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날카롭게 느껴지는 어느 겨울날,


나는 그녀의 옆으로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걸어갔다.


그녀도 나를 눈치챘는지 고개를 약간 돌렸다가, 다시 빛이 없는 검은 강을 쳐다봤다.


그녀는 다리 난간에 위태롭게 걸터앉아있었다, 바람이 약간만 불어도 앞으로 고꾸라져 강에 빠질듯이.


아무 말이라도 해야했다.


"...너는 왜 죽냐?"


여자는 무표정이였다


솔직히 말주변이 없는 나로써는 이 사람에게 다시 살아갈 용기를 심어줄 자신이 없었다


내 엄마가 그랬다.


내가 8살, 그러니까 이제 막 초등학교 입학할 봄날에.


먼저 떠난 아버지가 너무 그리웠다는 말을 남기고는


엄마는 엄마가 아닌 시체 한 구가 되어있었다.


그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나는 엄마에게 위로가 될만한 말을 어떻게든 해주었던것 같다.


죽지 말라는 둥 내가 있잖아 라는 둥,


같이 이겨내자는 둥 내가 더 잘하곘다는 말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엄마는 그저 아빠가 보고 싶었나보다


악착같이 살았다. 초등학생일때는 어리고 불쌍하다는 이유로 나름 밥도 얻어먹고 다녔지만


내 또래가 중학생이 되는 해 쯤에는, 그러지 못했다


하루에 14시간을 일하는 삶이였다, 그러다 보니 학교는 도저히 못가겠더라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겨냈다 


군대까지 다녀온 지금은, 확실히 여유가 생겼다.


그렇게 힘든데 죽지 않은 이유?


너무나 간단했었다.


나는 죽기보다는 정말 간절히, 절실하게 


살고 싶었다


죽고 싶다라는 말은 머릿속에 잘 안 떠올랐던것 같다.


매일같이 살고 싶었고 이대로 죽기는 너무나도 싫었다.


그렇게 견딘 날 중에


퇴근길에 저 여자를 만난 것이다


너는 왜 죽냐라는 말을 뒤로 도저희 어떤 말을 해야할지 몰랐던 나는


그냥, 그냥 담배에 불을 붙혔다


니코틴이 내 몸 안으로 들어오는게 느껴질 때 쯤에


여자가 입을 열었다.


"한대 줘요"


"안 죽겠다 약속하면"


"됐어요 그럼, 저리 꺼져요"


"그냥 떠 본 말이였어, 자 여기"


역시, 쉽지 않을것 같다.


여자는 라이터를 달라는 제스쳐를 했다


그녀의 손 위에 라이터를 올려주었다.


손이.. 손이 너무 차갑다


.....큽 켈록 켈록


....?


"...너 담배 처음이야?"


여자는 말이 없었다


"몇살인데"


"19살"


대답을 해주는 기준이 뭐냐 라는 질문이 목구멍까지 올라올려다 말았다.


"...하 이딴걸 왜 피는거에요 아저씨들은"


"글쎄다, 안 죽을려고 피는거 같기도 하고"


여자는 거의 처음으로 날 쳐다봤다


"왜 죽냐고 물어보셨죠?"


나는 경청할 준비를 했다.


가끔은 그저, 가만히 들어주는게 가장 큰 위로가 될때도 있으니까


"...말로 어떻게 다 말해야할지 모르겠어요 엄마는 교통사고로 죽고, 아빠는 술독에 맨날 때리기나 하고, 다가오는 수능공부는 덤으로 저를 옥죄는것 같아요 주변에 아무도 없는 느낌, 알아요?"


"....알지"


여자는 나랑 눈을 맞추었다


내 이야기도 들려달라는 듯이


"나는 있잖아..."


나는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이야기해주었다


하지만 여자의 삶과 비교되는 일은 없게, 조심스럽게


왜냐하면, 누구의 슬픔이 더 큰가 비교하는것만큼 쓰잘때기없는 짓은 없으니까


가만히 듣던 여자는 이내 눈물을 터트렸다.


"내가... 내가.. 저는 왜... 여기에 왜... 으흑... 저는 그냥 죽을 생각 뿐이였는데...."


나는 일단 여자를 난간에서 내려오게 한 뒤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만 안아 주...


"뭐 해요... 더 붙어 봐요 좀.."


그녀는 흐느끼면서 내 품에 안겼다


나는 조금 당황했지만, 이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여자는 나를 꽉 껴안았다... 좀 쌔게


"자.. 잠깐만 잠깐만 떨어져봐"


여자는 날 놔줄 생각이 없나 보다


이런 사례는 많이 봤다


애정결핍, 옛날에 잠깐 고아원에서 살 때.


내 주변 애들은 선생님에게 과한 집착을 했다


딱 그거였다, 지금 이 아이는.. 누군가가 너무나도 필요했다.


그치만... 숨을 못 쉬겠다, 빨리 화제 전환을....


나는 여자를 약간 떨어뜨려놓으며 말했다


"이름.. 이름이 뭐야? 아직 일면식도 안했네.. 하하"


"....지연이요 이지연"


"... 아저씨는요?"


"나중에 알려줄게"


"뭐에요 그게! 그런게 어딨어요!"


확실히 많이 나아졌다, 화도 낼줄 알고. 생기를 찾은게 눈에 보인다


".....혹시 아버지때문에 집에 들어가기 싫으면.."


"내 집에서 지낼래? 당분간"


원래도 학대를 받았다는데 이 시간에 집에 들어가면 뻔하지, 죽도록 맞을 것이다.


여자는 다시 날 약간은 경계하더니, 이내


"...아무 대가 없이요? 어떻게 그래요"


"대가는... 너가 안 죽겠다는 약속으로 받을게. 자신 있어?"


여자는 울음을 참는 것처럼 보였다


"저한테 왜이렇게 잘해주는데요..?"


나는 말 없이 차에 타라는 시늉을 했다.


그래도 당연히 낯선 사람의 차에 타면 긴장될 텐데 많이 피곤했나 보다.


여자는 뒷자석에서 편안하게 자고 있었다


....지금 보니까 정말 예쁘다


내 역량은 여기까지다 수고해라

언젠가 제대로 써볼게 미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