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간 길. 집 앞에서 마주친 것은, 그녀.


"아……."


나라, 나의 여자친구. 아니 이젠 '전' 여자친구.

그녀와 헤어진 나에게, 그를 여자친구라 부르는 것은 과연 이상한 일이겠지.


그런 그녀가 내 문 앞에 몸을 숙인 채, 앉아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퉁─.


잘못하고 움직인 발에서, 콘크리트가 둔탁하게 울리는 소리가 나고.

그 소리에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녀가. 무릎과 팔 사이에서 곁눈질을 하며 날 바라보고 있었다.


어두운 복도였지만.

눈에서 나오는 안광에 그녀의 시선을 느끼며. 나는 숨을 헉, 하고 참았다.


그녀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어떤 모습을 해야 할지.

하다못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 지도 모른 채.

나는 그녀의 앞에서 얼어붙어 있었다.


그래도 전과 다른 점이라면, 그런 그녀에 앞에서 느꼈던 무력감과 공포는 사라져 있었고.

왠지 모르게 시들어 보이는 그녀의 모습에서, 한없이 비참함을 느꼈다는 것이다.


그렇게나 작은 모습의 그녀는 연애 이후, 지금까지 처음이었다.

단순 키나 체형 뿐만이 아닌. 그녀가 가진 자존감이나 자신감 또한 상실한 모습이었다.


"왜, 왜 여기에 온 거야?"


그런 그녀였기에. 나는 천천히 입을 떼었다.


"네가, 보고 싶었으니까."


그녀가 팔 사이에서 나오는 상당히 줄여진 소리로 내게 말했다.

그러곤 고개를 들어 올렸다.

눈에는 눈물 자국이, 눈 밑은 빨갛게 부어올랐고. 손은 밑부분이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평소에 보여주던 깔끔하고, 잘 칠해진 화장은 사라지고. 무엇 하나 숨김 없는 얼굴로. 그녀는 천천히 일어서 내게 다가왔다.


움찔─!


그런 그녀의 움직임에, 잠시 몸이 뒤로 움직였지만.

곧 그녀는 나에게 다가와. 내 팔을 잡았다.


"어디에 있었어? 왜 계속 없었어?"

"노, 놀러 갔다 왔을 뿐이야."
"놀러? 누구랑? 이 냄새……, 화장품 냄새."

"이러지 마!!"


난 그녀를 뿌리쳤다.


"나랑 넌 이미 헤어졌잖아!! 참견하지 말라고!"

"아, 그래. 나에게 일방적으로 말하면서 넌 내가 싫다고 했지."


복도 사이로 바람이 불었다.

긴 그녀의 머리가 바람에 나풀나풀 휘날렸다.

휘날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그녀는 날 바라보며 웃고 있었고.

나는 그런 그녀의 웃음에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넌 내가 싫어, 맞지?"
"싫다니……."

"확실하게 말해줘. 솔직히 이런 여자 싫잖아? 지 마음대로에 시험해보기나 하고, 귀찮고 질척거리고. 다른 사람들이랑 놀러나 가는 주제에 부르기나 하고."


그녀의 말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멍하니 그녀를 바라볼 뿐.


"그래 맞아, 싫어. 최악이야!! 너랑 있던 시간 중에 숨통 트였던 시간도 없었고, 모두 최악이었어!!"

"아하, 아하하."

"곰곰이 생각해보면, 왜 그렇게 됐는지. 전혀 모르겠다. 분명 처음에는 안 이랬을 텐데."

"그러면 너는 내가 어쨌으면 좋겠어?"


나는 발끈하며, 그녀에게 물었다.


"그런 걸 아까부터 왜 계속 묻는 거야!? 내가 죽으라면 죽기라도 하게?!!"

"──응."


그녀가 복도의 난간으로 다가섰다.


그 모습에 피가 차가워지며, 손이 떨리고.

나는 그런 그녀에게 뛰쳐갔다.


"자, 죽으라고 해줘. 네가 죽으라고 한다면 난 여기서 떨어져 죽을 테니까."

"뭐하는 짓이야!!"
"네가 정말로 날 싫어한다면, 나는 더 이상 살아있지 않으면 되는 이야기야."


가슴이 엉망진창으로 뛰었다.

아직도 불어오는 바람에 흘러나오는 땀이 식어버리고.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도 춥고 싸늘하게만 느껴진다.


내가 다가갈 수록 그녀는 난간에 더 비스듬하게 섰다.

대답만을 기다리고 있듯이.


고민해보면, 나는 그녀를 어떻게 생각하는 걸까?

왜 이런 상황이 됐지? 무엇이 문제였을까, 최악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너 보고 살라고 한다면. 넌 어떻게 할 거야?"

"그래도 떨어질 거야."

"왜?"

"네게 필요한 게 아니니까."

"…………."


저벅.


그 말에 나는 더 이상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그저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갈 뿐.


"그냥 대답해줘. 내가 죽던지, 아니면 계속 해주던지. 더 이상 네게서 버려진다면 난 살 수 없으니까!!"


저벅.


계속해서 발을 내딛었다.

그녀는 점점 더 난간에 몸을 기대었고.

곧 휘청이며, 발은 몸을 지지할 땅을 잃었다.


"말해줘!!"


덥썩!!


난간 너머로 넘어가던 그녀의 몸을 붙잡아, 강제로 끌어내리며.

숨을 헐떡이며 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싫어! 정말 싫어!! 그러니까 죽지마, 차라리 그럴 거라면 여기서 네가 말해. 이제 더 이상 그러지 않겠다고."

"히끅, 히끅."


그녀의 부어오른 눈 사이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나는 역시 멍청한 미련쟁이다.

마음도 하나 제대로 끊어내지 못하는.




===


근 시일 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