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 관찰을 받게 됐다.


이게 뭐... 법에 대해서 내가 잘 모르지만, 보호 관찰이라는게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시간만 떼우는게 아니라, 감옥에는 안 가는 대신에 봉사를 통해서, 내가 저지른 죄만큼 사회에 이익이 되는 활동을 해서 내 죄를 깎아 내는...? 뭐 그런 느낌의 형벌이라서, 오늘부터 복지관에 가서 봉사 활동을 하게 됐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예전처럼 학교를 다니고 그런건 할 수 없었다.


당연한게, 이게... 감옥에만 안 갔지. 따지고보면 범죄자인데, 아무리 우리 학교가 똥통이라고 해도 사고를 친 범죄자가 학교를 다닐 수 있을만큼 막장인 곳은 아니라서. 다른 애들이 학교를 다닐동안 나는 사회 봉사를 다니게 될거란다. 그리고 나서 1년정도 유급을 한 뒤에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서 거기서 졸업을 하게 될거라는데.


뭐, 언제부터 내가 열심히 학교를 다녔다고. 그냥 자퇴할란다. 나도 예전에 1년 유급한 형님을 보고 한심하게 생각했었는데, 다른 애들은 오죽하겠냐?


죽었으면 죽었지, 나는 그런 한심한 시선을 받으면서 1년은 못 버틴다.


앞으로는 예전처럼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기 힘들거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아침, 저녁으로 집 전화로 보호 관찰관이 연락을 와서 잘 지냈는지, 봉사 활동은 무사히 하고 왔는지 그런 안부를 물을거라는데, 당연한 이야기지만 관찰관이 하는 전화는 내가 무조건 받아야하고. 나 대신 동생이 받는다거나 하는 일이 있으면 이유 불문하고 바로 집으로 찾아온다더라.


요즘에는 집 전화를 아무도 안 쓰니까. ...말이 집 전화지 나와 관찰관을 연결하는 직속 핫라인..? 뭐 그런거지. 근데...그 사람들이 연락할만큼 나는 큰 잘못을 저지르거나 그러지는 않을거야.


"...잘 다녀와"


현관에서 나갈 준비를 하는데, 동생이 잠에서 일어나서 나를 배웅해줬다. 동생도 학교를 자퇴해서 그런지, 평일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교복을 입지 않고 잠옷 바람이었다.


허벅지가 완전히 다 드러나는 돌핀 팬츠에 배꼽이 살짝 보이는 티셔츠를 입고 있는 동생의 옷 차림에 자연스럽게 눈길이 갔다. 사람을 때린 이후로 구치소에 갔다가, 그 다음 날 바로 재판까지 받아서 나는 피곤했었고, 하루 종일 제대로 된 잠을 자지 못했던 나를 동생은 말 없이 끌어안아주었다. 


그대로 아무것도 안 하고 나는 깜빡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날 때 동생의 품 안에서 일어나니, 내가 생각했던것보다 기분 좋고 따뜻해서 놀랐다.


"나는 오빠가 거기서 잘 적응할 수 있을거라고 믿어"


현관문을 나가려고 하던 순간에 동생이 말을 건넸다. 조금...울컥했다. 남들처럼 학교도 못가고 아침 일찍 봉사활동이나 하게 된게 누구 때문인데... 진짜.. 따지고 보면 동생이 헛짓거리를 하고, 내가 그걸 뒷 수습하려다가 일이 이렇게 된거잖아. 근데, 니가 나한테 그런 말을 해도 되는거냐? 누구 놀려?


...진짜 이것저것 따지고 싶은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고 했는데. 그냥 참았다. 보호관찰 기간이잖아. 진짜 조그만 잘못이 생겨도 결국에는 내가 다 책임을 지게 되고 결국에는 복지관에서 봉사 활동을 하는 시간만 더 길어질거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그리고 동생한테는 이것저것 약점 잡힌게 많으니까... 얘한테는 함부로 말을 못 하겠다.


관찰관이 말한 복지관으로 갔다. 근데, 막상 도착하니까. 뭘 어떻게 해야할지도 잘 모르겠고... 혼자 입구 앞에서 얼타고 있었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여깁니다. 여기, 이쪽으로 오세요. 어이, 거기 후드티 입은 너! 너 말하는 겁니다!"


...중년과 노년의 사이... 근데 옛날에는 한 주먹 좀 하셨을 것 같은 아저씨가 나를 불렀다. 


처음에는 뭐지...? 딱, 그 생각이 들었는데. 머리 속에 기억을 잘 떠올려보니까, 이 사람이 내 담당 관찰관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사람이 사고를 치고, 구치소에 갇히고, 재판을 받고... 수많은 사건, 사고. 그리고 다양한 인물들을 기억하기에는 내 머리가 나빠서. 내게 집전화를 하나 건네주던 관찰관은 기억 못할수도 있는거지. 근데, 이제는 안 까먹을 것 같다. 저렇게 싸가지 없이 말을 내뱉는데, 누가 저걸 기억 못해?


하여튼 뭐, 그 아저씨한테 가니까. 당신은 오늘부로 며칠까지 사회봉사를 해야하고. 무단으로 사회 봉사에 불응할시, 법적으로 처벌을 받을 수 있다. 


대충 요약하자면 그런 느낌의 말을 내게 쏟아냈고, 그리고 나서는 복지관에 가서 본격적으로 봉사활동을 하게 됐다.


봉사 활동이라고 해서, 나는 뭐... 무슨 그런거 있잖아.


거리에서 뭐... 무슨 아프리카 친구들에게 뭐가 필요할까요? 그런걸 알아보는 부스를 운영하거나, 아니면 똥,오줌 수발 가리기, 아이들과 놀아주기 그런걸 할 줄 알았는데. 내가 처음 하게 된 일은 복지관에 있는 모든 커튼을 걷어와서 빨래를 하거나 아니면 식당 주방에 가서 설거지 하기.


등등... 이게 어떻게 사회 봉사야..? 그런 생각이 들 정도의 허드렛일만 했다.


내가 생각했던거랑은 다른... 느낌이라서 조금 이게 맞나...? 그런 생각이 들기는 들었지만. 또 다르게 생각해보니까, 상식적으로 사람을 때려서 봉사활동을 하러 온 애한테 일반적인 자원 봉사자가 해야하는 일을 맡기는 것도 이상하니까. 그냥 꾹 다물고 시키는 일만 열심히 했지.


커튼이 더럽다,그래서 빨래하기가 힘들다. 설거지가 빡세다. 뭐, 그런 식으로 육체적인 활동은 그런데로 할 수 있겠는데... 복지관에서 봉사 활동을 하면서 가장 스트레스 받았던 건 나를 부려먹는 사람들의 태도였다.


봉사 활동을 하면서는 띠겁게 말하는 관찰관 아저씨가 아니라 복지관 소속의 사회 복지사..? 그 사람이 나를 담당했는데, 이게 시발. 무슨 사람을 사회의 쓰레기 취급을 하니까. 거기서 기분이 좀 많이 나빴다.


...사람을 때린건 맞는데, 이게 내가 아무 이유 없이 때린건 아니잖아. 그 당시에 나는 내가 생각하기에 나름대로 내가 하는 행위가 옳다고 해서 그런 일을 저지른건데, 사람들은 그런건 생각안하고 결과만 바라보고 나를 평가하니까. 


참아야 한다. 참아야 한다. 속으로 꾹꾹 분을 삭히다가, 도저히 안 될 것 같아서. 잠시 쉬는 시간을 틈타 건물 밖으로 나와서 마음 속에 가득 쌓여있는 울분을 가라앉혔다.


건물 밖에 있는 정자에 앉아서 혼자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저 멀리서 파란색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내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뭔가 하고 바라봤는데.


-한국대 프로네시스 나눔실천단.


조끼에는 그런 글씨가 쓰여져 있었고, 어... 보니까. 대학교에서 봉사활동을 온 것 같았다.


"다들 바쁘신데, 시간을 쪼개서 이렇게 봉사 활동을 하러 와줘서 정말 고마워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텐데. 어떻게 이런 기특한 생각을 다 하셨을까?"


아까는 나보고 빨리 설거지 하라고 닥달하고, 그릇 청소하라고 닦달 하던 사회복지사 아줌마가 그 대학생들 앞에서는 엄청 착한척 가식을 떠는걸 보니 속이 불편해졌다.


야, 이게 시발 한국에서 제일 좋은 대학교를 나오니까. 저렇게 사람 대접을 해주는구나. 뭐 그런거 있잖아. 이래서 시발 사람이 대접 받고 싶으면 공부하라고. 그게 괜히 하는 소리가 아니구나. 


그런...생각을 하면서, 대충 복지관에 다시 들어가서 봉사 활동을 마치고 집에 돌아갈 준비를 하는데... 아빠한테서 전화가 왔다.


-여~ 아들. 오늘 봉사 활동은 잘 하고 왔냐?


-어..? 어어.. 뭐...잘하고 왔지


이게, 시발... 평소에는 아빠랑 전화도 잘 안하고. 서로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궁금하지도 않을만큼 안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전화가 이렇게 와주니까. 정말 반갑고... 그래도 피가 섞인 자식이라고 이렇게 나를 잘 대해주는구나. 뭐 그런 생각도 들고...그래서 눈물이 살짝 찔끔 흘러나왔다.


-다른건 아니고, 내가 지금 그쪽 방면에 볼 일이 있어서 들릴 것 같은데 밥은 먹었냐? 밥이나 한끼 하지?


-어, 알겠다. 금방 끝날 것 같으니까. 끝나고 나서 다시 전화할게.


빡세게 설거지를 하느라 점심을 먹는둥 마는둥 해서 배가 고팠었는데, 잘 됐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복지사 선생님한테 가서 집에 가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 뒤 복지관 입구에서 아빠를 기다렸다.


...새하얀 벤츠 있잖아.


그게 내 앞에 딱 서길레, 뭔가 싶어서 창문을 봤더니 아빠가 차를 운전하고 있었다. 조수석에는 내가 재판 받았을 때 나를 변호해주던 변호사..아줌마가 앉아있었고.


"...여~ 아들. 뭐하나? 빨리 타라"


나는 이게 둘 사이가 무슨 관계인지, 모르겠다. 근데... 한 눈에 봐도 변호사와 의뢰인...관계는 아닌 것 같은데...? 존나 궁금해서 미칠 것 같은데. 뭐 이것도 우리 아빠 성격 상 때가 되면 알려주겠지. 뭐 그런 느낌으로다가 입 다물고 있었고. 우리는 대충 아무 프렌차이즈 음식점에 들어가서 밥을 먹게 됐다.


진짜, 그냥 아무거나 똑같은걸로 메뉴를 시키고 음식을 기다리고 있는데. 그 빡대가리가 아닌 이상, 그런거 있잖아.


...큰거 온다.


나는 진짜, 아빠가 정말 나를 식사를 하기 위해서 나를 부른게 아니라는 것 정도는 이미 눈치를 채고 있었고.


"...아들! 서프라이즈...한 소식을 하나 말해도 되겠나?"


"뭔데, 말해봐라"


"...사실. 니한테 누나가 있다. 한 살 연상의..."


...어이구야... 시발... 그래... 뭐 그렇겠지.


"...혹시...친...누나...? 그런거야?"


내가 알기로는 동생도 그냥 호적에만 동생으로 분류가 되어있지, 아빠는 다른 사람인걸로 알고 있다. 진짜, 우리 아빠가 존나 악질인게...딸 있는 유부녀를 상대로... 뭐 그렇고 그런 짓을 해서. 한 가정을 파탄 낸거니까. 아니지... 그냥 요즘 말로는 설거지인건가...? 딸까지 딸린 여자를 아빠가 거둬들인거잖아. 


...이 경우에는 우리 아빠가 퐁퐁남 아닌가..?


"아니, 피는 안 섞였는데. 여기서는 말하면 복잡한 문제고, 지금 소개시켜줄테니까. 오늘은 연락처를 주고받고. 다음에 여유 있을 때 따로 만나서 이야기 좀 해봐라"


시발, 머리 속으로 복잡하게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진짜 밑도 끝도 없이 대뜸 누나를 소개시켜주겠단다.


"여기다, 여기"


식당 입구에서 어떤 여자가 들어와서 두리번거리길레, 아빠가 손을 들었고...진짜 개 썩은 표정을 하면서 그 여자는 우리가 있는 테이블로 걸어왔다.


"인사해라. 니 누나 되는 사람이다"


"...안녕하세요"


오늘 나는 누나가 생겼다.




ㅋㅋㅋㅋ여동생 생긴 썰 푼다 ㅋㅋㅋ


그거의 후속편 같은 느낌인데... 사실 전작을 안 읽어도 내용 이해가 되도록...최대한 노력을 할 예정입니닷...!!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