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는 달을 더 크게 보고 싶다고 산속으로 들어가셨고, 그렇게 우리는 늑대를 마주쳤다.


다행히 한 마리만 보이긴 하는데, 나는 저걸 잡을 능력이 없다.


그래도 일단 급한 대로 떨어져 있는 나뭇가지라도 주웠다.



"컹!"



"아가씨!"



나보다 몸집이 작은 아가씨를 노리는 늑대.


아가씨가 다치면 나는 끔찍한 꼴을 겪을 것이고, 만약 아가씨가 죽었다간 나는 끔찍하게 죽을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다치거나 죽더라도 아가씨를 지키는 것이 본전을 찾는 일이다.


...이건 나중에 한 생각이었고, 사실 몸이 그냥 달려나갔다.



"아으...으..."



"아가씨, 제 뒤로 오세요!"



무서워서 그런지 아가씨가 주저앉아버렸다. 어쩔 수 없다.


아가씨보다 앞으로 달려나간 뒤, 늑대를 나뭇가지로 찔러 시선을 나한테 돌렸다.


'이제 어떡하지...'


하다못해 청소할 때 쓰는 큰 빗자루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도망치세요 아가씨."



이길수는 없어도 아가씨가 도망칠 시간은 있겠지.


나뭇가지를 쥐고 늑대를 노려보고 있는데 이놈이 그냥 뒤돌아 도망간다.



"어?"



왜 그냥 가는 거지?


일단 아가씨의 상태부터 살피자.



"어디 다치신 곳은 없나요?"



"..네."



"다행입니다. 이유는 몰라도 늑대가 갔으니, 빨리 내려가죠. 혹시 무리를 끌고 올지도 모릅니다."



"알았어요...미안해요."



알면 앞으로 하지마라. 라고 할뻔


괜찮다는 말을 하고, 우리는 신속하게 저택으로 돌아갔다.


엄청 무서우셨는지, 내 팔을 꼭 잡고 있어서 조금 힘들었다.




*




"리타!!!"



백작님?


아...이대로 조용히 들어가서 입 싹 닫고 넘어가려고 했는데, 이미 아가씨가 없는걸 알고 찾고 있었나 보다.


좆됐다.



"칼. 너도 따라와라."



"넵.."



백작님의 집무실로 들어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리타. 밤에 나가는 건 위험하다고 하지 않았느냐."



"죄송해요..."



"이번엔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지만, 다음에도 무사하리란 보장은 없다."



"..."



풀이 죽은 아가씨.


백작님이 아가씨를 아끼기는 하지만 평상시에 오냐오냐하는 만큼 이례적으로 화를 내는 아버지가 무섭기도 할 것이다.


또 백작님은 키도 크고 몸도 다부져서 정색하면 위압감이 장난 아니다.


그래서 지금 나도 존나 쫄린다. 늑대보다 무섭다.



"밤에 나가고 싶다면, 적어도 몰래 나가지는 말거라. 이 애비한테 말해도 좋고."



"...네."



시발. 이제 내 차례다.



"칼."



"네. 백작님."



백작님이 손을 나한테 뻗는다.


설마 딸 앞에서 나를 죽이려는 건가?


아..안돼!!!




턱-




눈을 떠보니, 백작님의 손이 내 어깨 위에 있었다.



"네 덕분이다. 네가 저항했기에 늑대가 쉬운 먹잇감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물러난 거겠지. 무사해서 다행이구나."



"아...감사합니다."



"리타를 말리지 않은 잘못도 있지만..그래도 네가 잘 지켰으니 넘어가마. 앞으로는 리타가 떼써도 들어주지 말고 메이드장이나 나한테 얘기하거라."



"알겠습니다. 앞으론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키 크고 몸 좋고 얼굴도 잘생겼는데 심지어 성격까지 좋다니...이건 반칙이 아닐까?


다른 메이드들이 왜 그렇게 일을 열심히 못 해서 안달인지 이해할 것 같다.




아가씨는 그 이후로 밤에 나가자는 말은 안 하셨지만, 나는 더욱 힘들어졌다.


별일도 없는데 시도 때도 없이 나를 불러낸다. 나도 할 일이 있는데.



"아가씨, 다치신 곳도 없는데 제가 업어드리기는 좀 곤란합니다."



"아니 저 책장에 손이 안 닿는다니까요?"



그냥 내가 꺼내드리면 되는 걸 왜 굳이 직접 목마를 타서 꺼내시려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


아니 옆에 사다리도 있는데.


아...하긴 아가씨가 사다리 쓰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안 된다.


물론 그게 굳이 아가씨가 직접 책을 꺼낼 이유는 되지 않지만.



"이거 브룩스 아저씨한테 말해서 받아온 건데, 먹을래요?"



"감사히 먹겠습니다."



아마도 전에 있었던 일 때문에, 나름대로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 같다.



"맛있어요?"



"음...브룩스 아저씨가 손을 다쳤나요? 간이 좀 이상한데..."



"칫..."



왜 표정이 시무룩해지신 걸까?




아가씨를 챙기는 일이 내가 주로 할 일이긴 하지만, 그것이 내가 할 일의 전부는 아니다.


애초에 아가씨는 누워계셨으니, 아가씨를 모시는 일은 어떻게 보면 덤에 가까웠으니까.


그래서 아가씨랑 계속 붙어있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나는 내 일을 다 못 하게 된다.



"아가씨, 제가 교육 시간에도 옆에 있는 것은 좀 곤란합니다..."



"왜요?"



"저는 따로 할 일도 있고, 교육 시간에는 저 말고도 다른 시종이 붙어있습니다."



나보다 일 잘하는 다른 사람도 있고, 나는 몸이 두 개가 아니란 말이다.



"아, 괜찮아요. 이제 칼도 교육받을 거니까."



"제가요?"



"오히려 아버지도 그게 낫겠다고 하시던데요?"



"???"



나는 일하러 온 사람인데 왜 이렇게 된 걸까.


교육받는 시간이 생긴 만큼 내가 해야 할 일은 줄어들어서, 몸은 좀 더 편해졌다.


월급도 줄었지만.




결국 아가씨랑 떨어져있는 시간이 잠자는 시간과 


그리고 저번에 이상한 요리는 브룩스 아저씨가 아니라 아가씨가 만들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요리를 하는 아가씨는 상당히 귀엽긴 하지만, 그 요리를 처리...아니 먹을 사람이 나라는 사실은 그 귀여움을 순수하게 지켜보기 힘들게 했다.




"오늘은 책 읽어요. 모르는 부분은 제가 읽어줄테니까"



아가씨는 어렸을 때부터 체계적인 교육을 받으셨지만 나는 글자와 수부터 배우고 있다.


몸이 안좋으시기도 했고, 후계자가 아니라 빡세게 교육받은 것도 아닌데 나랑 수준차이가 너무 크다.


그냥 귀여운 애인 줄만 알았는데 역시 귀족은 남다르다는 걸까.


고사리 같은 손으로 글자를 짚어가며 설명해주는걸 듣고 있는데, 내 볼에 어떤 감촉이 느껴졌다.


쪽. 하는 소리랑 함께.




*




읽어줘서 고맙다.

누가 댓글 달았다가 빛삭했던데 내용 확인했다. 연중튀 걱정마라.

나도 독자다...연중튀를 보느니 구리더라도 결말 내주는게 훨씬 좋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