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는 여관에서 준비한 따뜻한 물수건으로 땀을 닦고 나왔다.

아래 1층엔 아침을 먹으러 온 투숙객과 손님으로 제법 번잡했지만 다행히 자신의 파티가 미리 자리를 잡고 있었다.

 

“시로~ 여기야~!”

 

시로보다 한 뼘 작은 키의 여자의 이름은 카노.

지금은 평상인 지라 두꺼운 갑옷을 입지 않아 윤기나는 매끈한 팔을 들어보이며 시로를 불렀다.

참고로 아직 성인이 아니다. 시로보다 2살 어리다.

자신의 옆 좌석을 두들겼기에 시로는 별 생각없이 그 자리에 앉았다.

맞은 편에는 언제나처럼 평온하고 웃는 듯한 얼굴의 로크가 아침 햇살을 느끼며 말했다.

 

“잠은 잘 주무셨어요. 시로씨?”

“아, 네.”

 

로크는 이 파티의 리더이자 가장 실력자다.

성격이 괴팍하고 제멋대로인 모험가 중에 드물게 제대로 된 성격을 가진 청년이기도 했다.

 

“그런 것치곤 매우 피곤해 보이네요. 던전 탐색은 내일로 미룰까요? 흠.”

“응? 진짜? 시로가 피곤하면 나도 찬성이야~”

 

‘눈치도 빠르군.’

 

로크는 눈썰미가 좋다. 그는 언제나 자신은 물론이고 파티원들의 상태를 확인한다.

시로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괜찮습니다. 그것보다 타일러랑 에밀렛은 어디 갔어?”

 

시로의 질문에 카노가 답했다.

 

“타일러 그 아저씬 밤늦도록 술 퍼마셔서 지금쯤 퍼자고 있을 걸? 에밀렛은 아침을 거르고 도서관에 갔어.”

“그렇구나.”

 

미리 세 명이 먹을 것을 주문했는지 바로 음식이 나왔다.

걸쭉한 야채수프, 딱딱하지만 씹으면 맛이 나는 빵들, 향신료 향이 물씬 풍기는 돼지 조림이다.

로크가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그럼 아침까지 대강 볼일을 마치고 11시에 다시 모이기로 하죠. 타일러 씨도 그때쯤이면 깨있을 겁니다. 카노씨?”

“네네~ 에밀렛 언니한테는 내가 말해둘게.”

 

B급 1명,C급 2명 그리고 D급과 F급 1명으로 구성된 이 파티는 오늘 C+급 던전 흑거미의 던전을 탐색한다.

준비는 여독을 풀면서 거의 마친 상태다.

하지만 아직 중요한 게 남아 있었다.

 

“로크 씨, 12시에 모이죠. 볼 일이 좀 남아서….”

“그럼요. 그럼 그렇게 하죠.”

“뭐야? 무슨 일 있어?”

 

시로는 고개를 젓고 대답하지 않았다.

이 파티에 남아 있는 외팔이 F급 모험가가 파티에 폐를 끼치지 않으려면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많은 돈이 들더라도 말이다.

 

 

 

****

 

 

 

식사를 마치고 시로는 여관을 나와 외곽에 한적한 대장장이를 찾아갔다.

깡! 깡! 깡!

한창 온 힘을 들이고 집중하고 있었던지라 시로는 도착하고도 인기척을 내지 않았다.

30분이 지나고 땀에 흠뻑 젖은 중년의 남자가 일어서며 한숨을 쉬다가 시로를 발견하고 화들짝 놀랐다.

 

“아고 깜짝이야!”

“안녕하세요. 파로브씨.”

“귀신인 줄 알았다. 왔으면 인기척이라도 내!”

“그러면 또 화내실 거잖아요. 제가 주문한 철제방패는 다 만드셨죠?”

 

파로브는 대답 대신 벽면에 걸린 방패를 가리켰다.

그 크기는 사람의 삼분의 이를 가릴만큼 커다랬고 한눈에 봐도 무거웠다.

 

“저깄다. 이상한 놈. 저렇게 무식하게 커다랐고 무거운 걸 주문하는 놈은 대장장이 20년동안 너가 처음이다.”

“얼마랬죠? 잔금을 치러야 하는데.”

“철이 많이 들어갔다. 40실버만 내고 썩 가져가라. 쯧. 저런 걸 걸고 있으면 손님도 끊어지겠다. 이 녀석아.”

 

파로브는 시로를 궁색맞게 대했지만 시로는 그가 싫지 않았다.

갖은 고초와 없는 살림살이로 시세와 잡지식이 많은 그는 한눈에 봐도 철제방패에 커다란 크기에 들어간 철량이 1골드는 족히 된다는 걸 알았다.

선금과 남은 잔금을 합치면 90실버.

파로브는 자신을 싫어하는 척 쏘아붙이면서도 무려 10실버 이상 되는 돈을 깎아줬다.

들어간 수고와 노력을 생각하면 더 받아도 이상하지 않다.

시로는 왼팔로 파로브의 땀 묻은 손을 억지로 잡아채 손을 잡았다.

 

“고맙습니다. 파로브씨. 언제나 신세지고 있어요. 늘 감사합니다.”

“이, 이, 이 새끼가…!”

 

파로브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변하더니 손을 서둘러 홱 뺐다.

그리고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 여자한테도 그러고 다니냐?”

“네?”

“하여튼 기생오라비같이 생겨가지고… 씨발 징그러우니깐 나한테 하지 말어? 알았어? 이상한 놈. 썩 꺼져.”

 

파로브는 무거운 방패를 홱 던지려다가 시로가 한 팔 밖에 없다는 걸 순간 깨닫고 순순히 방패를 등에 매는 방패 걸이에 걸어줬다.

 

“재수 없는 놈!”

“하하하!”

 

시로는 오랜만에 크게 웃었다.

궁시렁거리고 표현이 서툰 파로브는 파티원들과 더불어 굉장히 소중한 인연이란 걸 마음속 깊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굉장히 무겁군.’

 

대장간을 나와 몇 걸음 걸어보자 온몸에 하중이 실렸다.

익숙해져야 한다. 저번 던전처럼 방패가 뚫려버리는 참사는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크기는 이 정도면 될 거야. 에밀렛의 몸 정돈 모두 가릴 수 있으니깐.’

 

2미터에 육박하는 거대한 육체로 도끼와 방패를 든 타일러와 쌍검을 든 카노가 전위라면 나이프와 활을 겸비한 로크, 공격 마법과 보조 마법을 두루 사용할 수 있는 에밀렛 그리고 한 손으로 방패를 든 자신까지 합해 이 3명이 후위다.

로크가 사실상 전위의 바로 뒤에서 그들을 뒷받침 하는 걸 생각하면 캐스팅까지 시간이 걸리는 에밀렛을 보호해야 하는 자신의 임무가 막중하다.

 

‘돈을 아낄 이유가 없군.’

 

시로는 잠깐 근처에 있는 나무 밑에 앉아 상념에 잠겼다.

오랜만에 그 꿈을 꾼 덕일까? 전쟁고아가 돼서 이리저리 떠돌아다닌 지난 날들이 떠올랐다.

 

‘외팔이란 이유로 멸시와 모욕은 당연했지.’

 

막노동, 허드렛일을 마구잡이로 해왔고 굶주림에 고파 땅바닥에 떨어진 음식을 주워먹는 일도 빈번했다.

어떻게 살아왔는지 모를 정도로 험난한 일들이 많았다.

15살이 되자 모험가 파티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아무도 자신을 파티에 껴주지 않았다.

 

-외팔이 새끼가 뭘 할 수 있다고. 재수 없게.

 

처음 만난 파티는 그렇게 자신을 문전박대했다.

하지만 살려면 무슨 일이든 이를 악물고 해야하지 않겠는가?

파티에 들지 못하더라도 뒤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잡부일을 계속해서 했다.

떨어진 마석을 줍고 몬스터들의 가죽을 수렵하거나 던전에서 나오는 것을 채집하는 일을 하며 적은 수입으로 굶주린 배를 채우고 거센 밤을 보냈다.

시로는 그러한 일을 해오며 동시에 무시하고 핍박받는 수모를 견디며 계속해서 살아왔다.

그리고 18살이 됐을 때.

이 파티를 만났다.

자신을 받아준 유일한 파티를.

 

-뒤꽁무니만 따라다녀서 어디 쓰겠냐? 어이 로크. 자리 하나 만드는 게 어때?

-전 상관 없습니다. 카노씨랑 에밀렛씨는 어떻게 생각하죠?

-난 찬성~! 호호. 눈빛이 굉장히 마음에 드는데. 

-나도 별로 상관 없어. 방해만 되지 않는다면야….

 

“…….”

 

울적한 감상이 잠깐 스쳐지나갔다.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눈물이 핑 도는 것 같은 감상이 흘러나왔다.

그 감사함과 고마움은 지금도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시로는 육중한 방패의 하중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장간을 갔다 오고 다음 목적지는 정보 길드조합소이다.

건물 안에 들어가자 데스크에 있는 여러 직원들 중 안면이 있는 사람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뚱뚱하고 못생긴 형색이었지만 시로는 겉모습 따위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카나리아는 이 곳에 있는 그 어떤 사람보다 친절하고 착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시로씨. 어서 오세요. 기다리고 있었어요. 후후.”

 

언제나 이곳을 올 때마다 느끼지만 바쁠 때를 제외하면 카나리아가 있는 데스크만 줄이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목소리에 더 반가운 기색이 느껴졌다.

 

“흑거미의 던전 지도는 혹시 구하셨나요?”

“물론이죠! 3장 정도 구한다고 하셨죠? 여기 있어요.”

 

카나리아는 6장의 지도를 펼쳐 보여줬다.

C+급 던전 지도는 한 장당 10실버의 가치를 지닌다. 당연히 정보는 많으면 많을수록 부족하지 않다.

문제는 강철방패를 주문 제작하느라 돈이 없다는 거다.

 

‘아깝다. 기껏 6장이나 구해줬는데….’

 

“고맙습니다. 근데 죄송하지만 딱 세 장만 살게요.”

“돈이 모자른 건가요?”

“네. 뒤에 보시다시피….”

 

시로는 고개를 돌려 뒤에 맨 방패를 가리켰다.

카나리아는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외상으로 달아두고 드리도록 할게요. 어때요?”

“그럴 수는 없어요. 카나리아씨.”

 

카나리아가 친절한 건 알지만 이건 너무 과했다.

모험가가 던전에서 죽으면 그 빚은 누가 감당한단 말인가?

바로 눈앞에 직원이 감당한다.

그렇기에 통상적으로 외상을 다는 일은 일체 없다.

심지어 조합소에서 일하는 직원이 먼저 제의를 했다.

대체 얼마나 착해야 이런 말을 선뜻 할 수 있는 건지 시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제가 봤을 때 시로씨는 쉽게 죽지 않아요. 제가 알고 있는 모험가들 중에서 가장 정보를 중요시하는 모험가니깐요.”

 

‘모험가라…’

 

F급 모험가는 무시받기 일쑤인데 카나리아는 전혀 그런 감정 없이 평등하게 대했다.

 

“정 그러면 제가 드리는 선물이라 치세요. 아, 사심은 없어요. 후후.”

“…고맙습니다. 카나리아씨.”

 

시로는 잠시 번민했지만 호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만약 새로 얻은 지도 덕분에 파티원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면 예의를 따질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시로가 고개를 숙이자 카나리아는 직원의 예를 갖추며 더 깊게 숙였다.

시로는 사무소를 나와 어둑한 먹구름에 가린 해를 바라봤다.

 

‘11시 45분쯤인가….’

 

곧 12시가 돼갔다.

시로는 빠른 걸음으로 약속 장소인 여관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