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를 찾아가라. 용사 실종록의 전말을 밝히기 위해."


"...긴 여행길이 되겠는데."


수도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산맥을 가리키는 지도를 움켜쥐고. 대륙 전체를 가로지르는 여행길.


험한 숲길에는 들끓는 도적놈들이 얼마나 도사리고 있을지. 그렇다고 말단 서기인 내가 군대를 요구하기도 웃기고. 별 수 없지.


"군소리 말고 출발하십시오. 곧 해가 집니다."


"해가 중천에 떴는데 지긴 뭘 져. 해 진다고 쉬지도 않는 녀석이."


"임무니까요."


임무. 그래 그 빌어먹을 임무. 전 황국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임무. 


글 쓰는 재주 하나로 황국에서 일할 수 있다고 할 때 도망쳤어야 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되서, 전국 곳곳을 황국에서 객사는 하지 말라고 붙여준 경호원 하나와 함께 돌아다니고 있다. 모든 출장에서 경호 신청을 하면 꼭 저 녀석이 따라오는데, 인원이 부족한 건지...


나는 황국의 서기이자, 사관. 


이 기록은 내가 전국을 돌아다니며 듣고, 경험한 기묘한 이야기들이다.


대부분은 기괴하고, 끔찍하지만... 사람을 홀리는, 그런 야사들.


그 첫 번째 이야기. 표지를 쓴 펜이 마르기도 전에 쓰여진 이야기, 성녀 회고록이다.


"...출발하자. 갈 길이 멀어."


"빈둥대는 건 당신 뿐입니다."


"혹시 동행인 변경은 안 될까? 아, 아니야. 혼자 출발하지 마! 그냥 그렇다고! 삐지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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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와 성녀.


긴 황국의 역사에서 언제나 등장하는 전설의 존재. 그들의 동행인들은 있었던 순간도 있고, 아니었던 때도 있다. 전설적인 대장장이, 도적, 마법사... 수많은 용사들과 인물들이 그들과 함께했지만. 모든 전설에서 빠지지 않는 것은, 저 둘뿐이다.

 

두 명의 파티만으로 마왕을 살해한 세대도 있었을 정도.


기묘하게도 용사가 나타나면 성녀가. 성녀가 나타나면 용사가 언제나 나타나 함께했다고 한다. 마치 서로가 서로를 뒤쫓아오듯이... 


확실하게 전해져오진 않지만, 용사와 성녀가 서로 사랑에 빠지는 경우도 굉장히 많았다고 하니.


그 이후 그들은 용사의 고향에 돌아가 작은 결혼식을 올리고- 그래, 이런 마을.


"도착했다."


"...조용한 마을이군요."


"좋게 말하면 그렇고, 나쁘게 말하면 있는 게 없지."


"저는 이런 조용함을 좋아합니다. 언젠가 일을 그만두면 이런 곳에서 살아가도 좋을 것 같군요."


항상 무표정한 경호원의 입가에 살짝 걸린 미소. 하기야 성녀라는 사람도 모든 명예와 재물을 뒤로 하고 이곳에서 살아가는데. 이런 사람들도 있는 법이지.


"구석진 마을. 그곳에서도 산 꼭대기에 위치한 낡은 교회... 뭔가 냄새가 나는데."


언제나의 전설처럼 마왕은 부활했다. 용사와 성녀도 나타났다. 정의로운 용사는 성녀와 함께 악마를 물리치고 사람들을 구했다. 미친 듯이 들이닥치는 영웅담을 취재하러 뛰어다니는 나를 제외하고는, 황국은 완전히 축제 분위기였지.


영웅담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이어지다가. 모두가 예상한 것처럼 마왕은 죽었다. 성녀는 마왕의 머리와 함께 돌아왔고, 나라는 평화를 되찾았지만...


용사는 사라졌다. 시기도, 이유도 모른다. 유일한 목격자는 용사와 함께 떠난 성녀뿐. 


"손님인가요...?"


마을 뒷산에 위치한 교회. 이곳의 낡은 나무문을 가볍게 두드리자. 미성의 목소리가 안에서 울려 퍼졌다.


"황국의 구원자, 카리타스교의 가장 신성한 인도인. 성녀님을 뵙습니다."


"들어와요."


문이 열리자, 눈을 안대로 가린 은발의 여성이 보였다.


백색의 천이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그 미색조차 감추지는 못했으니. 전 세상에서 가장 고귀하고 아름다운 처녀가 이곳에 있었다.


공교롭게도 옆의 경호원과 같은 은발인데, 묘하게 그녀는 기분이 나빠 보이지만.


"오늘은 곧 비가 내릴 테니. 잠시 들어와 계세요. 손님께 드릴 차는 지금 없는데. 괜찮으신가요?"


"저희는 괜찮습니다. 다만, 성녀님께 여쭙고 싶은 것이 있어 이렇게 찾아 뵈었습니다."


"제가 대답할 수 있는 것이라면."


"용사님께서는 어디에 계십니까?"


항상 자애로운 표정의 성녀의 얼굴에, 순간이지만 그림자가 들이워졌다.


"...대답해야만 하나요."


"곤란하신가요?"


"죄송하지만, 그 일에 관해서는 저도 기억이 잘 나지 않고. 용사님이 어디에 있는지 저도 잘 모릅니다."


"성녀님. 제가 성녀님께 부탁드리는 입장에 있을 때, 잘 생각하시지요."


"그 정도의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일이 길어질 것 같다는 생각에 한숨을 멈추지 못했다. 성녀 앞에서 이랬다고 신성 모독으로 잡혀가도 할 말은 없지만, 뒷놈만 입 다물고 있으면 고발하는 놈은 없다.


"왕명으로 다시 찾아뵙고 싶진 않거든요. 지금이야 경호원 하나지만, 군대가 올지도 모르고."


"그럴 가치의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만."


"사실 지금 왕국은 굉장히 비상입니다. 마왕도 죽일 수 있을 정도의 전력인 용사님께서는 사라지셨지. 목격자인 성녀님은 갑자기 사라지시질 않나. 용사님을 납치한, 아니 회유한 나라와 전쟁이라도 나면 어떡할까요? 국민은 용사님의 행적을 알고자 하는데, 그 끝이 반역이라니. 당신의 위치를 알아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거래가 와갔는지 아십니까? 교황청이 당신은 지킬 수 있을 지 모르겠지만, 글쎄요. 이 마을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거든요.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성녀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신 입술이 짓이겨지고, 눈썹이 떨린다. 


"사람의 목숨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저도 숫자놀이엔 이골이 나거든요. 성녀님." 


"알겠습니다. 말해 드릴게요. 용사님이 어떻게 되었는지..."


"잘 생각하셨습니다."


승리의 윙크를 뒤에 있던 경호원에게 날렸지만, 돌아오는 것은 경멸의 표정이었다.


내 편은 아무도 없네. 아, 빨리 돌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