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와 살이 내 눈앞에서 무자비하게 튀었다. 목소리도 나오지 못할 만큼 벌벌 떤 나는 피칠갑으로 점철된 손에게 온정의 손길을 느꼈다. 눈 앞에 모든 적을 말살 시키고 나서 내게 미소 짓는 그녀가 내민 손길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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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파이팅 넘치는 작품들이 좋았다. 

팀원들끼리 단합력, 외부의 적을 막기 위해 내부가 응집되는 것도 좋았지만 역시 서로 간에 정의를 내건 싸움이 가장 흥분되고 기분이 고양되었다. 서로 간의 정의를 내건 한판 승부로 나눠지는 것과, 자신의 정의가 옳고 그름을 깨닫고 나서 후회하거나 깨닫는 부분은 가슴이 벅찼다.


이번 작품도 마찬가지였다. 케사이카고(KSKO) 문고집에서 새롭게 발간된 '중수지관절' 또한 엄청 재미있는 만화였다. 

평범하게 남들만큼 약했던 주인공이 어느 날 지하 격투장으로 우연찮게 끌려갔고 거기서 어처구니 없게 적을 쓰러트렸는데 모두들 그게 주인공의 힘인줄 알고 착각해서 주인공에게 시련이 찾아오고 그 과정에서 주인공의 성품에 끌렸던 히로인들이 주인공을 강하게 해줘서 위기를 모면하는 내용이다.


* 중수지관절(손가락뼈의 첫 관절마디 부분)


뻔한 왕도의 길인 듯 보여도 예상치 못한 곳에서 어처구니 없는 생각으로 독자들에게 상상도 못한 씬을 보여주고, 더군다나 캐릭터들의 개성으로 비워졌던 스토리 공간도 메꿔져서 개연성도 맞아 이게 왜 재미있지? 하면서도 계속 보게 되는 작품이였다.


여튼 간에, 이번에 중수지관절이 새롭게 발간되었다는 말에 나는 서둘러 학교가 끝나고 나서 서점에 만화책을 사러 달려갔다. 학교랑 그다지 멀지 않았고 가게에는 이미 점원 누나한테 신간을 맡겨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에 있을 건 당연했다. 가게 단골이 된지 어연 몇 년째고 그 누나와도 어느정도 호감정들이 다 쌓였기 때문에 신간보관은 언제든지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즐거운 마음으로 서점으로 향하는 길, 아직 6시가 다되갈 무렵인데 어느새 해가 다 떨어지고 보이지 않아 발걸음을 조금 빨리 걷기로 했다. 이 동네 다 좋은데 가로등이 별로 없어서 불안하단 말이지.


그렇게 빠르게 발걸음을 옮겨 가면 이제 슬슬 문을 닫으려고 하는 점원 누나를 발견하고서는 손을 흔들었다. 누나는 곧장 나를 발견했고, 중수지관절 1권 만화책을 손에 쥔채 빙그레 웃으면서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잘 보관하고 있었구나!


" 누나! 저 왔어요! 그거 이번에 발간된 중수지관절 맞죠? "
" 음, 그렇지. 이거 몇개 들어온게 없어서 엄청 귀한거 꼭꼭 숨겨놨었다고? 흐흥. "


누나는 스스로가 대견스러운 듯 코를 오똑 세우고 어깨를 한 껏 올렸다. 자랑스러워 하는 누나의 얼굴에 내가 뻘쭘해하는 걸 느꼈는지 누나는 내게 만화책을 얼른 건냈다.

" 부가세랑 기밀 보관비까지해서 3만원 되겠습니다. "
" 비싸! 이게 2만원 인데.. 2만 2천은 안되겠습니까? 누님 "
" 2만 8천. "
" 2만 4천. "

" 2만 5천, 그 이상은 안돼. "
" 콜. "


제 값보다 비싸게 주고 샀지만, 신간이고 새롭게 나왔다고 하니까 이 정도 값은 지불할 수 있지. 값을 즉석에서 바로 현금으로 계산 뒤에 누나는 내게 잘 가라는 듯이 손짓을 하며 폐문한 가게 안으로 들어갔고, 나도 집으로 얼른 향했다. 빨리 이걸 집에서 뜯어서 음료수와 과자랑 함께 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짜릿하고 신났다. 서둘러 나는 집으로 향하는 길에 올랐고 신나게 걸어가고 있었다.


그때였을까.


-짤랑


길을 따라 걸어가고 있는 내 옆에 어느 한 소녀가 하얀빛 귀걸이를 한 채 뛰어가고 있는걸 봤다. 워낙에 그 용모가 이뻐서 나도 모르게 빤히 쳐다보면서 간거 같다.  밤 조깅을 하려는 걸까. 서둘러 뛰어가던 그녀의 뒷 모습을 몇 초간 바라보다가 다시 집으로 갔다.


집으로 향해 문을 열고 들어서 내 방으로 곧장 향했다. 아, 샤워 맞다. 몸을 정갈히 하고 나와야 만화책에 대한 예우를 차리지 않는가.

서둘러 옷을 벗고 샤워실로 들어가 몸을 개운하게 한 뒤 다시 침대로 다이빙 해서 과자랑 제로 콜라를 꺼낸채 만화책을 즐겁게 봤다. 

" 그나저나 여기 히로인들이 대부분 캣파이트하네..주인공이 괜히 불쌍해지는구만. "

물론 주인공도 강해지고 있지만 그런 주인공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싸워대는 장면이 참..뭐라고 해야할까. 힘내라 남주. 


남주들 말고도 히로인들 중에 대다수가 얀데레거나, 멘헤라거나, 이건 뭐지 NTR처단? 이건 괜찮은거 같네. 남주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노려질 법도 한데, 이게 서로 좋아하는 사람이 같은 히로인들이 서로 싸우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주인공에게 피팅이 줄어드는게 꽤 인상깊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책을 읽고 나서 눈에 피로가 몰려올 때 즈음, 책갈피를 읽던 부분까지 끼워놓고서는 뒷정리를 하고 양치를 한 뒤 잠에 청했다. 월요일 때 친구들한테 이 만화책 소개해주지 않으면 근질거리는 기분을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 쿠울... "


그렇게 그가 잠에 들었을 때, 책꽃이가 살짝 빛이 난 것은 그도,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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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리리릭! 삐리리릭!

휴대폰 알람음이 벌써 7시임을 알렸다.  주말인데 일어나지 않아도 괜찮잖아. 주말에 느긋하게 있는 건 좋은거라고, 5일을 무력하게나마 지내고 금요일 밤에 불태우고 토요일 날 쥐 죽은 듯 있어야 제대로 된 주말의 시작 아니겠는가. 

라고 생각할 때 쯔음, 무언가 내 배 위로 떨어지는 듯한 고통이 밀려오고 순간 나는 개구리가 울어대는 듯 한 소리를 내며 졸렸었던 두 눈이 저절로 희번뜩 떠지게 되었다. 누가 내 배를 발로 쳤다. 그것 말고는 생각할 수 밖에 없는 감각이였기에 얼굴까지 덮었던 이불을 내려 무엇인지 확인해보았다.



" 오ㅡ, 오라방. 오늘은 뱃가죽이 왜 이리 나약하데? "

" ㄴ..ㄴ...누구세요!!!??? "

꽤 이쁘장하게 생긴 어린 애가 내 배 위에 깔고 앉아있는 이 현상을 이현상으로 받아들어야 할 것 같은 나는 순간 놀라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그런데, 안 일어나진다. 아니, 못 일어난다! 이 소녀가 단순히 앉아있는 것 만으로도 상체를 일으킬 수 가 없다. 

" 하이고, 오라방의 귀여운 여동생도 못 알아보고 꿈에서 홀여시한테 당한겨? "

" 아니.. 나 진짜... 못 일어나니까.. 나와봐.. "

분명 무게는 별로 안 느껴진다. 배 위로 올라온 무게는 40도 안되는거 같은데, 양 옆구리를 조이는 이 허벅지 근육들이 유압프레스기 처럼 쫘악 조여매 단단히 고정하고 있으니 도저히 이 곳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것이였다.


" ...잉? 참말로...? "
" 그래, 이 힘을 내가 어찌 이기..세요.. 나와..주셨으면 합니다.. "

그리고 이 힘이면 나를 한 손으로 척추를 반대로 접어도 이상할 게 없다고 판단한 나는 도저히 힘으로 풀 수 가 없어 다시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다. 도대체 무얼 먹고 자라면 이렇게 되는걸까. 그리고 우리 집안은 대대로 3대독자였는데, 이 소녀는 대체 누구길래 이러는걸까. 의문만이 가득 담긴 채 고개를 푹 숙여 중얼이는 소녀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보니 어디서 많이 본 거 같은 얼굴인데.. 그보다도 여긴 내 방이 아니잖아?!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도저히 영문을 알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소녀가 내 양팔을 잡고서는 나와 콧등을 마주칠 정도로 가까이 붙어서는 내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 진짜제? 차암 말로 오라방 내게서 못 벗어나는가? "
" 어, 어엉? 어어? 그 그게... "

상기되 얼굴이 붉게 물들인 뺨 말고는 모든게 다 위험하다고 내 온몸의 근육들이 경고 아닌 경고처럼 부르르 떨고 있었다. 이건 위험하다. 질척한 눈에 아무것도 비춰지지 않고 그 동공이 나를 향하고 있어서 더 위험하다고 느꼈다. 대체 누구길래 이러고, 여긴 대체 어디지 라고 생각이 들 때 쯤, 책상을 슬쩍 본 자리에 어제 사뒀던 만화책이 없었다.

" 어 왜 만화책이 없ㅡ으그아악!! "


허리, 허리에서 뭔가 부셔질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무언가 했더니 조여지고 있는 것이였다. (자칭) 여동생이라는 이 작자에게 안 그래도 얇상한 몸에 허리가 조여져서 압착되어가고 있던 것이였다. 1X년 동안 살아오면서 도저히 느껴보지 못한 고통에 몸부림을 치고 앉았지만 정작 유압프레스기인 당사자는 이 사실을 전혀 눈치 못 챈건지 침을 닦아내면서 내 가슴에 얼굴을 비볐다.

" 오늘 내 참지 않아도 괜찮제..? 주말이고.. 오늘 쿄쿄 생일도 아닌디.. 이루마 오라방이 보면 질투하겠어야..그지..? "

쿄쿄? 이루마? 그 소리를 듣자 내 머릿속에서는 무언가 한가지 스쳐지나갔다. 쿄쿄는 주인공의 히로인 중, 최연소 어린 아이였고, 이루마는 주인공 이름이였다. 그 작품의 이름은 '중수지관절'.. 그렇다는 말은 여기는..

" 끄아아악! 아파! 아파! "
" ㅇ..아파? 에?! 오라방 괜찮은겨?!! 오라방?! "

방금 전 까지는 참아낼 만할 정도의 고통이였다면 이번에는 진짜로 부러졌다. 우드득 하는 소리가 허리에서 났고, 온몸을 바들바들 떨어대던 내가 이때동안 장난으로 하는 것 처럼 느꼈는지 자기도 모르게 더욱이 강하게 몸을 압착 시켰는 모양이다. 그, 결국에는 척추에 금갔다라고 생각이 들었고 배를 너무 압착한 바람에 제대로 숨도 쉬지도 못해 되찾았던 정신을 다시 잃고 말았다.


(자칭) 여동생 쿄쿄의 당황과 걱정스러움이 한가득 담긴 얼굴을 마지막으로 한 채 눈을 감으며 생각했다.

나, 이세계 전이 되었다고.










※ 소설에 대한 피드백은 작가의 역량활성화의 좋은 영양분이 됩니다.

AI 그림을 잘 못해서..그냥 모작한거 쬐끔 수정했슴미다. 나중에 제대로 그려올게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