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하하. 시로 어딜 쏘다니고 지금 온게냐?”

 

태양이 12시를 가리키고 있어 타일러의 시원시원한 두상이 번쩍였다.

시로는 잠깐 호흡을 골랐다.

 

“헉… 헉… 미안.”

“짜식, 빠져가지고.”

“야, 이 대머리야! 너도 방금 왔으면서 왜 시로한테만 뭐라 그래! 지각한 것도 아닌데!”

 

카노가 시로를 변호하며 타일러를 타박했다.

타일러가 머리를 긁었다.

 

“이, 이봐 카노…. 내가 편하게 대해라고 했지만, 그래도 너만한 딸이 집에 있는데…….”

 

카노가 지지않고 말했다.

 

“나도 너만한 아빠 있어!”

“…음. 그것도 그렇군. 부모가 교육을 잘못……. 악!”

 

빡! 빡!

카노가 번쩍 뛰어올라 타일러의 머리를 두 번 가격했다.

 

“이 꼬맹이가!”

“한 번 해볼래? 빡빡아!”

 

시로는 예의 벌어지는 두 사람의 싸움을 무시하고 로크에게 다가갔다.

한 사람이 안보였기 때문이다.

 

“로크씨, 에밀렛은 어디 있죠?”

“에밀렛씨는 미리 던전 앞에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하더군요. 아시잖아요? 항상 마이페이스인 거….”

“하긴.”

“그것보다 방패 하나 만드셨군요? 시로씨.”

 

로크의 시선이 시로의 뒤에 갔다.

한 사람이 들고 다니기 커다랬고 무거워 보였다.

 

“괜찮겠어요? 들고 다니기 힘드실텐데….”

“괜찮습니다. 저번과 같은 불상사는 안 일어나야죠.”

 

저번 C급 던전 탐색의 일이었다.

4층까지 내려온 상황에서 보스방이 곧이었고 여러 파티들보다 가장 선두에 있었다.

세 마리의 중간 보스들이 길을 막아섰고 큰 출혈 없이 물리쳤다고 생각했을 때, 앞과 위에서 부하 몹들이 우르르 쏟아졌다.

전위에서 급하게 시선을 끌려했지만 이미 많은 몬스터들이 후위로 들이닥쳤고 그때 한계에 달한 방패의 내구도가 다 떨어져 산산조각났다.

급하게 에밀렛을 끌어안고 방어해 다행히 마법사는 크게 다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생명이 위독할 정도로 크게 다쳤다.

고작 F급 모험가가 전력에 이탈했다고 이 파티가 보스를 무찌르지 못할 리가 없다.

하지만 로크의 파티는 전원 동의하에 침울한 기색으로 던전 탐색을 포기했다.

코앞에 있던 보스였다.

후위에 쫓아오던 파티에게 꿀같은 보상을 모두 넘겨준 것은 전적으로 모두 내 책임이었다.

 

‘내가… 내가 제대로 방어만 했더라면… 모두 나 때문이다.’

 

로크는 시로의 표정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시로씨.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생각은 변함없어요. 시로씨의 잘못이 아니에요. 오히려 시로씨가 에밀렛씨를 감싸준 덕분에 그녀가 다치지 않았어요. 굉장한 일을 하신 겁니다.”

“맞아!”

 

타일러와 말싸움을 하던 카노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이 대머리 아저씨가 다 무찌른 줄 알고 방심해서 드러누워서 이렇게 된 거야!”

“드러눕다니! 허리 아파서 잠깐 앉아있던 거고, 전선에서 갑자기 이탈한 건 너잖아!”

 

타일러의 일갈에 카노의 얼굴이 굳었다.

 

“그, 그건……. 시로한테 칭찬받고 싶어서…….”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냐? 그러니깐 너가 아직까지 D급 딱지를 못 뗀거다.”

“뭐라고! 지금 말 다 했어?!”

 

저번에 있던 앙금이 폭발 하려하자 로크가 파티의 리더답게 중재에 나섰다.

 

“자자. 타일러씨, 카노씨 둘 다 이쯤하세요. 책임을 따지면 제가 가장 큽니다.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패턴이라 미리 대비하지 못했고, 적절하게 반응하지도 못했어요. 서로가 잘 못했고 그때 일은 묻어두기로 했잖아요? 안 그래요? 시로씨.”

 

로크가 시로에게 도움을 구하자 시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로크씨의 말에 따르자. 에밀렛이 기다리겠어. 그만 싸우고 빨리 가자.”

 

시로의 말에 타일러와 카노는 서로 얼굴을 홱 돌렸다.

저렇게 싸우면서도 언제 그랬냐는 듯 던전에 들어가면 서로 쿵짝을 맞추며 서로의 목숨을 서로에게 기댈 것이다.

참 좋은 파티라고 시로는 생각했다.

 

 

 

 

****

 

 

 

흑거미의 던전은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어느 한 산중턱에 있다.

마차로 가면 족히 네다섯시간이 걸리기에 워프를 이용했다.

물론 간편하고 시간이 단축되는 만큼 드는 비용은 상당하다.

만약 마법사 할인이 없었더라면 한 사람당 50실버를 내야 하는데 에밀렛 덕분에 그게 반절로 줄었다.

파티에서 가장 1순위로 마법사를 구하는 이유 중 하나기도 하다.

 

“땅꼬마가 멀미만 안했더라면 마차를 타고 가는 게 훨씬 쌌을 텐데….”

 

타일러가 들으라는 듯 툴툴거렸다.

반절로 줄었다고하나 25실버도 부담이 적다고 할 수 없다.

마차를 이용했다면 여기서 오분의 일만 내도 충분하다.

굳이 워프를 이용하는 건 카노가 마차만 탈면 혈색이 노래져 구역질을 하기 때문이다.

이번만큼은 카노도 할 말이 없는지 대꾸하지 않았다.

 

“……칫.”

“그, 카노. 고향에서 어제 편지 왔다며? 무슨 내용이었어?”

 

시로는 카노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화제를 돌렸다.

카노는 시로의 말을 듣자 얼굴의 웃음꽃이 피었다.

 

“아, 그거! 있잖아! 들어봐! 우리 집에서 이따만한 개를 키우는데 새끼를 배었대. 그래서……”

 

로크의 파티는 워프장에서 빠져나와 산중턱을 올랐다.

신이 난 카노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게 무지무지 귀엽다는 거야! 사진으로도 봤는데 딱 시로랑 닮았어! 호호! 시로도 보고 싶지 않아? 아, 가져올 걸! 힝.”

“…나랑 닮았다고?”

 

시로는 개가 자신과 닮았다는 말이 칭찬인지 욕인지 헷갈렸다.

 

“응응. 무뚝뚝하면서도 어딘가 귀엽고 눈을 뗄 수 없는게 딱 시로라니깐! 호호! 차라리 이름이 시로라 지을까?”

“개 이름을 내 이름으로 짓겠다고? 그건 좀 그런데…….”

 

타일러가 끼어들었다.

 

“뭐 어때 시로. 나도 말 안 듣는 털바퀴 이름을 이 녀석으로 지었는데.”

 

타일러의 눈이 카노에게 닿았다.

다행히 카노는 타일러의 시선을 눈치채지 못했다.

잡담하는 사이 산중턱에 다 올랐다.

멀리 보이는 던전 입구에는 모험가 협회의 직원들이 서있었고 그 앞에는 여러 파티가 따로 모여 대기하고 있었다.

 

‘대충 7,8팀 정도인가…. 에밀렛은 어디 있지?’

 

던전 입구에서 기다리겠다는 에밀렛이 안보였다.

실눈을 뜨고 계속해서 찾아보자 안보인 이유를 알았다.

나무에 기대서 묵묵히 책을 보던 에밀렛은 어느 한 파티에 휩쌓여있었다.

시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빨리 가야겠어! 뛰자!”

“어, 어? 잠깐만 시로….”

 

시로가 서둘러 뛰어가는 사이 에밀렛을 향한 치근덕거림은 계속 됐다.

 

“…거기 나오고 우리 쪽으로 오라니깐? 대우도 섭섭지 않게 해줄게. 그냥 뒤에서 보조마법만 걸어도 B급까지 일사천리라니깐?”

“…….”

 

에밀렛이 무표정한 얼굴로 책을 읽자 검투사의 투구를 쓴 파티의 리더 데가넬이 손으로 책을 가렸다.

 

“이봐. 아무리 귀하고 귀한 마법사라고 해도 들은 척도 하지 않는 건 너무한 거 아니야? 뭐라고 대답 좀 하라니깐?”

“……뒤.”

“뭐?”

“뒤.”

 

데가넬이 뒤를 돌자 순식간에 당도한 시로가 왼팔을 휘둘러 데가넬의 얼굴을 정확히 쳐버렸다.

퍽!

갑작스러운 충격에 투구가 떨어져나가고 얼굴이 땅에 박혔다.

파티의 리더가 볼썽사나운 모습으로 기습당하자 파티원들이 일제히 시로를 향해 검을 빼들었다.

 

“이 미친 놈이…!”

“F급 새끼가 무슨 짓거리야?!”

 

그러거나 말거나 에밀렛은 신경이 완전히 차단된 듯 태평한 얼굴로 시로에게 말했다.

 

“늦었네?”

“씨발….”

 

시로는 에밀렛의 말을 듣지 못했다.

그리고 보기 드물게 욕지거리가 그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한 파티에 소속된 사람에게 다른 파티가 접근하는 것은 모험가들 사이에서 절대적으로 금지된 불문율이다.

좀 더 좋은 조건과 환경을 제의한 것만으로도 그 사람의 마음이 흔들린다면 그 파티는 불화가 일어나고 얼마 못 가 깨지는 게 일상다반사다.

시로가 이 광경을 보고 격정적으로 반응한 것은 이상한 일이 전혀 아니었다.

데카넬은 퉁퉁 부은 볼을 감싸쥐며 칼을 빼들고 일어섰다.

 

“남은 팔도 짤라주겠다. 이 머저리 새끼가…!”

 

그 뒤를 이어 로크,타일러,카노도 도착했다.

셋 다 모두 무기를 빼든 상태였다.

카노는 흥분하며 말했다.

 

“시로! 잘했어! 진짜 멋졌어!”

“불알을 차버리지 신사답게 쳤냐, 왜? 크크.”

 

타일러는 도끼를 붕붕 휘두르며 가장 앞에 섰다.

로크는 단검을 쥔 채 데카넬에게 말했다.

 

“데카넬씨 이게 무슨 짓입니까? 저희가 바보로 보입니까? 입이 있으면 뭐라고 말을 하십시오.”

“……좆같은 외팔이 파티, 두고 보자.”

 

데카넬은 할 말이 없는지 반박하지 못하고 씩씩대며 뒤로 돌아섰다.

그 파티원들도 궁시렁거리며 그를 따랐다.

에밀렛이 책을 덮었다.

 

“늦었어. 시로만 조금 빨랐네. 다음부턴 늦지 않도록 해. 책에 집중할 수 없잖아?”

 

긴 흑발을 뒤로 넘기며 자기 할 말만 하는 이 마법사의 이름은 에밀렛 베르니에.

위대한 대마법사로 불리우는 베르니에가 제자들중 가장 아끼는 마법사다.

 

“하아….”

 

타일러가 어이가 없는 듯 탄식을 흘렀다.

누구도 이 거만함과 도도함으로 똘똘 뭉친 여마법사에게 뭐라 할 수 없다.

그야 아까 데카넬이 말했듯 귀하고 귀한 마법사가 아닌가? 그것도 베르니에의 제자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에밀렛씨. 다음부턴 던전 입구에서 모여보죠.”

“마음대로 해. 꼭 날 쫓아올 필요까진 없어.”

 

어쩌라는 걸까……?

…하긴 어쩌겠는가?

변덕스러운 마법사가 말하는 대로, 까라는 대로 까야지….

 

그 사이 시간이 됐다.

모험가 협회 직원중 한 명이 눈으로 사람들을 빙 둘러보고는 앞에 섰다.

 

“입장 수속을 밟겠습니다. 호명하시는 순서대로 앞으로 나오십시오. 명부에 적힌 파티원이 없거나 명부에 없는 파티원이 추가될 시 입장이 불허됩니다.”

 

드디어 입장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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봐주시는 분들 감사합니다.

처음 글을 쓸 때 이리아가 등장하는 장면까지 쭉 써보는 게 처음 구상이었는데

쭉 써보니깐 생각했던 것보다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아서 

일단 주변 동료부터 얀데레화 시키겠습니다.


오늘까지 해서 1일 1화씩 매일 썼는데 진행이 더뎌도 양해 부탁드립니다.

하루 2화씩 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몸이 안따라주네요.

감사합니다.