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전국시대의 얀순이가 보고싶다 1편

춘추전국시대의 얀순이가 보고싶다 2편



"제장들을 부른 것은 초나라 세자가 진을 친 것을 두고 제군들의 생각을 듣기 위함이다."

초연은 장수들을 모두 불러내어 지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음... 규의 전략과 똑같군요... 이번에도 귀찮게 되었습니다."

"역시나 겁쟁이 놈들은 성에 틀어박히는 것을 좋아하는군요."


그때 염나라의 경험많고 노련한 장군인 왕수가 껄껄웃으면서 말했다.

"이거 일이 아주 쉽게 되었습니다. 전하 그대로 포위하시지요."

"왕장군! 무슨 소리요! 저번에는 포위하지 못하지 않았습니까. 그때와 비슷하게 주변에는 초나라의 성이 있어 마찬가지로

포위하기 힘들겁니다."

"아니 잘 보시게. 저번과 다르게 이번에는 겨울이지. 그 말은 곧 물이 언다는 뜻일세. 

게다가 주변 성은 그 강과 멀리 떨어져 있네. 강을 지킬 수 없다는 뜻이지.

전하!! 그 말이 곧 무엇이겠습니까?"

장군들이 그 말을 듣자 무릎을 치며 감탄했다.


초연이 웃으면서 말했다.

"정확히 보았군."

그리고는 지도를 가리켜 말했다.


"규는 주변 산성과의 유기적인 움직임으로 식수원을 쉽게 지킬 수 있었고, 또한 강을 통한 보급의 용이함으로 농성이 굉장히 쉬운 상태였다. 우리는 그로 인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고 곧 군을 물릴 수 밖에 없었다."

말을 마친 초연은 책상을 탕 치면서 말을 이어갔다.

"그러나 지금은 겨울이라 지하수와 땅이 얼어붙어 자체적으로 식수를 조달할 방법 따위는 없다. 초나라 세자가 있는 성은 주변의 성과 떨어져 있으니 우리가 이중으로 포위하면 지원군을 보내기도 어려워 고립될 것이다. 게다가 강을 막아버린다면 결국 놈들은 버티지 못하고 항복할 것이다."


초연이 지도에 붓으로 진형을 그렸다.

"어리석은 초나라놈 같으니. 역시 동생보다 못하군. 어설픈 농성은 자기를 굶겨 죽이는 길인 것을."




"성을 버리고 퇴각하라고? 하! 웃기는군!"

정은 규의 퇴각 요청을 무시하고는 오히려 짜증을 내었다.

"감히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해? 네놈만 적을 막을 줄 안단 거냐? 나도 그 정도는 할 줄 안단 말이다!!"

그리고는 규의 말을 무시한 채 적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저하, 큰일났습니다!!"

휘하장수의 외침에 잠에서 깬 정은 다급히 물었다.

"무..무슨일이냐?"

"저들이 성을 포위하고 강에 둑을 쌓아 물길을 막았습니다!"

"뭐라? 주변 성에서의 지원은?"

"저들이 포위를 이중으로 쳐서 전령을 보낼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처음부터 대부분의 병사를 우리가 데리고 있어서

구원군이 온다고 해도 저들의 포위를 뚫을 수 없을겁니다!"

"이..이런..."

"가장 큰 문제는 겨울이라 식수가 모두 말랐다는 겁니다, 물 없이 싸울 수는 없는 일입니다!"


정은 힘없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그러면 식수는 얼마나 남았느냐? 언제까지 버틸 수 있는 거냐?"

"일주일이 지나면 모두 끝입니다. 겨울이라 땅이 얼어 우물을 팔 수도 없고...."

"하늘이 날 버리는가? 정녕 끝이란 말이냐?"




".......결국 포위되셨는가."

규는 머리를 싸메고 고심하고 있었다.

"저하, 소인이 한마디 올리겠습니다."

규의 심복이 말했다.

"외람되오나... 오히려 잘된 일이 아닙니까?"

"무슨말이지?"


규가 심복을 처다보았다.

"공자께서는 공이 높으시고, 충분히 만인지상의 자리에 오를 자격이 있는 분인것을 소인은 잘 압니다.

그냥 염왕이 세자를 처리하게 두시지요."

"네 이놈!!!"


규가 화를 내었다.

"네놈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아무리 그래도 지금 우리 전 군사들과 세자께서 위험에 처했는데

저들을 죽게 두자고? 네놈이 그러고도 초나라 사람이더냐?

저들을 잃으면 왕이고 뭐고 없다! 나라의 존망이 걸린 일이란 말이다!!!"


분노한 규는 짐짓 베어버릴듯한 기세로 일갈했다.

"살..살려주시옵소서!! 소인은 그런뜻이 아니었습니다!!!"

"당장 나가라!!"

심복을 쫒아내고 규는 자리에 앉아 고민했다.


'틀린말은 아니다... 사실 나도 왕이 되고 싶으니까.'

그러나 고개를 저은 규는 자리에 벌떡 일어섰다.

"아무리 우리가 왕위를 놓고 경쟁한다 하더라도 세자가 적의 손에 사로잡힌다면 초나라가 뭐가되겠는가."

곧바로 초왕에게 나아가 청했다.


"소신이 세자저하를 구해오겠습니다."

"......하지만 병력을 세자가 대부분 가져가서 남은 병사가 많지 않을터인데. 단 보병 4천명밖에 동원할 수 없다"

"4천이면 충분합니다. 제가 맡겨주십시오. 반드시 구해오겠습니다."

그리고는 궁병, 노병, 보병으로 나눈 뒤 특별히 준비해둔 무기를 보병에게 나눠주었다.


"제군들은 듣거라. 지금 세자저하께서 위기에 처했으니 우리는 목숨을 다해서라도 구해야 한다.

내가 지금부터 하는 말을 잘 듣고 적이 나타나면 이리 하도록 하라!"



초연은 막사에 편하게 누워서 규가 오기를 기다렸다.

"전하! 과연 규가 초나라 세자를 구하러 오고 있습니다!"

"그래? 적의 수는 얼마나 되던가?"

"약소합니다. 고작 보병 3~4천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뭐...?"

초연은 김이 팍 새고 말았다.


"이 정도면 그냥 왕장군, 자네에게 정예 기병 800기를 줄 터이니 적을 섬멸하도록 하게. 

단, 공자는 무조건 생포해야 한다. 알겠느냐?"

"맡겨주십시오 전하."


그러나 그 판단은 오판이라는 것을 깨닫기에 오래 걸리지 않았다.

"급보! 전하! 왕장군이 패했습니다!!"

"뭐라고! 고작 보병 4천에게 졌단 말이냐? 정예 기병 800기가?"

"곧 저들의 구원군이 도착합니다!"


밖으로 나가니 규의 군대가 위풍당당하게 진격하고 있었다.

"뭐하고 있는 것이냐! 전차부대와 기병 부대는 저들을 섬멸해라!!!"

"전하의 명이다! 지원군을 섬멸해라!!!"



"지원군이 왔다고?"

정은 희망을 가지고 망루 위로 올라갔으나 곧 절망하고 말았다.

"고작 보병 저 정도로 저들의 기병대를 막을 수는 없다. 우린 끝이구나...."



초연은 상대의 군을 보고 의문을 표했다.

"궁병(弓兵)과 노병(弩兵)을 앞세운다고? 아무리 저들의 궁술이 뛰어나다고 해도 우리 기병의 돌격을 어찌 저지할 수 있단 말인가?"


코웃음을 치며 초연은 말했다.

"어찌하는지 두고 보겠소, 공자."



규가 염나라 전차와 기병대가 돌격하는 모습을 보고 선두에게 말했다.

"노병대와 궁병대, 사격 준비!!! 발사!!!!"

화살비가 쏟아지자 기병 일부가 피해를 입었으나 그 기세를 유지한 채로 돌격하고 있었다.


"알립니다! 적이 150보 내외로 접근 중!"

"아직이다!! 2열!! 사격준비!!! 발사!!!"

역시 화살비가 쏟아지고 이번에는 지근거리에서 맞은 기병대가 조금 주춤했으나 곧 기세를 이어갔다.


"공자!! 적이 곧 100보 안으로 접근합니다!!"

"궁병대와 노병은 뒤로 후퇴!!! 보병대!! 진형을 갖추어라!!!"

그 말에 궁병은 뒤로 후퇴함과 동시에 보병이 5열종대로 앞으로 튀어나왔다.


"헤!! 그래봤자 보병은 우리 기병대가 한번 돌격하면 끝이다!! 왕장군은 어찌 이겼을지 몰라도 나는 지지 않는다!! 돌격!!!!!"

염나라 기병대장이 전군에게 명했다.

"적을 모두 죽여라!!! 몰살해라, 이것들아!!!"


"공자!!! 50보요!!!"

"아직이다!!! 대기!!!"


"30보!!!!"

"장창을 들어올려라!!!"

그러자 보병대가 일제히 2장(약 6m)의 길이의 장창을 바닥에서 집어 비스듬히 들어 올린 채 적을 향하였다.


"으아아아악!!!!"

"이런!!! 아악!!!!"

그대로 달려오던 기병대는 보병대의 장창에 찔려 낙마하고 그 뒤를 따르던 나머지 기병들도 그 자리에 급히 멈추거나 자기들끼리 부딪혀 낙마하기 시작했다.


"지금이다!! 극(戟)보병은 말 다리를 베어버려라!!! 적을 찍어 낙마시켜라!!! 움직이지 못하는 기병은 아무것도 아니다!!!"

"궁병대!!! 적을 한 명도 살려 보내선 안된다!! 모두 죽여라!!!"

기병보다 둔한 전차부대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바퀴를 부숴라!!! 저들을 살려 보내지 마라!!!"



멀리서 지켜보던 정과 성의 병력들은 사기가 충만해졌다.

"저하!! 저들의 주력이 저쪽으로 향했으니 지금 성을 빠져나와 적을 공격해야 합니다!"

"그..그래!! 전군!!! 성문 밖으로 나가 저들을 공격해라!!!"


이 상황을 바라보는 초연은 기가 막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이...이럴 수가..."

"전하!! 저들이 성을 나와 우리 쪽으로 향합니다!! 기병대가 패했으니 우리 군의 사기가 바닥입니다!!"

"그렇습니다. 일단 피하십시오!! 우리 보병은 저들의 상대가 되지 못합니다!"


결국 초연은 포위를 풀고 후방으로 군을 물릴 수 밖에 없었다.

기병대가 중심인 염나라군의 보병은 초나라에 비해 약했으니 곧 그들은 포위망을 뚫고 규와 함께 후방으로 탈출할 수 있었다.

"세자저하!!! 몸은 괜찮으십니까?"

"...치잇!"

"세자 저하를 모셔라!! 퇴각!!!"



기병대가 큰 손실을 입은 염군은 결국 군대를 후방으로 물리고 양국은 봄이 올 때까지 잠시 휴식에 접어들게 되었다.

"전하... 죽여주시옵소서!!! 적에게 수치스럽게 패했나이다..."

왕장군이 다친 몸을 이끌고 나와 바닥에 엎드려 죄를 청했다.


초연이 직접 왕장군을 일으켜 세운 뒤 위로했다.

"왕장군은 다친 몸을 잘 회복하시오. 곧 의원을 보내리다."

"전하!!! 저를 죽여주십시오!!"

"그만하게. 과인도 같은 방식으로 패했으니 여기서 왕장군이 죽으면 과인도 죽을 죄를 지은건가?"

"!!! 전하 그런 뜻이 아니오라..."

"패배는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 그리고 장군은 나와 함께 전쟁터를 다니면서 숱한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겨내지 않았는가. 다음번에 승리로 답해주게."

"망극하옵니다..."


침소로 돌아온 초연은 분을 이기지 못하고 씩씩거렸다.

"이놈!!! 나에게 이런 수치를 안기다니!!! 천하의 내가 이렇게 무력하게 당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초연은 심호흡을 하기 시작했고, 곧 마음의 안정을 얻었다.

그리고는 전투 양상을 복기하기 시작했다.


"놈을 가볍게 본 것, 그것이 나의 패인이다. 확실히 공자는 우리 군에 대한 대비를 하였구나.

돌격력을 상실한 기병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여실히 보여주는 전투였어.

분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구나 공자."



한편 세자 정도 분하기는 마잔가지였다.

"패한 것도 서러운데 서자놈에게 구해지기까지 하다니!! 그것도 단 보병 4천명으로!!"

술을 퍼 마시며 엉엉 우는 세자 정은 추하기까지 하였다.

"이제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는가!! 세자는 전군을 이끌고 대패하여 작은 성에서 굶어 죽을뻔하고!!

공자는 단 4천으로 염나라 대군을 물리치고 저들의 기세를 꺾었다고! 이게 무슨 창피란 말이냐!! 무슨!!!"


정은 후계자 구도에서 밀릴지도 모르는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서자놈... 내가 이대로 당할 것 같으냐! 반드시 제거해주마!!"


한편 규는 진법 훈련에 여념이 없었다.

이번 일로 규를 의지할 수밖에 없는 초왕은 그에게 군권을 일임하고 병사들의 훈련을 맡기게 되었으니

규는 기쁘지만서도 한편으로 부담감으로 어깨가 무거워 질 수밖에 없었다.


"염나라의 주력 기병을 섬멸하여 당분간은 양국 다 보병 위주의 결전이 승패를 가르게 되겠구나.

여왕 또한 알고 있으니 어느 한 국가의 패배는 곧 나라의 위기와 직결되는 문제로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규는 제장들에게 자신이 생각해 낸 진법을 보여주었다.

"허어... 참으로 멋진 진법입니다. 과연 이런 식이라면 우리의 장점을 잘 살리면서 적의 주력이 함부로 덤비기 힘들 것이니

공자는 참으로 전략의 귀재입니다!"


"다만 이 전략은 군이 유기적으로 호응하지 못하고 어느 한 부분이 무너지면 그대로 몰살을 당할 수도 있으니 

제장들은 휘하 군을 이런 식으로 훈련 시키시오. 보병의 패배는 곧 나라의 멸망으로 연결되는 문제니 군 기강을 확실히

다져야 할 것이오. 알겠소?"

"예, 공자!"

"그럼 한번 시연을 해보겠소. 전군은 내 지휘에 따라 움직여라!!"


시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규는 미소를 지었다.

"이 정도의 유기적인 움직임이라면 초연도 함부로 우리를 공격하지는 못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