다른 이들은 그러지 못했다.


특히 마리에게 구원을 받은 상인들은 잔뜩 겁에 질린 채, 방금 전까진 경의의 대상이었던 인물을 바라보았다.


"틀림없어! 그 붉은 머리칼, 에메랄드 색 눈! 솔도르프 투기장을 불태우고 도망친 챔피언이잖아!!"


도적은 듣는 아이작의 신경이 거슬릴 정도로 쩌렁쩌렁하게 마리의 과거사를 이야기했다.


딱히 궁금하지는 않았던 그녀의 과거를 들은 아이작은 조금 흥미가 생겼다.


세상 돌아가는 것에 어두운 그도 큼지막한 사건이나 지역 명물 정도는 지나가는 소문으로 알음알음 알 수 있었다.


"솔도르프라면... 제국의 수도 아닌가? 수도의 투기장은 제국의 투기장 중에서도 제일 가는 규모라고 들었는데."


"...맞아."


마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투기장에서 100승을 거둔 그 날 밤에 저 년이 불을 지르고 달아났어, 귀족들도 수십 명이나 뒈졌다고!!"


"와우."


아이작은 그의 마법사 동료를 흥미롭게 관찰했다.


'쓸데없이 정의감만 높은 노예 아가씨인 줄만 알았는데.'


하지만 그런 그녀가, 사실은 제국의 가장 큰 투기장에서 100승을 거둔 무패의 챔피언이었다는 사실이 그의 흥미를 돋구었다.


그리고 그녀에 대한 평가를 재고해봐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원래대로라면 국경을 넘자마자 목걸이를 훔쳐 달아나거나, 일이 틀어졌을 땐 그녀를 죽이고 피를 빤 다음 도망치는 것까지 생각해 둔 그였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이거 재밌겠는걸.'


감정을 꽁꽁 싸매는 척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감성적인 편인 마투사 노예.


그녀를 잘 구워 삶으면 마리아나 월터, 혹은 그들이 아니더라도 앞으로 있을 위기에 도움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의 고민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는 밀수꾼들 탓에 깨지고 말았다.


"히, 히이이익!! 괴물!!"


"도, 도망쳐!!"


그들은 은인에 대한 감사를 경멸과 공포의 시선으로 바꾼 채 밀수품 상자도 두고 간 채로 허겁지겁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들의 도망치는 뒷모습을 보며 그녀의 정체를 밝힌 도적은 한겨울 들판에 떨어진 것마냥 몸을 떨었다.


"나, 나나나, 나를 어떻게 할 셈이야."


최후의 자존심을 치켜 세워 강하게 말한 그였지만, 이미 눈에 그렁그렁 맺힌 눈물까지 감출 수는 없었다.


마리는 여전히 굳은 얼굴로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이작은 그녀의 얼굴이 그의 기를 누르는 것만 같았다.


조각상처럼 표정 변화 하나 없이 텅 빈 눈으로 그를 바라보는 마리의 모습.


어쩌면 그것이 노예 시절, 그녀가 솔도르프 투기장에서 보여준 마투사의 모습이 아닐까? 아이작은 그렇게 짐작했다.


"가."


마리가 턱짓했다.


그녀가 턱짓을 한 곳엔 명치에 생긴 화상에 고통스러워하는 도적 한 명과, 고드름이 팔에 꽃혀 끙끙대는 도적 한 명이 있었다.


"마음 바뀌기 전에 내 눈 앞에서 사라져."


"히, 히이익!!"


그는 눈 깜짝할 새에 그의 동료들 앞으로 날아가, 엄청난 힘으로 그들을 질질 끌고 숲 속으로 사라졌다.


"쯧쯧, 방금 그렇게 힘을 썼으면 이런 수모는 안 당했을 텐데."


아이작은 그들의 한심한 몰골을 향해 조소했다.


그리고 그가 머리를 뚫어버린 두 시체의 주머니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두근.


마리는 비릿한 웃음을 흘리는 아이작을 보며 심장이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불안했다.


그 역시, 그녀를 보고 괴물이라 매도하는 것은 아닐까?


투기장에서 수많은 목숨을 앗아가고, 그 투기장마저 불태워 수십 수백 명의 사람들을 다치게, 죽게 한 그녀를 살인자라 혐오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 불안 속에서는, 그 불안조차 잠재울 정도로 커다란 충동이 꿈틀거렸다.


미소 짓는 저 뱀파이어의 목을 잘라서 척추를 뽑아 그 미소를 고통과 공포로 뒤덮어버리고 싶었다.


'안 돼.'


마리는 눈을 깜빡거렸다.


그리고 그 충동의 원인이기도 했던 시체로부터 눈길을 돌렸다.


마리의 입술이 떨렸다.


파르르 떨리는 입술은 힘없이 뱀파이어에게 덧없는 질문을 던졌다.


"...너는?"


"응?"


실실 웃음을 흘리는 아이작에게 마리가 물었다.


"너도 내가 괴물이라고 생각해?"


"뭐?"


아이작은 잠시 그녀와 눈을 마주했다.


역시나 방금과 마찬가지로 흐릿한 시선이었다.


마리가 보내는 그 시선 속에는, 아이작은 모르는 그녀의 과거가 담겨 있었다.


불타는 투기장.


비명을 지르며 뛰쳐 나오는 사람들.


말을 타고 쏜살같이 도망치는 마리.


그리고 그 지옥도와도 같은 풍경 속에서,


마리는 미친 듯이 웃고 있었다.


아이작은 그 음울한 기운을 내뿜는 눈동자와 잠시 시선을 교류했다.


그리고,


"푸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뭐, 뭐야."


당황한 마리가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미안, 미안, 어이가 없어서 그만."


"뭐라고...?"


마리의 눈꺼풀이 움찔거렸다.


아이작의 말에 그녀는 끓어오르는 무언가를 참으며 따졌다.


"내가 장난하는 걸로 보여?"


"그럼 나는 어때, 괴물처럼 보여?"


하지만 오히려 아이작은 더 크게 웃으며 마리의 말을 받아쳤다.


"뭐?"


마리는 그의 말에 쉽게 답을 하지 못했다.


그의 외모로써 평가하자면, 괴물의 용모는 전혀 아니였다. 오히려 뱀파이어로써의 특징이 그를 더욱 아름다운 '사람'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의 질문은 그런 것 따위를 묻는 게 아닐 것이다.


마리는 고민했다. 그는 괴물일까?


분명 그는 도피처를 찾던 그녀를 꾀어 뱀파이어 로드의 식당 문턱까지 내몰았다.


자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아이작은 수많은 사람들을 그렇게 유혹하고 끌어들여 도살했을 것이다.


그 행적은 분명 괴물이나 다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를 그리 하도록 명령한 주인을 혐오하고, 가족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슬퍼할 줄도 알았다.


그녀는 찰나의 순간 주인에게 분노를 쏟아내던, 그리고 금방이라도 바스라져 사라질 것 같은 해골 앞에서 무릎을 꿇은, 그리고 해방감에 기쁨을 주체 못해 춤을 추는 아이작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는 괴물일까?


마리는 쉽게 답을 내리지 못했다.


고민하던 그녀의 귀에 나지막히 아이작의 목소리가 들렸다.


"흠, 이렇게 오래 걸릴 거라고 생각 못했는데."


아이작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


"그럼 내가 먼저 대답해 주지. 알 게 뭐야?"


그는 일부러 더욱 부풀린 몸짓으로 어깨를 으쓱이곤 다시 시체의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언제 어디서 따라잡혀 뒈질지 모르는 이 상황에서 네가 인간이든 괴물이든 알 게 뭐야? 어차피 좋든 싫든 우리는 한 배를 탄 운명인데."


"내가 몇백 명의 목숨을 빼앗았을지 모르는데도?"


"허허, 참 내."


아이작은 가당치도 않다는 듯이 웃었다.


"네가 백 명을 죽였건 만 명을 죽였건 제국민 전체를 죽였건, 난 상관 안해. 내가 너한테 원하는 건, 저 지옥보다 더 좆같은 성에서 도망칠 수 있도록 날 도와주는 거야. 답례로? 나는 네 노예 낙인을 지울 방법을 찾는 거고. 중요한 건 그게 다야."


그는 끙, 신음을 흘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머니에서 쓸만한 것들을 다 챙긴 모양이었다.


그리고 아직 마리의 시선이 그의 등에 꽃혀 있음을 느꼈는지,


"하아."


한숨을 푹 쉬곤 말을 이었다.


"정 제대로 된 대답을 원한다면, 네가 그렇게 사람 쳐죽이는 걸 즐기는, 악독한 괴물이었으면 석실에서 무릎 꿇던 날 산채로 태워 죽였겠지. 자는 사이에 널 덮친 날 죽여버릴 수도 있었을 테고. 하지만 안 그랬잖아?"


아이작은 장난스럽게 그녀의 어깨에 툭 손을 얹었다.


"그리고 사람 죽인 걸로 따지면, 아마 너보다 3백 년은 더 오래 살았을 내가 더 많이 죽였을걸. 이 모든 걸 다 고려해봤을 때,"


그리고 미소지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가식적인 미소였다.


"난 네가 사람이라고 생각해."


그 가볍디 가벼운 어투로 말한 한 문장이, 마리의 가슴 속에서 뭉클한 것을 끌고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설마 이런 상황에서, 이런 존재에게 이런 대답을 들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설령 그것이 가식으로 꾸며낸 이야기라 하더라도,


"그래..."


투기장 노예가 된 순간부터 그녀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마리는 눈시울이 붉어지려는 것을 애써 참았다.


"고마워. 나도 네가 사람이라고 생각해."


"하! 일부러 고운 말 쓰려고 노력 안 해도 돼, 자기. 난 괴물이니까."


아이작은 콧방귀를 뀌며 그녀의 말을 가볍게 흘려 넘겼다.


"자, 그럼 이제 우리 친절한 밀수꾼 친구들이 두고 간 저 상자를 마저 뒤지고 떠나 볼까? 아니면 내가 공감 능력을 발휘해야 할 트라우마가 아직 남았니?"


마리는 그와 만난 후 처음으로, 가볍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래. 가 보자."


"원하시는 대로."


아이작은 귀족 가문의 집사처럼 정중하고도 과장된 인사를 한 뒤 가볍게 콧노래를 부르며 상자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발소리마저 나지 않는 산뜻한 걸음으로 그가 상자 앞으로 마지막 한 발짝을 내딛으려던 그 찰나,


아우우우우우ㅡ!!!


포효 소리와 함께 새들이 푸드덕 날갯짓을 했다.


"아, 젠장."


똥을 씹은 듯한 표정으로 아이작이 투덜거렸다.


"항상 좋은 순간에 찬물을 끼얹는다니까."


"조심해, 뭔가 온다!"


마리가 포효가 들리는 곳을 향해 경계 태세를 갖추며 주문을 준비했다.


그리고 적의 숫자를 파악하기 위해 정신을 집중했다.


푸스스슥, 사사삭.


발걸음은 가볍지만 몸은 무겁다.


아마 서너 놈은 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머지 않아, 마리는 그녀의 추측이 딱 들어맞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르르르..."


온몸에 피칠갑을 한 놀 세 마리가 그녀를 향해 역겨운 입김을 뿜어냈다. 송곳니에는 막 베어 문 듯한 고깃조각이 걸려 있었다.


"저런, 그 도적들이 맞는 말 했네."


아이작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진짜로 여기서 죽을 운명이었잖아?"


가장 큰 놀의 손에는 상체만 남은 채 내장에서 신선한 피를 뚝뚝 흘리고 있는 밀수꾼이 혀를 내민 채로 눈을 까뒤집고 있었다.




다음화에 얀순이가 세월의 저주 쓰면서 존나강해짐

그리고 노예놈 곧 얀진이화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