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wb3K9UXPJjY&ab_channel=FM61.6



"...동생...너 동생 맞지...? 근데...여기서 뭐 하는거야?"


"잡초 뽑고 있잖아요"


전화가 끝나고 난 뒤에 바로 건물 안으로 들어갈 줄 알았던 누나가 나를 보면서 먼저 아는 척을 했다. 나는 이게 좀 당황스러웠던게 어제 식당에서 만났을 때는 누나 표정이 완전 썩어있어서... 우리 집안 사람을 싫어하는 줄 알았다. 왜... 그 한국대까지 나온 인텔리의 입장에서 아빠 같은 사람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들겠냐? 


그래서 그 날 내가 어떤 생각을 했냐면. 진짜 왠만하면 저 누나라는 사람이랑은 엮일 기회가 없겠다. 뭐...아빠가 경찰서에 잡혀가거나 아니면 뭐... 그런거 있잖아. 엄청 큰 일이 아닌 이상 내가 저 사람이랑 만날 기회가 있을까? 그런 생각도 들고,하여튼. 앞으로는 접점이 없을 줄 알았는데...누나쪽에서 먼저 나한테 아는 척을 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지.


"...그..래?"


내가 잡초 뽑는게 누나 입장에서는 살짝 이해가 안 되는 표정이었다. 이런 일도 하는거야...? 그런 표정 있잖아. 


"복지관 선생님이 이거 하라고 하셔가지고..."


너무 이해 안되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어서 뻘쭘했다. 잡초 뽑는게 뭐 어때서..? 근데 저렇게 너무 빤하게 쳐다보니까. 좀 그렇네.


"열심히 해, 더운데 너무 무리하지말고"


그렇게 말하고 누나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이번에 대화를 하면서 느낀건데, 아빠는... 누나가 싫어하는 것 같은데. 나한테는 별 다른 감정이 없나...? 


그냥 너무 뜬금없이 나한테 말을 거니까. 뭐지..? 진짜, 뭘까? 그런 생각만 드네. 


오늘도 그렇게 대충 하루가 흘러갔다. 잡초도 다 뽑고... 화장실에가서 한번 손도 좀 씻고, 집에가서 게임 할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복지관을 나가려는데, 뒤편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막...남자랑 여자가 싸우는 목소리인데, 보통은 내가 왠만하면 그런거 봐도 남의 일이라서 신경을 안 쓰는데, 이번에는 그럴수가 없는게. 누나가 어떤 남자랑 싸우고 있었다.


"...언제까지 시간을 줘야되는건데요? 왜 이렇게 늦습니까?"


"....아니...제가...그...노력은 하고 있는데..."


뒤에서 몰래 빼꼼 지켜보니까, 누나는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두 손을 모은체 안절부절 불안에 떨고 있었고, 남자는 그런 누나의 반응이 답답한지 화를 씩씩 내고 있었다.


"이쪽도 한달에 맞춰야 할 할당량이 있다고. 자꾸 이런식으로...굴면.."


"안 돼..! 그럴수는 없어!!"


누나는 울면서, 남자의 다리를 붙잡고 메달렸다. 지금까지 누나를 본 시간은 얼마 안 됐지만, 저렇게 울고불고 하는 모습은 도저히 평소에 내가 생각했던 누나의 이미지랑은 어울리지 않아서, 좀 충격이었다. 


...처음에는 남자친구...? 뭐 그런 줄 알았는데, 남자의 외모를 봐서는 그건 아닌 것 같고. 


"...메달리지 마세요. 메달리지 말라고..!"


"...뭔데?"


"...누구?"


"아, 저 누나 동생인데요?"


"...동생...?"


보다 못해서 둘 사이에 끼어드니까. 남자가 엄청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힐끔 그 사람이 우리 누나를 쳐다보는게 보였다. 


-끄덕끄덕.


고개를 끄덕거리는 누나의 모습을 보니까, 내 말을 믿는 눈치였다.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는거에요...?"


"...아...? 아아...이거...? 봉사 활동 시간 때문에 그러는거야. 너네 누나가 몇번 봉사 활동 시간을 빼먹었거든. 너는... 잘..모르겠지만. 이게 동아리 활동을 하면 필수적으로 몇시간 이상은 봉사 시간을 체워야 한다. 그런 규정이 있거든..? 그 할당량을 못 체우면 이런...저런 복잡한 문제가 생기게 되서. ...조금...니가 보기에는 이상하게 생각될 수도 있었겠구나...?"


...동아리...봉사활동...? 그러면 이 남자는 누나랑 같은 동아리에 속해있는 사람인거야...? 


아니, 나는 뭐 대학교 동아리. 봉사활동 그런건 쥐뿔도 모르니까. 구라치는건 아니겠지...?


양아치는 양아치를 볼 줄 안다고. 내가 보기에는 이 남자... 양아치는 아닌 것 같다. 얼굴의 절반을 가린 뿔테 안경이 그 증거라고. 엄청...공부 잘 할 것 같이 생겼는데. 


"내가 누군지에 대해서 궁금해 하는 것 같은데. 나는 전요한이고, 진아 남자친구다."


"...진..아,네.. 뭐...남자 친구..? 호칭은 뭘 어떻게..."


"호칭은 무슨... 야 편하게 형이라고 불러~ 너... 생긴거랑은 다르게 순둥순둥한 부분이 있구나?"


그 요한이 형..?이 막 웃으면서 손으로 내 팔을 툭 쳤다. 원래. 나는 뭐... 친하지도 않은 사람이 툭치고, 건드리고. 그런거 진짜 싫어하는데, 지금은 그거보다 이 사람이 누나 남자 친구라는게 더 충격이었다.


야, 딱 봤을 때. 둘이 애인 관계는 아닌 것 같다. 진짜, 그렇게 생각했는데. 아니었네. ...한국대 커플이라서 그런가..? 외모보다 뭐...지식, 뭐 내면...? 그런걸 보는거야..? 좀...빡센데...? 


...그럼 누나는 이 사람이랑 키스도 하고, 섹스도 하고 다 했겠네..?


"...야, 뭐... 내가 기분 나쁘게 한거라도 있니..? 기분나쁘게 했다면, 내가 사과할게"


"...아니야.. 아니에요. 저 괜찮아요. 하나도 기분 안 나쁜데"


진짜 존나 웃긴데. 사실 누나도 사람인데 남자 친구를 사귈 수도 있는거고. 거기에 대고 내가 기분 나쁜 감정을 품을 이유는 1도 없는데...잠깐 머리가 어떻게 된 것 같다.


"그런데, 두 사람은 어떻게 연애하신거에요?"


"...어...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할게 참 많은데. 잠시만... 동생, 혹시 시간이...있니..?"


집에 가도 나는 할게 없었다. 기껏해야 집에서 메이플이나 하겠지.


아니면 동생이랑...


"시간은 많은데"


"그러면 우리 커피나 한잔 할까? 이야기도 좀 하고..."


"좋아요"


뭐 그런 식으로 나랑 누나랑 요한이 형은 복지관 근처에 있는 카페에 갔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통일하는거 맞지?"


"뭐, 마음대로"


요한이 형이 주문하는 동안 나는 누나의 손을 잡고 카페 구석진 곳으로 끌고갔다.


"누나, 물어볼게 있는데. 저 사람 진짜 누나 남자친구 맞아?"


...이 시발 아무리봐도 좆구라 치는 것 같은데.


"맞는데..? 왜..?"


...살짝... 뒤통수가 얼얼해지는 기분이야.


"둘은 어떻게 만났어?"


우물...우물...누나는 내 말에 쉽게 대답을 하지 못했다. 


"...저기...너, 근데 말투가 좀...짧다...?"


"...어..? 어어..??"


"아무리 동생이라지만...누나한테 존댓말도 안 쓰는 건...조금...아니라고 생각해..."


"야야, 왜..? 무슨 일이야..? 커피 시키는 동안 왜 둘이서 싸우고 있어? 싸우지 말고, 빨리 사과해."


누나 표정이 좀 굳어졌는데, 화난건 아니겠지..?


아, 시발...진짜. 원래 내가 다른 사람 눈치는 잘 안보는데. 이상하게 누나가 뭐라고 말하면, 가슴을 바늘로 쿡쿡 찌르는 것 같다.


"...죄송합니다"


"...아니. 뭘 그렇게 주눅드냐. 아...맞다. 너 이름이 어떻게 되니?"


"저요...? 아.. 내 이름... 유선인데요...? 강유선..?"


"강..유선...? ...? 야 잠시만... 너 진아 동생이라고 하지 않았어..?"


성이 다르니까, 이게...이런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었다. 나도 그렇고 누나도 그렇고 굉장히 당황한 표정이 되었는데...


"...아, 뭐 그런건 개인적인 사정이니까. 대충 넘어가고. 사실 니가 해야할 일이 있는데, 그걸 하나 해줬으면 해. 할 수 있겠지?"


"해야할 일?"


"사실,이거 때문에 내가 너한테 커피도 지금 사주고 그러는건데"


주섬주섬 요한이 형이 가방에서 두꺼운 종이 파일 같은걸 하나 꺼내서 내게 내밀었다.


애니어그램...? 시발 뭔데 이게?


"내 친구가 사회심리학과 석사를 준비 한다고. 자료를 모으고 있거든..? 그러니까 너도 좀 도와줬으면 좋겠는데...?"


"...? 여기서, 지금 바로 해요..?"


"...안 할 생각은 아니겠지..? 지금 진아..? 어..? 너 때문에 화가 단단히 난 것 같은데. 그냥 이대로 몰..?루..? 하고 도망칠 생각은 아니겠지..?"


이게, 사람이 완전 양아치 같으면. 좆까라 하고 도망치는건데, 요한이형도 그렇고 누나도 그렇고 내가 봤던 사람들 중에서 제일 이성적이고 나쁜 사람 같아 보이지는 않아서... 이 사람들이 부탁하는 걸 왠만하면 들어주고 싶었다.


"에니어그램이 먼데요..?"


"MBTI같은거야. 누가 처음 개발했냐면 돈 리처드 허슨과 러스 허드슨이라는 사람이 인간의 심리 유형을 9가지로 분류했는데, 이걸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각 심리 유형의 분류를 명확한 호칭으로 정리를 한 사람이 바로..."


설명이 존나 길어질 것 같아서 말을 끊었다. 야...확실히 한국 대학교를 다니면 톡-하고 건드리면 뭐..리처드 닉..? 하여튼 뭐 그런게 쏟아져나오네.


"MBTI...저 좋아해요"


요즘에는 mbti..? 그런거 유행하니까. 심리 테스트 한번 해보면 괜찮겠지. 뭐.


일단 첫장부터 열심히 심리 테스트를 풀었다. 사람들의 중심에 서는걸 좋아한다. 나는 가끔 기계를 분해하고 조립하는걸 즐긴다.


예전에 몇번 이런 비슷한걸 학교나 그런데서 해본적이 있어서 별 어려움은 없었다.


"...야...동생... 동생이라고 말하는것도 좀 그런데. 호칭을 유선이라고 편하게 불러도 되겠니?"


"어... 네, 그렇게 말하세요"


"너는 왜 평일인데, 학교는 안 가고 복지관에서...봉사 활동을 하고 있는거야?"


... 문항에 점수를 체크하던 내 손이 멈췄다.


"...아..뭐...사고를 좀 쳐서요. ...내가 그렇게 잘못한건 아닌데. 이게.."


자꾸 누나의 눈치를 보게 된다. 나는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닌데, 어딘가 나를 바라보는 누나의 눈빛이 조금은 싸늘해진 것 같아. 마음이 아파왔다. ...


"...어...그..미안하다. 야, 눈물 좀 닦고...."


이런걸로 내가 울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나도 모르게 울음이 터져나왔다. 내 앞에 앉은 요한이형은 그런 나를 보면서 어쩔 줄 몰라했다. 


좀...한심스러운 모습도 보여서... 부끄러웠지만. 뭐 얼추 애니어그램..? 그 심리검사를 끝냈다.




애니어그램... 앞으로 유선이에게 벌어질 일은 충격 실화입니다...!!!


진짜 나한테 있었던 일임..!!


"...사실...겸사겸사 너랑 밥도 먹고, 이야기도 좀 하고. 그럴 생각이었는데, 지금은 유선이 너가 우리랑 대화를 할 기분이 아닌 것 같으니까... 다음에 만나서 이야기하자"


그렇게 우리는 연락처를 주고 받은 뒤 주섬주섬 짐을 챙겨서 밖으로 나갔고... 다음 날 봉사활동을 하는데 요한이 형에게 전화가 왔다.


"...야, 유선아. 혹시 시간 되니?"


"...어.. 되는데요..?"


"...그 심리 검사 관련해서... 물어볼게 하나 있는데, 이야기를 좀 할 수 있을까?"

 

안될건 없다고 생각해서 나는 그러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