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어렸을적에 너랑 놀고 싶다고 자주 놀러오던 옆집 여자애 기억하지?“


그 때는 초등학교에 다니던터라 자세한 생김새는 잘 기억이 안나지만 밝고 쾌활해서 귀염성이 있는 아이여서 나를 잘 따르던 것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아아. 그 검은머리 여자애?” 



 “그래 그 아이 말이야. 너가 이제 막 성인이 되어서 대학 근처에 자취하기로한 근방의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는구나.그러니 그 애랑 좀 같이 지내야겠다~.”


갑작스러운 부탁이긴 했지만 상당히 친하기도 했고 방도 마침 두 개였기에 같이 지내는 것도 외롭지 않고 좋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요, 뭐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말도 잘 듣던 녀석이었으니까요.”


 “오~ 그래? 그럼 잘 부탁할게. 또, 용돈도 늘려줄테니 걱정마렴.”

 


 “잠깐, 엄마 걔 이름이 뭐였지?” 

 

뭐야. 벌써 끊었잖아. 직접 물어보는 수 밖에.


뚝. 하고 전화가 끊기는 소리가 들리기 무섭게 똑똑 하고는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설마 벌써 도착했다고?


곧장 문 앞으로 가 외시경을 확인해보니 갈색 머리에 단발을 한 소녀가 서있었다. 앳된 외모를 보아하니 척 보아도 고등학생 즈음 되어보였으나 나이대에 맞지 않는 성숙함이 느껴졌다.


“저.. 문 좀 열어주실래요? 아 그리고, 소식은 미리 들으셨겠죠?” 



”열어줄게. 잠깐만“

 

철컥. 하고 문이 열리면서 더 정확하게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언제 갈색으로 염색한거지? 요즘 고등학교에서는 단속 안하는건가? 그리고 분위기도 꽤 많이 바뀌었네. 키도 엇비슷하고.


 “하하. 분명 어렸을적엔 쪼그맸는데, 많이 컸네.”



 “칭찬 감사해요. 저도 오랜만에 뵈니 참 기쁘네요.”


이미 시간도 꽤 지난 저녁 즈음이기도 했고. 짐도 여자애가 들고 오기에 상당히 버거워 보일만큼 꽤 컸다. 가방이 내 백팩의 2배는 되어보였으니 말이다. 그래서 짐을 풀어주려 했는데.

 

 ”아앗. 안돼요! 저 혼자서 충분히 풀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보이면..“ 


 보이면? 여자애니까 그런 물건도 있을 수 있겠다 싶어서 더 캐묻진 않는게 예의겠지.



  “그럼 내 방 오른편에 있는 빈 방에 짐 풀고나서 일찍 쉬도록 해.  또 궁금한거나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불러도 돼.”



 “네 양해해주셔서 감사해요. 그럼 내일은 마침 토요일이니까 아침에 뵐게요. 안녕히 주무세요.”  

 


 그 말을 뒤로하고 나는 방으로 들어가서 누웠다. 원래 나는 어렸을 때부터 잠은 늘 일찍 자는 편이었다. 친구들이 새나라 어린이냐고 놀릴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내가 벌써 잔다는 건 어떻게 안걸까. 그리고 원래 저렇게 존대하는 말투였었나?


 아! 그리고 이름 물어봐야 하는데 또 까먹었네. 모르겠다. 그냥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물어보면 되겠지 주말이니까. 

    

 나는 그렇게 눈을 감았다.


 철커덕 철컥.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음 야밤에 무슨 소리지? 나는 뒤척이다가 다시 잠에 들었다. 


그리고 또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이번에는 뭔가 줄 같은게 팽팽하게 당겨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내 발 쪽에 불편한 감각이. 


더는 불편해서 잠을 잘 수가 없어 눈을 떴더니. 

뭐야. 손은 침대 모서리 쪽에 수갑으로 묶여 있고 발은 밧줄로 한 치 틈이 없게 묶여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내 몸통 위에 그 여자애가 올라타 있었다.


 “뭐.. 뭐야! 이건 무슨 장난이야. 빨리 풀어줘!” 



 “풀어달라니요. 풀어야할 것은 그동안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었던 제 마음이겠지요. 어렸을적에 저도 근처에 살았었는데 처음 봤을 때부터 줄곧 연심을 품고 있었어요.”


 “제가 당신과 이어지는 것을 하루하루 상상하고 일기를 쓰며 늘 행복할 것만 같았고 그랬었는데 그 멍청한 여자가 먼저 제 것에 다가가서는 아양을 떠니 얼마나 황당하고 화가 나셨는지 아시나요.” 


 “그래서 지금의 상황을 연출하기 위해 일부러 성적을 높이고는 먼 곳에 있는 이 곳으로 진학해 제 어머님께 미리 알아둔 당신의 부모님의 연락처로 동거할 수 있게 손을 써뒀지요. 후후”


 정말 어지간히도 힘들었는지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았다. 

그런데 이건 그냥 열심히 산거 아닌가? 미디어에서 보던 그런 정신나간 캐릭터가 현존할리가 없지 암. 


 “그래. 나를 좋아했는데 누가 먼저 말을 걸어서 친해질 기회를 놓쳐서 공부를 열심히해 성적을 높여서 이 먼 곳으로 진학해 끝에 결국 이렇게 됐다는거지? 그럼 그냥 만나면 되겠네.“



 “네? 그리 쉽게 받아들인다고요? 그럼 제가 이제껏.. 뭘 해온거죠? 그리고 그 대답은.. 이제 저도 몰라요!”


 방금까지 조금 위협적인 표정을 짓던 그 애가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내 방 밖으로 문을 박차고 나갔다. 이걸로 한 건 해결인가. 


 어. 근데 이거 풀어주고 가야지! 그리고 또 이름 물어보는거 까먹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