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제가 보기에, 아가씨는 외로움도 많이 타시는 것 같습니다."



"계속하게."



"백작님께서 거두어들인 아이, 그 아이가 아가씨와 나이 차이가 2살 정도라고 들었습니다만. 또래 아이를 붙여주면 좀 더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흐음...."




*




"아가씨는 몸이 약하시니 항상 가까운 곳에서 대기하고, 식사 꼬박꼬박 하시는지 확인하고, 또...내 말 듣고 있니, 칼 크루거?"



"네."



"맨날 멍~해가지고 걱정이구나. 루이 카셀 백작님이 리타 아가씨를 좀 더 애지중지하는 건 알고 있지? 그분이 화나는 일이 없게 잘 좀 하렴."



"네.."



애초에 나한테 이런 일을 왜 맡기는 거야?


그렇게 애지중지하는 아가씨라면 나같이 일 못하는 사람 말고, 다른 빠릿빠릿한 사람을 붙여야 하는 게 아닌가...


하...앞으로 엄청 혼나겠다...




내 부모님은 돌아가셨다.


마을에 도적떼가 들어왔고, 부모님은 다른 마을 사람들처럼 저항하다 돌아가셨다.


나를 안전한 곳에 숨겨둔 채로.


도적 떼는 모조리 처형당했지만, 혼자 남겨진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백작님의 눈에 띄어 하인으로 일할 수 없었다면 아마 얼마 못 가 죽었겠지...


문제는 내가 어리고, 힘도 없어서 일을 잘 못한다는 점이다.


다행스럽게도 다른 분들이 내가 어려서 좋게좋게 넘어가 주는 편이라 여기 있을 수 있는 것이지, 다른 사람 같으면 진작에 해고당했을 것이다.


그래도 나름 열심히 해보려고 노력했지만 안타깝게도 1인분 몫을 못하는 건 1년 넘게 변함이 없었고, 결국 업무가 바뀔 거라는 통보를 받았다.




그렇게 나는 오늘부로 리타 아가씨를 모시게 되었다.


아가씨는 모친 쪽의 피를 더 진하게 물려받은 건지, 타고난 강골인 백작님과는 다르게 몸이 약해서 자주 누워 계신다고 한다.


나는 아가씨의 방을 청소하고, 식사를 챙기고, ..그냥 아가씨를 씻기는 것 외에는 다 하게 됐다고 보면 된다.


아 물론 원래는 씻기는 것도 해야 된다. 내가 남자라서 안 하는 거다.




잡생각을 하다 결국 아가씨의 방 앞에 도착했다.


메이드장 아줌마가 몇 번이나 당부하셨지.. 노크 안 하면 죽는다고


천천히 노크를 하고, 들어오라는 답을 듣고 문을 열었다.


그리고 내 눈앞에는 귀엽고 예쁜 여자애가 보였다.



"..누구세요?"



"안녕하십니까! 오늘부터 아가씨를 모시게 된 칼 크루거라고 합니다."



자세히 보니 병약하다는 말에 걸맞게 가녀리다 못해 앙상한 몸이었다.



"아침 식사를 가져왔습니다. 다 드시면 말씀해 주세요."



빠르게 방문을 닫고 나갔다.


원래는 식사를 방 안에서 하는 게 아닌데도 아가씨는 약도 드셔야 하고, 일반적인 식사는 소화가 안 되셔서 따로 챙겨드려야 한다.


저렇게 삐쩍 마른 몸을 보니 내 마음이 다 아프다. 앞으로 잘 챙겨드려야지...



"좋은 아침입니다. 아가씨."



"...네."



아가씨는 말 수가 별로 없으셨고, 몸이 약해 활동도 거의 하지 않으셨다.


또래 아이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뛰어다닐 시기에 항상 방 안에 계시니 몸이 약한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심지어는 식사도 거의 하지 않으시니...걱정이다.



"이런...식사를 또 거르시는 건가요? 건강해지시려면 잘 드셔야..."



"입맛이 없어요. 토할 것 같으니까 그만 치워주세요."



"..알겠습니다."



꼬르륵...


아 씨...가구 옮기다 왔더니 배에서 천둥이 친다.



"..배고파요?"



"아...네. 듣기 불편하셨으면 죄송합니다."



"아뇨, 그게 아니라...어차피 남기는 거 칼이 먹을 거면 먹어요."



"..."



군침이 돈다.


내가 밥을 못 먹고 사는 건 아니지만, 귀족의 때깔 고운 식사를 그것도 배고픈 상태에서 보고 있자니 눈이 뒤집힌다.



"그럼...감사히 먹겠습니다."



아가씨가 보는 앞이라는 것도 잊은 채로 나는 며칠 굶주린 사람처럼 음식을 흡입했다.



"오? 오늘은 아가씨가 그릇을 다 비우신 건가?"



"아...네."



요리사, 브룩스 아저씨가 뿌듯한 표정을 짓고 계신다.


양심에 찔리지만 아저씨의 요리는 정말 훌륭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아가씨와 좀 더 가까워졌다.


예를 들면..



"...맛있어요?"



아가씨는 그 이후에도 음식을 남길 때마다 내가 먹게끔 하시고는 그걸 지켜보셨다.


내가 복스럽게 처먹는 모습이 식욕을 돋우었는지, 아가씨는 조금씩이라도 음식에 손을 대기 시작했으며



"이 부분은 제가 먹을 거예요."



아예 같이 식사를 하기도 했다.



"오늘은 샐러드임다"



"또 고기가 없다고요? 이건 칼 다 먹어요."



좀 더 시간이 지나니 이제는 그 나이 대에 맞게 반찬 투정을 시작했다.


밥을 잘 챙겨드시니까 삐쩍 마른 몸도 살이 붙기 시작했다.


건강해지시는 게 눈에 보여 마음이 놓일 따름이다.



"청소 그만하고 이거 좀 보라고요. 잘 그렸죠?"



벽에다가 낙서..아니 그림을 그리시다니.


의외로 말괄량이 같은 성격이셨구나.




이제는 밖에 돌아다녀도 문제가 없어서, 외출도 같이 하게 되었다.



"어? 지금 아가씨가 달리시는 거야?"



"원래 저렇게 활기찬 분이 아니었는데..."



다른 하인들도 놀랄 만큼 확실히 상태가 좋아졌다.



"칼, 저건 무슨 식물이에요?"



"그냥 잡초인 것 같습니다."



말이 엄청 많아지셨다.



"더 먹고 싶은데...아버지한테 혼나겠죠?"



"돈은 이미 혼나실 만큼 쓰셨으니 더 써도 별 차이는 없을 것 같습니다."



"자기 일 아니라고 막 말하는 건가요? 칼이 말리지 않은 죄도 있는 거 아닌가요?"



"제가 어떻게 아가씨를 막나요..."



이전까지 힘없이 누워있던 한을 푸시려는 것처럼, 하루가 멀다 하고 사고를 치신다.


백작님께서는 건강한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족하신지 자유롭게 풀어주셨다.


물론 나는 죽을 맛이다.


너무 뛰어다니다가 무릎을 다쳐서 내가 업어서 모셔다드리기도 하고, 아가씨가 물건 깨먹고 혼날까 봐 무서워하고 있으면 그냥 내가 깼다고 하기도 했다.


가까워지고 나니 서먹한 친오빠 대신 나를 진짜 오빠처럼 따르는 것 같아 귀여웠기 때문이다.


옛날 우리 옆집에도 릴리라고, 나를 잘 따르는 여동생이 있었는데... 도적떼가 오기도 전에 이사를 갔던 터라 어떻게 지내는지 모르겠네.


하여튼 뭐 이젠 기력을 되찾은 정도가 아니라 아예 힘이 넘치게 된 아가씨는 나한테 몰래 산책 좀 나가자고 칭얼대기도 한다.


밤에 하는 산책도 재밌을 것 같다면서. 위험하다고 말려봐도 소용이 없다.


뭐 어쩌겠는가. 결국 나는 아가씨가 하자는 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다.



"으르렁..."



하 시발 더 말릴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