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는 고귀하다.

모든 민중이 아레스 교 성녀에게 의지하고 있다.

나이가 고작 17살이라 폄하하는 사람은 없다.

그 고귀함과 기품, 아름다움은 신에게 하사받은 것은 분명하리니.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성녀 아리아가 자살했다.

 

 

 

*******

 

 

 

성녀가 죽었다.

교황청은 패닉 상태에 빠졌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장례식을 거행했다.

불미스러운 사유였기에 장례식은 길고 성대하게 치러지지 않았다.

단지 화려한 무덤만이 그녀가 성녀였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뭔가 숨기고 있군."

 

장례식이 끝나고 제1성기사단 단장 레이아가 단장의 방으로 나를 부르고는 대뜸 말했다.

창문 바깥은 먹구름으로 우중충했다.

아직도 성녀가 죽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무슨 말입니까?"

"냄새가 난다 이거다. 냄새가."

"전 상관없는 일입니다."

"내가 널 왜 불렀겠냐?"

 

내가 맡고 있는 부단장직이란 것은 그저 레이아 단장의 뒤치다꺼리를 처리하는 게 주업무다.

그녀 레이아 단장은 참 호기심이 앞서는 인물이다.

 

"들키지 않고 조사해봐라."

"그게 가장 어려운 일인 건 아시죠?"

"할 수 있잖냐."

 

레이아는 의자에 거드럼피며 앉았다.

나는 할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까라면 까야지 뭐 어쩌겠는가?

 

그렇게 비밀리에 조사를 나섰다.

먼저 갖춰둔 인맥을 활용한다.

우선 성녀의 시녀인 에미리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아직도 슬픔에 젖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레오! 무슨 일이야? 흑흑흑."

"괜찮아. 에미리. 더 이상 슬퍼하지 마."

 

한참을 그녀를 위로해주고서야 그녀를 겨우 눈물을 멈췄다.

 

"아직도 믿겨지지가 않아."

"모든 사람들이 그럴 거야."

"창문 밖을 봐. 사람들의 행렬이 멈추지 않아."

 

무덤 앞에 성녀의 명복을 비려는 사람들의 행렬로 바깥은 발 디딜 틈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성녀가 죽은 건 매우 유감이지만 그녀와 이야기 한 번 나눠보지 않은 나로선 그리 감정적인 기분이 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사무적인 사람이다.

 

"내가 무슨 일로 찾아왔는지 알겠어?"

"응. 하지만 이미 조사관이 와서 다 말했는 걸."

"낌새도 못 느꼈다?"

"응. 정확히 맞아. 하지만 밤에……."

"밤에?"

 

에미리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아무 것도."

"그런가. 알았다. 바쁘니 이만 가볼게."

"응. 위로해줘서 고마워."

 

에미리의 방을 나가고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

 

'뭔가 숨기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래보이지는 않았어.'

 

굳이 캐묻지 않은 건 심증이 가는 인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성녀는 밤에 자신의 방에 있었다.

그리고 성녀의 방을 찾아갈 수 있는 인물.

에미리가 알고 있지만 의심하려고 하지 않는 인물.

 

"교황 베르토스님입니다."

"음."

 

레이아 단장은 내 중간 보고에 짧은 대답을 했다.

 

"좀 더 조사해오겠습니다. 성녀의 방에 들러서 행적을 좀더 조사해보고 그 다음…"

"아니 됐다."

"네?"

"생각보다 더 뒤가 구린 사람이 나왔어. 어떻게 해볼만한 상대가 아니야."

 

레이아는 드물게 한숨을 푹 쉬었다.

 

"수고 많았어. 내 호기심 때문에 널 위험에 빠뜨릴 뻔 했구나. 고생했으니 이제 잊어버려라."

"…그렇습니까?"

"그래. 아니길 빌어야지. 그래. 결단코 아닐 거다. 그런 신의 노여움을 살 짓을 교황님이 하시지 않으셨겠지."

"……알겠습니다."

 

달칵.

방을 나왔지만 단장의 명령으로 내 머릿속에서 잊혀지기는 커녕 더욱 궁금증이 앞서갔다.

 

"설마…."

 

밤이 됐다.

성녀 아리아가 지내던 첨탑 입구에서 목례하는 병사들을 지나치며 첨탑을 올랐다.

본래라면 결코 허락없이 들어갈 수 없는 곳이지만 이 첨탑의 주인은 이미 죽었다.

끝에 다다르자 아리아의 방문이 열려있었다.

들어가자 안에 있던 가구들은 모두 치워버렸는지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보이는 거라곤 떨어져서 죽은 창문뿐.

그때.

 

"그래. 무슨 일이냐? 추모할 곳은 여기가 아닐진데."

 

교황 베르토스가 뒤에서 나타나 내게 말을 걸었다.

나는 한 쪽 무릎을 꿇고 예의를 갖춘 후 말했다.

 

"교황님. 성녀님은 정말 자살한 겁니까?"

"그렇다."

"그렇다면 교황청에서 그 이유를 자세하게 파고들진 않는 건 무슨 연유에서 입니까?

 

베르토스가 화가 난 듯 말했다.

 

"그걸 지금 내게 묻는 이유는?"

"그날 교황님을 아버지처럼 따르던 성녀님 방에 밤에 방문한 것은 교황님이 아니십니까?"

"……."

 

베르토스가 한숨을 쉬었다.

 

"억측이다. 아리아는 성녀를 떠나 내게 딸보다 더 귀중한 존재였다. 그런데 지금 나를 의심하는 것이냐?"

"그런 것이 아닙니다."

"말장난 하지 마라! '너도' 죽여주마!"

 

순간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방금 '너도'라고 하셨습니까?"

"……."

 

베르토스는 아차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 표정도 내게 걸렸다.

베르토스가 검을 빼들었다.

 

"흥. 네놈을 여기서 죽여서 서사시를 하나 만들어주마 '고귀한 성기사가 성녀를 못잊어 따라죽었다'는 가사를 말이야."

"그,그렇게는…!"

 

하지만 모든 것에 통달해야 오를 수 있는 교황이란 상대는 내게 어려웠다.

나는 성녀와 마찬가지로 창문에 그대로 낙사해 죽고 말았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구구절절 설명할 수 있는 것은…

 

"…되살아났다."

 

정확히 말하면 회귀했다.

성녀가 죽기 하루 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