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용병여왕과 현자의 상태를 들었을 때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하이엘프가 군대를 이끌고 숲을 떠날 때도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하일리시가 돌아온다면 이 어긋난 상황을 짜맞출 수 있을거라는 생각. 그것 하나뿐이었다.


하지만 마왕을 토벌한 일행은 모두 정신이 나가버렸고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것은 용병여왕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녀 또한 중증이었다.


"...그래서 그 이야기가 정말이야?"


"네, 만일 그 책을 찾기만 한다면.."


"자고 있는 용을 깨워서 정당하게 조진 다음에 인정을 받고 그 책을 받아라..꽤 난이도 높은 임무라고 생각하지 않아?"


정보원은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가능성을 찾은 것은 매우 훌륭한 것이니. 금화 몇 개를 던져주니 반색하며 안주머니에 넣었다.


"...아무리 그래도 나 혼자서 용을 물리치는건 힘든데."


용사의 검이라 불리는 신검도 박살나서 더는 못쓰게 되었다. 일행 중에 더이상 정상인은 없다. 어떻게 해야 할까.


"역시 현자인가? 현자를 어떻게든 깨워야하나?"


이리저리 생각에 몰두하며 걸음을 옮기니 어느새 하일리시의 무덤에 도착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 그의 시신과 마주했다. 저 평온한 얼굴로 죽어갈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매일매일 우리들 몸 속의 어둠을 흡수할 때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너는 다시 우리를 만났을 때 웃어줄 수 있을까.


"죄송합니다...쓸모없는 현자라서 죄송합니다..죄송.."


옆에서 현자가 주저앉아 중얼거리고 있었다. 아, 이 년을 도대체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하면 깨울 수 있을까. 그냥 한 대 쎄게 때리면 반응이 올까?


"죄송합..윽! 죄송합니다, 때려주세요. 전 아무것도 못하는 현자입니다. 죄송합니다..."


와우. 짝 소리가 날 정도로 쳤는데 이렇게 받아넘길 줄은 몰랐는데. 진짜 어떡하냐. 현자에게서 눈을 떼고 슬며시 고개를 돌리니 하일리시의 시신이 보관된 무덤이 보였다.


"아니..이건 진짜 사람의 도리가 아닌 것 같은데.."


근데 어차피 내가 할 일도 사람의 도리는 아니잖아? 어차피 할 일 아냐? 아니 그래도 일단 하는 척만 해보자. 허리춤의 장검을 들어 천천히 자세를 잡고 힘을 방출한다. 현자는 아직도 중얼거리고 있네.


"이래도 정신 안차리면 진짜 죽여버릴거야!!"


있는 힘껏 시신을 향해 칼을 내려쳤다. 순간 갑자기 시야가 암전되면서 몸이 벽에 부딪혔다. 혼란스러운 머리를 바로잡고 바라보니 현자가 죽은 눈으로 날 보고 있었다.


"당신..당신도 죄를 지었으면서 어째서 그의 시신에 손을 데려고 하다니! 감히! 죽어! 그 죄는 죽어 마땅해!"


"잠깐만 좀! 내 이야기를 들어봐 현자! 하일리시를 되살릴 방법을 찾아냈다!"


현자가 멈칫했다.지금 말 안꺼내면 둘 중 하나는 무조건 죽는다.


"믿을만한 정보야. 에르헨 산맥에 있는 용의 둥지. 그곳에 잠들어있는 용의 인정을 받으면 보물을 하나 얻을 수 있지. 그 보물 중 하나가 생명에 관련된 비술. 즉 강령술이야."


"ㅈ....진짜? 정말로? 하일리시를 되살릴 수 있어? 속죄할 수 있어?"


"...진심이야, 너도 나도, 그리고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하일리시에게 목숨을 빚졌으니까. 우리는 갚아야할 의무가 있어."


나는 현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현자는 다시 생기가 돌아온 눈으로 내 손을 잡았다. 그녀는 주섬주섬 스크롤을 챙기기 시작하더니. 하일리시의 손을 한 번 잡고 목례를 했다.


"다녀올게요 하일리시. 돌아올 때는 꼭..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기를"


아마 우리가 돌아올 때. 모든 것은 정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아니면 모두가 비정상으로 미쳐버리던가

***
이 소설은 소프트 얀데레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주들이 가진 감정은 사랑이 아닙니다. 대충 동료애. 그리고 죄책감과 채무감이 대충 오리엔탈 샐러드로 버무려진거죠. 나중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