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부, 고요가 폐를 짓누르고, 무거운 분위기는 심장을 옥죄인다. 지독하다는 말이 어울릴 수준의 침묵은 소름 끼칠 정도로 차가웠다.
아니, 차갑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날카로웠고, 서늘했고, 또 시렸다.
그들의 마음 역시 매한가지였다.
“…….”
현재 안 그런 이가 없다지만, IWS2000은 유독 심각했다. 평소 잘 정돈된 매무새가 흐트러진 것이 이를 증명했다.
하지만 가장 심각한 건 단연 눈, 초점을 잃은 붉은 눈에는 더 이상 빛이 자리 잡지 못했다. 비유하자면 달도, 별도 없는 밤하늘과 같았다.
이는 그를 향한 감정이 가장 깊었다는 사실을 나타냄과 동시에 그녀의 상실감을 나타내고 있었다. 텅 비어버린 마음에 매일 밤 그녀는 편히 눈 감을 수 없었다.
아니, 상실감 이전에 이해할 수 없었다. 의문이 마인드맵을 어지럽혔다. 전술 인형의 연산 능력으로도 작금의 사태는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왜, 그는 왜 우리를 두고 사라진 걸까.
원인을 알 수 없으니 더욱이 미칠 노릇이었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함께 웃던 사람인데, 대체 왜 그런 말을 남기고 떠나버린 걸까.
‘내일 봐.’
그렇게까지 잔혹한 말을 했어야만 했나.
무언가 잘못한 걸까. 알음알음 그의 심기를 건드려 무언가 불편하게 만든 게 아닐까. 혹시 나도 모르게 그의 치부를 건드린 것이 아닐까.
부정적으로 물든 사고는 이내 모두 원인을 자신에게 돌리기 바빴다. 믿음에서 의거한 생각, 그의 잘못이 아니라는 생각.
“지휘관님…….”
의미는 없었다.
***
지휘관이 사라진 덕에 IWS2000가 임무를 나가는 일은 없어졌지만, 수색을 나가는 일은 늘어났다. 당연하지만 그를 찾기 위해서였다.
누군가는 이를 미련한 짓이라고 손가락질할 수도 있겠지만, 미련에 사로잡힌 그녀는 이렇게라도 움직이지 않으면 정말 미쳐버릴 노릇이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단서는 없었다. 오롯이 기억과 직감에 의지한 추적이었다.
그다지 효과가 없었다는 뜻이다.
“…….”
한숨조차 내뱉지 않으며 멍하니 하늘을 바라본다. 하늘은 맑았지만, 그녀의 마음은 먹구름이 한가득하였다.
이게 뭘까. 이걸로 끝인 걸까. 정말 지휘관님과의 인연은 이걸로 끝인 걸까.
거듭된 의문이 머리를 어지럽히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한 가닥 남은 자아를 유지하기 위해, 그녀는 오늘도 걸음을 옮겼다.
터벅, 터벅, 무거운 발걸음, 그 이상으로 무거운 마음, 이렇게 무작정 돌아다닌다 해도 달라지는 게 없다는 건 그 누구보다도 그녀가 가장 잘 알고 있었지만, 이는 미련이었다.
그렇게 반복한 결과, 성과는 없었다.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갔고, 그에 비례해 그녀의 마음 역시 하염없이 깎여나갔다.
“제발…….”
자각한 순간, 그녀는 걸음을 멈춰 섰다. 이 미련한 행동이 하등 의미 없다는 사실쯤은 알고 있었지만, 인정하는 것은 별개였다.
나는 지금, 보상받을 만한 행위를 하는 걸까.
답은 정해져 있었다. 이 세상 누구나 알고 있었다. 모래밭에서 바늘 찾는 것만큼 의미 있는 행동, 뜻이 있는 게 이상했다.
“아…….”
이상했어야 했다.
순간, 그녀는 똑똑히 보았다. 누군가의 손에 들린 익숙한 지갑, 정확히는 그 지갑에 새겨진 자수 하나, 누군가가 애정과 정성을 담아 새겨준 흰색 꽃장식.
잊을 리가 없었다. 분명 그 자수는 그녀 본인이 새겨준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지갑의 소유자는 당연히.
“지휘관님……?”
그저 먼발치에서 바라보고 있었지만, 똑똑히 알 수 있었다. 옆모습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기 앉아있는 사람은 내가 그토록 찾던 그 사람이라고.
그녀의 시간이 움직이기 시작하지만, 그만큼 머리도 어지러웠다. 무슨 말을 꺼내야 하지, 지금 당장 달려가 붙잡아야 하는 거 아닌가.
지금이 아니면 다시 만날 기회가 있긴 할까, 그럼 첫 마디는 무엇으로 해야 하지, 원망해야 하나, 반가워해야 하나, 그것도 아니면…….
미친 듯이 소용돌이치는 생각의 파도였지만, 귀결되는 사실은 하나였다. 우선 그의 얼굴을 보고 싶다. 그뿐이었다.
생각을 마친 순간, 그녀는 바닥에 달라붙어 움직일 생각하지 않는 다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족쇄를 묶어놓은 듯했다.
하지만 한 걸음, 두 걸음, 내디딜 때마다 발은 점점 가벼워져만 갔다. 곧 그의 얼굴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눈물마저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생각했다. 지휘관님. 당신이 어떤 이유로 저희를 떠났는지는 모르지만, 상관없어요. 적어도 지금 저희가 다시 만나게 되었으니까요.
걸음을 가속했다. 곧 이어질 감동의 재회를 상상하며, 그녀는 눈물 흘리며 웃었다.
“……아.”
그리고, 마주했다.
한 걸음, 그와 재회하기 단 한 걸음을 남겨놓은 채 IWS2000의 발걸음은 멈추고 말았다. 너무나 충격적인 장면을 목도해 버린 탓이다.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가운을 입고 있는 여자, 손에 무언가 바리바리 싸놓고 있었지만, 고작 그런 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녀가 본 것, 마주한 것, 목격한 것의 정체.
IWS2000은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이상하리만치 해맑은 그의 미소.
아.
아.
아.
저거, 나한테는 보여준 적 없는데.
***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녀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지 오래였다. 그녀의 마음과 마찬가지로 텅 비어있었다.
고된 노력 끝에 다시 만난 그에게는 단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낯선 여인과 천천히 사라지는 모습을 한 걸음 뒤에서 바라보는 것이 최선이었다.
너무나 강한 충격에 일시적으로 정신이 멎어 도저히 몸이 움직이지 않았던 까닭이다. 손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녀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지 오래였다. 그녀의 마음과 마찬가지로 텅 비어있었다.
“지휘관님…….”
IWS2000가 쓰러지듯 주저앉는다. 동공이 풀려 있었다.
그토록 기다려 왔던 재회가 최악의 형태로 이루어졌고, 그녀의 마음에는 가시가 돋아나기 시작했다.
태어나 처음 보는 표정, 그녀에게는 단 한 번도 보여주지 않은, 어색할 정도로 환한 미소.
남겨두고 떠난 우리는 일말의 고민도 없다는 듯이 화사했다.
무릇 미소란 사람의 마음을 밝게 해준다지만, 그런 상황이라면 누구나 불쾌를 넘어 어그러진 마음에 쐐기를 박는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
지금의 그녀가 그러했다.
격하게 흔들리는 동공과 벌벌 떨리는 손이 그녀의 감정을 나타내고 있었지만, 가장 심각한 건 역시 칼로 난도질하는 듯 쓰라린 가슴이었다.
아마 머리에 벼락을 맞으면 이런 느낌일 거다. 그녀는 생각하며 눈물 흘렸다. 자꾸만 요동치는 가슴의 격통을 견딜 수 없었다.
아아, 지휘관님. 당신을 다시 한번 보고 싶다는 일념 하나만으로 이렇게 버텨왔는데. 당신은 어째서……그런.
자책하지만, 진실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지휘관은 그들을 떠났고, 현재 다른 여자와 웃으며 함께하고 있다. 그것도 자의로, 오로지 그것만이 명명백백한 진실이었다.
IWS2000은 눈물 흘리며 생각했다. 내가 먼저 좋아했는데, 내가 먼저 알았는데, 내가 더 먼저 사랑했는데.
대체 왜, 나는 이런 꼴을 마주한 걸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라 생각하기에는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렸다. 이미 그녀의 곁에 지휘관은 없다. 하얀 꽃과 함께 떠나버렸다.
-그럼, 그냥 놓아줄 거야?
그리고 그때, 마음속에서 울리는 어두운 목소리.
“……뭐?”
도리어 당황했다. 깊은 곳에서부터 울리는 보라색 목소리에 IWS2000은 당황의 감정을 감출 수 없었다.
-좋아하는 사람이잖아, 그 사람 하나만을 위해서 이렇게 버텨왔는데 이렇게 포기할 거야?
그러나 의문을 가질 새도 없이 보라색 목소리는 또 하나의 질문을 던져왔다. 무어라 역정 내려 했지만, 이내 체념했다. 전부 맞는 말이었으니까.
“……그럼 나보고 어떡하라고, 지휘관님은 이미 떠났고, 돌아오지 않아.”
결국 그녀는 대답했다. 힘없이 내리 앉은 목소리는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간단해. 삼켜버려.
보라색 목소리는 그렇지 않았다.
“……뭐?”
-먼저 좋아했잖아. 네 모든 걸 줄 수 있을 만큼, 사랑했잖아.
“하지만, 지휘관님은 이미……”
소름 끼칠 정도로 다정한 보라색에 IWS2000은 가슴이 찢어지는 게 느껴졌다. 그녀는 이를 ‘두려움’이라 판단하고, 쫓아내기로 판단했다.
-그럼……이대로 빼앗길 거야?
“…….”
한 마디에 무너져 내렸다.
-지휘관님이 사라진 이 현실을, 모두가 꿈속을 헤매며 스스로를 갉아먹는 이 사태를 인정할 거야?
“그건…….”
-지휘관님이 널 버리고 떠난 사실을 인정할 거야? 네가 버려졌다는 걸 인정하고 받아들일 거야?
“그건……!”
-그리고, 그 여자가 지휘관님과 함께하는 꼴을…….
“그건……! 그건 싫어!!!”
날카로운 목소리가 방을 찌른다. 어찌나 큰 목소리였는지, IWS2000 스스로가 놀랄 정도였다.
-……봐, 잘 알잖아.
보라색 목소리가 그토록 원하던 대답이었다.
“아니, 아니야……나는…….”
-아니, 너는 알고 있어. 지금 네가 진정 원하는 게 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모른다고! 그딴 거 몰라!”
그녀의 몸이 떨리다 못해 발작한다. 호흡은 진즉에 무너졌고,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었다.
하아, 하아,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자아를 유지하려 애쓴다. 양손으로 머리를 쥐어뜯으며 답을 갈구한다.
-지키지 못할 거면 아예 삼켜 버려야지! 그 누구도 넘볼 수 없게!
“아니……야, 나는…… 나는…….”
-빼앗지 못하게! 누구의 손도 닿을 수 없는 곳으로!
“그만해! 제발……제발 그만해…….
무너진 그녀가 애원하지만, 보라색 목소리는 멈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미친 듯이 날뛰다 이내, 쐐기를 박아버렸다.
-그럼 그 여자가 지휘관님과 결혼하는 걸 가만히 보고만 있을 거야?
“……뭐?”
-그의 옆에 다른 여자가 자리 잡을 때, 너는 그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어?
푹, 하고, 그녀의 가슴이 꿰뚫린다. 가장 무거운 문장이 보라색으로, 그녀의 마음을 관통한다.
붉은 눈에 이채가 서리기 시작하고, 그녀가 마침내 고개를 치켜든다.
보라색이 미소지었다.
-다시 물을게, 지휘관님이 사라진 이 현실을, 모두가 꿈속을 헤매며 스스로를 갉아먹는 이 사태를 인정할 거야?
“……아니.”
-지휘관님이 널 버리고 떠난 사실을 인정할 거야? 네가 버려졌다는 걸 인정하고 받아들일 거야?
“……아니.”
-그 여자가 지휘관님과 결혼하는 걸 가만히 보고만 있을 거야?
“아니.”
대답은, 보라색.
발작이 멈추고, 그녀가 몸을 일으킨다. 호흡도, 동공도, 팔도, 다리도, 전부 떨리지 않았다. 도리어 평소 이상으로 침착했다.
몸을 일으킨 그녀는 장비를 정비한다. 지도를 펼친다. 마음속 파도는 어느새 사그라들어 고요하기 짝이 없었다.
때문에 그녀는 슬며시 입가를 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말할 수 있었다.
“놓치지 않아.”
보라색.
“놓아주지 않아.”
보라색.
“양보하지 않아.”
보라색.
마침내 그녀는 깨달았다. 여태껏 가슴을 찌르던 두려움은 보라색 목소리가 두려워서가 아니라, 그를 빼앗길까 봐 두려워했다는 사실을.
때문에 결심했다. 지휘관이 자신을 떠났다는 사실과 그를 다시금 제자리에 돌려놓을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을.
“넘기지 않아.”
그녀는 인정하기로 했다.
“나의 지휘관님.”
그와 약속했으니까. 내일 보기로.
이렇게 각성한 IWS2000가 지휘관이랑 1대1로 면담하면 개꼴릴 거 같지 않음? 막 대답은 '네.' '아니오.' 로만 말하라면서 강압적으로 추궁하는 장면 같은 거 나오면 개 쩔 거 같지 않음?
뭐? 아니라고?
알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