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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마켓의 뒷골목, 파란 장발의 여자가 초조한 모습으로 잘 작동하지도 않는 휴대폰을 들고 있었다.


"선생이... 중태? 기억상실까지...?"


사오리의 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자신이 선생을 상처 입힌 그 날 이후, 죄책감에 시달리며 선생을 지켜내겠다고 맹세했는데, 자신이 지켜줘야 할 선생은 또 다치고 말았다.


사오리는 간단하게 준비를 마치고 선생이 있다는 병원을 향해 달려나갔다.


"저긴가."


사오리는 병원의 창문 앞에서 손을 털었다. 창문으로 기어올라 잠입할 생각이었다. 깊은 새벽이었기에 보는 눈도 없겠다, 선생의 얼굴이라도 볼 생각이었다. 다른 학생이 자신을 보는 일이라도 발생하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었다.


"저기, 누구시죠?"


숨을 깊게 들이쉬고 잡입 준비를 마친 사오리의 뒤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냐!"


사오리는 반사적으로 권총을 빼들고 자신의 뒤에 서 있는 인영에 겨누었다. 그곳에는 분홍색 머리카락을 가진 트리니티의 학생이 한 명 서 있었다.


"혹시, 병원에 볼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선생을 보기 위해 왔다."


"어머, 면회 시간은 한참 지났을 텐데, 내일 다시 오시는 게 어떨까요?"


"...곤란해."


"아무리 그래도, 잡입은 곤란하다구요? ...제가 할 말은 아니지만..."


세리나는 조금 쭈뼛거리며 말했다. 사오리는 권총을 다시 홀스터에 집어넣었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아니면, 내일 면회를 오시는 게 어떤가요? 아침에 오시면, 사람이 많이 없을 거에요."


"알겠다. 소동을 일으킨 건 사과하지."



동이 트고, 해가 떠오르자, 병원의 문도 다시 열렸다. 그곳에 누구보다 빠르게 찾아간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사오리였다. 


"빨리 오셨네요?"


세리나는 사오리의 얼굴을 보고 반가운 듯 인사했다.


"...당신은?"


하지만, 세리나 뒤에 서 있는 미네의 표정은 세리나와 달리 그리 밝지는 않았다.


"세리나, 이 분은?"


"아, 어제 밤에 여기로 들어오려 하셔서요. 일단 돌려 보내고 오늘 면회를 하고 싶다고 하셔서 오셨어요."


"..."


사오리와 미네 사이에는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세리나는 이런 침묵이 어색하다는 듯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내쫓고 싶다면 내쫓아라."


먼저 입을 연 것은 사오리였다.


"하지만, 부탁이 하나 있다... 선생의 얼굴만큼은 보게 해다오. 내가 그럴 자격 따위 없다는 건 누구보다도 내가 제일 잘 알지만... 선생을 지키고 싶다는 신념. 이것 하나만큼은 내 모든 것을 걸고 진실이라고 맹세할 수 있다."


"걱정하지 마세요. 내쫓을 생각은 없으니."


미네는 차분히 말했다. 약간의 경계심이 섞여있긴 했지만, 적대심은 없는 목소리였다.


"당신도 구호가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이 느껴집니다. 선생을 보는 것으로 구호가 이루어질 수 있다면, 저는 막지 않겠습니다."


"...고맙다."


"선생의 병실은 이쪽입니다."


사오리는 미네와 세리나를 따라 선생의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아, 새로운 여신님이시군요. 최초에 여신님들도 함께 뵙다니, 영광입니다. 예를 표합니다. 여신님."


선생은 당연하다는 듯 엎드려 사오리에게 예를 표했다. 그에, 사오리는 크게 당황했다. 당연하게도.


"선생! 뭐하는 건가!"


사오리는 선생을 일으키려 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에 세리나와 미네를 돌아보자, 미네는 덤덤한 표정이었고, 세리나는 약간 놀란 표정이었다.


"어머, 소식 못 들으셨나요?"


다만, 세리나의 말에서 유추해 봤을 때, 세리나가 놀란 부분은 사오리와는 전혀 다른 부분이었던 듯 하다.


"무슨 소린가?! 선생이 이러는데, 말려야 하는 것 아닌가?"



사오리의 다급한 목소리에, 세리나는 천천히 선생에게 말했다.


"선생님, 이제 일어나세요. 조금 불편해하시잖아요."


그 말에 자세의 변화 하나 없이 꿋꿋하게 기도하던 선생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세리나님, 저 여신님의 고귀함 앞에서 저 같은 미천한 것이 감히 허리를 들 수나 있겠습니까?"


"명령이에요."


세리나의 말이 떨어지자, 선생은 그제야 일어나 사오리를 바라보았다.


"선생...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이미 사오리는 아연실색한 상태였다.


"제게 생긴 일 말씀입니까? 그러고 보니, 오늘은 유독 햇살이 밝았습니다. 여신님 같이 고귀한 분을 만날 징조였을 지도 모르겠네요."


"그것 말고, 그... 으음..."


사오리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대화가 잘 이어지지 않는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선생은 여전히 평온한 얼굴이었다.


"...내가 기억나지 않는가?"


사오리의 말에 선생은 놀란 얼굴이 되었다.


"...저를 아십니까? 혹시 제가 여신님을 만나고도 기억하지 못하는 불경한 짓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라면 벌을 주셔도 상관없습니다! 아니, 그러셔야 합니다! 제가 어찌 감히!"


선생은 마치 그라데이션처럼 흥분하여 사오리에게 말을 쏟아냈다.


"진정하세요, 선생님."


미네가 선생에게 차분한 목소리로 명령하자, 선생은 다시 조용해졌다.


"네. 여신님. 그렇다면, 지금 제 앞에 있는 여신님?"


"사오리. 조마에 사오리다."


'설마 이것마저 잊을 줄은...'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에 사오리는 비통한 마음을 마음 한 구석으로 밀어낼 뿐이었다.


"사오리 여신님? 제가 여신님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감히 이 더러운 입으로 물어도 되겠습니까?"


"...선생. 나는, 선생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


"네? 어째서입니까? 죄는 무릇 미천한 인간이 신에게 지어, 그 죄를 속죄하기 위해 살아가는 것... 사오리 여신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차라리 원죄를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라면 좋으련만..."


"아니, 선생. 나의 죄는 선생에게 분명히 각인되어있다."


사오리는 나름의 각오를 다졌다. 차라리 기억을 잃은 선생이라면, 선생에게 지은 죄를 더 말끔히 털어낼 수 있을 것만 같다는, 근거가 부족한 자신감이 들었다.


"선생의 오른쪽 허리에 새겨진 총상... 그건 내가 새긴 것이다... 미안하다 선생. 꼭, 이 말이 하고 싶었다."


놀라는 세리나, 올것이 왔다는 표정의 미네, 한편, 가장 극적인 것은 선생의 얼굴이었다. 선생의 얼굴은 사오리의 기대와는 달리, 오히려 환희에 물들고 있었다.


"아,,, 아아! 사오리 여신님! 사오리 여신님이 제게 성스러운 성흔을 새겨주신 분이었군요! 아아, 사오리 여신님! 몰라뵈어서 죄송합니다! 제게 영광의 성흔을 남겨주신 분을 몰라뵈는 불경한 무례를 저지르다니! 용서해주십시오 사오리 여신님! 그러나 동시에 저를 벌해주십시오! 뼈에서 살을 발라내어, 저에게 영원한 천국으로 향하는 문을 열어주십시오!"


"잠깐, 선생! 나는 그런 뜻이 아니었다!"


근거 없는 자신감은 보통 실패의 쓴 맛을 보기 마련이다. 사오리는 그 대가를 일반적인 경우보다 좀 더 비싸게 치르고 있었다.


선생은 순식간에 사오리를 덮쳐 끌어안았다.


"아앗! 선생!"


뭐하는 짓인가, 하고 소리를 질러야 했지만, 입이 열리지 않았다. 선생의 잔근육, 그리고 허리에 깊게 난 흉터의 사뭇 다른 질감. 사오리는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선생을 놓았다간 넘어져 다칠 것만 같아 계속 그를 끌어안고 있었다. 세리나와 미네가 사오리를 도와 선생을 떼어내려고 했지만, 선생은 꿈쩍하지 않았다.


"사오리 여신님! 제게 더 많은 성흔을 새겨주십시오! 신성한 검으로 살을 베어내고, 위대한 망치로 저의 뼈와 함께 원죄를 깨부수소서!"


"선생! 그런 건 성흔이 아니다! 내가 선생에게 새긴 한낱 죄의 흉터일 뿐이다!"


"아아! 처벌을! 성흔을! 구원을!"


"선생이 내게 가르쳐주지 않았나! 자신의 몸을 소중히 해야 한다고!"


"죄송합니다 여신님! 주제넘게 여신님을 가르치려 해서 죄송합니다! 미천하고 불경한 자의 헛소리를 무시하시고, 깨끗한 세상으로 저를 인도해 주소서!"


"그만두어라, 선생!"


선생과 학생들의 실랑이는 한참 지속되었고, 세리나와 미네의 명령 또한 선생에게 닿지 않는 듯 했다. 선생의 광증과 성흔에의 집착은 계속 이어졌다.


"미안하다, 선생!"


결국, 사오리가 선생의 뒷목을 쳐서 기절시키는 것으로 겨우 마무리 되었다.


"역시, 난 이곳에 올 자격이 없었던 것 같다. 소란을 일으켜서 미안하군."


"..."


세리나와 미네, 사오리 모두 말이 없었다.


"...사오리..."


선생의 말에 세 학생 모두가 뒤돌아보았다. 그러나 선생이 깨어난 것은 아니었고, 기절한 선생이 잠꼬대를 하는 소리였다.


"...돌아가겠다."


사오리는 세리나와 미네가 무어라 할 틈도 없이 빠르게 병원을 빠져나갔다.



"선생님..."


다시 블랙마켓으로 돌아온 사오리. 사오리는 선생이 자신을 안았던 것을 떠올렸다.


"나는, 아직, 선생에게 특별한 존재인가...?"


선생의 상처를 다시 본 것은 오랜만이었다. 흉측했지만, 선생이 그것을 특별하게 생각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기뻤다.


사오리는 언젠가 다시, 그를 보고 싶었다. 다시 병원에 들어갈 용기도, 자격도 없겠지만, 그의 뒤를 살피고, 그를 지켜주고 싶었다.



그 날 이후, 선생이 있는 병원에서 새벽에 가끔 누군가의 인영이 보인다는 제보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야간 작전에 능통한 사오리의 뒤를 밟을 수 있는 자는 없었다.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는 나를, 용서해라 선생..."



                                 


이제 슬슬 엔딩 내야지 생각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