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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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해 보죠."


미네는 차트를 유심히 들여다보며 말했다.


"거의 전부에 가까운 기억 상실, 심각한 타박상, 그리고... 알 수 없는 이유로 우리를 숭배하는... 기이한 현상, 이라고 할까요. 그리고 그로 인한 광증 정도가 있겠군요."


"네, 부장님. 그리고, 마리 씨와의 만남에서 너무 크게 다치셔서... 지금은 면회가 힘들 것 같네요."


선생이 마리와의 면회에서 크게 다친 이후, 선생을 만날 때는 반드시 세리나와 미네가 동반해서 면회를 가지기로 했다. 누구보다도 선생의 안전을 위해서. 다행인지 불행인지, 선생은 머리를 모서리에 부딪힌 후에도 기억이 멀쩡했다. 그 말은, 돌려 말하면 아직 선생이 학생들을 광적으로 숭배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알겠습니다. 세리나, 최선을 다해서 선생님을 간호해 주세요. 저와 하나에는 외부에 구호를 나서야 해서. 부디 잘 부탁합니다, 세리나."

 

"맡겨주세요! 부장님!"


미네는 그 말을 끝으로 선생의 병실을 나섰다. 세리나는 그 반대 방향인 선생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선생님..."


선생은 깊이 잠든 모습이었다. 누워있는 모습만 보면 평화로웠지만, 머리와 몸통에 붕대를 칭칭 감은 모습을 보면 누구라도 쉽게 말이 나오지 않을 만한 현장이었다.


"앗, 벌써 붕대를 교체할 시간이..."


세리나는 선생의 머리에 감긴 붕대를 풀었다. 붕대에는 선생의 피가 흥건했다. 그 피를 보면, 세리나의 가슴은 대바늘로 무참히 쑤시는 듯 아프기만 했다. 어느새 세리나의 눈에는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배어져 나왔다.


"으... 으음... 으...? 아...! 최초의 여신님!"


약간의 신음과 함께 일어난 선생은 세리나를 보자마자 납작 엎드렸다. 그 탓에 선생의 머리에서 피가 흩뿌려져 침대가 젖었지만, 선생은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 없다는 듯 세리나를 향해 복종의 뜻을 내비쳤다.


"선생님! 똑바로 앉으셔야 해요! 피가 흐르잖아요!"


"어찌 제가 감히."


세리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선생은 여전히 납작 엎드려 있었다.


세리나는 심호흡을 하고, 눈을 감은 채 약간의 각오를 다졌다.


"이건 여신의 명령입니다. 감히 여신의 명령을 거역할 셈인가요?"


세리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선생은 바로 일어나 목석처럼 않았다.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앉아있는 모습은 마치 조각상과도 같았다.


"죄...송합니다! 최초의 여신님! 제가 감히..."


"그런 것도 금지, 라고 하지 않았나요?"


"네! 최초의 여신님!"


마리와의 만남에서 선생이 다친 이후로 생긴 또 하나의 규칙, 그건 바로 선생을 대할 때는 여신으로서 명령을 내린다는 듯 하는 것이었다. 여신을 무엇보다 최우선 가치에 두는 선생은, 결국 여신의 명에 따라 움직였다. 자신의 말에 꼭두각시 처럼 움직이는 선생의 모습에 세리나는 가슴이 아팠지만, 이것도 선생을 위한 것이라며 자신을 위로했다.


"그럼, 붕대를 감을 테니 가만히 계셔주세요."


세리나의 말에 선생은 털끝 하나 움직이지 않겠다는 듯 우뚝 멈추었다. 세리나는 선생의 머리에서 흐르는 피를 닦고, 천천히 붕대를 감아주었다. 붕대를 감으며 세리나의 소매가 살짝 피에 물들었지만, 그런 것 쯤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아무래도 상관없다니, 왠지 선생의 모습에 자신이 겹쳐 보이는 것 같아 세리나는 왠지 기뻐졌다. 


생각해보면 이 모습은 세리나가 항상 빌었던 소원과도 같았다. 오직 자신만이 선생을 돌봐줄 수 있다는 것. 선생은 전적으로 자신을 믿어주고, 의지해준다. 선생이 세리나 자신에게 의지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소망. 선생은 항상 세리나에게 고마움을 표했지만, 그렇다고 세리나의 진심어린 충고에 따라주지 않았다. 선생이 야근에 지쳐 쓰러져 잠들고, 불량한 식습관으로 자주 복통에 시달렸을 때, 세리나는 묵묵히 선생을 치료해주면서도 뒤돌아서면 손에 얼굴을 파묻고 울기 십상이었다. 그러나 지금 선생은 누구보다도 자신을 의지해주었다. 아니, 의존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핫."


그러나 선생의 붕대를 전부 감고 테이프로 고정할 때, 세리나의 망상은 뚝 끊겼고, 돌아온 이성이 조금씩 그녀를 질책했다.


"...선생님, 아프지는 않으셨어요? 진통제라도, 놔 드릴까요?"


세리나는 가슴 깊숙한 곳에서 올라오는 음울한 마음에 선생에게 한 마디를 건넨다. 자신이 선생에게 도움을 줄 방법은 이것밖에 없다고 느꼈다.


"최초의 여신님께 바치는 저의 신앙과 믿음이 함께하면, 저는 바늘을 씹어 삼켜도 아무렇지 않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선생의 눈에는 다른 어떤 감정도 없이 오직 공포에 가까운 경외 만이 가득 차 있었다. 그 눈을 들여다보자 세리나는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분명 선생이 자신에게 의지해 주었으면 하는 것은 맞았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지기를 바랐던 것은 아니었다. 세리나에게 선생이 의지할 힘이 되어주는 것도 필요했지만, 동시에, 선생 또한 세리나에게 의지할 원동력이 되어주었었다. 그러나 지금의 선생은 세리나를 학생이 아닌 다른 무언가로 보고 있었다.


'최초의 여신'이라는 칭호 또한 마찬가지였다. 선생이 처음으로 깨어날 때 처음부터 있었던 세리나와 미네를 보고 선생은 최초의 여신이라고 불렀다. 세리나 자신은 분명 선생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이런, 수직적인, 그것도 선생을 아래로 두면서까지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저, 자아, 그럼, 몸에 있는 붕대도 풀어드릴게요. 아프면 말씀해주세요."


세리나는 잡념을 떨치고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일이 길어질수록 선생도 불편해질 터였다.


"최초의 여신님과 함께라면 그 어떤 고통도 감내할 수 있습니다."


"아뇨, 이건 명령이에요! 아시겠죠? 조금이라도 아프면 말씀해주셔야 해요?"


"최초의 여신님의 뜻이라면."


세리나는 선생의 몸에 있던 붕대를 풀었다. 그곳에는 선생이 난동을 부리며 생긴 많은 상처가 잔근육이 조금씩 드러난 몸에 새겨져있었다.


그것들은 물론 세리나의 마음을 아프게 했지만, 세리나의 눈길을 잡아 끄는 것은 따로 있었다. 에덴 조약 사건이 일어나던 때, 선생이 지근거리에서 총을 맞아 생긴 깊고 선명한 흉터. 세리나는 사실 이 흉터를 처음 보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세리나는 이 흉터를 볼 때 마다 가슴이 쿵쾅쿵쾅 뛰고 식은 땀이 흐르며 마음 깊은 한 구석에 마구잡이로 대못을 박아 넣은 듯 쓰라렸다.


"...선생님. 아프진 않으세요?"


"아프지 않습니다. 신앙과 믿음이 저를 갑옷처럼 지켜주시니."


"신앙이니 믿음 같은 거 말고요!"


세리나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소리를 지른 것은 세리나였는데도 오히려 세리나 자신이 소스라치게 놀라 입을 틀어 막았다. 세리나는 자신이 소리를 지른 것에 한 번, 또 선생이 여신님을 실망 시켰다며 광증을 일으킬 것에 두 번 놀랐지만, 그러나 선생은 여전히 목석처럼 앉아있었다. 


"...선생님?"


"...왜 그러십니까?"


"혹시... 괜찮으신가요? 그러니까... 제가 소리를 질러서, 선생님이 죄송하다면서 난동을, 아니, 그, 선생님이 그런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고..."


"여신님의 명령이 우선이니까요. 붕대를 감을 때는 가만히 있으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선생님..."


"...마리 여신님의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저 때문에 슬퍼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여신님께 사죄드린 것이 독이 되었다니, 천 번을 목숨으로 갚아 마땅하지만, 저의 그 태도 때문에 문제가 되었다면... 부디 마리 여신님께, 너무 마음 쓰지 말라고 해 주십시오. 미천한 것에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전해주십시오."


"...미천한 것이라는 칭호는 빼고 말씀드릴게요."


그 말을 끝으로, 세리나는 조용히 선생의 붕대를 교체하기 시작했다. 붕대를 갈면서 선생의 몸을 만지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었는데도, 세리나는 왠지 모를 부끄러움에 볼이 새빨개졌다. 그러나, 그것이 싫지는 않았다. 오히려 적극적인 것은 세리나였다. 한 번 붕대를 감을 곳에 두 번, 두 번 붕대를 감을 곳에 세 번 붕대를 감았다. 붕대를 감으며 느껴지는 잔근육에 세리나는 움찔거렸다.


"저, 등 뒤에도 붕대를 감아야 해서, 거리를 좁혀야 하니까, 저를, 그, 안아주시겠어요?"


세리나의 말은 거짓말이었다. 설령 손이 등에 닿지 않는다고 해도 자신이 등 뒤로 돌아가면 되었다. 그러나, 세리나는 진실보다도 자신에게 솔직해지기로 했다.


선생이 세리나를 끌어안자, 세리나는 선생과 자신의 심장 소리가 공명하는 것을 느꼈다. 언제나 존경하고 좋아했던 선생이 지금은 자신에게 의존한다. 그것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이번엔 선생 대신 세리나의 눈이 무언가에 물들어갔다. 총알은 선생의 몸을 뚫고 나왔기 때문에 등 쪽에도 관통으로 인한 흉터가 있었다. 세리나는 그것을 들여다보며 생각했다. 자신만이 선생을 지켜야 한다고. 자신만이 선생을 지킬 수 있다고. 세리나는 선생을 더 세게 끌어안았다. 그에 맞추어 선생의 끌어안는 힘도 조금 강해졌다. 세리나는 더, 더 세게 끌어안고 싶어졌다. 이 선생을 자신의 손으로 지키고 싶었다.


'선생님선생님선생님선생님선생님선생님선생님선생님선생님선생님선생님선생님선생님선생님선생님선생님선생님선생님선생님선생님선생님선생님선생님선생님선생님선생님선생님선생님선생님선생님선생님선생님선생님선생님선생님선생님선생님선생님선생님'


어느새 숭배하는 쪽은 선생님이 아니라 세리나가 되어있었다. 선생은 연약하다. 세리나가 이렇게 가까이에서 선생을 보호하고 간호한 것은 처음이었다. 세리나는 선생을 지키고 싶었다. 여신이 되더라도. 여신이 되어서라도.


붕대를 감는 것은 길어야 몇 분이면 끝나지만, 세리나가 붕대를 전부 감았을 때는 이미 해가 지고 있었다.


"선생님."


"네. 최초의 여신님."


"세리나라고 불러주세요. 명령이에요."


"세리나 여신님."


"언제나, 어디서나 지켜드릴게요."


"제가 세리나 여신님을 지켜드려야 마땅합니다."


"명령이에요. 지킴 받으세요."


"네. 세리나 여신님."


미네가 구호활동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세리나의 눈빛은 조금 달라져 있었지만, 그것을 아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중간에 마리 떡밥을 살짝 던지긴 했는데, 지금은 쓸게 많아서 나중에 외전으로 나올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